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원화된 이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생각해보면 아주 고민되는 문제이다. 다른 것들을 거부하고 기독교만의 배타성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들도 옳다고 생각하고 포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태도에 대해서 비판하며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기독교적 시민교양이다. ivp 에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온다. 신학적인 책들과 일반 신앙적인 책들이 골고루 나온다. 보통 둘 중에 한 쪽에만 치중해서 나오는데 ivp 는 그렇지않다. 책들이 깊이가 있고 내용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는 출판사이다. 기독교 출판사 중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우수한 출판사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독교 출판사는 책을 많이 내지만 너무 영리적이다. 괜히 양장본으로 만들어 비싸게 팔고, 페이지를 늘리려는 수고(?)를 해서 실질적인 양보다 더 페이지를 많이 만들어 비싸게 팔고, 내용은 별 것 없는데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서 팔리게 만드는 등 영리에만 집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ivp 가 그렇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 된다. 이 책의 내용에 비하면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다. 솔직히 나 역시 이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책을 샀다. ivp 는 앞에서 언급한 그 출판사 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 이전부터 사회 및 문화 변혁 운동에 참여하고 싶은 소망과 비전을 계속해서 간직해 오던 나에게 한가지 미제(謎題)의 고민거리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떠한 태도와 방식을 견지하면서 그러한 변혁 운동에 참여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소 가장 존경해 오던 신학자요,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 문제를 개혁주의 입장에서 이미 명쾌하게 정립한 것으로 정평이 난 세계적 석학 리처드 마우(Richard J. Mouw)의 본서『무례한 기독교』를 금번에 접하면서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확실하게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막혔던 나의 내면의 안목과 시야가 활짝 트여지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성경에 근거한 그의 깊고 넓은 통찰과 혜안에 무릎을 치고 놀라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他者)를 향한 그의 따뜻한 논지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특히 '비 일상적인 정중함'(Uncommon Decency)이라는 이 책의 원 제목이 말해 주듯이 마우(Mouw)는 상호 담론의 갈등과 반목이 만연된 이 세상에서 복음의 진리가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일반적인 정중함을 뛰어넘는 그리스도 닮은 정중함, 즉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까지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이해와 친절, 그리고 넘치는 관용의 마음을 반드시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실 진리를 강조한 나머지 진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인격을 함부로 폄훼(貶毁) 하거나 반대로 상대주의적인 관용을 강조한 나머지 진리 문제를 쉽게 포기해 버리는 이러한 양극단의 일들이 그 동안 사람들 사이에 많이 있어 왔다. 그런데 그는 이 책 전반(全般)을 통해 '신념 있는 시민 교양'이라는 용어를 강조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강한 신념을 지키는 동시에 친절하고도 온유한 정신을 조화롭게 견지하는 태도를 지닐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아브라함 카이퍼, 테레사 수녀를 만나다"라는 장(章)에서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승리주의적(勝利主義的) 정신보다 겸허한 섬김의 정신이 우리 삶에 더욱더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안에 여전히 강력하게 잔존해 있는 자아 중심적 성향에 대하여 늘 주의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각인 하게 되었고, 이른바 오늘날의 '미답지론'(未踏地論)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었다. 즉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이 나 역시 '비 일상적인 정중함'(Uncommon Decency)을 품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낮은 위치, 그 소외된 미답지를 향해 나아가 그리스도 닮은 그 사랑과 친절함으로 영혼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도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 책을 통해 나는 상대주의적인 가치관이 팽배한 이 땅 가운데에서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진리의 담론을 이 땅 가운데 펼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관해 명확하게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랑의 정중함, 즉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해서는 끝까지 사랑하는 그 넉넉함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흔치 않는 이 정중한 삶에로 초대하는 이 책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정중한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들과 함께 풍성히 나누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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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기독교 VS 신념있는 시민교양 위의 두 제목으로 각각 책이 나왔다면 사람들은 어떤책에 먼저 관심을 보일까? 아마 내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다소 도발적인 전자의 제목의 책이 관심을 끌게 되리라.
전자의 제목도 큰 틀에서 살피면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이지만 보다 책 내용을 명확히 드러내 주고 책의 내용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는 후자의 제목이 더 친철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서두에 책과 별 상관없이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적는 것은 제목이 가져다 주는 홍보 효과와 전략을 전혀 무시할 수 없지만 많은 책들이 독자의 관심을 끌기위해 책 내용과는 별 상관없이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선택하여 오늘날 책을 선택하는 문제에 서 있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헷갈리게 하고 있기에 상업적인 목적을 만들어진 책의 제목들을 경계해야 한다는걸 말하고 싶다.
