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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한 범죄 연구회가 있다. 여성 둘, 남성 넷 등 여섯 명의 회원들은 경찰과 같은 수사 업무 종사자들은 아니지만 벌어진 범죄를 연구하는 취미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뛰어난 두뇌와 함께 두뇌를 실제 사건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p.11)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범죄 연구는 두뇌 훈련이며 게임의 일종이다. 그러던 이들 앞에 런던 경찰청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 연구 과제가 떨어진다. 사건의 개요에 대해서는 런던 경찰청의 경감이 설명해주지만 당연하게도 수사를 의뢰한 것은 아니다. 살해당한 이는 벤딕스 부인이다. 그는 독이 든 초콜릿을 먹고 죽는다. 문제의 초콜릿은 그가 사거나 선물 받은 게 아니다. 원래 그 초콜릿을 받은 사람은 유스터스라고 따로 있었다. 유스터스와 같은 클럽의 회원이던 남편이 초콜릿을 먹지 않는 그에게서 넘겨받아 부부끼리 나눠 먹은 후 아내는 초콜릿에 든 독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남편은 겨우 살아남았다. 부인이 더 많은 양을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사건에 대한 추리는 여섯 명이 각자 진행한다. 서로는 독자적으로 일주일 동안 사건을 조사하고 순서를 정해 그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엿새 동안 하루에 한명씩 자신의 조사 및 추리 결과를 발표하기로 한다. 이제 이 여섯 명은 스스로 탐정이 되어 사건의 모양을 구성하고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뭔가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서 가장 나중에 나오는 가수가 가장 유리한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마지막 참가자가 항상 우승하지는 않지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정해진 차례대로 발표하기 시작한다. 발표의 방식은 모두 대동소이하다. 자신이 조사하고 추적한 과정을 설명하고 범인을 지목하는 형식이다. 그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된 사람의 추악한 면모가 밝혀지고 살인의 배경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발표자들은 자신 있었지만 회원들 간의 Q&A에 의해 발표 내용마다 추리한 내용의 약점이 드러나고 그가 지목한 범인은 범인일 수 없다고 밝혀진다. 그런데 연구회 회원들이 뛰어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첫날부터 발표자가 자신 있게 범인을 지목하는 설정은 다소 당혹스러웠다. 누군가가 발표하면 집단지성을 발휘해 발표 내용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다음 단계로 확장해나간 후 마지막에 지목할 걸로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씩 뒤로 가면서 뒷 발표자가 이전 발표 내용을 참고해서 자신의 추리를 보완하는데 활용한다. 결국 마지막 발표가 끝난 다음에도 범인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는 개연성만 보여주고는. 우승자는 없는 셈이다.
소설은 통상의 탐정물과는 확연히 다른 구성을 하고 있다. 여러 명의 추리가 거의 균등한 분량으로 나온다거나 모호하게 소설을 마무리한다거나 하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뛰어난 탐정이나 형사가 시원시원하게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보다는 훨씬 더 현실에서 벌어질 듯한 모양새로 여겨진다. 지금 시점에 읽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방식도 있지 정도로 평가하지만 이 소설이 처음 등장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접근법으로 읽혔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추리의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기에 문제는 없다고 본다. 소설이 1929년에 나왔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야.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은 많이 이상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해가 될 만한 점도 발견 2. 피부색이 어두웠으며 쩨쩨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십팔 세의 남자 (p.30) → 쩨쩨하다는 표현은 내용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쩨쩨하다는 낱말은 이후에도 또 나오는데 이 때에도 문맥 상 적합하지 않다. 영어 원문이 뭐였길래 쩨쩨하다고 옮겼는지 궁금하다. 3. 벤딕스 부부가 대화를 할 때 여성은 존댓말을 하고 남성은 반말을 한다. 그들은 동갑이기도 하다. 4. ‘처녀작’ 같은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낱말이 나온다. ‘첫 작품’이면 된다.