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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을은 여러 번 되풀이 되지만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요괴들의 출몰도 한이 없다.3년을 기한으로 한 여정이 십년을 넘어선다. 화염산의 불길에 막혀 길이 막힌 삼장법사 일행은 나찰녀의 남편인 우마왕을 하늘의 도움으로 물리치고 파초선을 얻는다. 파초선을 마흔 여덟 번 부쳐 화염산의 불길을 완전히 꺼버린다. 삼장법사는 오래된 나무 정령들과 어울려 시를 짓기도 하는 여유도 잠시. 황미 대왕이 가짜 소뇌음사를 세워 함정을 파고 삼장법사를 잡아간다. 이에 손오공은 미륵불의 도움을 받아 황미 요괴를 사로잡는다. 또한 병에 걸린 주자국왕의 병을 낳게 해주고 납치된 왕비를 구해준다. 홍해아와 맺어진 악연은 그의 어머니인 나찰녀와 우마 왕까지 이어진다. 한 번의 악연으로 이어지는 재난은 끝이 없다. 서행 길에 마주치는 거의 대부분의 요괴들은 애초부터 요괴가 아니었다. 그들의 천상에서 사는 동자나 짐승이었다가 세상을 그리워하는 욕심에 세상에 내려와 요괴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삼장법사 일행도 삼장법사를 제외하면 다 애초에 하늘나라의 신선이었다가 죄를 지어 세상에 내려온 요괴가 아닌가. 요괴로서 요괴를 물리친다. 바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 더불어 세상에서는 요괴이지만 그들의 천성은 다 맑았다. 즉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마음하나 먹기에 따라 신선이 되기도 하고, 요괴가 되기도 한다. 생명을 함부로 해친다고 두 번이나 삼장법사에게 내침을 당한 손오공은 이제 그 화를 억누를 줄도 알고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이제까지 나타난 요괴들은 삼장법사일행의 힘만으로 물리친 적은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하늘과 토지 신, 네 방향의 모든 신, 옥황상제의 도움이나 관음보살, 석가여래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일행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바를 다하고, 능력이 더 이상 되지 않을 때 천상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이는 하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인간세상의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도 마음속 기원이 있을 때 절대자를 향해 기원을 드린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을 일절 하지 않은 채 기원을 드린다고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질까. 아마 하늘도 그걸 원치는 않을 것이다. 손오공 일행처럼 자신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다 기울인 다음 그 다음에 자신의 능력으로 되지 않을 때 하늘에 힘을 빌리는 것을 하늘은 더 바라지 않을까. 그럴 때에야 하늘의 한 개인의 원을 풀어주지 않을까. 더불어 염원이 크고 깊으며, 그 염원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을 쌓고, 정과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면 온 세상이 나서서 도와준다. 다양한 요괴들과의 싸움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일행은 그 어려움들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고 깨달아간다. 어찌 보면 고난을 통해 더 단련되고 강해지는 것이다. 물과 불의 고난을 통해 그들의 몸은 갈수록 깨끗해진다. 나를 힘들게 하는 곳에 가는 것이 양생이다. 즉 고난은 나를 단련시키는 최고의 공부이다. 그들을 서역으로 보낸 관음보살의 목표는 어쩌면 불경에 있지 않다. 진짜 목표는 서역 길을 향하는 여정 속에서 마주치는 고난이다. 그 고난을 통해 그들은 조금씩 단련되는 것이다. 마치 강철이 불과 물을 통해 단련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여정 속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통해 깨닫고, 단련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삼장을 서역으로 보낸 관음보살의 진짜 목표는 아닐까.
