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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쓴 글이 왜 부메랑이 되었는가.
"그들이 쓴 글이 왜 부메랑이 되었는가." 내용보기
“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 말과 관련되는 속담들이 많다. 모두가 말의 중요성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말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처럼 말의 소중함을 우리가 생활 속에서 늘 인지하면서도 우리는 함부로 말을 하는 경향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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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 말과 관련되는 속담들이 많다. 모두가 말의 중요성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말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처럼 말의 소중함을 우리가 생활 속에서 늘 인지하면서도 우리는 함부로 말을 하는 경향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말은 정말 보물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여 마음 속 깊이 숨겨 두고 꺼내어 사용해야 할 듯하다.


말과 글은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차이점도 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한 번 하면 주워 담을 수 없다. 그렇기에 신중을 기해서 해야 한다. 그리나 남겨지지 않기에 조금은 자유롭다. 조금의 실수가 있으면 바로 정정을 해버리고 넘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문자는 그렇지 않다. 정리되고 남겨지기 때문에 실수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치고 다듬는 것이 필요하다. 온전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책임성도 말보다는 훨씬 많이 따른다. 근거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칼보다 펜이 강하다.”란 말이 있다. 문자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자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반증해 주는 속담인 듯하다. 이러한 문자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내면서 그것이 권력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문자옥(필화)을 겪은 일은 예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하다. 이 책은 그런 필화 사건을 중국의 역사 속에서 찾아서 제시하고 있다.


제목이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로 되어 있다. 황제와 관련된 금지 문자들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써서는 안 되는 글, 그것이 직접적이든 비유든 황제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글을 만들어 자신의 몸을 망치게 만든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다. 그것이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며 황제에게 간하는 내용일 수도 있고, 자신의 영달을 위한 내용일 수도 있다. 허나 그것이 권력자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그 내용의 진위, 그 내용의 가치는 도외시하고 영육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문자의 속성을 잘 알고, 그 활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사의 농간으로 많은 책들이 화형을 당한 이야기다. 책이 무슨 죄가 있으랴만 논의가 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여긴 위정자들의 교만이 많은 저서들을 사장시킨 역사적인 죄를 짓게 만든 것이다. 한의 사마천의 손자 격이 되는 양운, 삼국 시대 조조에게 당한 공륭, 수나라의 천재 시인 설도형, 당의 곧은 마음 백낙천 등은 필화를 당한 사람들이다. 글로써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의 몸을 망치기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통해 문자가 얼마나 경계의 대상이 되는가를 잘 우리는 잘 인지할 수 있다.


