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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년 전...초등학교 4~5학년 때 쯤이었던가.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지만 기회만 되면 모든 활자를 읽던 시절 우연히 친구집에서 발견하고 며칠동안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읽은 책 목록을 적어내라는 학교의 요구에 별 생각없이 '기찻길'을 적어내었다가 이유도 모르고 복날 개맞듯이 맞았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맞고나서 알게된 이유는 '성인용으로 쓰여진 소설을 국민학교 4학년(?학년)에 불과한 네 따위가 어떻게 읽느냐! 실적을 위해 집에 있는 책 제목 다 적어낸게 아니냐'는 정말 어이없는 ...
그렇게해서 저는 이 책을 영원히 잊을 수 없게 되었지만 다시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구입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했고 , 어느 정도 자라서는 서점에서 구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 얼마전 '기찻길'이 재출간되었다는 말을 웹 어딘가에서 보고 제 기억속의 그 책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 바로 주문했습니다. 밤을 새워 2번을 읽은 후 지금 4학년인 제 아이에게 주었더니 정말 재미있다며 하룻만에 다 읽어버리네요. 그 선생님(?) 지금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어야할 지...
물질적 빈곤을 겪어보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에게 50년대의 시대상황을 이해시키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이 한 권의 책이 다 해결해 주었고, 소년과 소녀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진정한 사랑, 우정이 무엇인지도 자라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제 아내가 밤새워 읽었고, 2~3년 후에는 지금 1학년인 작은 아이가 읽을 수 있겠죠.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으시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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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닐 때 여학생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잊을 수가 없어 제목만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히 생각이 나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생생한 재미와 감동이 물결쳐 근래에 드물게 책을 읽다 밤을 새웠습니다. 청소년들에게 특히 중학생들에게 막 사서 선물하고 싶어서 5권을 추가로 살 예정입니다. 작가가 누군지 고맙다고 편지 쓰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청소년들만의 순수함과 자존심, 의지, 고결함이 돋보이는 인물들을 보며 작가의 인격적 향기가 느껴집니다.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기억속의 들꽃이라는 전쟁 단편 소설이 실렸는데 함께 추천하면 학생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라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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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고1 무렵이 아닌가 싶습니다. 1980년, 험난한 한국사 속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17세의 계급을 달았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고교 얄개보다는 한참 나이가 어린 시절이었고, "꼭지 꼭지"라는 소설이 그와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 소설이었으며 그 후 그 소설은 영화화되어 그와 비슷한 나이의 최유리 씨가 그 역을 맡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요? 한때는 우리들의 스타였는데 말입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국민학생과 중학생 때처럼 수업 중에만 선생님 말씀을 귀 기울이는 것이 도통 도움이 되지 않는 공부 방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수학 수업 시간. 선생님은 그러셨습니다. 이건 학원에서 다들 배웠지? 패쓰~. 아마도 집합이었을 것입니다. 앞부분의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패쓰를 해서 넘어가 버렸던 듯합니다. 중학교 졸업 방학 때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은 소년은 약간 억울하였지만, 그렇게 학원을 다니지 않은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 가까운 곳의 학원은 다 재쳐두고 차를 한 시간쯤은 타고 가는 머나먼 곳의 학원에로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다니기로 했습니다. 학원 수업을 받은 기억은 없는데, 그 학원 앞 중국집의 빨갛기만 한 사천 짜장면이 무척 맛이 없었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생각나는 두 군데의 중국집이 있습니다. 한 곳은 중학교 2학년 무렵, 서울대공원 앞의 중국집인데 그 집에서 시킨 군만두 속 부추가 상한 냄새가 났는데도, 그곳의 주인분들은 절대 상하지 않은 것이라고 경상도 말을 사용하는 한 가족을 마치 군만두를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촌놈들 쳐다보듯이 보았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빨갛기만 한 사천 짜장면입니다. 