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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의 이야기 중 9편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요괴들의 출몰은 멈추지 않는다. 갈 길은 멀고 요괴들은 끊임없다. 그 모습도 각각이고 행태도 각각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하나이다. 열 세상을 윤회하며 수행하고 원양을 지킨 삼장법사의 고기를 먹으면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소문에 남자 요괴들은 삼장법사의 고기를 탐한다. 여자 요괴들은 그와 부부의 연을 맺어 삼장법사의 원양을 얻어 장수를 하고자 한다. 장수에 대한 욕심은 인간이나 요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말똥으로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속담도 있는 것인가. 길에서 만난 요괴가 변신한 여자를 데리고 진해사에 다다른 일행. 헌데 그동안 무리를 해서인지 삼장법사가 병에 걸린다. 어쩔 수 없이 진해사에 머무르게 된 일행. 헌데 밤마다 요괴가 승려들을 잡아먹는다. 그 요괴는 금빛 코 휜 털 쥐가 변한 것이었다. 탁탑천황과 나타태자의 도움으로 요괴들을 물리친다. 여자요괴들의 끈질긴 구애에도 삼장법사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양을 지킨다. 대단하다. 한결같다. 비록 몸은 나약하고 아무 힘이 없을지라도 목표를 향한 그의 의지는 한결같다. 잠시도 눈길을 주위로 두르지 않는다. 삼장법사 일행에게 도움을 받은 많은 이들이 그 공덕에 보답하고자 삼장법사를 붙잡았지만 삼장법사는 갈 길을 재촉한다. 서역에 가서 불경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승려를 잡아 죽이는 왕이 있는 멸법국(滅法國)에 이른 삼장법사 일행. 멸법국의 모든 사람들을 승려로 만들어 버리고 그 악행을 멈추게 한다. 봉선군에 이른 삼장법사 일행. 그 지역은 몇 해째 가뭄이 들어 온 백성들이 초근목피 하는 지역이었다. 이에 손오공이 나서 하늘궁전에 가서 그 이유를 알아보니 삼 년 전 봉선군수가 부부싸움 후에 그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개를 불러 먹인 죄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었다.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해 온 백성이 고통에 시달린 것이다. 그 사실을 손오공을 통해 듣게 된 봉선군수는 경건한 마음으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늘에 극진히 제사를 모신다. 거기에 온 군의 백성들도 모두다 나와 하늘에 기도를 드린다. 이에 하늘이 봉선군수가 저지른 죄를 용서하고 마침내 그 고을에 비를 내린다. 바로 이는 人有善念 天必從之(인유선염 천필종지 사람이 선한 마음을 먹으면 하늘도 감동한다.)(209쪽)을 의미한다. 한때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죄를 지었을지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참회하면 하늘도 용서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지도자의 잘못으로 인해 죄없는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린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지도자들이 저지른 해악은 그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은 백성과 자자손손 대물림 된다. 지도자의 행동의 묵직함이 여기에 있다. 이렇듯 서유기는 이야기 전개과정에서 수시로 불교와 유교, 도교의 기본교리가 등장한다. 거기에 변치 않는 삶의 진리 또한 곁들여진다. 부처님은 영취산에 있으니 멀리서 찾지 말라. 영취산은 바로 그대의 마음속에 있느니라. 사람들에게는 모두 영취산의 불탑이 있으니 그 불탑을 보고 수행하면 되느니라. 佛在靈山莫遠求 靈山只在汝心頭 人人有箇靈山塔 好向靈山塔下修 처음에는 물리친 요괴들을 죽이던 손오공도 그 마음속에 자비심이 생겨 웬만하면 요괴들을 죽이지 않고 불교에 귀의 시킨다. 더구나 서역 길에 마주치는 지역의 백성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준다. 이렇듯 하나씩 하나씩 공덕을 쌓으며 가는 삼장법사 일행. 이제는 자신들의 재주를 자신들만을 위해 쓰기보다는 고통을 당하는 수만 백성의 목숨을 살리는 데 사용한다. 그동안 저팔계와 짝짜꿍이 되어 손오공을 미워하던 삼장법사도 손오공이 선한마음을 가지고 선업을 쌓는 것을 보고 이제는 손오공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갈수록 미움을 받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아직도 식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팔계다. 같은 길을 하면서 같은 고난을 당하지만 누구는 변화되고 누구는 변화되지 않는다. 이 또한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더불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심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순간의 현혹으로 진실을 감출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영원하지는 않는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누가 뭐라던,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 한마음으로 열성을 다하면 그 진심은 통한다. 세상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 진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악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옥화국의 왕국에 도착한 일행은 그곳에서 세 왕자를 제자로 거두게 된다. 드디어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 제자를 두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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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
뇌음사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삼장법사에게 기다리는 고난은 끝이 없다. 그것이 바로 인과응보가 아닐런지, 아님 구원은 전생의 업보를 해소해야만
비로소 이를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독각시대왕은
서른세 하늘 밖에 있는 이한천 도솔궁 태상노군의 외양간에 있던 푸른 소였다. 그가 금강탁을 가지고 하계로
내려와 요괴가 되었으니 쉽게 제압될 리가 없다. 결국 태상노군이 파초선을 들고 나타나서야 해결된다. 그가 기르던 소가 우리를 뚫고 내려가 벌어진 일이니 결자해지인 셈이다.
