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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무도 당당하다. 야구방망이를 어깨에 걸치고, 수줍게 고개숙인 여자를 이끌며 귀환하는 사나이의 모습. '오빠가 돌아왔다'. 2000년대 초반 김영하가 발표한 8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팔색조처럼 제각기 다른 빛깔로 다가오는 줄글의 향연에 마냥 환호하며 읽어나갔다. 그는 '낄낄거리며 즐겁게 쓴 소설도 있고, 인간이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도록 생겨먹은 것일까, 갈피마다 호흡을 고르며 울적하게 써내려간 소설도 있다'고 말한다.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오빠가 돌아왔다'는 그야말로 골때리는 한 집안의 일상사를 최대한 망가진 채로 보여준다. 15살 소녀(?) 경선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가족은 그 면면이 화려하다. 알콜 중독에다 민원으로 밥벌이를 하는 아빠, 16살이 되기 전까지 죽도록 맞기만 했던 오빠, 5년 전 아빠의 폭력으로 이혼을 한 엄마. 그러던 중 오빠가 4년만에 집을 찾았다. 18살 여고생을 이끌고. 아빠를 단숨에 제압하고 집안의 기둥으로 거듭난 오빠.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아버지를 개패듯 패는 아들, 여동생의 팬티를 훔쳐 성욕을 해소했던 오빠. 그 누구 하나 멀쩡한 게 없는 집안이다.
새삼 가족의 붕괴를 생각해보게 한다. 경제권이 곧 권력이 된 신자유주의 체제의 가족의 모습. 개인주의를 탓해보지만, 일찍이 이렇게 망가진 가족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 가족은 붕괴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어울려 산다. 적당히 성욕을 해소하는 두 남녀 커플과 그럼에도 가족 야유회를 떠나는 모습은 '과연 우리도 저 지경이 될 때까지?'라는 의문을 던진다.
소설집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인물 군상이 눈길을 끈다. <보물선>에 등장하는 이형식은 광화문 충무공 동상의 모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라 여기며 급기야 폭파사건을 일으킨다. <이사>에서는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룬 어느 일반인의 재수없는 하루가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캐롤>에선 대학시절 소위 '구멍동서'라 불리는 3명의 친구들이 한 여자를 두고 얄팍한 성욕 해소에 허덕인다.
'냉소적인 인간이 함부로 진지해지면 큰일나, 갑자기 인생이 정색을 하고 달려들거든'(너를 사랑하고도, P120)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한 문장이다. 그렇다. 냉소적인 인간들은 생겨먹은 대로 살다가 인생의 공허함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세상에 맞서 덤비면 여지없이 인생이 정색을 하면 달려든다. <보물선>의 재만이 그랬고, <크리스마스 캐롤>의 영수가 그랬다. <너의 의미>에서 수시로 여자를 꿰어 따먹고 버리는 인간 말종 영화감독이 그랬다.
특히 신인 소설가가 양아치 감독과 사랑에 빠지는 <너의 의미>는 '왜 하필 그 사람인지 설명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고통'이 소설과 현실 속에 공존한다. 소설가의 작품 속 내용처럼 양아치 감독은 곤란에 빠진다. 그녀의 사랑고백에 이쁘고, 착하고, 매력있는 소설가가 왜 자기와 같은 쓰레기를 사랑하는지 고통스러워하는 감독의 모습은 묘한 쾌감을 자아낸다.