그러다 그 해 5월, 재학생의 학원과 과외의 사교육 금지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소년은 학원을 다니지 않았고, 수업 중에는 눈만 깜빡이거나 잠을 잤으며,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으며, 수업이 끝난 후에는 집으로 가서 오후 6시부터 하는 만화영화를 봤습니다. 그 무렵 컬러텔레비전이 집에 없던 소년은 흑백 TV로도 열심히 텔레비전만 봤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무엇을 보았는지는 역시 전혀 기억나질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어렵게 진학을 하였지만, 소년은 주변에 그리 많은 친구를 사귀지 못 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인 탓인지 아니면 사교성이 떨어지는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 모든 게 다 귀찮기만 한 나이였는지도 이도 저도 아니면 숱한 복합적인 원인으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자리에 앉는 짝과 그 앞과 뒤의 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전부였던 때였습니다. 그 해 어느 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일본식 까만 교복을 입은 기억이 납니다. 기억이 나질 않지만 누군가의 집에를 갔었습니다. 왜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가 산 아래 동네였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반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 친구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도, 수업을 마친 후 늘 가던 곳인 학원이 사라짐으로 소년들은 방황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수업을 마치면 보충 수업이나 자율 학습이란 것도 없이 바로 하교하는 날들 속에 하루는 그 친구의 집에를 갔었나 봅니다. 왜 갔을까요? 낮은 지붕 아래 작은 창으로 햇살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습니다. 형과 함께 사용한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년은 버릇처럼 책상 위에 올려진 책꽂이를 보다가 교과서와 참고서가 아닌 낡고 퇴색한 하지만 양장본의 책 한 권을 보았습니다. 안톤 슈낙 선생님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그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일까요? 그 친구의 어둡고 좁은 작은 방과 그 책상 위 책꽂이의 그 책만은 기억이 납니다. 그 책꽂이 뒤 편으로 작은 창이 나있고 낮은 슬레이트 지붕 바깥으로는 제법 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내어 안 그래도 작은 창으로 햇살을 무심하게도 차단하는 중였습니다. 어둡고 낮으며 좁은 그 방과 이 책은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그 책은 그 친구의 형의 책이었고 친구 역시 재미나게 읽었으며 소년에게도 한번 탐독해보라며 권하기까지 하여 그날 소년은 그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책이 보여주는 염세주의적인 글들은 한동안 소년을 깊은 시름 앓게 해주었으며 남들 다 겪고 지났을 법한 소년의 사춘기는 겨우 시작을 하려고 했던 듯합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를 먼저 모두 탐독하기 시작했으며 그다음은 소설을 읽기 시작했으며 그다음은 수필을 읽기 시작했으며 그다음은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키가 장대처럼 크고 팝송 제목을 줄줄 외우며, 그룹사운드의 멤버들 이름과 그들의 생년월일을 달달 외우는 것쯤은 기본으로 생각하며 팝송 노래책을 늘 끼고 다니는 친구가 소설책 한 권을 빌려주었습니다. 17살의 어느 날에 만난 소설이 바로 홍성원 선생님의 "기찻길"입니다. 그때는 이 소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6.25사변이 터지고 피난을 가는 무리 속에 부모를 잃은 열여섯 무렵의 소년 소녀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피난을 가는 여정을 마치 모험 소설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소년에게 이 소설은 마치 쥘 베른 선생님의 "15소년 표류기"나 "해저 2만리" 쯤의 모험 소설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전쟁이 소설의 배경이지만 전쟁으로 인한 이데올로기나 사상 같은 것은 소설의 전면에 전혀 나오질 않습니다. 소설은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되어버린 정호 일행이 기차를 타고 피난을 내려가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것은 로드 무비인 듯하며 성장소설인 듯합니다. 16살의 나이에 자신이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며,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자신이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모험 소설의 원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7살의 소년 무렵에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사춘기 소년의 치기와 순수로 소설 속의 정의로움들에 당연하게 끄덕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소년들의 정의로움에 주먹을 꽉 쥐며 함께 힘을 보태어주곤 하였습니다만 30년 쯤이 흐른 어느 여름날에 읽는 소설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걸 보니 아직 덜 절박하구나 니네들이! 