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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과 운명, 다소 허황되 보이고 유치한 듯한 소재이지만, 그 소재를 요리하는 문장은 참 깔끔하다.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는 기분이랄까.
소시민적이고 현실적인 낮과, 꿈과 영혼이 지배하는 밤의 대비는 환상적이면서도 참신하다. 책속의 세 인물, 그라이너와 그의 아내 안나, 이혼 담당 판사 크리스토프는 각각 그 두 세계를 마주 대하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먼저 그라이너는 두 세계 모두를 안나와 공유하고 싶어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안나는 자신의 두 세계가 서로 다른 두 인물에게 지배받는 것을 깨닫고 그 두 세계 모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둘 모두 밤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반면 크리스토프는 그라이너 박사가 들려준 밤의 세계를 인정하면서도 낮의 세계를 선택한다.
무엇이 더 낫고 바람직한가 하는 가치 판단은 없다. 작가는 그냥 보여준다, 두 가지 세계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작가가 가진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책 전체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래, 어떤 중요한 사실을 서로 깨닫게 되면 한동안 그 사실이 모든 생각과 꿈을 차지하게 되지.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그건 언어가 아니라 그림처럼 영상화된 하나의 장면이라네. 그러다가 어느 날 확신을 갖게 되지만 그 때는 너무 늦어. 좌우로 한 칸씩밖에 못 움직이는 장기처럼 말이야. 그런 게임은 계속하나 포기하나 마찬가지인 거야. 인생이라는 적은 '장이야' 라고 말하지 않고 늘 한 수 씩만 물려주지. 그래서 희망도 없으면서 유일한 한 수를 기대하며 사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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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님의 <열정><유언><하늘과 땅><결혼의 변화>에 이어 다섯번째 만난 <이혼전야>. 산문집 <하늘과 땅>을 제외한 네권의 도서에는 사회적 계급, 사랑, 독백, 하루라는 공통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는 다른 책을 먼저 들었어야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어느세 막장까지 덮어버렸다. 아마 다른작가였다면 한 두권에서 끝내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꼭 집어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마라이님의 독백에는 강렬한 끌림이 있다.
내용은 현재 판사인 크리스토프 쾨뮈베스라는 인물이 다음날 있을 이혼 재판 서류에 올라온 이름을 보게 되면서 시작된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동창 사이었던 현재 의사인 임레 그레이너, 결혼 전 우연히 서너번의 만남을 가졌던 그의 아내 안나 파체스카. 이들의 이혼 서류는 그를 과거로의 회상에 잠기게 한다. 조금은 지루한 크리스토프의 성장 환경의 회상이 끝날 무렵, 임레 그레이너의 방문으로 소설은 박차를 가한다. 싸늘이 식어가는 아내를 집에 두고 한가지 확인 할 것이 있다면서 쉼 없는 이야기를 크리스토프에게 토로하는 임레 그레이너의 아내에 대한 사랑은, 열정을 넘어 자신마저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집착으로 느껴진다.
누가 보더라도 완벽하게 임레 그레이너를 사랑했던 아내였지만, 결혼 후 사년쯤 지난 뒤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온 아내를 발견한다. 어느 날 문득 임레 그레이너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십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가지만, 불현듯 마음의 벽의 원인이 과거 서너번 스치듯 만났던 크리스토프라는 사실을 그녀가 자각하게 되면서 죽음의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어찌 이럴수가 있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인 것 같으면서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세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각각의 사랑과 삶의 방식은 어딘지 모르게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다.
책을 덮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본다. <이혼전야>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느낀 <이혼전야>는 이렇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갈등. 자각 하고 있는 현실과 망각 하고 있는 현실과의 대립, 순응하는 삶과 순응하지 못하는 삶. 크리스토프란 인물은 보이는 세계속에서 자각을 하며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안나 파체스카는 잠들어 있던 망각의 세계를 자각하게 되면서 삶에 순응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임레 그레이너라는 인물은 양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들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면서도 좀 더 깊이 생각에 빠지다보면, 안나 파체스카의 선택이 결코 순응하지 못했던 삶이라고 단정 할 수도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사람은 누구나 깨어있는 세계와 잠들어 있는 두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문득 아~~하며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몸소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헌데 그 깨우침 혹은 진실이, 현실이라는 세계의 통로를 거처 걸러지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갈망하는 세계가, 보고 느껴지는 현실 세계의 통로를 끝끝내 거치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른 세계로 발을 딛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날 문득 자신도 몰랐던 세계가 불현 듯 깨어났는데, 그것이 내 삶을 통째로 좌지우지 할 만한 진실이라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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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레 정오가 되면 재판이 열려. 판사의 이름도 이미 알고 있지. 그는 나의 학교 동창이고 우리의 이혼을 선포할 거야. 그 이후엔 안나를 다시는 보지 않겠어. 난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못 되거든. 그녀의 믿음직한 좋은 친구로 남고 싶지 않아. 