사실 IVP는 그래도 건전한 노선을 가고 있는 좋은 출판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참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가벼운 책읽기"란 사설에서 말했듯이 많은 출판사들이 알맹이 없는 인기에 영합한 출판으로 가벼운 책읽기의 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규000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지.ㅋㅋ) 암튼 이상은 책 제목이나 광고 빨에(?) 속지 않도록 더욱 독자들은 영리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음~사설이 길었군.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지금 이 책이 그렇다는게 아니다. "무례한 기독교"는 현 시대의 문제를 놓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민하는 크리스찬 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런지? 앞의 주저리는 그냥 제목을 보니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라(IVP 스타일이 아닌데..ㅋㅋ) 평소에 생각했던게 생각나서 주저리 적었다.
자~ 이제 본론을 들어가서 이 책의 전체 내용에서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은 신념있는 시민교양을 두루 갖춘 그리스도인이다. 신념이라 함은 우리가 가진 진리. 즉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말씀을 근거한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우리가 누구나 인정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너무나 확고한 신념으로 둘러싸여 고집불통 외톨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배타적인 모습에서 서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시민교양을 갖출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무의식속에는 진리와 비진리, 맞는것과 틀린것으로 대변되는 이분법적인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사실 천천히 살펴보면 이 세상에 어느것도 절대적인 진리와 맞음도 없고 절대적으로 틀리거나 비진리인것도 없다는게 드러난다.
이 절대적인 진리는 그분께 속하여져 있고 우리는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것이 맞다고 틀린것을 가진 자들을 배척하고 그들과 관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인가 크게 먼저 받은 진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핵심은 "시민교양" 이란 단어를 이해하는데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각주에 나와 있듯이 civility를 번역한 "시민교양"이란 단어는 유교적 의미에서 개인적인 수양을 뜻하기보다는 시민 사회에서 서로 종교와 신념과 가치관을 달리 하는 집단들 간에 서로 존중하는 예의바른 태도를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오류는 마치 시민교양의 모습이 상대주의적 관점을 갖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시민교양은 상대주의적 관점이 아니라고 확실히 못박는다. 저자가 말하는 시민교양의 모습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신념있는 시민교양을 갖춘 그리스도인을 강조하는 이유에는 지나친 신념에 치우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십자군식 의식 구조"에 대한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십자군은 자기들의 대의명분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동일하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무조건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진리이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바꿀려고 하고 따르지 않으면 배척하거나 무시해 버려 자신과 다른 생각의 사람들에게 변화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고려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전체적인 큰 그림의 관점에는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변할 수 없는 진리를 확고히 가지고 그러나 진리를 소유한 자들로서 자신있게 자신을 열어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는 자세. 이러한 시민교양을 갖춘 자들이야 말로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 속에 헤메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신념을 전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시민교양은 어느 정도 열려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다소 불안한 마음을 갖게하고 과연 그렇게까지 열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기독교가 배타적이라는 비판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왜냐하면 진리라는 것은 유일한 것이기에 그 스스로가 배타성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기독교에서 흔들려서는 안되는 양보해서는 안되는 진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 한계선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을 가지는것 같다. 다시말하면 시민교양의 한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특히 낙태문제에 관해서는 자세히는 나타나지 않지만 저자의 기독교적 교양의 관점은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뭐 이러한 논쟁은 이 책의 목적에서 조금은 비껴가 있는것 같다. 이 책은 단지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인가?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려 볼 수 있을것 같다. 책에서 인용된 존 스토트 목사님의 말씀 "보수적 급진주의자"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고 있는것 만은 사실인것 같다.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많은 공적인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고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이젠 더이상 확고한 신념만으로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현 시대임을 직시해야 한다.