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불공정한 이득을 누리며(p.134)’처럼 차별의 냄새가 나는 표현도 종종 등장한다. 이외에도 책 전반에서 번역이 깔끔하지 못해 계속 모래알을 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문장이 이상한 경우도 있었고. 책을 단번에 읽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읽었던 원인이었는데 이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기가 꺼려진다. (이런 껄끄러움 없이 책을 읽어내시는 분이 부럽다. 나는 민감해서 이런 게 눈에 띄면 책 읽기가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편집/구성의 평가 점수를 깎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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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 어릴 때 <제시카의 추리 극장>이란 드라마를 몇 번 봤다. 사실 상당히 오래전이라 제대로 된 기억이 아니긴 하지만, 늘 애매한 시간에 해서 꾸준히 보지 못해 안타까워했던 기억은 난다. 시간은커녕 내용도 기억 안 나지만 그중에 하나, 초콜릿 중독 아주머니, 독 초콜릿이 나오는 에피소드는 이상하게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내 맘대로) 그 기억을 떠올리며 요 책을 읽었다. 당연히 전혀 다른 내용이었지만. ㅎ |
| 독 초콜릿 사건은 호불호가 꽤 갈리는 추리소설이다.불호 쪽은 장광설을 늘어놓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많다. 호평 쪽은 정교하고 정밀한 구성이 굉장히 인상적이라는 쪽이다. 나는 호평 쪽이었고, 수많은 단서는 공통된 상황에서 한두 가지 사소해 보이는 지점이 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추리가 완전히 달라지기 십상이라는 점을 여섯 가지 시나리오로 그려낸 점이 정말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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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버클리의 <독 초콜릿 사건>.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추리소설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다른 책이었다. 여러 명의 탐정이 등장해서 제각기 타당한 가설을 제시하고 차례로 논박당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를 끌어 읽게 되었다. 고전추리소설다운 느낌이 있지만 구조는 상당히 신선하다. 특히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다면 한 번쯤 느껴보았을 의문을 짚어주어서 더욱 그렇다. '탐정은 늘 옳은가?' 또는 '추리소설의 사건의 단서들을 조합해 한 가지 진상만을 만들 수 있는가?' 범죄 연구회를 만든 로저 셰링엄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난관에 봉착한 벤더스 부인 살인사건을 회원들이 각자 수사하고 추리해서 진상을 밝히지 않겟냐는 것. 모르즈비 경감이 경찰이 지금까지 수사한 정보들을 알려주고, 그를 기반해 회원들은 각자의 추리를 풀어놓는데....... 사건은 어찌보면 복잡하고 또 달리 보면 단순하다. 유명한 난봉꾼인 유스터스 경에게 클럽 주소로 초콜릿 상자가 도착한다. 상자에는 회사에서 신제품 홍보차 보낸다는 편지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초콜릿을 즐기지 않는 유스터스 경은 부인과의 내기에서 져서 초콜릿을 사오기로 했다는 벤더스 씨에게 초콜릿 상자를 주고, 벤더스 씨는 그 초콜릿을 집에서 부인과 함께 나눠먹는다. 그리고 벤더스 부인은 초콜릿에 든 니트로벤젠(구하기가 아주 쉬운 약물)에 의해 사망한 것이다. 초반에 제시되는 단서는 초라하다. 용의자로 삼을 무리도 없다. 범죄 연구회원은 각자 추가조사를 해서 다른 논리로 다른 범인들을 지목하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로 몇 개씩 밝혀진다. 초반에는 지나치게 장황하고 억지로 느껴지는 논리 때문에 지루한데,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흥미진진해진다. 특히 작중 추리소설 작가가 풀어놓은 추리소설의 작법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들이 대는 심리적 요인의 근거가 빈약하기는 하지만, 결말은 꽤 납득갈 만 했다. 한 가지 사건으로 몇 개나 되는 진상을 만들어내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갑자기 경찰도 못찾은 핵심 단서가 툭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각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추가 정보를 모았고 자신이 중요시하게 여기는 점에 의해 범인이 바뀐다는 점을 작품 내에서 직접 지적한다는 게 소소하게 재미있다. 결말도 재미있다. 이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추리에서 한 토막씩 진실을 빼와서 구성한 내용은 잠깐 얼얼하게 한다. 나 말고 작중 인물들도 얼얼한지, "이제 어떻게 하지?"라고 마무리된 부분이 특히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