책은 시대별로 글과 관련해서 화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글로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 명인들이 한 번씩은 필화를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글을 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글을 쓰다 보면 사회가 보이고, 사회가 보이다 보면 그것을 글로 옮기게 되고, 그것을 읽은 대척자가 그 사람을 물고 늘어지게 되고, 그것이 행간의 의미를 곡해하여 근거로 삼고, 그렇게 되어 필화가 된다. 글이란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어떤 문제를 논할 때 찬성하는 쪽이 있으면 반대하는 쪽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비유나 상징으로 이루어진 것들은 해석하기 나름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것들이 문제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하여 아픔을 겪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은 신체적 구속까지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신 시대에 필화 사건을 겪은 경우가 많다. 김지하씨 같은 분은 대표적인 인물이 되리라. 한 편의 글이 써지면 바로 문제가 되던 그런 시절도 있었던 분이다. 일제시대의 이육사도 그런 분 중에 한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참으로 많은 분들이 글과  관련하여 아픔을 겪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그것을 조사하여 책으로 엮어도 이 책에 버금가는 좋은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인 구양수, 소식의 이야기도 다룬다. 그들의 곧은 마음들이 행간의 아픔이 되고 있음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또 노래 가사로 황제의 질투를 불러 일으켜 필화를 당한 주방언 , 충직함 때문에 목숨을 잃은 진동, 간신 진희 등은 송나라의 신하로서 필화를 당했다. 다양한 사안, 다양하게 이유 등으로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게 그들은 은거나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명을 건국한 주원장의 불학무식으로 인한 많은 선비들의 희생, 연왕 주체의 정치적 탄압으로 죽어간 많은 문인, 명나라 간신(위충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문인 등 시대와 관련하여 위정자와 반대에 섰던 많은 문인들이 글에 꼬투리가 잡혀 죽음으로 몰린 일들이 많이 이루어 졌다. 이 책은 그런 내용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후에도 명에서 문자옥(필화)을 당한 몇 분, 청에서 문자옥이 일어난 몇 가지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문자와 관련하여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도 역사지만 말과 글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알 수가 있었다. 또 글을 존중하지 않은 권력은 그 결과가 신통하지 않았음도 잘 살펴볼 수가 있다. 글은 정신의 소산이고,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가 세상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음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개인의 문자가 어떻게 세상에 횡횡하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결과는 어떻게 되어 갔던가 하는 것을 잘 살펴볼 수 있는 글이다. 그리고 오늘 그들에 대한 평가와 아울러 그들의 필화에 대한 조명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가 이렇게 개별적인 사안으로 정리되어 있는 책을 읽어서 좋았다. 특히 글과 관련하여 문인들의 삶이 조망된 점이 나에겐 참으로 잘 다가왔다. 앞으로 다른 각도에서도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j****3 2010.12.01.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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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 없는 감옥, 문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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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문자나 글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을 '문자옥文字獄'이라 했단다. 권력에 반한 지식인들의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로 그들이 쓴 문자에 죄를 묻고 이른바 '사상죄'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정적 숙청에 이용하였으니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수 있다. 사상유래 없는 많은 지식인들이 목숨을 담보로한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최대의 문자옥으로 꼽을 수 있으며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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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는 문자나 글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을 '문자옥文字獄'이라 했단다. 권력에 반한 지식인들의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로 그들이 쓴 문자에 죄를 묻고 이른바 '사상죄'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정적 숙청에 이용하였으니 그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수 있다. 사상유래 없는 많은 지식인들이 목숨을 담보로한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최대의 문자옥으로 꼽을 수 있으며 청나라 시대 마지막 문자옥으로 불리는 '소보 사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중국 역사를 되짚어 문자옥에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들을 알기쉽게 풀어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문은 무보다 강하다'했던 옛사람들의 말 그대로 개인의 인생 뿐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과 역사를 바꾸게 만든 문자의 힘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있다. 문자옥에 관련된 인물들과 배경 뿐 아니라,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자신이 쓴 글을 목숨걸고 지켜야할 절개로 여기던 사건속 문사들의 기개와 당당함은 짐면이나 방송을 통해 자신의 말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리는 정치인들이나 지식인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에 의하면 중국의 최초 문자옥으로 제나라의 태사가 대부 최서에게 살해당한 것을 꼽고 있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어 화를 당하게된 유명 문사들과 반대로 글이 유명해져 화를 당한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비판하고 정권에 반한 글로인해 화를 당한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든 문자옥을 만든 사람과 그에 희생양이 된 사람 모두 지식인이며 지배계층이라는 사실은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출세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정적을 제거 할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 바로 한 줄의 시와 글이라는 사실을 통해 문자야말로 출세의 수단인 반면 언제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게 될지 모르는 칼의 양날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긴 역시를 관통하여 문자옥의 많은 사례중 고른다고 했어도 앞뒤 부연 설명이 부족하여 중국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또한 짧은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한 저자의 욕심과 노력이라 할수 있다. 

권력이 빚어낸 창살 없는 감옥이 바로 문자옥이라면 지금도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주장하는 지식인들과 언론을 탄압하고 있음은 몇 줄의 글로 말미암아 화를 당했던, 문자옥의 역사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문자의 발견으로 말미암은 기록이야말로 선조들이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대를 이어 후세에 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인류의 위대한 문명을 이룩한 기본이 되었다. 

그림에서 시작한 기록이 상형문자를 거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역사에 걸쳐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왔으며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인터넷은 사람믈의 생활수준을 높여주고 첨다 정보화 시대를 앞당기는데 기여했지만 그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이 것이 근거 없는 소문을 유포와 비방, 사실확인도 없이 그럴듯한 근거로 사실을 조작하여 낭설을 기정사실화해 상대방을 모함하고 사회적으로 생매장 시키기도 한다. 이는 현대판 문자옥의 또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글 한 줄로 인생이 바뀌게 될지 모를 위험은 21세기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 주인공이 내가 될수도 당신이 될수도 있음이다. 

k******2 2010.12.11. 신고 공감 3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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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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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문자>라는 글자에 남다르게 다가올것이다. 그것두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라니.. 제목만을 들어두 가슴이 두근거린다. 옛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속담이나 격언. 그리고 유명인들의 책을 보노라면 입조심에 대해 여기저기 강조하고있다. 사람의 혀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해야한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있는 진리의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조심해야할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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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문자>라는 글자에 남다르게 다가올것이다. 그것두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라니.. 제목만을 들어두 가슴이 두근거린다. 옛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속담이나 격언. 그리고 유명인들의 책을 보노라면 입조심에 대해 여기저기 강조하고있다. 사람의 혀에서 나오는 말을 조심해야한다는건 누구나 다 알고있는 진리의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조심해야할것이 바로 <문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 하지만 말실수는 실수를 덮을 찬스두 있는 법이다. 하지만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남겼다면 그거는 빼도박도 못하는 명백한 증거가 되어 자신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가 있다. 내가 쓴 글을 내세워 나를 궁지로 몰아놓는다고 생각하면 숨까지 턱턱 막힐 지경이다.

