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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타계하고 해가 바뀌었다. 아직도 49재가 지나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그의 책은 많이 보아왔으나, 그리고 그의 책 속에서 그의 삶을 유추해 보았으나, 막상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읽은 [대화]가 자서전 이었다면, 이 책은 평전에 가깝다. 그것도 한국사회에서 유별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준만교수가 쓴 책이었기에 주저 없이 펼쳐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우리가 리영희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하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그가 이 책을 쓴것이 2004년이었으니까, 당시에는 비록 병중이라 할지라도 리영희선생이 살아계실 때이다. 그는 리영희가 한국사회에 미친 가장큰 영향을 추상적으로 말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은인이거나 원흉 둘중 하나라고 말한다. 7-80년대 온 가족의 큰 기대를 안고 대학에 들어온 수많은 학생들, 당시 대학은 신분상승의 유력한 수단이자 통로였으므로 대학생들은 병영체계화된 사회에 적합한 지식만을 열심히 습득하는 것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길 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멀쩡하던 학생들이 리영희의 책만 읽으면 충격을 받고 이상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학생들의 변화를 가리켜 의식화라 했고, 그래서 한쪽에선 리영희를 의식화의 은인이라 불렀고, 병영체계 수호를 원하는 사람들은 의식화의 원흉으로 보았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도 당시 학교를 다녔던 수많은 사람들이 리영희의 책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리고 그 충격에서 깨어날 때쯤이면 주저 없이 의식화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와 정의라는 것에 대하여 사유하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고 가진 것을 소비하고 향유하기에 바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흐릿하지만 그래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대동제때의 모습이다. 당시 대동제 행사중 유행했던 것은 쌍쌍파티라는 것 이었다. 모두들 이성친구를 대동하고 운동장에서 가수들의 공연을 보면서 즐기는 그 파티라는 것에 참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항상 많았다. 그리고 모두들 흥에 겨워 즐거워한다. 그러나 시작한지 일이십분이 지나면 그 파티는 이미 전투장이 되어있다. 민주를 부르짖는 학생들과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온 경찰과의 싸움 속에서, 쌍쌍파티를 즐기던, 잘 차려 입은 옷을 거추장스러워 하며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피하기에 바쁜 그들은, 그 시대에도 어김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을 쏟으며 그 자리를 지키던 그들의 공통점은 어김없이 리영희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 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리영희만큼 큰 사건들을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또 치열하게 겪은 사람이 없기에, 그리고 그의 글은 곧 실천이었기에,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리영희라는 창을 통하여 한국현대사의 큰 줄기를 정리했다는 저자, 자신과 가족의 번영과 안전에 관한 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인물이었다는 리영희,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리영희라는 창만큼 투명한 창도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10년을 주기로 하여 리영희의 삶과 그가 발표했던 글들을 중심으로 그 시대에 벌어졌던 사건들을 이 시대의 논객 강준만 교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루쉰을 존경했고, 감성적으로는 김구를 존경한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 백범이 즐겨 암송했다는 서산대사의 시가 리영희 서재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우상을 타파하고자 했으나, 자신이 우상이 되는 것 같아 마땅찮아 했다는 그,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우상이 있는데, 이성은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더욱 리영희 선생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다. 다시금 그의 책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손에 들었다. |
| 거의 10여년 가까이 강준만교수의 책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는 게 버릇이 되다보니까, 이제는 강준만교수의 책을 사서 보는 것이 거의 습관성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환자처럼 강준만교수의 책은 나에게 있어 중동성이 그 어떤 카페인 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이번 책과 관련해서 우선 아쉬운 점을 좀 지적하고 싶다. 책의 내용 중, 한나라당의 국회의원 의석수가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이 점은 강준만교수가 글을 쓸 때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이러한 수치와 관련해서 강준만교수의 실수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도서출판 개마고원에서 이 부분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다소나마 아쉬웠다. 