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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제 주변에 알려진 모든 세계를 정복한 영웅의 원형이라면 물론 대왕 알렉산드로스가 있다. 이 인물이 그 위업을 얼추 다 성취한 시점은 제 나이 서른에 가까워져서이고, 뭐 그것만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이긴 하다. 창업자가 아니고 누대의 업적을 상속한 입장이지만(알렉산더도 물론 창업군주는 아니다) 메메드 2세의 경우 (요즘 기준으로) 성년을 막 넘긴 나이에 그가 아는 거의 모든 세상을 깡그리 발 아래에 놓다시피한 엄청난 일을 이룬 사람이다. 천년의 고도이자 불락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유럽과 아시아 어느 쪽이건 감히 쉽게 기대할 일이 아니었는데 소년에 가까운 한 군주가 초인적 배짱과 결단력으로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입성 후 정복자로서의 행세란 것도 비교적 절도가 있었던 편이나, 다만 칸타쿠제노스의 아들, 또 노타라스 대공의 후계자 등이 당한 비극적인 운명 때문에 가해자인 그의 이미지는 피에 굶주리고 색에 도착적 집착을 보이는 괴물의 그것을 벗지 못하는 것 같다. 유목민족의 끔찍한 풍습과 당시의 야만적 관행을 생각하면 각별한 분개를 살 장면은 아니라는 게 이성적이고 공정한 판단이지만, 개인적으로도 그 두 미소년이 직면했던 비참한 광경을 상상할 때면 냉정침착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다. 미성년 정복자의 예는 펀잡의 사자, 마하라자 란지트 싱이 있다. 이 사람은 유력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왕자의 지위까지는 아니었다는 점, 또 소수파의 리더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진정 아낌없이 자립영웅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만 다소 아름답지 못한 외모, 왠지 사이비광신도의 교주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그리 자주 언급되는 것 같지는 않다(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위인전기 리스트 저 앞쯤에 랭크되어야 마땅한 영걸 중 영걸이다. 위키 혹은 내가 전에 쓴 포스트 참고 바람) 각설하구, 강희제가 미성년 정복자인가? 어, 객관적 수치로 봐서 '미성년'은 맞아. 그럼 '정복자'는? 그건 다음의 썰을 한번 들어보고 판단하기 바라영. 누르하치는 사실 북경 등 중원의 핵심에 발도 제대로 들이지 못한 채 만주에서 나 그냥 게서 죽은 사람이고, 조선하고도 찐한 인연이 있던 태종 홍타이시, 또 그 후대 순치제까지만 해도 신흥야만 여진의 동아시아 지배는 그리 탄탄한 기반이 놓여진 상황이 못 되었다. 여러 번 눙치는 수작으로 어린 천자의 속을 시험했던 희대의 배신자 오삼계가 칭제한 건 강희제가 17살 때의 일이고, 그 평정에 있어 친히 군사전략을 설계, 입안, 제시, 검토, 실행하여 3년만에 큰 우환덩이를 발본색원해 버린 것이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오삼계 단일 세력만으로도 거대 지방 정권을 넘어 半천하, 半천자의 위상이었는데, 그에 버금가는 다른 두 '번'의 위력까지 아울러 별 부작용 없이 눌러버렸으니 실질적으로 새 황조의 시작, 건국은 이 시점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번의 괴수가 모두, 평생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맹장들이요, 경찰의 단속에 가스통들고 나와 공동몰살이라며 악을 써대고 대치하는 집창촌 포주들마냥 악마에게 일찌감치 영혼을 판 불패천불외지의 족속인데, 이런 자들을 상대로 금지옥엽으로 자란 소년이 한편으로 어르고 다른편으로 의표를 찌르는 예측불허의 귀싸대기를 날려가며 명색뿐이던 천자의 권위를 대륙의 먼 구석까지 떨치게 했으니, 어느 시대를 사는 누구에게나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위대한 천품을 다시 마음 속에 새기게 하는 것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한데, 아니 과한데, 이 소년은 어려서부터 병적이다시피 책을 파는 스타일이었고 그 문명권이 중시하던 모든 지식에 대해 그 문명권이 전대, 당대에 걸쳐 배출한 어떤 문인 재사보다 더 완벽한 수준의 이해와 터득을 보였던 것 같다(기록으로 봐서). 