 

책 표지에 보면 "3천년 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난 아직까지도 트위터를 단 한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3천년전에는 지금보다 문자의 가치가 훨씬 더 높았고 자기의 사상을 뚜렷하게 전달하거나 남기는 것은 글이 가장 최고였던 시대였다. 이 책속엔 자신이 쓴 글귀에 메여서 목숨까지 잃어야했던 사람들 이야기로 나열되어 있다. 책을 읽을수록 정말 무서운 시대였구나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글 한줄에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다니 너무 가혹한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여기저기 내 생각과 흔적을 곳곳에 남길 수도 있고 트위터란게 나와서 바로바로 필요할때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어필할 수가 있는등 그때에 비하면 생각이 자유롭고 생각의 표현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긴하지만 지금도 역시 자신이 쓴 글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흔치 않게 목격할 수가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은 자신들이 쓴 글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당하고 아니면 경솔한 글들로 인해 사과글을 여기저기 도배해야 하는 등 심심치 않게 글들이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를 보게된다. 심지어는 그 글들로 인해 자신의 직업까지 잃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글의 중요성은 달라진게 없는거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제일 먼저 드는 생각들은 이제까지 여기저기 뿌려놓았던 나의 글들이다. 어디에 떠도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나의 문자들.. 오늘 초등학교때 첫사랑이었던 교회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었다. 집을 정리하는데 나의 편지들이 우루루루 쏟아져나왔다고 말이다. 다시 돌려달라고 하니 버렸다고 하는것이다. 믿긴 힘들지만,, 그냥 잊어버리기로했다. 문자란 정말 무서운것이라는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도 기억을 못하니 말이다.

 

앞으로는 이 책도 읽었으니 글을 쓸땐 조금 가려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k******2 2010.12.1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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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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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 '라는 부재가 먼저 눈에 들어 왔다. 3천년 전이면 언제지? 하는 생각과 함께 뭔 뜻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트위터 수준은 겨우 가까운 가족과 지인 몇명의 팔로우들과 몇몇 정치인과 기업홍보하시는 분들 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 활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개념은 어느정도 알기에 요즘도 많은 분들이 신기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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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년 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 '라는 부재가 먼저 눈에 들어 왔다. 3천년 전이면 언제지? 하는 생각과 함께 뭔 뜻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트위터 수준은 겨우 가까운 가족과 지인 몇명의 팔로우들과 몇몇 정치인과 기업홍보하시는 분들 밖에 없기 때문에 많이 활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개념은 어느정도 알기에 요즘도 많은 분들이 신기해 하는 트위터가 어떤 형식으로 존재했길래 이런 표현을 했을까 하는 의문에 혹시 요즘 애들이 많하는 낚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형식과 표현이 다른 뿐이지 세치혀와 펜 아니지 붓으로 많은 문자들을 통해 지옥도 가고 천당도 간 사건들을 보면서 문자를 만든이도 자기의 꽤에 자신이 망하는 꼴도 되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금지문자라는 책 제목에서도 말해주듯이 하면 안 되는 말이란 어떤 말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때 그때 권력층의 기분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어릴적 기억에 그때가 아마 군부독제 시대였는것 같다. 그때는 옛 왕조시대처럼 통치자를 입에 잘못 담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고 말 조심하라고들 하는 말들을 들었던것 같다. 현대가 아주 많이 달라진 자유 민주주의 시대지만 그 만큼 자신이 표현하는 언어에 대한 책임도 많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표현 하고도 그것이 정치인이나 특정인의 인격모독으로 아니면 명예훼손으로 보여 질 수도 있으니 쉽네 말해서 3천년전 말 한마디로 저승길에 고속열차를 탄 것이나 요즘 시대에 철조망 신세를 지는 것이나 별 다를바가 없다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보다 나은 신하나 부하는 결코 그냥 두지 않는 강자들의 습성이 있다고 본다. 어제 종연한 드라마에서도 들은 말이지만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도 살아 남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저 충심으로 뱉은 한 마디에 족쇄가 되어 버리는 것이 이책의 예문들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한반도의 역사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나약해 일본에게 많은 사료와 민족 말살정책에 의해 사라지고 외곡되었듯이 중원 또한 독재자들의 욕심에 찬 독단으로 인해 아주 많은 문인들과 브래인들, 그리고 사료, 책 문화가 사라 진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왕들이 보기에 자신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을 것들과 최근대사의 것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승자에 의해 쓰여 지는 역사가 아닌 모든 이들의 말과 글로 쓰여지는 역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옛것을 알아야 미래를 설계하듯이 이책을 교훈으로 많은 정치가가 지식인들의 지침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y*****i 2010.12.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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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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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옥(文字獄)이란 말은 매우 낯설지만 그의 뜻을 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문자나 글로 화를 입는 것을 문자옥(文字獄)이라고 한다. 단어 하나를 꼬투리를 잡아내니 다음 날 아침이면 누군가의 권력과 신분이 바뀌고, 죽음마저도 찾아온다. 더구나 반대편에 서지 않고 그 누군가를 옹호하는 사람들까지도 커다란 고통에 빠지게 만드는 문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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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옥(文字獄)이란 말은 매우 낯설지만 그의 뜻을 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일 것이다.