그리고 책의 군데군데, 글의 문맥이 틀린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도 책의 교열과 관련해 좀 더 꼼꼼하지 못한 것 같아서 이 점도 아쉬웠다. 그래서 이 책의 편집과 관련해서는 별 2개만을 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과 관련해서 평가하면 그건 정반대다. 이 책은 요근래에 보기드문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이 감히 역작이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이 무슨 거창한 이론이나 어렵고 박학다식한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중-고등학교 학생이 읽어도 아주 쉽게 읽힐 정도로 너무나 간결하면서 쉬운 글로 쓰져 있다. 이 책이 왜 요금래에 보기드문 역작인가? 그건 이 책이 주는 교훈성이라고할까? 이 책이 갖는 가치의 의미라고나할까?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언론인을 조사를 하면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1등이 되는 사회. 올바른 정의와 가치가 전도된 이 사회에서 리영희라는 존재는 마치 모래속의 진주와 같다. 내가 아는 대학생들에게 리영희가 누군지 아느냐가 물으면 리영희가 뭐하는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현실. 이 책은 이 땅의 대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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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2004년 3월 30일, 323쪽 초판 6쇄 2009년 7월 16일
<대화>에 이어 두번째로 읽은 리영희의 삶과 사상에 대한 책으로, <대화>는 씨줄에, 이 책은 날줄에 비유할 수 있겠다. <대화>가 리영희의 자서전이라면, 이 책은 강준만의 리영희 평전격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리영희의 사상을 다각도로 접근한 책이다. '리영희'에 대한 비판의견 역시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려 한 흔적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단계>인 First Age를 지나 <일과 가정을 이루는 단계>라 하는 Second Age에 비로소 내 비루한 사회의식이 찬물을 '맞아 깜짝 놀란듯' 일어나고 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밑줄N별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자연과학의 '공부'는 깊이 들어갈수록, 정도가 높아질수록 어려운 이론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과 생활에 관한 '공부'인 인문사회과학도 별의별 이론이 많기로는 자연과학에 못지않으면서도 되돌아오는 곳은 단순한 인간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본질적 요체, 평균적 두뇌로 이해되는 간단한 결론이다. 무엇인가 자꾸만 어려운 이론이나 학설, 철학을 동원해야 자기의 정당성을 변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책, 사상, 결정, 입장은 벌써 민중을 떠난 소수자의 것이다."(p.110; <분단을 넘어서> 122쪽 인용)
그는 훗날 자신의 저서 등을 통해서 지적,사상적 영향을 받은 후배후학 독자들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있다는 말도 하게 된다. 왜? 진실을 안다는 건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p.120,강준만)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인식 능력과 지식, 사상과 판단력에서 좌우 균형 잡힌 이상적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p.212;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전환시대의 논리'그후>6~7쪽 인용)
"물질이 내 몸에 많을수록 정신이 그만큼 분산되고 번잡해지며, 재물이든 권세든 물질을 늘리기 위해 거기에 집착할수록 내면적, 도덕적, 철학적, 인간적 성숙도는 그에 정비례하여, 아니 그 제곱에 비례하여 고갈되어 갑니다."(p.217; 리영희, 조유식,<월간 말> 1995.5월,73쪽 인용)
"리영희는 글을 쓰는 데에 세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있어야 할 것, 둘째, 독자들의 판단을 위해 가장 균형 잡힌 형태로 여러 가지 자료를 제시해줄 것. 셋째, 그 자료들이 무얼 뜻하는가, 즉 관점, 의미, 사상성 등을 밝혀줄 것. 리영희가 글을 쓰는 데에 바치는 에너지 구성비는 자료 수집이 70%, 10%가 구성, 20%가 쓰는 것이다." (p.218;<월간 말> 1995.5월,70쪽 인용)
"국제적인 생활 양식이나 가치관의 교환과 상호 침투 형태의 생활양식에 대해서는 비교적 개방적입니다. 대외적으로 미국에 대해서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요소에 대한 비판을 겸한 것이지, 그것만을 거부하는 국수주의자는 나는 오히려 다소 혐오하고 멸시하는 쪽입니다."(p.223;<역사비평>제 29호(1995년 여름) 206쪽 인용)
"나는 어쩐지 자본주의의 자유 및 물질적 우월성과 사회주의의 도덕적 가치를 지혜롭게 배합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해답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p.241;<경향신문>1997.8.15 12면 인용)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미국을 천사로 착각하는 극우 반동 세력과 기독교 우파에 기반한 조선, 동아일보 따위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상황이 계속됐다. 개탄할 일이다."(p.284;<한겨레> 2003.4.8. 37면)
"우리 사회와 국가를 보면서 늘 걱정하는 것은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졌을까, 좀 더 검소하게 살면서 인격적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중략) 우리 사회가 물질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며 한 단계 발전하려면 사회주의 정당, 철학, 사상, 생활화, 이론, 정부 이런 것을 자본주의의 그것과 같은 눈높이에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287;<내일신문> 2003.6.20 6면 인용)
