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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가진 힘이 있다. 음악을 직접 연주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각, 멜로디에서 울려퍼지는 감각때문에 때로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악기엔 재능이 없어 연주할 생각은 못하지만 연주곡 듣기를 좋아했다. 밤이고 낮이고 음악을 들었던 때도 있었고, 듣는 것을 한동안 쉬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음악은, 그게 어떤 음악이든 항상 내 곁에 있었던 것 같다. 음악 속에서 갖는 커다른 기쁨을 알기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음악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음악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한다.
만약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었다면 우리가 읽는 책은 더 다양했으리라. 실제로 싱어송라이터를 꿈꾸었던 작가가 쓴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듯 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 성공 보다는 성공을 향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삶의 관조를 느꼈다고 할까. 음악과 어우러진 소설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음악을 연주하는 어느 장소에, 음악을 만드는 곳으로 인도했다.
시크릿 가든의 동명의 제목인 『녹턴』 때문이었을까. 녹턴이 뜻하는 대로 인생의 어느 한 부분, 살아온 날들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답게 어떤 음악의 힘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음악, 그러기 위해 만드는 음악. 누군가 자신의 음악을 듣고 즐거워하길 바라고, 찬사를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은 어디 음악가 뿐일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도 비슷한 걸.
다섯 편의 단편은 베네치아의 곤돌라에서 아내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크루너 가수 토니 가드너의 이야기 「크루너」, 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휴가를 지내려고 온 레이가 바라보는 친구 부부와 함께 들었던 음악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싱어송라이터로서 성공을 꿈꾸는 화자가 말번의 누나 카페에서 일을 도와주며 노래를 만들어 연주하는데 만나게 되는 프로 음악가와의 이야기 「말번 힐스」, 아내와 헤어진 후 성형수술로 얼굴에 붕대를 감고 호텔에서 린디 가드너와 음악을 함께 듣으며 한밤의 산책을 말하는 「녹턴」, 헝가리인 첼리스트 티보르의 이야기 「첼리스트」다.
화자들이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제 한물 간 음악가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기 보다는 어머니가 좋아했던 음악가로 표현되는 그들은 지금은 유명하다고 할 수 없는 인물들. 인생에 있어서 배우자와 헤어져 마치 쓸쓸한 인생의 한 건널목을 걷는 느낌이랄까. 성공에 대한 꿈도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지나면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헤어지고 마는 것처럼. 그럼에도 음악에 있어서만은 열정을 버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화자들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가 바라보는 사람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거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이 작품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네 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그의 작품엔 묘한 느낌이 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인간과 삶에 대한 관조,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선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뮤지션들과 함께 있는 이시구로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에서는 음악이 흐른다. 음악과 함께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거쳐야 할 어느 시기가 보이는 것만 같다. 읽을 때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다 덮고 나서 생각해보면 낱말들이 머릿속에 부유한다. 느린 음악처럼 삶도 그렇게 느리게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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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녹턴은 로맨틱하면서도 아릿한 허무와 비애를 담고 있다. 꼬여버린 삶, 방향타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이들의 창 밖에서 불러주는 야상곡이니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닐 테다. 그런데도 듣는 이는 어느새 마음을 열고 노래에 몰입한다. 그러면서 아픔을 잊고 만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에 흐르는 사라 본의 '러버 맨'이나 '에이프릴 인 패리스'는 마법과 같다. 사람을 살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내와 화해하지 않은 채 외국 출장길에 오른 친구 찰리를 대신해 그의 아내 에밀리와 지내게 된 레이먼드, 그도 실은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해 흔들리던 터였다. 자신의 옛친구이기도 했던 에밀리와의 대화도 엇갈리기만 하는데 마침 그들을 묶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어린 시절 함께 들었던 음악, 그 추억을 소환하며 울적한 마음, 폭발 일보직전의 심경을 추스르게 된다. 찌질남 둘의 특급작전이 보기 좋게 성공하여 에밀리를 일으키고 레이먼드도 자존감을 회복한다. 그 매개체는 물론 음악이었고.