중국에서는 문자나 글로 화를 입는 것을 문자옥(文字獄)이라고 한다.


단어 하나를 꼬투리를 잡아내니 다음 날 아침이면 누군가의 권력과 신분이 바뀌고, 죽음마저도 찾아온다.

더구나 반대편에 서지 않고 그 누군가를 옹호하는 사람들까지도 커다란 고통에 빠지게 만드는 문자옥(文字獄).

나라의 흥망성쇠 그리고 왕권 강화 또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람들 즉 황제나 귀족들은  상대방이 쓴 글 하나를 끄집어내 음해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국 진나라에서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권력자들에 의해 글 때문에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서갱유’ 또한 문자옥(文字獄)의 한 예이다.

문자옥(文字獄)이란 단어는 생소하지만 지금까지 배워왔던 역사 속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이 책에 열거된 내용과 비슷한 예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고, 왕예린의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가 잘 설명해 주고 있어 이해도 쉽고 역사 이야기 속의 숨은 교훈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중국만 그러했겠는가.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상소문이나 조언, 첨언 등으로 인해 파직이나 죽음을 당한 인물들이나 사건들도 많았으며, 서양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자들의 눈과 귀에 거슬린다면 왕권 강화와 권력 유지라는 이름으로 그와 반하는 글들을 쓴 사람들을 가차 없이 파멸시켰던 예들은 수없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최근 30~40년 전에도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죄목으로 금지된 책들과 노래들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시대가 달라짐으로 인해 예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중국의 역사를 통한 문자옥 (文字獄)은 정치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도 적용되어 아주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


어떤 성향의 지도자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우리 국민들의 체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 문자옥(文字獄)이라고 할 수 있는 트위터나 미니홈피 등 개인적이지만 개방된 공간을 통해 쓴 글들로 인해 소란이 나 여론이나 언론에 뭇매를 맞는 경우를 자주 접하고 있다.

‘아차’ 하는 사이에 뱉어낸 말이나 글은 금방 지운다고 해도 어느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사건들을 뉴스로 보도해 마치 사실인 듯 속보나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쏟아내는 기사들을 양산해내는 언론들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글이나 말은 느리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나 부정적인 글들은 퍼지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우리도 알 것이다.


인터넷 등 개방성 있는 시스템들이 점차 발전함으로서 어디선가 지켜보는 눈들이 많다는 것 을 알고, 이야기 한 줄과 말 한마디를 함에 있어 늘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역사 속 문자옥(文字獄)과 현대의 문자옥(文字獄)의 비교함에 있어 조금은 적절치 않은 면이 있지만 혹시 내가 만든 문자옥(文字獄)에 갇히지나 않았는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c*********n 2010.12.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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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쓴 글에 화를 당하는 문자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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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것은 글쓴이를 드러내주는 분명한 힘이 있으며, 글쓴이의 의도와 달리 제멋대로 피어나는 미묘한 힘 또한 가지고 있다. 글은 내면에 자신의 창조자의 숨결을 품고 있다. 그런가하면 글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특히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의미를 품고 있는 중국문자는 해석자에 의해, 시대 상황에 의해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오해가 글쓴이가 의도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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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라는 것은 글쓴이를 드러내주는 분명한 힘이 있으며, 글쓴이의 의도와 달리 제멋대로 피어나는 미묘한 힘 또한 가지고 있다. 글은 내면에 자신의 창조자의 숨결을 품고 있다. 그런가하면 글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변할 수 있다. 특히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의미를 품고 있는 중국문자는 해석자에 의해, 시대 상황에 의해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오해가 글쓴이가 의도한 바이던 그렇지 않던 글쓴이에게 화가 미치던지 영화가 미친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문자옥에 대한 역사를 저자가 나름대로의 기준 하에 엄선하여 수록한 것이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자신의 기준을 밝히고 있으며, 문자옥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와 자신의 주장과의 차이점도 밝히고 있어, 마지막 글을 읽으면 더 확연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저자는 최초의 문자옥으로 진시황 통치하의 분서를 꼽는다. 그 사건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식과 문화에 대한 탄압이었으며, 정치를 공명정대하게 펼치지 않았다는 본이다. 역사상 최초의 문자옥을 소개하는 제목 ‘지식과 문화를 짓밟는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문자옥을 통해 이 책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역사적 교훈을 명심하라 일러준다. 사상이 바르고 반듯한 선비는 통치자의 위선을 두고 보지 못한다. 그리하여 옛 고사를 인용하여 시대를 한탄하다가 그 글이 결국 통지자에게 들어가 문자옥을 당한 예가 바로 조조에 의해 희생된 공융과 최염이다. 격문이나 상주문을 썼다가 그 글이 미친 역효과 때문에 오히려 화를 당한 인물들도 있다. 왕이 자신보다 글솜씨가 좋은 문인을 질투하여 죄를 뒤집어씌워 죽인 예도 있다.
  직언을 한 충신이 화를 당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이리저리 요리한 간신이 영화를 누린 예는 역사에 많다. 달콤한 글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이다. 현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암시된 시에 진저리를 느껴 2년 간이나 금시령을 내린 시기가 있었을 정도이니 옛 사람들의 글에 대한 민감한 반응과 논쟁의 쟁점화 등은 현재와 다를 바 없다.