스쳐가는 생각은 세상속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모든 영역 안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세는 매우 중요한것 같고 꼭 필요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것 같다. 머지 않아 세상사람들이 무례한 기독교가 아닌 예의 바르고 온순한 그러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가진 기독교로 불리워질 그날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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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시각은 쌍방향이 모두 굴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기독교는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에서 비기독교 세계를 본다. 기독교와 비기독교가 서로 일치감을 형성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비기독교 세계를 기독교화하기 위한 강제적이고 배타적인 노력을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비기독교 세계는 기독교를 하나의 배타적 종교의 세계 로 규정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세계가 어떤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마 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처럼 쌍방향의 굴절된 의식의 원초적 원인제공은 어디일까? 그것은 기독교 자체이다. 문제는 기독교 자체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세계인지, 자신 안에 담긴 올바른 질서와 방향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다른 이들에게 기독교의 삶과 가치관을 억지로 강요하기 전에 냉정하게 먼저 돌아보아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길을 잃어버렸지만 그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특히 한국 사회 기독교 세계 안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굴절된 기독교 세계를 바로 펴기 위한 노력은 비기독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기독교 자신의 문제이다. 세계까지 들먹일 필요없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솔직히 기독교 세계를 통합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볼 때 기독교 세계 안에서 가장 절실하게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다원화된 사회 안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우월한가’라는 배타적 권고가 아니 이 확고한 진리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라는 관계와 공존의 문제인 것이다.
2.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IVP,2004)(원제 Uncommon Decency,1992)'는 이와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기독교인이나 다른 이들에게 생각의 방향을 제시하기에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가 '무엇인지', '얼마나 우월한지'를 자기 중심적으로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선언을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이 '사회'안에서 드러낼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의식 안에서는 다소 생소한 '시민교양을 지닌 기독교인의 삶' '을 설명한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라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 다른 체계와 ‘더불어’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면서 기독교의 세계가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과 역사관을 비롯한 삶의 모든 가치들과 '정중하게' 견주어 가면서 서로를 보완하고, 나아가 자기 선택에 의해 설득할 수 있는 여지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시민교양’을 지닌 기독교인은 두 가지 태도를 훈련하게 된다.
첫째는 공존과 대화를 위한 관용이며
둘째는 더 올바른 개인과 사회를 위한 공동체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친절’과 ‘온유함’이라는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시민교양을 “리더쉽을 발휘함으로써 자신도 기꺼이 변화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곳곳에서 기독교가 혹시라도 독단적인,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않기를 지속적으로 경계한다. 덧붙여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공격적 명제가 아니라 ‘모두에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 다원화된 시대에 기독교인 의 삶이 왜 ‘올바른 구원’이 되는지를 이 사회 안에서 함께 나누고,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또한 일방적 몰아붙이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속에 담긴 세계와 이야기를 냉정하게 듣고 서로의 합일점과 극명한 차이를 함께 발견해 가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줏대없는 포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자신 안에 담긴 진리와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통해 통합적이고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가치체계와 세계의식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확고한 자기 결단을 가졌으나 그것이 드러날 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포용하며 ‘관용’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실제 삶을 통한 변증'인 셈이다. 이것이 살아있지 못할 때, 기독교는 ‘무례한’것이 되고, 자기 아집에 빠진 배타적인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철저하게 개인적, 배타적, 기복적인 기독교로 전락되어 있는 한국기독교로 하여금 '이 사회 안에서의 온전한 책임과 윤리'를 회복해야 할 책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책임있는 사회적 윤리를 놓치는 한 기독교는 올바르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탁월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때는 한국적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기독교의 '시민교양'은 한국사회를 분석한 것이 아 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독자는 '시민교양'이 전제하는 '개인주의','합리주의','공공의 이익' 등과 같은 서양사회의 기본적인 철학이 한국사회에서는 우선적이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의식이, 합리적 이해보다는 정서적 이해를 더 중시한다는 점,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오히려 더 선호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기본적 특징 중에 속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소개된 이 사례들과 주장들을 한국적 정서에 비추어 다시 해석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주장을 따라 우리 사회의 기독교가 서구적 '시민교양'을 본떠야 한다고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오히려 이 사회보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우쳐 어정쩡한 서구적 기독교와 미국중심적 정치기독교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면서 한국사회로부터 스스로 격리되어가는 당대의 한국기독교의 자성적 회복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사족이지만 빈번하게 등장하는 '굵은 글씨체'와 '소제목 글씨체'가 섞여 있어서 조금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빽빽한 편집이 여름철 글 읽기로는 다소 버거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올바른 기독교의 의식회복을 위한 책임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는 가벼움이라 여겨진다.