작가의 말에서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한단어 한단어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휘와 문장의 숲에서 벌이는 이 전투가 과연 언제 끝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란 고백에서 난 김영하가 펼쳤던 일련의 장편들을 그려보았다. '냉소보다는 아이러니, 반전보다는 딴전에 더 마음을 뺏긴다'는 그의 말처럼 여행서, 산문집 등 다양한 딴짓을 펼쳤던 그다. 또한 냉소에 대한 진지함을 버리고, 삶이 정색하고 달려드는 순간을 모면하려 애쓴다. 그런 김영하의 분투가 난 좋다. 그래서 김영하의 이름을 달고 탄생한 책은 일단 궁금해지는거다. 정색하고 달려들만한 책이기도 하다. |
|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김영하의 팬이 아니다. 언제 태어났고 언제 등단했으며 지금은 뭘 하는지, 뭘 해먹고 사는지 애써 알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나에게 김영하의 저작물이 다섯 권이나 있느냔 말이다!! 김영하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지만 신작이 나왔다고 하면 주저없이 바로 책을 사게 된다. 뭐 크나큰 기대를 해서라기보다도-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그냥, 재미있으니까. 어떤 소설이 작품성이 매우 뛰어나고, 문학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결국은 읽는 사람이 재미를 느껴야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저 사람마다 취향이 제각각이니 한 소설을 놓고도 재미있다, 없다를 따지게 되는 것일 뿐. 그런 점에서, 김영하의 소설을 비롯한 여러 저작물은 많은 사람에게 읽는 재미를 주므로 매우 바람직하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영하의 소설은 아직 완숙토마토는 아니다. 예리하긴 하지만 섬세하진 않다. 감히 이렇게 표현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리고 <검은 꽃="">은 읽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라 잘못 판단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껏 읽은 소설만 놓고 봐서는 그렇다. 결코 나쁜 뜻은 아니고, 그만큼 새롭고 신선하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영하는 이야기에 강하다. 만나본 적 없지만, 말솜씨도 꽤 되지 않을까 싶다. 서사를 풀어가는 힘은 강한데, 그래서 장면장면이 머릿속에 필름 돌아가듯 펼쳐지기는 하는데 치밀한 묘사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가, 재미있게 읽긴 하는데 나중에 생각나는 구절이 별로 없다. 하긴 이 사람, 아직도 30대 중반이니 앞으로도 글 쓸 날이 쌔고쌨다. 조금만 더 일상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겠다. 새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으며 새삼 `김영하식 유머`(라고 표현해도 되려나)에 감탄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인숙씨 또 만나시거든, 후...... 부디 행복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저는 말 전하는 사람이 아닌데요. 무슨 비둘기도 아니고." "야이 씨발아, 하라면 해." "네." -<너를 사랑하고도="">, 104쪽 책을 펴면 어딘가에서, 악동 하나가 머리에 작은 뿔 두 개를 달고 눈을 반짝거리다가 `헤헤헤 놀랐지?`라며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너를>오빠가>검은> |
|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 말은 인간이 악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세상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인간들은 자연히 살아가면서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기적이다''란 명제가 진리라면 인간의 삶으 홉스의 표현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약간의 분쟁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간의 삶은 원활히 돌아간다. 무엇 때문일까? 난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가장 잘 이용한 시스템, 바로 자본주의다. 아담스미스 할아버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자본주의의 동력은 인간의 이기심임은 자명하다. 현대 자본주의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생산이 아닌, 소비가 계급을 결정하는 오늘 날, 자본주의는 생존을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극대화 해야 했다. 인간들은 그 욕망으로 인해 서로 경쟁하고 짓밟는다. 게다가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을 교환가치로 인식한다. 인간들은 자본주의 속에서 경쟁하고 짓밟히는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한 낱 물건의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이기심을 통제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자본주의는 그렇게 다시 인간을 욕망의 덩어리로 바꿔버렸다. 결국 자본주의 구조는 인간의 이기심을 적절히 이용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인간들의 이기심을 극대화하여 인간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세련된 박스 안에 담았을 뿐이다. 인간은 자본주의 안에서 더욱 교묘하고 세련되게 자신의 이기심을 추구한다. 여기에 어떤 연대는 없어 보인다. 이런 쓸데 없는 내용을 책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도 김영하의 소설에는 자본주의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추한 욕망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냉소적으로, 아니 무덤덤하게 이를 드러내 보인다. 난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린 소설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소설 마다 그 키워드가 적용되는 방식은 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김영하 소설을 읽고 있으니 김훈이 생각났다. 김훈도 비슷하다. 김훈은 삶이 갖고 있는 무목적성을 자본주의 사회를 통해 종종 보여준다. 다만 김훈은 1인칭 시점을 이용해 한 개인이 차가운 삶의 원칙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깊이있게 보여준다면, 김영하는 3인칭 시점을 이용해 관계에서 오는 인간의 이기심을 무덤덤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 김훈의 방점이 삶에 있다면 김영하는 인간, 관계에 있는 것이란 말이다.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은 이런 모습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수, 정식, 중권에게 진숙의 삶은 이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듯 하다. 그들에게 진숙은 욕망의 충족 대상에 다름 아니다. 진숙의 죽음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진숙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튀길 불똥이 두려울 뿐이다. 