  글은 사람의 정신을 풍부하게 하고 올곧게 해주지만, 또한 이 글이 정치와 권력과 부와 명예등과 만나면서 굴절되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 진리는 문자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일 것이다. 그리고 문자에 의해 속박받지 않는 시대가 진실로 문화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l*****a 2010.1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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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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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를 처음 접했을때 나의 눈길을 가장 먼저 끈것은 '3천 년 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는 문구였다. 아마 이 글처럼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는것 같다. 이 책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의 저자는 왕예린이라는 중국인으로 중국 서예가 협회 회원, 중국 시사학회 회원, 안후이성 산문 학회 회원 및 이사로 활약했으며, 역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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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를 처음 접했을때 나의 눈길을 가장 먼저 끈것은

'3천 년 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는 문구였다.

아마 이 글처럼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는것 같다.

이 책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의 저자는 왕예린이라는 중국인으로

중국 서예가 협회 회원, 중국 시사학회 회원, 안후이성 산문 학회 회원 및 이사로 활약했으며,

역사 소설, 산문,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저술한 실력파 작가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에서는 문자나 글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을 '문자옥'이라 일컫는다고 하면서

바로 이 문자옥의 역사를 들려준다.

문자는 문명사회의 이기이지만 때로는 부메랑처럼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지식인들 역시 이 문자에 발목 잡혀 고초를 치르거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일은 요즘시대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들이 사이버상에 올린 글이나 댓글들은 상상도 못할 속도로

퍼져나가 몇 분도 채 되지않아 전세계에 전파된다.

게다가 인터넷의 익명성의 보장은 글의 신빙성이나 신뢰성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타블로 사건도 문자옥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졸업을 의심하면서 진실을 요구한다고 글이 올라왔고

이 글이 널리 퍼지면서 악성댓글이 넘쳐나고 타블로 개인을 향한 비방을 넘어

그 가족 전체를 향한 공격이 행해졌다.

타블로는 즉 문자로 말미암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이 일로 타블로와 그 가족은 끔찍한 고통을 당했고 아마 이 고통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에서는 3천 년 전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기에

아무래도 현대의 문자옥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이 시대의 중국은 황제가 존재하던 시기이므로 문자옥이 권력의 이익에 반하는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최근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미네르바 사건'을 들 수 있을것 같다.

중국의 역사속에서 문자, 글로 인해 화를 입은 경우를 생각해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이였다.

아마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지 이 책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에서도

가장 먼저 진나라 시황제의 분서갱유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가혹하고 거대한 문자옥을 만든 사람이 진나라 시황제라고 하면서

그가 저지른 분서갱유는 중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문자옥이였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문자옥을 소개해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어보면 문자옥을 만든 사람도, 희생된 사람도 지식인이었다.

물론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 시대 때는 그랬다.

이 시대나 요즘이나 문자의 힘은 인간의 삶을 뒤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하다.

바로 이런 점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쓴 글이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되어 꽂힐 수도 있다.

 

 

 

 

 

 

 