"미국에 가서 박사니 뭐니 하고 돌아오는 것은 짧은 영어를 하면서 미국인들에게 괄시받고 그들에 대한 열등의식에 젖어 돌아오는 과정이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본원적인 인간의 약점처럼 의식화가 되는 과정이다. '나는 미국인들보다 못한 인간이다'는 식의 자학과 열등의식이 머리에 꽉 젖어버린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한국의 외교정책, 한미관계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예외없이 그런 과정을 거쳐 비슷한 심리상태에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 사실을 아무리 부정해도 의식의 밑바닥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열등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교수들이 말하는 미국, 국제정치란 것은 교과서와 강의실에서 접한 것에 불과하다."(p.292)
"언어는 단지 의사표현의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그렇게 건조한 사라전적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아주 축축한 것이다. 축축함이란 것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바탕에서 나도 모르게 배어들어 있는 것을 지니고 있는, '나'라는 개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선험적인 내용을 지녔다는 뜻이다. 어느 나라 말을 할 때, 그 말한 상대가 나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권위가 있거나 돈이 있거나 힘이 있을 때, 그 우월한 상대방의 언어를 대등하고 능숙하게 쓰게 되기 전에는 항상 열등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p.292)
박노자는 "이 위험한 전쟁의 위기시대에 남한 민중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당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라는 질문은 던진다. "첫째는 어떻게든 대통령이 바른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미국에 자주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없어 보여요.(중략) 둘째는 한국 사람들이 세계지배 야욕에 불타고 있는 미국 통치집단의 실체를 잘 인식해야 해요.(중략) 마지막으로 특히 고쳐야 할 것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 수구세력들이에요. 지난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국가적으로 양육된 사람들의 미국 찬양이 아주 위험합니다. (p.294; <한겨레21> 2003.7.24 34~38면 인용)
"난 민족주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 가치에 더 충실한 사람이에요. 난 대한민국을 무조건 추어올리고 충성 다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야. 난 지난해 월드컵대회도 개인적으로 안 좋았어요. 그냥 '한국 잘 한다'는 거하고 '대한민국 이겨라'는 거하고는 다릅니다. 나도 이기면 기뻐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게 흥분하고 감정적인 일치단결을 하는 것은 안 좋아한다고. 히틀러가 써먹을 수 있는 거지요.(중략) 왜 뻘건 걸 전부 같이 입고 나오고 똑같이 박수치고 그래야 하냐고.(웃음) 제각기 옷을 입고 나와 '한국 이겨라' 하면 되는 거지. 그래야 인류 보편의 평화와 인간과 민족끼리의 사랑이 생기고 그러는 거지. 개개인의 인간이 전부 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은 위험한 거야. 게임이라는 건 져도 좋아. 한국이 져도 좋고.....(p.259;<한겨레 21> 2003.7.24 34~38면 인용)
리영희는 아무리 작게 잡아 말해도 '우리의 몽롱한 의식에 끼얹는 찬물 한 바가지'였건만, 몽롱한 의식을 계속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 '찬물 한 바가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p.306)
"사회과학 분야의 글은 대개 사람들의 정서와 심정에 와 닿기보다는 두뇌에 1차적으로 닿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면적인 인상으로는 쾌감을 주지 못합니다. 두뇌에 닿으면서도 정서적 감화가 있는 글을 써야 읽는 이와 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쓰는 문장에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회과학의 글도 예술적이고 시적으로 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읽는 이와 일체가 되려는 심경을 스스로 가져야 합니다."(p.316;<월간 말>1995.5. 71~72쪽 인용)
리영희의 사회과학은 한국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겪은 체험에 근거한 것이다.(p.317)
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가 토마스 에머슨은 1970년에 낸 <표현의 자유의 구조(The System of Freedom of E-pression)>에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이유를 네 가지로 제시했다. (p.319;<언론법제신론>,나남,1989,21쩍 인용) 첫째, 개인의 자아실현 또는 자기완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둘째, 지식을 발전시키고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에머슨은 "지식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문제의 모든 면, 특히 반대의견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제시하는 주장들을 들어봐야 한다. 그는 모든 대안을 고려하고 그의 판단을 반대의견과 비교함으로써 시험해보고 진실과 오류를 구별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의 정보를 최대한 이용해야한다. 바꿔 말해서 정보를 억압하고 토론이나 의견의 충돌을 막게 되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도출할 수 없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고 오류가 영원히 남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한다.