진숙과 그들에게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숙이 독일에서 돌아와 영수에게 과거 영수가 보여준 행동을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 진숙이 하는 이야기는 영수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추한 욕망 그 자체였다. 순간 영수는 진숙을 죽이고 싶어한다. (영수는 그 순간 살의를 품었다. 그랬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비디오테이프였다. 그 테이프 속에는 그의 추악한 과거의 악행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수는 잔인하게 그녀를 죽이는 상상을 한다. 물론 실행하지는 않는다. 난 영수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있는 상대방을 비디오로 생각하는, 그래서 언제든 원하면 파기하고 싶어하는, 그런 존재가 인간이란 의미다. (영수의 아내 숙경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이 살해 용의자란 사실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자신이 살인자의 아내로 유명세를 탈 생각을 한다.) 보물선에는 자본주의 아래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재만은 투기꾼이다. 편법을 이용하여 증권시세를 올리고 큰 수익을 올린 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재만에게 대학 동창 형식이 나타난다. 하지만 재만에게 중요한 것은 수익일 뿐, 형식이 보여주는 열정은 중요치 않다. 오빠가 돌아왔다 역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에게 가족의 가치는 중요치 않다. 그저 개인에게 이득이 되면 좋을 뿐이다. 이번에 처음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다. 예전에 태어났더라면 김영하는 마당판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꾼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 평범한 상황에서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연히 독자들은 그의 소설에 쉽게 빠져든다. 정말 재밌다. 하지만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만도 아니다. 읽고 나면 가슴을 한 대 강하게 맞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사소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른다. 위에서 언급했듯 난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이기심이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김영하가 쓴 <포스트잇>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김영하는 자신이 너무나 평범한 작가라고 이야기 했다. 자신의 무기는 평범함이라고 했다. 맞는 말 같다. 김영하는 평범하기에 모든 독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평범하기에 인간의 내면에 들어있는 어두움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범인들, 자기만 생각하고 어두운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지극히 소심한 그런 범인들 말이다. 그래서 더욱 쉽게 김영하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듯 하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내가 읽은 김영하의 첫 소설이다. 이는 앞으로 읽을 김영하의 소설이 많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30권짜리 장편 무협지의 1권을 독파한 중학생처럼 설레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듯하다.오빠가>포스트잇>오빠가> |
| 김영하는 90년을 새롭게 연 대표적인 젊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소설집이 새롭게 돌아왔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지나간 사랑과 시간에 대한 우울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소소한 듯,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 그래서 더 애처롭고 슬픈 이야기들. 바오로가 품었던 연정들, 그리고 멀뚱멀뚱 서서 스쳐보냈던 나의 연정들이 돌아온다. <오빠가 돌아왔다="">와 <너의 의미="">는 경박하면서도 경쾌한 리듬감으로 어린 화자와 속물 감독의 입을 빌려 각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툭툭 던져놓은 물고기가 힘차게 파닥거리듯 치는 대사,문장들이 재밌어서 배꼽을 쥐락나락하며 단숨에 읽었다고나 할까.<크리스마스캐럴>은 어두움 곳에서 펼쳐보이는 욕망과 그것을 숨기고 싶은 인간의 추악한 단면을 살짝 끄집어 내보인다. 정체불명의, 자신의 숨기고 싶은 과거의 실마리가 되는 카드를 받는다면? 행복한 일상에 넌 좀 사라줘야겠어라고 외치는 영수의 독백이 인상적이다.<이사> 역시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실제로 '집을 소유'한다는 꿈의 환상성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이사라는 과정은 얼마나 힘들고 때론 끔찍한지. 일상과 꿈의 부정교합은 우리삶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너를 사랑하고도="">에서 보여지는 모욕과 모멸감은 단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토르소는 말한다. 무얼, 그정도 가지고 그래? 힘내! 라고. 다 읽고 나서 나는 전보다 작가 김영하가 많은 생각과 그 생각과의 사투를 벌이며 그 무게는 애써 담지 않으려 한, 즉 힘을 빼고 글을 썼다고 느꼈다. 그의 고민과 노력은 <너를 사랑하고도="">에서 이렇게 속내를 드러낸다. "뭔가 나아지겠지. 나는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한단어 한단어에 집중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휘와 문장의 숲에서 벌이는 이 전투가 과연 언제 끝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너를>너를>이사>크리스마스캐럴>너의>오빠가>그림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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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영하가 좋아졌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재밌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같던 그 맛이 왠지 모르게 얄밉기도 하고 가볍기도 해서 그땐 막 흉을 봤었다. 외모도 자장면 배달이나 삐끼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정의를 갖다 붙이고 말이다. (그 사진, 쫌 그랬다... ^^;; 덧붙이자면, 난 자장면 배달하는 오빠들,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늘 김영하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지... 하고 마음에 은근히 담아두고 있었다. 한번 라디오에서 <검은 꽃>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을 때도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이제야 다시 단편집을 먼저 잡았다. 그가 맘에 든다.