i*****8 2010.12.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용보기
이번 정권 들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화도 나고 안타까운 사건들이서 뭐부터 꼽아볼지 난감한데, 그중 가장 어이없고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사건이라면 21세기판 필화(筆禍)사건이라 칭할 수 있는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명예훼손 고발”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두 사건 때문에 우리의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용보기
  이번 정권 들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화도 나고 안타까운 사건들이서 뭐부터 꼽아볼지 난감한데, 그중 가장 어이없고 실소(失笑)를 자아내는 사건이라면 21세기판 필화(筆禍)사건이라 칭할 수 있는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명예훼손 고발”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두 사건 때문에 우리의 민주화 시계는 ‘잃어버린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30~40년 전인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갔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나 글 때문에 화를 입는 사건”을 필화사건 - 멀리는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인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원인이 되었던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들 수 있고, 가까이는 1970년 소설가 김지하의 <오적(五賊)>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이라 부르는데, 이웃 중국에서는 <문자옥(文字獄)>이라 부른다고 하며, 그 역사가 3,000년에 이를 정도로 꽤나 유구(悠久)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왕예린의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 문자옥文字獄, 글 한 줄에 발목 잡힌 중국 지식인들의 역사(애플북스/2010년 11월)>은 중국 역사상 유명했던 문자옥 사건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서문인 <시작하면서>에서 인류 역사에 남아 있는 문자옥은 '권력'의 이익에 반하는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 일종의 '사상죄‘라고 정의한다. 작가는 계속해서 역사 속에서 문자옥을 만든 사람도, 희생된 사람도 지식인이었으며, 지식인들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을 교묘한 말로 없는 죄를 덮어씌우고 사지로 밀어 넣었으며, 때로는 달콤한 말로 기득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반역을 일으켜 권력을 손에 넣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배움이 남다르면 관직에 올라 천하를 평안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던 지식인들은 붓을 칼 삼아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이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으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즉 문자옥은 권력과 글의 알력이 빚어낸 감옥이었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에서 청나라 마지막이자 가장 유명한 문자옥인 <소보사건>(광서 22년 1896년)까지 총 30건의 문자옥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건의 분류와 구성은 맺음말 격인 <마치면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작가는 최초의 문자옥 사건을 서한(西韓)시대 양운 사건으로 보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 B.C. 548년 제나라 태사가 (太史) 태사 최서에게 죽음을 당한 사례를 최초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제나라의 대부 최서(崔抒)가 왕인 장공을 살해하고 권력을 쥐자 당시 태사(太史, 사관)는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기록했다고 한다. 최서는 태사를 처형하고 태사의 동생을 후임으로 임명했지만, 동생 또한 최서의 죄악을 그대로 적어 화를 당하고 말았고, 다시 임명된 태사 가문의 마지막 사내 또한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고 기록하자, 그 강직한 모습에 놀란 최서가 겁을 먹고 태사의 목을 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사건이다. 그동안 알려진 양운보다 400여년 더 앞당겨진 셈인데 작가는 그렇다고 이 사건을 중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문자옥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최서의 사레를 든 것은 이 사건이 "최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춘추시대 혹은 그보다 앞선 시대에도 문자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최초로 알려졌던 양운 사건은 어떤 내용일까? 양운은 한나라 소제 때 승상을 지낸 양창의 아들로 어미가 대문호 사마천의 딸인 명문가의 자제였다. 곽광의 모반 사건을 밀고해 평통후로 봉하고 중랑장의 벼슬을 얻었는데, 고발장 사건으로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지만 농사를 짓고 집을 지으며 재산을 불리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의 벗인 안정태수 손희종이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서신을 보내자 그 답으로 내심의 불만을 답신인 <보손회종서>에 쏟아냈고, 결국 이를 알게 된 황제의 분노를 사서 허리를 부러뜨려 죽이는 요참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두 번째로 작가는 문자옥의 원인이 된 '문자'의 범위와 문자옥의 유형을 소개하는데, 먼저 유명한 지식인들이 법을 어겨 죽음을 당한 경우로 삼국지(三國志)의 등장인물로 유명한 한나라의 공융을 예로 든다. 한나라 명문가의 자손이었던 공융은 원담에게 화를 사서 간신히 도망쳐 조조에 의탁하지만 연거푸 조조의 법령과 정책을 비웃고 욕설이 난무한 잡문을 썼다고 하며, 조조의 아들 조비가 원희의 아내 견씨를 맞이하자 공융은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토벌했을 때 주공에게 달기를 준 이야기와 함께 조씨 부자를 비웃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다고 한다.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눈치챈 공융이 조조에게 사죄의 서신을 보내지만 조조는 공융이 대신 치려와의 한바탕 설전을 벌인 것을 빌미로 조조는 공융이 몰래 술을 만들었다며 잡아들여 대역죄, 조정 비방죄, 망령된 말을 함부로 내뱉은 죄로 죽여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또한 글이 유명해져 화를 당한 사례로는 송(宋)나라 시절 정치가 겸 문인으로도 유명했던 구양수(歐陽脩)를 예를 든다. 그당시 명신이었던 범중엄이 모함을 받아 좌천되자 일부 대신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언을 했지만 줄줄이 좌천되고, 구양수는 비겁한 술수로 범중엄을 사지로 밀어 넣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고약납에게 격한 어조로 쓴 장문의 서신을 보냈는데, 고약납의 고발로 이 편지를 본 황제가 구양수가 대역죄인의 편을 들고 조정의 대신을 비방했다고 하여 이릉으로 쫓아낸다. 훗날 복귀한 범중엄이 구양수에게 자신의 서기관이 되어줄 것을 청하자 구양수는 "과거에 제가 님의 편에 선 것은 지금의 자리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물러날지언정 결코 님과 함께 나아가지는 않을 것입다"라고 껄껄 웃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시대의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은 시론으로 화를 당한 사례로는 일곱 번의 상소로 반대파에 목숨을 잃은 송의 “진동”,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는 죽은 이의 생전 언행을 기록했다가 죽음을 당한 북송의 시인 ‘이지의“ 사건을 소개한다. 작가는 사료의 출처로 25개 왕조를 담은 역사서(二十五史)와 수십 개의 패사(稗史: 일상의 사소한 일을 기록한 야사나 소설 따위)를 참고로 했고 인물 평가는 역사적 사실에 의거해 가능한 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기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사례 외에도 여러 사례들이 많은데, 그중 가장 재밌는 사례라면 고구려와도 관계가 있는 당(唐)나라 시절 원만경(元萬頃)의 <격고려문> 사례를 들 수 있다. 당나라의 대장군 이적과 함께 고려 - 책에서는 고구려를 고려로 부른다 - 원정에 나선 원만경은 서기로 일하며 보고나 각종 서신을 작성하는 일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군량미를 요청하는 서신을 고려인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아기 위해 남녀 사이의 이별을 노래하는 시로 가장하여 보냈다가 일촉즉발의 상황에 한가롭게 사랑 타령이나 하다면서 불같이 화를 낸 이적 대장군에게 처형당할 뻔 한 일을 겪기도 했던 그는 대장군 이적의 명으로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격문을 쓰게 되는데, 격문에서 압록강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지킬 줄도 모르고 덤비는 어리석은 족속이 고려라며 한껏 약을 올리는 내용을 적었다. 이 격문대로 고려 조정은 압록강을 사수하고 병력을 크게 강화하자 당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넘지 못하고 중원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결국 원만경의 격문은 다 된밥에 코 빠뜨린 격이 되었고, 그는 그 죄로 영외로 쫓겨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의 이익에 반(反)하고 적국에 도움을 주는 이적(利敵) 행위를 한 셈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야 은인(恩人)인 셈이지만^^