(p.320; 염규호 '미국에서의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 <언론중재> 통권 51호(1994여름,38~39쪽 재인용) 셋째,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결정행위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데에 필수적이다.p.320; 염규호 '미국에서의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 <언론중재> 통권 51호(1994여름,40쪽 재인용) 넷째, 안정과 변화의 균형을 위해서다.(p.321;팽원순,<매스코뮤니케이션 법제이론> 법문사, 1988, 65쪽에서 재인용) 다섯째, 카타르시스 효과를 위해서다.(p.321; Joel Schwartz,'Freud and Freedom of Speech',<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0:4(1986.12)pp.1227~1248) 마지막으로 리영희가 역설한 걸 하나 더 추가해야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사상의 도미노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중략) 이는 한국에서 국가보안법이 버티고 있는 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영원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학문적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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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대학생 혹은 교양인들이라면 리영희 교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분은 격동하는 시대의 여러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가 쓴 '전환 시대의 논리'는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필독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그 분은 시대의 선각자이며 앞서 나가는 정신적 지도자였다. 그 분은 어느덧 일흔이 넘어 인생의 황혼에 접어 들고 있다. 이 책은 그분의 인생과 사상을 강준만씨가 요약한 책이다. 쉽게 평전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 분을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지금보다 생각의 방향이 훨씬 앞서 나갈 수 있었을텐데..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분을 알게 된 건 작년 생일 때 친구가 선물로 이 책을 주면서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다지 어떠한 기대를 갖고 읽지 않았다. 그러나 책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 속의 많은 무지한 부분에 있어서 깨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 분을 이 순간에 안 것에 대해 너무나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리영희 선생님은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어떠한 길을 가야하는지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물질이 목표가 되는 시대에서 이 분은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힘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아닌 정신이 바로 섰을 때의 변화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평생을 한 길만을 고집하며 가신 이 분이야 말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스승이 될 것이다. |
| 강준만의 책이다. 내가 느끼기에는(최대한 보수적으로) 강준만의 책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적당히 엮어 쉽게 책을 만드는 것 같다. 책이 일년에 몇권씩 나오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몇권의 리영희 교수의 책과 김만수저의 책을 읽으면 별도의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요약이 잘 되어 있기에 좋은 책이다. 내가 지금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구하기도 쉽지 않고... 하지만 하나 이것이 리영희의 생각 중 강준만의 생각과 같은 부분만 발췌한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리영희의 생각을 요약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마 전자가 아닐까, 즉 리영희를 통한 강준만의 생각 비추기인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리영희의 생애를 통하여 한국 현대사를 논하고 싶어 보인다. 해방전의 한국의 문제점과 해방 이후의 혼란기 그리고 한국 전쟁, 자유당 정권, 4.19, 5.16 삼선 개헌과 유신 개헌, 김대중과 박정희, 유신, 전두환 정권과 광주 문제, 그후 문민정권 시대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김만수의 평전과 대담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리영희의 영향을 조금 받은 것 같다. 난 6.29이후의 리영희 교수의 책인 자유인 자유인을 읽고 많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유신과 전두환 체제의 붕괴후에 받은 것으로 머리가 확 깨는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70년대의 선배들은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머리가 확 깨는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한다. 어쨌던 김만수의 책을 읽어 보아야 할 것 같다. |