하는 과히 늙어 순수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소설을 읽어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장 소설로써 이 소설을 권했으며 몇몇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사서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여태 나는 그때 "기찻길"을 빌려보았던 소년 시절처럼 여즉 이 소설을 가지고 있질 못 합니다. 내가 선물한 책을 빌려서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꼬박 삼십 년 만의 독서입니다. 소설 속의 대사들은 70년 대의 영화 고교 얄개나 그 무렵의 말투를 무척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대사는 그 당시 영화를 녹음했던 성우들의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다 보니 웃음이 절로 입에 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억양이 표준어 억양이었나 봅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목소리를 흉내 내는 개그맨들의 그 톤으로 그렇게 책을 읽기를 마쳤습니다.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겠지요. 내 열일곱 살 무렵으로는 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빛나던 시절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왜 그 무렵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방관자처럼 그렇게 살았을까요? 그 빛나던 시절을 그렇게 그대로 허망하게 보내버리고 말았을까요? 그래도 그나마 그때 "기찻길"을 읽었기에 그 후로 소설 읽기에 깊이 빠져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홍성원 선생님의 소설 "기찻길"은 내 독서의 시발점입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립기만 한 시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성원 선생님의 책에 대해서도 보다 넓게 독서를 해보아야겠습니다. |
| 전쟁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정을 잃어버리고, 설사 그 정이 있다고는 하나 형식적인 정의 고갈은 이미 드러나 버리는, 그런 존재, 실체임을 이제야, 그리고 뒤늦게나마 실감한 것 같다. 6.25전쟁이라는 것이 400년 전의 임진왜란과 그저 ‘전쟁’이라는 이유 하에 비슷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어서 그건 그다지 개입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모든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를 보면 어떠한가? 전쟁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우리가 그 전쟁에 대해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무감 없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이산가족들, 그리고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한 민족끼리 치뤄진 비극의 전쟁. 역사는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될 과거다. 미래가 우리가 개입해야만 할 침투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를 간섭한다. 요즘에 독서에 관한 관심이 학습효과로 인해 현저히 늘어나고 있다. 과거 현대문학이나 개화기 시대의 저항이 담겨진 그런 문학, 그리고 지금 내가 읽었던게 지은이가 16살 때 직접 겪은 일을, 그 사회를 재창조해서 말한 소설 ‘기찻길’이다. 이 소설은 말 그대로 기찻길에서 피난민들에게 일어나는 무척이나 사소한,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흔했던 이야기들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일명 자신들을 ‘고아’라고, 현대에서는 무척이나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기피하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는 정말로, 정직하게 말하자면 ‘고아’라는 것이 무척이나, 당연한 흔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부모님을 잃고, 헤어지고 그런 슬픔에, 고통에 익숙해져 버린 주인공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이 싹트고 우정이 눈을 튼다. 정말 책 한 장 한 장을 넘길때마다, 그 구절에서 상상했던 장면이 몇일이 지난 지금도 내 뇌리에 선히 남아있다. 그저 보통의 중학생이었던 정호도, 버림받아 자살을 꿈꾸었으나 다시 웃게 된 소연이도, 범생이 영선이도, 창구도, 진영이도, 그리고 금숙이도. 지금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마지막에 보호하는 이는 없지만 함께 가는 길에서 ‘전우야 잘가라’를 부르는 주인공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쭈욱 지켜봐 왔던 내 눈에는 몹시나 쓸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당당하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둥이 그들에겐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의 시체를 보고 해골을 보고, 그렇게 피를 보았으며, 인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지금 이 현재까지 세상을 보시면서 자신의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글을 쓴 홍순원님께 경의를 표한다. 또한 전쟁이라는 것이 그 국가의 국민이 잘못한 것이 아닌, 어느 한 사람이, 또는 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일어난, 전혀 일반인이 발생시킨 일이 아니여서 그들이 그런 고통을 당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는 것을. 그렇게 전쟁 속에서 숨지신 많은 분들에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