 

   이러한 문자옥 사례들의 교훈은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처럼 “권력의 힘은 짧지만 글의 힘은 천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일 것이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인 것처럼 권력을 위해 아무리 글이나 언론을 탄압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모든 진실은 언젠가는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나는 법이라는 것은 이 책의 사례들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역사의 진리(眞理)가 아니던가. 그러나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을 이 진리를 권력자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나 보다 - 엄밀히 말하자면 모른 척 하는 것이겠지만 -. 이 책의 출간이 설마 최근의 사태에 맞춘 불순(?)한 의도는 없었겠지만 그 시의적절(時宜適切)함은 기가 막혔다고 평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우리나라에도 중국 문자옥 못지 않은 필화사건들이 많았으니 그 사례들을 엮은 책도 조만간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a*****7 2010.1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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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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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역사에서 필화(筆禍)사건은 수없이 일어났다. 중국 25사(史)에 무수히 많은 붓질로 화를 당한 예가 수없이 많다.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있었다. 대부분의 필화는 군신(君臣) 또는 정적을 제거하는 일종의 설전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필화는 임금의 역린(逆鱗)을 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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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


 역사에서 필화(筆禍)사건은 수없이 일어났다. 중국 25사(史)에 무수히 많은 붓질로 화를 당한 예가 수없이 많다.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있었다. 대부분의 필화는 군신(君臣) 또는 정적을 제거하는 일종의 설전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필화는 임금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데서 비롯한다. 신하로서 지나치게 강력히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다보면 이는 곧 임금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려 임금의 목을 찌르게 된다. 목이 찔린 용은 이성을 잃고 무소불위의 칼을 휘두르게 마련이다. 과거의 역사를 훑어보면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 이를 문인으로 보고 있다. 문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다보면 강한 어조의 글을 뱉어내기 일쑤이다. 임금은 이를 싫어한다. 더구나 임금의 고임을 받는 신하가 누군가 올린 상소문을 보고 이를 개작하거나 비틀어 임금에게 올리는 경우가 있다.


 송나라의 소동파는 “사람이 나서 글자를 아는 게 근심 걱정의 시작이 된다.”고 하였다. 이는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이라는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 ‘人生識字憂患始(인생식자우환시)'라고 한다. 사람이 나서 학문을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흩어져버리고 잃어버린 본성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자옥은 바로 조선시대 중엽 연산군 4년에 일어난 무오사화(1498)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인인 김일손이 쓴 사초에서 사단이 일어났다.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성종실록에 올린 것이다. 이는 항우(項羽)가 초나라의 의제(義帝)를 죽여 물에 던진 것을 빗대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것이다. 항우는 바로 [항우본기]에서 ’글은 이름과 성만 쓰면 족하다(書足以名姓也已矣) 고 말한 이다. 김종직은 [예기]에서 말한 ‘옛 시문이나 글을 읽는 이, 곧 점필(佔畢)’이라고 호를 지은 이다. 그런 그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대의명분을 걸고 제문을 지었던 것이다. 사림파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할 무렵의 일이다.  문인은 시대의식을 가져야 한다. 시대를 바로 읽고 이에 대한 처방전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시를 쓰던 소설을 쓰던 간에 예리한 통찰력으로 시대를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권력에 빌붙거나 알랑방귀를 뀌어서는 그의 펜은 분질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이 알면 다친다고 한다. 多知爲敗. [장자]에 나오는 대목이다. 글을 알고 이를 쓰고 시대를 보듬고 파헤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성당(盛唐0시대 두보도 말하지 않았던가! “글로써 사람들을 놀라지 못하게 하면 죽어서도 쉴 수가 없다(語不驚人死不休).”고.