조선도 그랬지만 본래 경연이니 서연이니 하는 이벤트는 군주와 그 후계자에 대해, 학문깨나 하는 귀족들이 상전 버릇을 들여 놓는 자리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영특한 어린 군주는 되레 그 이벤트를, 내로라하는 학자, 관료에게 '난 출신성분이나 능력, 학문 어느 쪽으로도 상대가 안 되는구나'하는 근본적인 열패감만 심어주는 정반대의 선전장으로 활용했으니.... 실존했던 인물의 찬란한 자질, 업적이 아예 무협지의 그것을 능가해버리는 증좌를 확인함에 있어, 수백년 후의 한 독자 역시 그저 아연실색, 기진맥진 후 끝모를 자기비하에 들입다 빠질 뿐이겠다. 빌어먹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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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간 황제로서 중국을 통치한 강희황제는 중국역사상 그 어느 황제보다 더 긴 세월동안 재위에 있었다. 그가 통치한 기간동안 명에서 청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혼란했던 중국은 안정되었고 영토는 중국의 전성기엿던 한나라와 당나라보다 넓어졌으며 정치가 안정되면서 인구가 늘고 경제가 발전했으며 문화도 번성했다. 중국역사상 흔치 않았던 태평성대였다. 내용 이책은 강희황제가 어떻게 그런 태평성대가 이룰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강희황제가 즉위했을 때 청나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만주족이란 소수민족정권이란 태생적 한계때문에 청왕조는 정당성을 확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강남의 남명 정권들이 진압된지도 얼마 안된 시점에서 반청복명운동은 아직도 진행중이었으며 정권의 지지기반을 위해 명나라 관리들을 받아들이면서 명나라 말기의 극심했던 부패도 같이 물려받은 상태에서 만주족 귀족들의 착취와 부패가 겹쳐 민심은 불안했다. 전란과 반란이 반복되면서 농토가 황폐해졌고 국가의 재정도 불안햇다. 몽고족과 티벳의 외침도 끓이지 않았다. 허약한 정권을 물려받은 강희황제는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려면 민생을 안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러기 위해선 반란을 진압하고 외침을 잠재우며 관리들의 부패를 없애 농민들이 안심하고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는 일이었다. 먼저 왕이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왕권을 확립한 후 강희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고 몽고족과 티벳을 영향권하에 두었으며 러시아의 침입을 막았다. 그리고 관리들의 부패를 제어하고 붕당을 만드는 것을 봉쇄했으며 환곡제도와 세제를 개혁했다. 이책은 강희황제의 정책이 어떤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가에 따라 그러한 강희황제의 정책들을 기술하고 있다. 목차의 제목들은 그러한 원칙들이다. 그러한 원칙들만 보면 단순한 나열로 보인다. 일견 보면 너무 많은 잡다한 원칙들이 나열된 것으로 보이며 언뜻 모순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원칙들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중용으로 생각된다. 가령 강희황제는 관리가 청렴한 것을 으뜸으로 생각햇다. 그러나 청렴하면서 타인에게 각박하게 원칙만 내세우는 사람은 실격이다. 중용이 없기 때문이다. 청렴하면서 백성들을 배려하는 따뜻함도 있어야 좋은 관리였다. 그리고 강희제는 아마도 역대 중국 황제들 중에서 가장 너그러운 황제중 한명이다. 그러나 강희제는 너그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엄격함도 같이 지니고 잇었다. 중용을 실천한 것이다. 이책이 제시하는 강희제의 원칙들은 중용의 대원칙을 전제로 하는 것들이다. 평가 이상이 이책의 아웃라인이다. 이책은 상당히 드라이하게 쓰여진 책이다. 강희제의 정책들과 그의 원칙들이 건조한 필체로 서술되기만 한다. 강희제가 그런 정책을 내놓았던 사정들과 강희제 자신의 말들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강희제 자신의 내면이 읽히지는 않는다. 드라이한 학술서적을 보는 느낌이다. 과히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다. 그러나 읽고 나면 개인으로서 강희제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뛰어난 리더의 생각과 내면을 느껴보고 싶다면 작은 글씨로 두껍게 쓰여진 이책을 읽는데 시간을 들일 가치가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