이 작품집에는 <오빠가 돌아왔다>를 비롯해 모두 8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모두 다 김영하스러운 가볍지 않은 가벼움이 특징이었다. 아마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스토리 구성, 산뜻한 문체나 대화 스타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드라마적인 특성이 강한 것은 그의 작품을 쉽게 읽게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가볍게 만드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또한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한편 그가 우리 삶 속에 녹아있으면서 또 한편 너무 가볍게 보이는 면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제일 즐겁게 읽은 작품은 물론 <오빠가 돌아왔다>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보물선>도 나름대로 특색 있고 개성 있어서 좋았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 얘기다. 워낙 콩가루이다 보니, 중학생 여자애의 나레이션이 오히려 쿨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쪽팔린(창피하다고 해야 옳으나 김영하하곤 이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또 그게 우리가 우아하게 ‘창피하게’ 살기보다는 ‘쪽팔리게’ 사는 게 더 ‘내 현실’에 맞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직업은 ‘직업적인 신고꾼’이다. 이혼하고 나가서 함바집에서 일하는 엄마는 말로는 애들을 위해 집으로 돌아오지만 딸 입장에서 보면 남자 품이 그리워 돌아오는 것이다. 중학생인 딸과 동생의 속옷과 교복을 훔쳐다 성적 판타지에 젖는 아버지와 오빠... 중학생 나레이터는 권력 구도의 중심이 아버지였을 때보다 집을 나갔다 돌아온 오빠로 바뀐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여자애를 하나 달고 들어오긴 했지만... 특이한 건, 오히려 오빠가 돌아오면서 집안꼴이 갖춰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오빠가 어느 여고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오빠는 스티커 사진 부스를 가리켰다. 엄마는 얼굴이 큰데도 맨 앞에서 찍어서 얼굴이 타이어만하게 나왔고 오빠와 여자애는 뒤에서 찍어서 쪼다처럼 나왔다. 나는 좀 예쁘게 나왔는데 여자애는 그게 조명발 덕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바보. 조명은 나한테만 비추나.’ 뭐, 남들 눈에는 쪼다 같지만 자신은 진짜 쪼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 그게 모두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가운데 나레이터를 중심으로 오른쪽엔 신부가 된 친구, 다른쪽엔 그 신부를 좋아했던 여자 친구의 얘기가 중심의 축인데, 내겐 오히려 나레이터와 그 엄마의 관계가 더 흥미로웠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던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 몇이나 되냐’고 말하지만 자신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던 사람이 바로 그 엄마였다. 소설가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엄마가 하는 충고는 “여자들을 위하는 문학을 하렴. 그럼 일생이 평탄할 거야. 여자는 아름답게 그려주고 남자들은 죽일놈들로 만들어. 그럼 아무도 널 미워하지 않을 거다.” 그런가...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꼭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형사물이다. 살인이 벌어지고 그 살인 때문에 과거가 살아나고 살인에 연루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죄의식을 담은 심리로 이어진다. 치사한 짓을 했던 대학시절의 유령이 되살아났다 다시 둑은 것이다. 그들을 모두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처럼. ‘시골역장의 수양딸쯤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통통하고 수수한 외모의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남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는지 숙경으로서는 의문이었다.’ 날라리, 걸레, 자판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여자가 세월이 흘러 다시 나타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요구한다. 그녀를 대학시절 그렇게 만들었던 남자들은 그렇게 느낀다. 철없던 시절의 이기심이 인생의 치욕이 되어 나타날 때... 자신을 둑이고 반성하기보다 그것을 요구하는 과거를 둑여버리는 게 더 상식적일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서는...