 다만 문인은 활줄처럼 곧아 길가에서 죽더라도 갈고리처럼 굽어 공후(公侯)에 봉해지면 안 된다(直如絃, 死道邊. 曲如鉤, 封公侯).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 보이는 대목이다. 후한 말기 순제(順帝,125~144)때 저잣거리에 떠돌던 말이라고 한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를 이틀간 읽었다. 저자의 사서(史書)를 읽고 문자옥(文字獄)을 짚어내는 안목에 갈채를 보낸다. 요즘도 트위터나 블로그에 글을 올려 곤란을 겪는 문인들이 있다. 문인들 나름의 세상을 헤집고 파헤치는 안목이 있음을 유념했으면 한다. 다만 권력 언저리에 기웃거리는 갈고리처럼 굽은 이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내용도 좋고 문자옥을 당한 해당 글귀를 원문과 더불어 풀이를 한 것도 두드러진다. 일독할만한 도서이다.


단기 4343년 11월 28일

不二堂 강상규 적바림하다.


c********1 2010.11.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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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필화사건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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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고 윤동주는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하지만 윤동주 같은 "영향력 있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아닐 뿐더러 앞으로도 그렇게 될 일 없는 그저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글이라고 끄적대봐야 일기 정도가 전부인 나 같은 사람의 글이 많은 사
"중국사의 필화사건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 문자]" 내용보기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고 윤동주는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하지만 윤동주 같은 "영향력 있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아닐 뿐더러 앞으로도 그렇게 될 일 없는 그저 평범한 나같은 사람은 그런 면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글이라고 끄적대봐야 일기 정도가 전부인 나 같은 사람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일도 없을 터이고,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쓸 일이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내가 쓰는 것들, 글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한 그 것들을 끄적대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글이 쉽게 씌어지더라도 부끄러움을 느껴본 일은 별로 없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를 읽었다. 중국사에 있었던 "문자옥文字獄"에 관해 쓴 책이다. 글쓴이는  "역사소설, 산문, 수필 등 다양한 글을 저술"(책 앞날개)해 온 전직 교사이기도 한 왕예린王業霖. 책에서는 중국사의 25개 왕조에서 있었던 문자와 관련한 30개 정도의 사건들을 간략하게 나열하고 있다. 문자옥이라.. 글쓴이는 문자옥을 "문자로 말미암은 '감옥'"(p6)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들은 중국사의 필화사건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다소 산만한 구석이 있다. 글쓴이는 출판사로부터 문자옥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도 글을 시작하지 몇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문자옥"이라고 정의할 만한 사건들의 범주나 사료의 출처와 진위여부,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을 놓고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문자와 관련한 사건들은 글쓴이가 인용하고 있는 몽테스키외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지식은 위험을 부르고, 경쟁은 화를 부른다."(p150). 올곧은 성품으로 직언을 하다 최고통치자인 황제의 비위를 거슬러 자신 뿐만 아니라 친인척들마저 화를 당하도록 만들었던 인물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소식이다. 뜻하지 않게 화를 당한 인물들도 있다. 명 태조 주원장은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을 문자의 옥으로 달랬던 것 같다. 글쓴이는 "선문당이 사람 잡은" 예로 주원장을 들고 있다. "보좌에 재위했던 30년 동안, 매일 수많은 상소문을 꼼꼼히 읽으며 그 속에서 꼬투리를 잡아내는 주원장의 노고야마로 노동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도 경탄할만큼 대단한 것이다."(p163)라고 표현할 만큼 수많은 문자의 옥을 불러왔던 주원장의 열등감과 그 때문에 희생된 수많은 문인들의 이름이 이 책에 새겨져 있다.

 

  나의 중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배경지식의 부족탓이겠지만 글이 다소 어렵기도 하고 산만한데다 재미도 덜 했다. 그러나 글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아야했던 많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윤동주의 시가 떠올랐다. 글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남의 글을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 책은 내 기대와는 다소 다른 책이긴 했지만, 독자의 함량 부족 탓이리라. 다음에 중국사에 관한 배경지식을 더 많이 쌓고 난 다음에 다시 한 번 읽어보리라. 

h****i 2010.11.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