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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릴로지 박스셋으로 묶을 영화가 뭐 있을까 싶은 게 막연한 선입견이지만, 나와 있는 걸 보면 예상 밖으로 많은 것에 좀 놀라고, 그 나와 있는 대상물들이 의외로 또 특정 추억을 공유하는 세대의 분포지점에 빽빽한 점묘를 이루는 사실에도 생각지 않은 반가움을 접한다. 전에 어느 리뷰에서, '요즘 애들은 복받은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지만, 진정한 추억이란 順과 逆, 精과 粗, 厚와 薄, 심지어 美와 醜에 이르기까지 생의 다양한 국면이 길항 속에 조화를 이룰 줄 알아야 깊은 맛이 있는 법이므로, 공산품처럼 가공되고 획일화된 쾌락의 틀 안에 살아가야 하는 요즘 아이들이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체험을 했던 그 세대야말로 정말 감사한 줄 알고 살아야한다는 생각, 이 풍요한 시대를 여러 모로, 다양한 앵글로 살아가며 거듭 확신하게 되는 것 같다.
1편은 지금 보면 버호벤 특유의 핀트 잃은 농담, 늘어지는 전개, 뜬금없는 대사, 불필요한 가학 묘사 등이 두드러진 촌스러움으로 눈에 띄긴 하지만, 그 시절의 분위기를 좀 배려해 주는 보정된 시선으로 공정하게 포착한다면 '역시 잘 빠진 컷'이라는 점 주저없는 동의를 보내게 된다. 나이 먹고 다시 만나는 영화에서 새삼 다가오는 놀라움이라면, 주연 배우 피터 웰러의 캐스팅이 진짜 히트였구나 하는 사실이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에서의 존 보이트, '대부1'에서의 알 파치노 등이, '그를 제외하고 다른 대안의 존재는 이제 상상하기도 곤란'한 케이스로 꼽힌다지만, 피터 웰러의 기용이 그렇게까지 평가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표정에서 드러나는 선량함, 고지식함, 동료에 대한 순박한 의리, 어느 정도의 체념주의 같은 묘한 선(線)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프로그램과 철제 갑옷이 이식되고 입혀진 채 반은 인간, 반은 전자회로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그 기막힌 존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아직 무명에 가까웠던 배우를 잘도 픽업해 내었다는 그 센스에 대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 뒤집어쓰고 다니는 '투구'에 가려 그 '선'이 제대로 보이기나 하냐고 누가 추궁한다면, 그 선이 얼마나 뚜렷하고 호소력 짙기에 간신히 슬쩍 드러난 입매만으로도 그 모든 상상이 가능할 정도겠냐고 찔러 주고 싶다. 흔히 '눈빛 하나로 만 가지 정을 전달'한다고도 하지만, 인중 아래의 그 몇 치 안면공간으로 그런 풍부한 표정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건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 깨달았다고나 하겠다. 사이보그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흘려대는 pathetic이 신파 영화 저리가라일 정도로 사람 심금을 천연스레 울리는 건, 과연 1982의 '블레이드 러너' 이후 처음 만나는, 능청맞은 버호벤의 색다른 염장질을 통한, (적어도 특정 세대의 감정선에 대해서는)숨겨진 쾌점의 적타 자극이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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