1954년 녹음으로 클리퍼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와 함께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적어도 8분 간 이어지는 긴 트랙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고마웠다. 왜냐하면 그 노래가 끝나면 우리의 춤도 끝날 것이므로, 집 안으로 들어가 캐서롤을 먹을 것이므로,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에밀리는 내가 자기 수첩을 구겨 버린 일을 다시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넘어가 주지 않을 터였다. 어쩐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적어도 몇 분 동안만은 유예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스텝을 밟았다. (101쪽)
음악의 힘은 이처럼 상상 이상이다. 잘 풀리지 않는 음악 작업에 허덕이다가 휴식을 취하러 런던을 떠나 "말번 힐스"를 찾은 싱어송 라이터. 카페를 운영하는 누나와 매형의 일을 돕다가 그만 정신줄을 놓을 뻔한 사태에 직면한다. 까칠한 스위스인 부부 뮤지션은 어떻게 하면 화를 더 돋우는지 비법을 아는 자들이었다. 작은 서빙 실수도 놓치지 않고 크게 반응하며 새침해진 여자, 멋도 모르고 오버하는 남편, 그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려나.
그때 나는 여자의 얼굴이 분노로 납빛이 되어 있음을 알았다. 갑자기 사람을 후려치는 그런 분노가 아니라 서서히 기운을 빼앗아가는 그런 분노로 말이다. 그랬다. 장담하건대 그 여자는 아까부터 그런 극도의 분노 상태였던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지독한 두통처럼 다가와서는 아주 심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절한 출구도 찾지 못한 채 일정한 강도로 머물러 있는 그런 분노였다. 쉽게 흥분하는 편이 아니었던 매기 누나는 상대의 진짜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 여자가 흔히 하듯 가벼운 불평을 하고 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116~117쪽)
그랬던 이들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음악의 힘 아닐까.
이윽고 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나는 그들 둘 다 내가 연주하는 기타를 행복하고 경이로운 눈길, 사람들이 아기를 바라보는 그런 눈길로 골똘히 쳐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놀랍게도 여자는 내 노래의 박자에 발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121쪽)
점심시간에 그렇게 고약하게 굴던 여자가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돌변한 모습이라니. 그녀는 심지어 웃기까지 하고 있었다.
다섯 편의 야상곡은 이렇게 회복과 치유, 사람을 살리는 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독립된 중단편들이 어쩜 하나의 연작, 내지는 통합된 장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하나 같이 음악에 기대어 꼬여버린 관계가 풀리고 실의에 젖었던 마음 뽀송해지게 만드는 것들이다. 이시구로는 이런 힘을 지닌 녹턴을 우리 창가에서 들려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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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읽는 가즈오 이시구라 소설이다. 앞에 두편(나를 보내지마, 남이 있는 날들) 에 비해선 조금 못하지만 가즈오만의 특유의 문체가 느껴진다. 그의 글 하나 하나가 마치 주인공이 내앞에서 그런한 행동을 하는 느낌이였다,.
총5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크루너, 비가오나 해가뜨나, 말번 힐스, 녹턴, 첼리스트.. 5편의 공통된 특정은 모두 지극히 평범한 결말이라는것이다. 더 무엇도 없는, 그냥 떠나고, 그냥 헤어지고, 그냥 우연히 마주치고,.. 내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다.
한물간 가수이야기나, 오래된 친구 부분이야기, 혼자 노래하는 젊은 유망주 이야기, 언제나 유망주의 오래된 가능서 이야기, 그리고 꿈을 포기했을지도 모르는 어느 첼리스트 이야기.. 음악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음악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평범한 나의 일상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문든 그가 묘사한 그모습이 마치 내눈앞에 보여지고 있는것처럼 상상하게 된다.
앞에 읽었던 두편에 비해 강한 임팩트는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서서히 내 가슴에, 내 눈앞에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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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음악, 주제는 쓸쓸함. 다섯 편의 이야기가 '우습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펼쳐지고 있는데 전혀 우습지 않다. 웃음을 지을 만큼 여유를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잔하고 애처롭다. 우리가 사는 모습을 한 겹만 들추고 들여다보면 다 이럴까?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화려했고 아무리 빛났던 삶이라 해도, 그 한 꺼풀만 벗기면 드러나는 지극히 쓸쓸하고 허무한 생. 그래서 우리에게는 음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 때 바로 음악이 있어서, 녹턴 같은 음악이 있어서 한 번씩 쓰다듬어 주어야 할 테니.
