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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화사건으로 꺽인 가치있는 소설
"필화사건으로 꺽인 가치있는 소설" 내용보기
소설 『오자룡』은 농촌 민중소설이다. 1975년 『한국문학』에 1년간 연재 발표된 이 소설은 그러나 12편의 연재를 끝으로 미완성된 채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필화사건이다. 그 당시는 유신헌법이 발효되고,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나타나는 가운데 긴급조치가 내려지던 상황이었다. 1975년 방위세가 신설되면서 장기집권의 명분을 찾기 위해 급급했던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이문구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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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자룡』은 농촌 민중소설이다. 1975년 『한국문학』에 1년간 연재 발표된 이 소설은 그러나 12편의 연재를 끝으로 미완성된 채 끝나고 말았다. 그 원인은 필화사건이다. 그 당시는 유신헌법이 발효되고,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나타나는 가운데 긴급조치가 내려지던 상황이었다. 1975년 방위세가 신설되면서 장기집권의 명분을 찾기 위해 급급했던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이문구는 문인들의 반정부 반독재투쟁의 뒤에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실무 간사를 맡았고,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대한 문인들의 격려광고 주관, 해직기자 돕기 모금 등의 활동을 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소설 『오자룡』이 정부의 감시망에 거렸던 것이다. “그러게 누가 너더러 해필이면 방위세 물기를 싫어 허라데? ~ 망헌 나라여. 무에든지 그저 벱이라구 이름만 붙여버리면 다 되는 판이니께”까지 16행이 문제가 된 것이다. “나랏일을 비방하고 거짓 전달하야 소문되이”해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그는 중앙정보부에 불려가 2박 3일의 고초를 당했다. 소설의 배경은 호란 직후 이므로 15세기, 즉 1600년대의 일이다. 그럼에도 중앙정보부는 진주민란을 변형한 민중봉기소설로 정의하면서 이를 빗대어 정부를 비방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진주민란은 1862년 일어난 민란. 『오자룡』과 진주민란의 무대는 그 시대부터가 달랐다. 『오자룡』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주인공 막대는 보평 고을 토호 박자정의 종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내 소금이는 남달리 빼어난 미모와 협기가 있었는데, 주인 박자정이 소금이를 첩으로 들이기 위해 막대를 없애려한다. 그러나 막대는 자살을 위장하여 탈출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은신한다. 그는 은신 8년만에 다시 보평 고을에 나타난다. 그때 막대가 듣게 되는 8년간의 보평 고을 이야기. 아내 소금이는 화적패가 되어 박자정이를 혼쭐내어 결국 박자정이는 세상을 뜬 상태였다. 막대와 가장 막역했던 종 그믐산도 늪에 투신자살한지 오래다. 그믐산은 보평 고을의 양반으로 됨됨아나 행동이 고을의 어른 대접을 받던 주인 초여로부터 면천되어 양인이 된다. 그러나 그가 어느 정도 재산을 불리고 양반의 적을 사겠다고 했을 무렵부터 보령고을의 마름인 최가는 그믐산의 땅을 빼앗기 위해 관과 결탁하여 가렴주구를 하게 된다. 이에 그믐산이 최가에게 사형(私刑)을 가하나 여기서 탈출하여 최 마름의 집에 불을 놓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 이야기에 이르러 주인공 막대가 가던 길을 나서기 위해 대님을 고쳐 매며 일어선다. 사실 서막이 열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찰나에 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문구는 이 소설을 불성실한 집필 끝에 미완성으로 중단한 작품이라며 뒤를 잇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도 일리 있는 답이다. 당시 사회운동에 뛰어든 소설가로서는 소설을 더 이상 집필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 시간에 촉박해서 원고를 들이밀던 그가 이 소설에 대해 열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러니 집필은 불성실한 집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자. 대개의 줄거리, 그리고 천백 장 분량의 소설을 쓰면서 아무런 구상이 없었다고 말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 이후로 이문구는 관촌수필 연작을 잇달아 발표한다. 여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쓰려는 맛이 없어진 것이다. 이제 고인이 된 이문구의 작품 『오자룡』을 보면 한 편의 장편소설이라고 보아도 무관할만하다. 이야기가 더 있을 법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다지면서 주인공이 대님을 고쳐 매는 것으로도 이야기의 완성도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완성작은 미완성작이다. 8년 만에 다시 나타난 사람이 그믐산 이야기만 듣다 소설이 끝날 수는 없지 않는가. 이 소설은 농민들과 농경의 묘사, 속담인 듯 만들어 놓은 해학적 어투, 고어나 충청도 방언, 구어를 치밀히 연구한 것이 역력히 나타나는 가치 있는 소설이다. 이러한 문학적 평가를 받은 소설이 정치권력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아쉬움만 남는 것이 아니라 피가 끓는 아쉬움이다.

[인상깊은구절]
느티나무 밑으로 해서 다시 논두렁길을 발채 얹은 지게에 매끼 없이 꼴 한 짐 할 만한 시간을 걸었다. 영락없이 왕골논이 나오고 이어 동네 타래박 우물이 있었다. 그믐산이는 땀으로 등멱하며 청올치 노끈 감발이 끊어지도록 치달려온 터라 우물을 보기 무섭게 목이 탔다. 우물가엔 아무도 없었고, 삼바가 서너 발 달린 송판 두레박은 틈이 트일 만큼이나 메말라 있었다. 해 오른 뒤로 우물을 다녀간 아낙네가 없다는 증거였다.
x*****e 2004.09.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