아울러 이와 같은 관점에서 기독교적 가치체계를 ‘친절’과 ‘온유함’으로 드러내며 이 사회 안에서의 기독교의 책임을 실제적인 것으로 드러내는데 유용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찰스 콜슨의 『사람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의』(IVP, 2002)도 함께 읽는다면 좀 더 폭넓은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일독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시민교양이란 우리가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기꺼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 한국땅에서 '기독교', '기독교인'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요? 세상의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로서 가난하고 약한사람들을 돕고, 사랑으로 우리사회를 밝게 하는 존재...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 않은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이 비난받고 있는 부분은 그 특유의 아집, 꽉막힌 사고방식입니다. 따라서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기독교인'은 (조금 과장해서)'앞뒤좌우 다 막히고 고지식하며 자기 주장만 내세울줄 알고,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바보들, 그러면서도 남들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역겨운 존재들'인 것입니다. 최근의 사건도 수많은 예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터미널등에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안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에 소음을 더하고 있고, 단군상의 목을 따며, 인터넷에선 '사탄의 자식들!'을 외치며 마치 자신이 세상에서 죄가 없는 사람인양 떠들고 있습니다. 저는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와 같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는 성경말씀을 그들은 잊어버린 것일까요? 조금만 양보하고 이해하면 얼굴붉히며 싸울 일은 없을 텐데요. 그러나 제가 상대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3일만에 부활했다는 것과, 예수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종교다원주의' 역시 저로서는 도저히 못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각 종교는 분명히 '양보할 수 없는'부분이 있으며, 만일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연합한다면 그건 이미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을 통해서 나의 죄가 단번에 깨끗해짐을 양보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기독교가 아닌 그저 수많은 윤리철학중 하나일 뿐이죠. 포스트 모더니즘의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리처드 마우는 그의 저서 <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에서 정답은 아니더라도 해결의 방법은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마우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이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마음가짐과 예절을 '시민교양(civility)'라 칭하며 그것의 방법과 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친히 열린마음을 보여주셨다고 주장하며, 당연히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열린마음이 상대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주의는 타인의 의견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마우가 말하는 시민교양은 우리의 신념을 잃지않으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원주의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꼭 자세로 여겨집니다. 또한 그 '존중'이 가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단순히 '전도'의 목적으로 타인에게 '친한척'접근 하는 것도 마우는 거부합니다. 진정 상대를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죠.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시민교양의 한계도 분명히 제시 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10장에서 "'다른한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 마우는 몇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과연 정말 문제되는 사항이 정말 물러날 때가 없는지 한번 더 확인하고 확실하게 행동하라고 합니다. 또한 미국뿐아니라 국내에서도 만연하는 기독교식 '승리주의'를 지양하고, 즉각즉각 반응하는 '빠른 하나님'보다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느린 하나님'을 섬기라며 책을 끝마칩니다. 솔직히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긴 하였지만, 한번 쯤 읽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기독교인보다는 기독교인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물론 이책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낙태에 관련된 저자의 생각은 '너무 많이 봐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킬만하고, 예수님도 분명 약한자들에게는 온화하셨지만 성전의 상인들을 뒤엎으시고,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셨던 분이셨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민교양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지 않나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단점을 덮을만큼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더이상 '무례한 기독교'가 아닌 '예의 바른 기독교'가 되어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세상속의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무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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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계사에 '진리를 전한다'는 명목으로 목사님(...맘 같아서는 '님'자 빼고 싶지만...-_-;) 몇 분이 확성기를 들고 들어가서 소란을 피운 사건이 있었다.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요즘 한국 개신교와 관련해서 온갖 부정적인 시선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 책을 골랐다. 제목부터 '무례한 기독교'라니, 얼마나 찔리는가.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단순히, 속된 말로 '기독교가 썩었다'라고 생각한 데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 '온유함'과 '관용', '친절' 등의 시민교양이었다. 조계사 난입 사건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긴 했지만, 결국 그들과 같은 모습이 내 안에도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아, 이런 내 모습을 직면하다니. 사실 그래서 책 첫 장부터 넘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책은 펼쳤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시민교양에 대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는걸!
이 책은 일단 기독교적 시민교양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밝힌다. 여기서 기독교적 시민교양은 상대주의도,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해야 하는 것도, 민족주의도, 복음 전도 전략도 아님을 명시한다. 그리고 삶과 신앙, 철학의 여러 영역(말, 성, 태도, 다원주의, 지옥)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마지막으로 승리주의를 버리는 것과 느리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강조한다.