고난의
종류는 가지가지이다. 그 중 하나는 수많은 요괴들이 여인으로 변장하여 삼장법사와 운우지정을 나눠 불로장생을
꿈꾸는 것이다. 전갈요괴가 변신한 서량녀국의 여왕이나, 형극령
목선암에 나타난 나무정령 살구선녀, 그리고 천축국에서 공주로 변신한 옥토끼가 대표적이다. 끊임없이 삼장법사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다. 또한 삼장법사의 자비심이
고난을 자초하기도 한다. 모른척하고 지나가자는 제자들에게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구해주게 하지만 어김없이
요괴들이다. 도둑들을 죽였다고 손오공을 내쫓지만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러들인다. 가짜 손오공과
진짜 손오공의 싸움은 삼장법사는 물론 관음보살과 옥황상제도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결국 석가여래의 도움으로 해결된다. 업보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자모하의 물을 마시고 임신을 한 삼장법사와
저팔계를 구하기 위해 낙태천의 물을 길러 가지만 낙태천을 지키고 있는 여의진선은 화운동에서 손오공이 붙잡아 관음보살의 선재동자로 만든 홍해아의
삼촌이다. 또 화염산에서 불에 길이 막히자 파초선을 구하고자 하지만 파초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홍해아의
어머니인 나찰녀이다. 쉽게 갈 수도 있는 길이었지만 지나오면서 쌓은 업보로 고난을 당하고서야 길을 계속
갈 수 있다.
서역국으로
다가갈수록 요괴들도 변한다. 부처님이나 관음보살의 주위에 있던 짐승들이 삼장법사를 시험한다. 가짜 소뇌음사를 세워 함정을 판 황미요괴는 미륵불 앞에서 경쇠를 연주하던 누런 눈썹의 하인이었고, 주자국에서 왕비를 납치해갔던 요괴는 관음보살이 타고 다니던 금모후였다. 제자들의
불심도 깊어만 간다. 저팔계는 아직도 정착을 꿈꾸며 툭하면 각자 자신의 길을 가자고 하지만, 손오공은 자청해서 선을 베풀고자 한다. 비구국에서 거위우리에 갇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남극성의 일꾼이었던 흰사슴이 변한 요괴를 잡고, 천축국 변방 봉선군에 도착해서는
몇년째 가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구원한다. 그런가 하면 삼장법사가 얼마나 더 가야 영취산에 다다르는지를
묻자 해탈한 모습으로 말을 한다. "부처님은 영취산에 있으니 멀리서 찾지 말라. 영취산은 바로 그대의 마음속에
있느니라. 사람들에게는 모두 영취산의 불탑이 있으니 그 불탑을 보고 수행하면 되느니라."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서역국은 가까워 오지만 고난은 평온 끝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주역에 이르길 '길한 태괘의 극에 이르면 흉한 비괘가 생겨난다.' (泰極否還生)고 했다. 서유기 전편에 흐르는 사상은 유,불,선 삼교가 모두 혼재되어 있다.
음양과 오행을 기준으로 한 도교사상은 진인들을 통해 나타나고, 요괴들과의 싸움은 언제나
인과응보다.
헌데 9권에 이르도록 사오정의 존재감이 없다. 삼장법사야 인간의 몸인지라 사고만 치고 다니고, 저팔계는 욕망을 버리지 못해 정착이라도 꿈꾸지만 사오정은 묵묵히 스승의 뒤를 따를 뿐이다. 삼장법사의 세 제자가 뜻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원천인 분노와 탐욕과 어리석음이라고 하면, 몇년 전에 유행한 사오정 시리즈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서 나온 것이라 볼 수가 있다. 서유기를 거의 다 읽어가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당나라를 떠난 지 십사년이 되었다. 처음 삼년을 기한으로 떠나왔지만 유목의 길은 멀기만 했다. 과연 이들의 깨달음은 무엇 이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