| 강준만이 밝혔듯이 이 책은 ‘저’가 아니라 ‘편저’이다. 학교 다닐 때 잘 나간다는 교수들이 외국 책을 대학원생에게 각 부분별로 번역하게 해놓고는 당당히 ‘저’라고 붙이는 것과 너무 비교된다. 그 당시 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느냐 하면 각 장마다 개념과 관련된 단어들이 서로 틀렸기 때문이다. 편저자가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라고 붙였듯이 리영희 교수가 한국 현대사에 끼친 업적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나의 사회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리영희 교수로부터 가장 크게 배울 점은 초지일관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려운 시대 얼마나 많은 회유가 있었음에도 초심으로 일관한 리영희 교수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리영희 교수는 한 쪽에서는 의식화의 은인, 다른 쪽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불린다. 리 교수는 아홉 번이나 연행되어 다섯 번 구치소에 가고, 세 번이나 재판을 받고, 언론계에서 두 번 쫓겨나고, 교수 직위에서도 두 번 쫓겨났다고 한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1012일에 이른다. 오로지 진실을 추구했다는 죄 하나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리영희 교수의 외로움과 선구자의 고독감을 말해주고 책임감을 말해주는 내용이 아래와 같은 시에서 잘 나타난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8쪽, 백범이 즐겨 암송했다는 서산대사의 시) 이 책은 1929년에 태어난 리 교수의 인생을 1940년대부터 10년씩 구분하여 2000년대까지 쓴 글이다. 과연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도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배워야 한다. 알량한 지식으로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드는 지식인들을 보면 메스꺼움을 금할 수 없다. 권력지향적 지식인, 미국의 교육에서 받은 내용을 리 교수의 지적처럼 열등감에서 무엇이든지 미국을 숭상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함을 금할 수 없다. 미국은 왜 외국의 지식인들을 초청해서 베풀고 있는지 지식인들은 직시해야 한다. 리 교수의 주장처럼 미국이 미군을 단 몇 명이라도 철수시킨다고 발표 아니 연구만 해도 한국민들은 까무러치고 미국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만다. 과연 미국이 한국을 위해서 주둔할까. 리 교수의 주장대로 미군은 미국을 위해서 주둔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현대사의 대부분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았다. 지금도 언론은 사실보다는 논평이 포함된 기사를 쓰고 있어서 어느 것이 사실인지 어느 것이 주장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이러한 책을 읽으면서 많은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
| 우선 강준만 교수의 저서이기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서 막연하게만 알아 왔던 리영희 선생님에 대해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리영희 선생님의 글에 대해, 사유에 대해 더 깊이 알고싶어지도록 자연스럽게 리영희 선생님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책을 읽은 후, 바로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동굴속의 독백', '반세기의 신화'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스핑크스의 코'를 주문해 놓았다. 아직도 1970년대에 쓰여진 '전환시대의 논리'가 충격적으로 와 닿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감상일까. 물질만능의 시대, 적자생존의 시대, 정치적 격변의 시대를 살고있는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숲'을 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아닌가 싶다. 현상에 대해서만 관심 갖기 쉽고, 목전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기 쉽고,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그 또한 우리 사유의 얕음을 항변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리영희 선생님의 사유를 고찰해보면서 잠시 거시적인 안목으로 주변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현 위치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다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으로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소중한 분, 진정으로 이 시대의 '원로'라는 존칭이 어울리는 리영희 선생님께서도 이제 많이 연로하신 듯 하다. 그 분의 지혜와 안목이 절박한 시대인지라 못내 안타깝고 서글프지만, 더 늦기 전에 리영희 선생님의 혜안이 많은 이들에게 비추이기를 바라면서...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은, 읽는 이들을 리영희 선생님의 세계로 안내하는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리라 생각한다. |
| 리영희를 아는가? 특히 젊은 세대는 그를 잘 모를 것이다. 참 유명한 사람인데도 모르는 이가 많다는 건 대한민국의 불운이다. 그는 왜 중요한 인물인가?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그를 알면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책은 인용 투성이다. 리영희의 작품이 종종 등장한다. 어쩔 수 없겠지. 그를 알려면 그이 작품을 보는 수밖에. 리영희의 이력은 화려할 정도로 불운하다. 감방가고, 재판받고, 언론과 교수직에서 쫓겨나고.....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자기 목소리를 내왔다. 이 시대의 진실은 무엇이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했던 것이다. 작금의 정치인처럼 말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실천하였던 지식인이다. |
