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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쿳시 전문 번역가(?)인 왕은철은 이 책 끝의 ''옮긴이의 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나는 2003년 12월 7일, 쿳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현장의 표정을 전하는 뉴스를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면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쿳시는 늘 그래왔듯이 언론과의 인터뷰는 끝내 사양했지만, 지금 살아 있었으면 아흔 살이 훨씬 넘었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렸다. 그것이 노벨상이든 뭐든 "엄마, 나 상 탔어요!" 하고 달려가면 안아줄 어머니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어머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를 위해서 쓰겠습니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과묵하기 그지없는 작가인 예순세 살의 쿳시가 천오백 명의 명사들이 모인 화려한 자리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소박한 말로 그리워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는 2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다. 너무 과묵해서 전설이 될 정도인 사람의 말이기에 더더욱."
또 다른 책에서도 왕은철은 쿳시의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쿳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철저히 꺼리면서도 번역에 관한 역자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한다고 한다. 어찌됐든 나는 쿳시의 그런 면에 믿음이 간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도 좋았고 <마이클 K>도 물론 좋았고 <추락>도 대단했고 <어둠의 땅>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특히 더 좋았다. 화자가 여자이고, 또 노인이어서 그랬을까?
쿳시 특유의 서정적 사유가 빛나는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철의 아이들. 나는 생각했다. 플로렌스 자신도 철과 다르지 않다. 철의 시대. 그 다음은 청동의 시대. 그러한 순환주기에서, 찰흙의 시대, 흙의 시대 같은 더 부드러운 시대가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걸릴까? 스파르타 부인. 철로 된 심장을 갖고 국가를 위해 싸울 아들들을 낳는 스파르타 부인. ''우리는 그들이 자랑스러워요.'' 우리. 살아서 방패를 들고오든, 죽어서 방패에 실려 오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