<보물선>은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욕심이 별로 없고 간이 작아서 원금 손해만 안 보면 된다는 소심한 내게 계속 은행에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투자를 하라고 난리인데, 이런 작품을 읽다보면 괜히 고소해진다. 욕심을 내보라는 은행직원에게 이번엔 이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맘먹는다.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가끔 엉뚱한 곳에서 철퇴를 날린다. 어쩌면 실제 세상은 그래도 똑똑한 사람에게 더 유리할지 모르지만...
나머지 작품들도 나름 특색 있고 생각해볼만한 작품들이었다. 김영하를 좋아할까, 말까 망설이는 독자들은 이 작품집을 읽고 나면 좋아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나처럼... |
| 점잖게 표현해서 '매우 재미있다'. 오고가는 지하철 칸에서 매일매일의 출근길의 지루함과 매일매일 퇴근길의 피로함을 달랠 수 있었다. 잠깐잠깐씩 현실을 잊고 김영하의 단편 속으로 빠져들어 출퇴근길이 기다려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할 일이 걱정이다가도, 내려서 빨리 걸어가야하는 시점인데도, 소설을 읽다가 속도감을 잊는 것이다. 거침없이 읽히고 이야기의 전개에 쉽게 빠져든다. 특히 '오빠가 돌아왔다', '이사', '너의 의미'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우일의 그림과도 잘 어울린다. 8편의 소설들이 각기 중구난방이라는 점은 김영하의 역량이 다양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관통하는 화두는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여전히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열심히 쓰고 있다는 점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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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백수가 돼서 좋은 점도 있다. 사실 작년 1년 아프면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올해는 일 좀 해볼까 했더니 병이 또 재발되었다. 이런 된장 --; 한동안 참 암울했는데... 좀더 소설을 읽으라는 신의 뜻으로 알고 올해도 소설 읽기에 천착하기로 했다. 혹시 또 아는가! 내가 이걸 발판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될지... 모든 소설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이야기를 잘 지어내기 위해서는 남의 이야기를 많이 읽으라고 하던데... 작년, 올해 합쳐서 내가 읽은 소설들만 해도... 한 트럭은 될 듯 하니 말이다. 부끄럽게도... 김영하는... 올해 아프면서 발견한 작가이다. 왜... 그런 부끄러움... 해외여행은 많이 하면서 정작 우리 나라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 하고, 자주 돌아다니지도 않다가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들른 한 지역에서 뜻밖의 아름다운 광경을 접했다거나 멋진 고택을 발견했다거나 유적지를 돌아보게 되면서 역사의 향기를 느꼈다거나 뭐 그런 류의 신선한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 작가가 김영하이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그의 또 다른 소설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도 단 하루만에 읽었다. 이 소설은 참 재밌다. 내가 처음에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단지 하나다. 작가의 친필싸인본을 준다는... 잘 모르는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필 싸인본을 소장한다는게 어디야, 단지 그 욕심이었다. 그런데... 정말 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소설집은 이전에 여러 계간지 등에 실렸던 작품을 모은 단행본이다. 따라서 이전에 이미 이 작품들을 읽었던 분들에게는 전혀 새로울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김영하를 처음 읽는 사람은 진짜 눈물 빼면서 재밌게 읽었다. 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면서, 글의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평범하지 못하다. 약간은 불량하고 약간은 비상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라기보다는 인간적으로 끌리고 정이 가는... 그런 소설속 등장인물들도 참 맘에 들고, 이야기를 맛깔나게 구성하는 그의 손맛도 참 맘에 든다. 재미난 입담꾼의 발견! 이건 그야 말로... 진흙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듯한 기쁨이다. 혹은 유레카의 기쁨이라고 할까? 아, 정말 부럽다. 참고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와는 글쓰기의 방식이나 글의 느낌이 사뭇 달라서, 그 점이 더 맘에 들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좋게 말하면 일관성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소설 몇 권 읽다 보면 성향이나 문체 등등이 뻔히 드러나기 마련인데, 작품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문체나 글의 분위기가 새롭다는 건... 분명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김영하를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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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돌아왔다!