|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 / 강준만 편저 / 개마고원 / 2004 2003년 김만수씨가 리영희 선생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리영희 :="" 살아있는="" 신화="">를 출간했고 이어 2004년에는 강준만 교수가 ‘리영희’라는 책을 내놓았고 최근에는 리영희 선생과 임헌영씨가 대담을 통해 자서전 비슷하게 <대화>를 출간했다. 반민주 독재,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 서슬퍼런 그 시절, 지식인으로써, 언론인으로써 소임을 다하고자 했던, 소신을 지키고자 했던 리영희 선생님을 아는 21세기의 대학생들은 몇명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잇다른 세개의 저작은 21세기산 대학생들에게 리영희를 소개하고, 리영희의 삶과 사상을 총정리해줄 수 있어 좋은 저작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누가, 얼마나 볼 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도 강준만 편저의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는 리영희에 관해서 이름만 알고 있을 따름이었다. 심지어 이름때문에 여류 문학가 정도로 오해해했던 시절도 있었다. 직접적으로 리영희에 관한 궁금증을 느낀 건 강준만씨의 현대사 산책 속에서 본 '고은의 만인보 - 리영희'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 책 '리영희'는 강준만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지만, 적절하고, 탁월한 인용을 통해 리영희의 진심에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강준만 교수가 운영하는 ‘인물과 사상’이라는 계간지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강준만은 인물 중심의 역사(혹은 사회) 연구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리고 본 저서 ‘리영희’ 역시 리영희의 삶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사라는 기획의 시도이다. 우리는 리영희라는 인물이 지니는 의미를 현대사의 질곡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우리의 왜곡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리영희는 평범한 언론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리영희 선생을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식인으로 만들었을까? 리영희는 언론인으로써 지식인으로써 ‘진실’을 밝히고 대중에 투명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기본적 소신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러한 그의 실천적 행보를 이 미비한 글로써는 모두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눈길을 걸을 때 흐트러지게 걷지 말라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 리영희의 서재에 걸려있는 시라 한다. 백범 김구가 즐겨 암송하던 서산대사의 시인데,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단적으로 드러나보인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승만이니 박정희니 하는 작자들의 근거없는 전기와 확연한 차이를 지닌다. 게다가 이책은, 또한 리영희는 전기나 평전 등 인물을 다루는 책이 언제나 경계해야할 우상화에 대한 긴장을 잃지 않는다. 실지로 현재 리영희는 우리 사회에서 사상의 은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우상화되는 묘한 아이러니도 보인다 할 수 있지만, 리영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편저자 강준만은 리영희의 삶과 한국 현대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다. 임헌영씨와의 대담집 '대화'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한 지식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의 진실과 마주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누구에게든지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앞으로 틈틈히 리영희의 저작을 주욱 읽어보고 싶다. 대화>리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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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나오자 마자 바로 사서 읽어봤다.
나온지는 벌써 6년이 지났다.
나는 리영희 선생님이 활동할 시기에 살고 있지 않다.
나중에 다른 작가들이 글에 언급하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을 보면서
사상의 대가인가? 라는 생각만 했다.
그런 기회에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산책 시리즈 (70, 80, 90, 40)을 읽어보면서 상당히 양이 많아서
간단하게 읽어볼까해서 샀다.
역시 강준만 교수의 각종 자료 스크랩을 통한 한 사람의 서술방식을 통해서 계속 전개되는 글은 익숙했다.
하지만 글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일생이 이렇게 굴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군사정권에 이렇게 용감히 맞설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리영희 선생님의 말을 그 당시 시대 상황을 음미하면서 읽으니..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만 든다.
이렇게 고초를 겪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선생님의 신념? 사상?
'의식화의 원흉'이 아닌 '사상의 은사'로서 어찌보면 시대의 변화에 밑거름이 되셨을 선생님의 일대기를 빠르게 그려나가는 이 책! 상당히 괜찮다.
사족 :리영희 선생님이 타계하신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보도를 잘 하지 않았다.(황장엽씨에 비한다면야..)
사람의 죽음 이후가 이렇게 이념, 정치 논리에 영향을 받는 것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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