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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탈이 났다. 무엇이 문제인지 이곳저곳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병원을 가자니 시간이 나질 않았고, 독하기로 소문난 피부과 약만큼은 피하고 싶기도 했다. 최근 들어 부쩍 증가한 아토피 환자들을 아예 공기 맑고 물 좋은 산골로 찾아 들어가고도 있다. 환경이 바뀌면 증세가 호전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 때문일 듯한데, 그들 중 얼마나 효과를 누렸는지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종교가 불교는 아니나 사찰 음식은 이따금 내 배꼽시계를 울린다.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름진 음식과 비교하자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정갈함 만큼은 여느 나라 음식에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 적당한 포만감을 선사하면서 입안에 선사하는 향긋함까지,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를 마다할 리 없다. <마음 밥상>을 꺼내 든 건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었다. 그냥 잠들기는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이 컸기에, 잠시나마 심심함을 달래겠다는 마음으로 꺼내든 책이 바로 <마음 밥상>이었던 것이다. 주위의 잡음을 차단한다며 튼 노래를 흥얼거리느라 집중을 못해 공부를 망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드러누워 시작한 이번 독서는 그나마 몰려왔던 잠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어 이리 외쳤다. “내가 사찰 음식을 이리도 좋아했던가?” 다들 잘 알고 있듯 불교의 기본은 생명 존중이다. 그리하여 스님들은 고기를 드시지 않는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차이는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온갖 미물 취급을 받는 짐승이라 하여도 그들 또한 분명 사람 못지않게 귀한 존재이다. 우리에겐 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종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그렇다고 채식이 곧 사찰 음식을 뜻하지는 않지 싶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본 삼은 이들은 사찰 음식에 쓰일 각종 채소 등을 직접 허리 굽혀 재배한다. 도심 속 텃밭, 도시 농부가 흔해졌다고는 하나 그들의 마음이 부처를 닮았는지는 미지수다. 주어진 좁은 땅에 무어라도 하나 더 심고 가꿔 수확하려는 욕심을 지녔다면 밥상은 풍요 속에 빈곤이 무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각종 화학비료를 뿌려감서 키운 배추, 무 따위가 외려 정신에 혼탁함을 선사할 것이다. 무척이나 추운 날이 몇날 며칠 계속되면서 시린 몸을 녹여줄 음식에 대한 욕구 또한 치솟았다. 가마솥 하나 가득 끓여낸 미역국이면 충분하려나, 청산도에서 몇 해 전 먹고는 그 맛에 반했던 김국 정도면 훌륭할지도. 안타깝게도 책은 요즘 같은 겨울철을 공략하진 않았다. 허나 머지않아 찾아올 봄을 향한 그리움을 알기라도 하듯 봄나물찌개, 쑥부각 등을 참으로 정성스레 소개했다. 혹 독감에 걸려 그대 허덕이고 있다면 잃어버린 입맛을 되살려줄 매실장아찌주먹밥, 강된장보리밥 등도 추천해주고 싶다. 너무 흔해 일부러 찾지는 않을법한 음식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식습관은 이들로부터 이미 멀어진 지 오래다. 식구(食口), 이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이자 가족을 뜻하는 또 다른 표현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너도 나도 살기 벅차짐에 따라 다 같이 둘러 앉아 밥상을 나누는 일은 드물어졌다. 일본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 또한 최근 부쩍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혼밥족’이 등장했다. 남의 눈을 피해 재빨리 먹는 일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사찰 음식을 소개해주고픈 마음이 크다. 혼자 먹을수록 잘 먹어야 한다. 속을 채움으로써 마음의 허함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