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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항상 위험의 여지가 있습니다.
바로 번역의 문제인데요, 시의 경우에는 어떤 단어로 번역하는 가가 시의 느낌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하지만, 소설의 경우에는 그처럼 크리티컬한 문제는 아닙니다.
소설 번역에 있어서는 문체 보다는 소설의 스토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의역의 여지를 남겨둘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어떤 소설의 경우는 스토리보다 문체가 더 중요한 소설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 서적의 경우 좋은 번역물에 대한 기준이 문학 장르보다는 좀더 명확합니다.
바로, "역자는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상을 올바르게 표현하였느냐?" 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기술 서적에서, 직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역자가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언어를 안다고 직역으로 번역하는 것은, 자동 번역기를 돌리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역자가 원저작물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 서적을 번역한다면, 그것은 원작에 대한 실례이면서, 독자들을 배신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은 "인지과학 혁명" 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인지 과학이란 무엇이고, 인지 과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어떤 식의 과학적 인지 과정을 통해 연구를 해야 하는지를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듯 보면,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을 읽는 듯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가치있는 연구는 연구자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연구라고 주장하면서, 즐거운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의 흐름을 메트릭스 안에서 적절한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메트릭스는 x축과 y축으로 구성되고, x축은 특정 도메인의 연구의 역사를, y축은 동일 시간대에서의 유사 도메인에서의 연구되는 주제들을 기술합니다.
그리고, 그 x와 y축의 관계를 통해, 보여지는 "비판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뭐,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모든 연구들이 가져야할 기본 요소입니다.
이후, 저자는 인지과학 도메인에서의 기본 키워드로
1. 인간의 합리성 2. 인간의 상황성 3.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의 인간 4. 경험 세계의 인지과학
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정리하면, 1. 사람이 어떻게 주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저장해서, 지식으로 변환시키고, 그 지식을 활용해서, 주어진 상황에서 적합한 행동을 수행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 인지 과학이다.
2. 보다 재미있는(의미있는) 연구를 위해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말고,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 좋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책을 읽으면서 정말 화가 났습니다.
특히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의 인간" 항목에서는 컴퓨터 기반 시뮬레이션을 설명하기 위해, 문제 모델링 하는 방법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법을 설명하는데,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게 번역해놨습니다.
도대체 역자 자신은 이것을 읽어봤는지 궁금해지는 번역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앞 장의 경우는 일반적인 이야기라서 꽤 괜찮게 번역할 수 있었지만, 기술적인 내용이 나타나는 부분(4장과 5장)에서는 역자의 배경지식의 한계로 스스로 이해를 하지 못한채로 직역해서 채워놓은 것 처럼 느껴집니다.
이 책이 왜 출판사의 UX 프로페셔널 시리즈에 포함되었는지 이해가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지 과학에 흥미가 있고, 논문 연구 하는 방법에 고민하는 학사 4학년 생이나 석사 1학년 생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번역이 너무 엉망입니다.
어떻게 이 책이 선택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출판사는 그냥 번역자가 준 파일을 인쇄하기 전에 스스로 한번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책임이 있고, 번역자는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그냥 원서에 나온 내용이라고 기술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원작이 나쁘면 아무리 좋은 번역이라고 해도,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지만, 원작이 아무리 좋아도, 번역이 나쁘면, 독자에게는 그냥 쓰레기 책이 될 뿐입니다.
읽을만한 괜찮은 책이 무책임한 번역자와 출판사에 의해 엉망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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