장편소설 '검은 꽃'과 '빛의 제국'을 읽으며 김영하라는 작가에 주목하고 있었다. 단편소설을 읽어볼까 검색하다 그중 '오빠가 돌아왔다'의 소설집에 많은 평점을 주었기에 도서관에서 주저없이 빌려왔다. 장편에서 느끼지 못했던 김영하식 재미가 단편 8편에 고루 들어가 있는 소설집이다. 그가 발하는 인간군상들과 삶에서 유쾌함을 뽑아내 소설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속에 가끔 비슷한 관계- 림자를 판 사나이나 크리스마스캐롤의 동창생들의 이야기, 보물선에서도 동창간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하는 것이 보인다.
재미있었던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어린 신부를 데리고 등장한 오빠로 인해 티격거리는 가족간의 화해를 도모하는 모습이 나온다. 특이한 건, 오히려 오빠가 돌아오면서 집안꼴이 갖춰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오래간만에 그들은 갖춰입고 가족여행은 잠시 다녀온다. 차안에서 결국 그간의 감정을 폭발하는 시누이와 올케, 여전히 술에 취해 정신못차리는 아버지 ..그리고 그들은 화해와 가족여행의 기념으로 사진한장을 남긴다. 오빠는모두 차에서 내려 기념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오빠는 스티커 사진 부스를 가리켰다. 엄마는 얼굴이 큰데도 맨 앞에서 찍어서 얼굴이 타이어만하게 나왔고 오빠와 여자애는 뒤에서 찍어서 쪼다처럼 나왔다. 나는 좀 예쁘게 나왔는데 여자애는 그게 조명발 덕이라고 구시렁거렸다. 바보. 조명은 나한테만 비추나.’ 이런 그들이 앞으로 또 어떤 사건 사고를 남기며 살아갈까 하는 웃음과 여운이 남기는 소설이다.
가끔 남자들은 이런 경우가 있나보다. 아마 서로 사실을 알지만 모른척 아님 암묵적으로 그런척 하고 살아가나 보다. 세명의 동창생은 대학시절 서로 알고 육체적관계를 가지던 진숙의 죽음을 접한다. 불과 일주일 전쯤 그들은 그녀와 술자리를 같이했고 그날밤 여관에서 살해된다. 서로의 욕망이 얽혀있는 이들의 관계에서 인간의 이기적마음들이 하나 둘씩 들어나는 모습을"크리스마스 캐럴"에서보여준다.
"너의 의미"에서 자신의 욕망을 쫓아 행동하던 3류감독이 엉뚱하게 발목잡힌 이야기를 보며 웃음을 짓게 되고 "보물선"에서 또한 자신의 밑에서 놀아날거라 생각했던 어뚱한 동창생 형진에게 뒤통수 맞는 아침 조찬멤버들을 보며 통쾌함한 웃음을 만들어 준다. 아마 주식조작 작전 세력들은 지금도 활개를 치고 있을텐데 이런 소설속의 결말로 대리만족을 느낀달까..
김영하의 또다른 모습을 보게된 아주 유쾌한 소설집이다. |
| 김영하 관심은 있었으나 나는 김영하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못했었다 원래 내가 새로운 시도를 조금 안하는 스타일이라 계속 읽던 사람들 것만 읽고 새로운 작가에게는 도통 마음을 쏟지 못했었나보다 단편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뭐랄까, 굉장히 냉소적이면서도 차가운 분위기랄까 세상을 향해서 자조적인 웃음을 날리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암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우면서도 꽤나 담담한 시각이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듯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오빠가 돌아왔다'에 나오는 가족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열네살 여자아이의 세상 다 산 듯한 말투라니 게다가 개성 넘치는 그 가족 구성원들은 참!!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건 '크리스마스 캐럴' 세 남자의 공통적 성적욕구 해소의 대상이자 세 남자가 함께 공유하면서도 어떤 질투도 느끼지 못했던 당시에는 바보 같았던 그녀가 돌아온 뒤 오히려 그녀에게 끌려다니며 살의를 느낀 세 남자들의 모습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 오시네' 의 재발견도 인상적이다 ㅎ '너의 의미'에서 그 의미가 왜 사랑하는 지 알 수 없는 사랑을 이루기 위함임을 알게 된 그 감독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어쨌든 여러 흥미로운 단편들이었고, 이 단편은 또 내가 사는 세상의 단편들인가보다 나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따뜻한 작가들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만은 없는 세상이니까 가끔 이런 작가와의 만남도 괜찮다 따뜻하지는 않지만, 나름 통쾌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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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김 영 하
필자가 첨으로 접한 김영하의 소설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였다.. 그걸 지금 쓰자니 시간이 꽤 걸릴 듯 하고.. 그리하여 간단하게 요 작품을 선정해 보았다..