안나의 그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고. 차라리 안나가 유럽 땅에 없으면 좋겠어. 그래, 아예 그녀가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라는 소식을 들으면 더 좋겠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그 이후'에도 편안하고 성실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지? 안나와 나를 묶고 있던 건, 더 어둡고 강하고 순결한 열정이었어. 난 그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려고 했지. 어떤 비밀도 없이. 그리고 이젠 그녀를 완전히 묻어버리려 하고 있어. 그녀의 모든 비밀까지도.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만남 같은 건 내 사전에 없어. 난 그런 걸 경멸하니까............. 산도르 마라이의 이혼 전야 243쪽 /솔출판사 지금 이순간은 어떤 과거의 추억으로 인해 만들어진 걸까. 이 사람의 소설은 언제나 잊혀졌던 아니, 잊고 싶었던 과거를 환기시킨다. '열정'에서는 젊은 시절 아내와 도피행각을 벌이려다 배반한 친구가 노인이 되어 찾아오고, '유언'에서는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놓고 언니와 결혼하여 떠나버린 이가 찾아온다. '이혼전야'에서는 동창생이었던 친구가 찾아와 하룻밤 사이, 과거 속의 끌림이 있었던 여인에 대해 풀어놓는다. 그녀는 바로 친구의 아내이다. 이름은 안나. 그들의 이혼 소송을 도와줄 판사는 바로 자신이다. 친구는 묻는다. 그녀를 꿈꿔본 적이 있느냐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젊은 시절 한 순간의 마주침, 끌림이 안나에게는 평생의 고통이 되었다. 화석이 되었다. 비밀이 되었다. 남편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더는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가능한가. 그 사랑은 이미 죽은 것인데. 안나를 죽인 것은 독약이 아니다. 남편 그라이너도 아니다. 물론 판사 크리스토프도 아니다. 낮에 속하지 못한 밤의 정신이다. 크리스토프도 언제나 낮에 속했기에 죽지 않았다. 죽지 못했다. "낮에 쌓아올린 것을 밤에 무너뜨리고......" 나는 이런 밤을 증오한다. |
| 얼마전 책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혼에 대해 생각한지 2년 정도가 지난 다음 실제로 이혼에 이른다, 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소설의 배경이 현대 유럽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유럽적인 마인드 속에 살고 있고, 이 지음 이혼에 대해 생각했다면 2006년 9월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얼마전 서해안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불쑥 가방에 챙긴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친구 내외와 우리 부부가 함께 했던 여행지, 짐을 풀면서 불쑥 튀어나온 책의 제목을 보더니 친구 내외가 웃었다. “부부 동반 여행에 지참하기엔 너무 아이러니한 제목의 책 아닌가? 이혼전야.”라고 말하고 싶었을 테지만 대충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 주었다. 물론 아쉽게도 2박3일의 여행 기간이란 생각보다 너무 짧아서 단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지만 내내 침대 옆 어딘가에 놓여져 있었다. 소설은 판사로 유명한 쾨미베스家의 크리스토프, 절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토프의 대학 동기였던 의사 임레 그라이너, 그리고 그라이너의 부인인 안나 파체카스의 아야기다. 소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혼 재판의 당사자들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임레 그라이너와 안나 파체카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이후 크리스토프가 존재하도록 한 쾨미베스 집안, 20세기 초반 헝가리의 사회사황, 결혼생활과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높낮이가 존재하지 않는 재미없는 다큐의 나레이터처럼 진행된다. “...전쟁은 항상 이렇게 시작되었다. 멀리 어딘가에서, 눈에 보이는 사건들에 상관없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며, 대포와 시체 그리고 연기에 휩싸인 집처럼 전쟁터로 변하고 난 다음에야 만족한다...” 하지만 이혼전야, 내면의 전쟁만 같았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재판이 있기 바로 전날 판결자의 역할을 담당한 크리스토프 집에 임레 그라이너가 방문하면서 소설은 사랑의 역사를 풀어내는 한 사람의 1인 독백극으로 바뀐다. “...사람은 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 왜냐하면 사람의 ‘관심’은 선한 것과 이성적인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인간에게는 고통이 필요한 지도 모르지. 해로운 게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휴우, 병은 고칠 수 있어. 두통에 약을 먹는 것처럼. 그러지만 두통이 왜 생겼는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지...” 그리고 임레 그라이너와 안나 파체카스의 이혼에 크리스토프 또한 연관이 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아무런 부족함 없이 자랐고 별다른 인생의 소요없이 판사의 지위에 오른 크리스토프 앞에서 외삼촌의 도움을 받으며 외삼촌에게 구박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하녀로 살아온 어미를 둔 그라이너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 밤을 세워가며 독백한다. 어떻게 안나를 사랑하였고 그 사랑이 자신에겐 얼마나 소중했는지, 하지만 자신의 사랑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겨웠으며 그래서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신 앞에서의 고백처럼 절실하게 뱉어낸 그라이너는 아침이 시작될 즈음 사랑하는 안나가 싸늘하게 죽어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크리스토프는 이런 친구를 배웅한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시대에 따라 공간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랑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매우 매너리즘적으로 보아 결혼은 이러한 사랑의 결실이지만 그 결실은 영원불멸의 것은 아니다. 그 이후에도 각고의 노력과 성실한 주의注意(상대방에 대한 부주의야말로 결혼생활의 강력한 덫이다. 하지만 부주의와 비슷하게 강력한 집착이라는 올무 또한 존재한다.) 없이는 온전히 지속되기 힘든 것이 결혼일터... 한 세기 전의 이혼전야가 보여주는 침통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지금의 이혼전야와 비슷할리는 만무하지만 한번쯤 들여다보아 나쁠 것도 없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