서유기의 완역본을 읽기 전에 서유기의 대략의 내용을 어깨너머로 들어 알고 있을 때부터 가졌던 의문중 하나가 왜 삼장법사의 제자가 3명인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외모도 그렇지만 성격도 다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들이 한 일행이 되었다. 오래전 가졌던 의문에 대한 답이 조금은 보였다. 불교에서 인간이 겪는 번뇌의 원천은 탐진치(貪瞋癡)이다. 탐은 탐욕을, 진은 분노를, 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 세 제자의 성격을 보자. 저팔계는 탐욕의 상징이다. 줄곧 식욕과 성욕을 감당하지 못한다. 한 끼에 ‘네다섯 말의 밥’을 먹어야 하고, 간식으로 ‘구운 떡 백 개’는 먹어야 한다. 서역 길 초반에 관음보살의 시험에 빠져 혼이 난 이후로는 성욕은 좀 줄어들었지만 식욕은 어쩌지 못한다. 가는 곳마다 먹는 타령이고, 그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다. 삼장법사에게 식탐이 많다고 구박을 받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의 식욕은 제어가 안 된다. 거기에 식탐이 크니 게으르다. 잔머리의 대가이기도 하다. 식탐과 게으름과 비열함은 세트다. 다음은 손오공, 그는 화의 기운과 금의 기운으로 인해 분노의 상징이다. 분노는 또한 정의감과 의리 등을 주관하는 마음이다. 이는 지나치면 지배욕과 공격본능으로 나아가게 된다. 처음 손오공이 원숭이 왕이 된 다음 그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제국이 확장될수록 교만도 더더욱 높아져 옥황상제를 찾아가서도 고개만 까딱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부를 때 ‘손 어르신’이라고 불러야 한다. 또한 생명을 쉽게 해치고, 자신의 화를 억누르지 못한다. 그런 손오공을 다스리기 위해 관음보살이 특별히 긴고태 모자와 긴고아주라는 주문을 삼장법사에게 마련해 주었다. 머리가 깨지는 고통이 아니고서는 그의 분노를 다스릴 방법이 없다. 다음은 가장 존재감이 없는 사오정이다. 사오정은 ‘치심’ 곧 어리석음을 상징한다. 치심은 일종의 무지몽매이다. 모르니 어리석은 것이다. 사오정이 유사하에 있을 때 그는 배부르면 강 속에 웅크려 자고, 배고프면 물결을 헤치고 나와 사람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그리고는 자책에 시달린다. ‘이레마다 한 번씩 검이 날아와 옆구리를 백 번도 넘게 찌르고 돌아가는 고통’을 받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무지와 악행, 그리고 자책은 치심의 기본요소이다. 이로 볼 때 세 제자는 바로 인간이 가진 욕망을 상징한다. 서역 길은 그 욕망과 함께하는 여정이다. 그 욕망을 다스리는 방법은 수많은 고난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는 길이다. 이런 인간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이들로 구성된 밴드이지만, 하나씩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들은 성장하고 또 성장한다. 손오공은 갈수록 자신의 화를 다스릴 줄 알고, 살아있는 것에 대한 생명의 귀함을 깨달아 간다, 요괴가 아니면 죽이지를 않는다. 거기에 여정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저팔계는 시험에 빠져 창피를 당한 이후로는 성욕은 다스려졌지만 식욕은 다스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조금씩 변화되어 간다. 사오정은 존재감이 없는 존재지만, 그는 끈기를 키워간다. 어려움에 닥쳐 손오공과 저팔계가 흩어지자고 할 때마다 그걸 막아서는 이는 사오정이다. 은근과 끈기를 키워가는 것이다. 서유기속의 내용은 단순히 소설이 아니다. 그 이야기 속에 닥치는 어려움이나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은 바로 인간세상의 우리의 삶을 향하고 있다. 그들의 마주치는 고난 또한 세상 속에 있다. 세상의 삶을 살면서 닥치는 수많은 다양한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어떻게 견뎌가야 하는 지를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을 견뎌가면서 우린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말이다. 그들의 흉한 외모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외모로 인해 무시를 당하지만 그들의 능력을 본 이후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달라졌다. 구름을 타고 요괴를 물리치는 그들을 세상에 내려온 부처와 신선으로 대하고 그들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낸다. 요괴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일행들 모두 요괴가 변신한 외모에만 집착해 속아 넘어 가지만 손오공만이 그들이 가진 근본 기운을 보고 요괴의 존재를 바로 알아낸다. 그건 우리가 외모를 보고 쉽게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진실한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됨됨이다. 수양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면 그 사람의 외모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실함이 보인다. 人不可貌相 海水不可斗量(인불가모상 해수불가두량, 사람은 외모로 평가할 수 없고 바닷물은 되로 잴 수 없다) 는 구절은 바로 이를 말하고 깨우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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