개인적으론 왠만해서 뭐 다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작가 개개인마다 다들 그들만의 색깔이 있기에..
특히 김영하에게 주목하고 있다..
아까 낮에 사무실에서도 예스24에 접속해서 '아랑은 왜'를 주문한걸 보니.. 아무래도.. 김영하의 팬이 될것 같다..
여담이지만.. 아쉽게도 필자가 지금 사는 서울의 집 근처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주로 책을 '구경'하러 갈때면 근처 대형서점을 들르는 편인데.. 책을 '사기' 위해서는.. 예스24나 알라딘, 리브로 같은 인터넷을 이용하는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참 우습게도.. 두달전인 2007년 6월 30일에 알게되었다.. -_-
이래저래 혜택이 참 많더구만.. 무슨 적립금에 쿠폰에 행사에 기타 등등.. 이제 한 7만원치만 더 사면.. 예스24 궁극의 클래스인.. 플래티넘 회원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구나.. -_-
요즘 자주하는 1+1 로 같은 저자의 책 한권 더 끼워주는거랑.. 뭐 우수회원이라고 선물로 한권 더 주는거랑.. 결국엔 합해서 책 네권을.. 적립금 만원쓰고 오케이캐쉬백 한 2천원 쓰고 예스24제휴카드로 결제해서 5%깎고..
뭐 이래저래 하다보니.. 4,330 원만 결제를 하게되었다.. 담배 두갑도 안되는 가격으로 책이 네권이라.. 이거 너무 흥분되는 일 아니겠는가!!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나름대로.. '가족소설' 이다.. 비록 '콩가루 집안'이긴 하지만.. -_-
엉뚱하게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영화인.. '길버트 그레이프'가 생각이 났다.. 석양이 지는 길위에.. 이젠 떠날 수 있다고 말하던.. 가장 죠니 뎁의 쓸쓸한 어깨가 떠올랐고..
'해바라기'의.. 희망노트를 적어가던.. 수박 먹던.. 김래원의 순박한 미소도 순간 떠올랐던 것 같다..
콩가루든 뭐든.. 그건 다.. '가족' 이야기 였기 때문이었으리라..
각종 민원 제기꾼인.. 공무원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백수 아빠.. 그 아빠에게 폭력을 당하던 오빠는.. 열여섯살이 되던 해.. 힘으로 아빠를 때려 눕히고.. 집을 나간다..
그리고는 5년만에 어느 못생긴 어린 계집애를 데리고 돌아온다.. 택배회사 직원이란 번듯한 직장까지 잡고.. 우리집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두둥..
난 생각한다.. 내 빤스를 훔쳐가는 오빠나 내 교복을 훔쳐가는 아빠나 둘다 거기서 거기지만.. 차라리.. 입에 풀칠이나마 하게 해주는 오빠편을 들꺼라고..
집을 나갔던 엄마까지 돌아온다..
자 이제.. 우리 5인 가족의 '재구성'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엄마가 제안했다.. 우리 가족끼리 '야유회'를 가자고..
난 생각한다..
참으로 '허접한' 야유회가 아닐 수 없구나라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참으로 냉소적이다.. 김영하 소설의 대부분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이제서야.. 어설프게나마 자리를 잡아가는.. 내 '가족'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의.. 반어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기 자신의 의지만으로 선택할 수 없는.. 그냥 '운명'으로 예정되어지는 몇 안되는 것들.. 그게 바로 '가족'이 아닐까..
그래도.. 애정이 더 남아있는.. 항상 내 편인 사람들..
아버지 , 어머니 , 누나 , 여동생 , 자형 , 이서방 , 조카 희강이..
모두 모두..
보고싶어지는..
그런 서울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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