특별히 지옥의 개념을 이야기할 때, 사실 목차만 보면 왜 갑자기 지옥의 개념이 나왔나 싶였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느새 그 흐름을 이해하게 되더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옥'을 수동적인 개념이 아니라 각 사람이 '선택'한다는 개념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좀 놀랐다. 한번도 이런 식으로 접근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 책은 정말 잘 읽힌다. 이 책이 치유서적이나 묵상 관련 서적도 아니고, 사회현상과 복음을 관련시켜 이야기하는 책이라 사실 굉장히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이전에 비슷한 책에 데인 적도 있어서 더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쉽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이야기하고, 크게 돌려서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물론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시민교양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다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자는 가장 기본적인 '말'과 '태도'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어떤 영역에서든 다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대표적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예전에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이 교회에 대한 실망이었다. 교회는 사회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 그리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귀와 눈을 막은 채 그저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만 하하호호 즐거워하는 것이 전부인 양 보였기에, 난 미련없이 교회를 떠났었다.
물론 지금은 내가 굉장히 편협한 시각을 가졌음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교회가 여러 가지 이유로 욕을 들어먹는 걸 보면서,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각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교양을 가진다면 사회현실에 대한 침묵이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희망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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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드는 생각.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제자도. 즉 그리스도인의 삶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대답이 들어있는 책이다.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예의와 기독교. 오늘날 한국기독교 속에 예의란게, 매너라는 게 존재할까? 믿음과 예의가 공존할 수 있는가? 임박한 종말 앞에 예의를 지키면서, 매너있게 복음을 전하는것이 가능한가? 복음을 선포하는 의무를 가진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잘못일까? 리처드 마우는 잘못이라고 말한다. 복음에 사로잡힌 신념과 매너는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기독교인은 어디에서나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치열한 다툼의 현장, 복음을 위협하는 적대자 앞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욕설과 비난의 말을 꺼낼 수 있는가? 하나님이 인내하신다고 감히 인간이 분노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있음을 기억하고 동시에 이웃 앞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선을 긋는다. 믿음을 포기해야하는 상황과 조건이라면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복음에 대한 절대확신과 이웃에 대한 관대함일지도 모르겠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내 주변에, 내 편인, 같은 종파에 소속된,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분내고, 이해력과 융통성이 부족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동시에 복음에 대한 절대확신은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코람데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늘 존재한다. 그러므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복음을 해치고 하나님을 모욕한다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것이다.
작금의 한국기독교는 비본질에, 복음이 아닌 것에 너무나도 연연해 하는 것 같다. 교권, 명예, 심지어는 정치까지 본질이 아닌 곳에서 본질을 주장하고 지켜야 할 사람들인 기독교인들이 본질 아닌 것을 위해 투쟁하고, 예의도 없고, 비난만 할 줄 아는 현실..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실까...
하나님 뜻을 운운하면서 이웃을 탄압하는 십자군 같은 짓거리를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하고 있지는 않은가...
똑바로 정신차리고 제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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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제목이 인상적인 이 책은 목적이 분명한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교양과 예의를 위한 책이다.
지금까지 (나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말씀과 이에 대비되는 세상현상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나, 어떤 것이 균형잡힌 것인지 또한 과연 조화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저자는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살이에 대해 깊이있으면서도 지혜있는 균형을 시도한다. 읽으면서 저자는 상당히 균형감각이 있는 분임을 느꼈으며, 이 부분에 대해 고심하며 살아온 사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 상당히 공감하게 되었다.
진리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진리와 관계 없는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또는 맺어야 함을) 또한 기독교와 반대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시도할 수 있음을 (또는 시도하여야 함을) 깨닫는다.
깊이있는 내용을 다루면서도 어렵지 않고, 겸손한 문체는 읽는 자들에게 마음을 열게 해준다. 또한 양도 많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복잡하고 다양하며, 여러 사람들과 접할 수 밖에 없는 현대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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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에 따라 살것이냐 . 진리가운데 올바른 일을 행하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것이냐 . 기독교인들의 끊임없는 고민이라 할수 있겠다.
시각에 대해서 좀더 명확할 필요가 있길래 이책을 구입했고, 어쩌면 이책은 내게 좋은 길을 제시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정도의 논쟁이 필요하며 비판의식이 필요하겠다.
참 좋은 책이다. 참 좋은시기에 나온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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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그리스도교가 개판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 백인들만의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이렇구나 하는 반면교사로서의 가치가 크기 때문에 별이 4개, 이 책의 저자의 신앙 때문이라면 별이 2개정도 그래서 최종 별 3개인 것이 맞는 듯하다.
회심/회개한 적은 한번도 없는 듯한데...그러면서도 지옥교리를 없애고 싶어한다. 지옥은 없다라고 주장하지 않아서 아직 이단 소리를 안 듣고 있는 그런 책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개 이단인 듯한 미국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우기는 미국인이다.
미국에서온/미국식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상대할 때 아주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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