한 사람의 작품을 연달아 읽게 되면 질리거나 지루해지거나 지치기 쉽다. 비슷한 분위기나 비슷한 인물들이나 비슷한 배경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구별이 안 되면서 잠시라도 벗어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아직은 아니다, 이 책이 세 권째 연달아 읽는 이 작가의 책인데 여전히 좋다는 느낌이다. 어느 새 익숙해진 문체(번역이 좋은 덕분일까?)도 좋고, 자신 없는 듯 망설이는 듯 서술하는 표현도 마음에 들고, 같은 듯 보이면서 다른 삶의 양식도 다채롭고. 다른 일 안 하고 소설만 내리 읽는 중독 상태였으면 싶을 정도다.(이미 사 놓은 이 작가의 작품은 11월 19일까지 다 읽고 리뷰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 Yes24로부터 행운상을 받는 행운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단편이다. 장편에 비해서는 아쉽다. 순전히 더 길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긴박감이 거의 없는 소설을 이렇게 긴장하며(언제 어떻게 끝나려고 하나 하면서) 읽어 나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2017년 내가 만난 고마운 작가로 기록해 둔다. |
|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노벨상을 준 사람들에게 경의라도 표하고싶은 심정이다. 솔직히 노벨상을 받지않았으면 가즈오이시구로라는 소설가를 모를뻔했다. 그의 장편몇개를 읽어보고 형용할수없는 감동과 쓸쓸함에 온몸이 전율했고 단편모음집인 녹턴도 읽어보았다.녹턴의 다섯편의 단편은 쓸쓸한 가을저녁에 듣는 나른한 음악같았다. 읽으며 참 마음이 쓸쓸해지지만 묘한 매력이있는 가즈오이시구로의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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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들>이었던 가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말에 문학 팬들이라면 누구나 가즈오 이시구로를 찾아 들던 때를 약간 피해, 조금 늦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가문의 저택에서 집사로 복무하며 생을 살아가는 나이 지긋한 남자의 이야기였지요.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덮은 다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큰 감동에 젖지는 않았어요. 정말 대단한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맞이하는 그 말 못할 감정을 경험하지는 못 했지요.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읽은 그 책이 안개 속의 형상처럼 문득문득 일상 속에서 떠오르곤 하는 것으로 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은 그런 건가 보다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그의 힘인가 하는 생각. <녹턴>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여럿 갖춘 소설이라서 대하는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한 번 맛 본 가즈오의 소설 방식에 음악을 둘러 싼 다섯 인물의 이야기라니 귀 기울여 다시 한 번 들어 볼 자세를 곧장 취하게 됩니다. 음악 같은 소설, 소설 같은 음악, 어느 쪽이라도 좋을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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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 내 머릿속에 확실한 영상이 떠오른다. 주인공의 생김새, 웃음소리, 피부색 심지어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너무나 확연하게 떠오르는 상황의 전개 그 속에 내가 존재하는 듯 공감과 동행이 이루어진다. 그의 생각, 고뇌 그윽한 눈빛까지 느끼며..... 주말을 맞이하여 읽고 있는 '녹턴'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 가스오 이시구로'의 다섯 편의 단편으로 꾸며진 소설이다.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란 부제를 지닌 흡입력이 있는 그런 이야기의 묶음(?). 이 소설은 특히 더 그랬다. 처음에 읽은'크루너' 베네치아에서 벌어지는 흘러간 스타와 나와의 대화, 노래 ,연주 배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과 물결의 변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든 것이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듯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대화 속에서 듣는 그의 고뇌 갈등마저도 여과 없이 듣고 생각을 느낄 수 있다. 타자성이 결여된 이기심이 충만한 사회에 살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그의 삶을 이해해 보려고 애를 써본다. 그 시간과 공간 사물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의 몸짓을 눈여겨 바라본다. 나의 삶이 녹아 그의 일부가 되는 듯하다. 내가 요즈음 소설에 몰입하는 큰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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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게 다가와 '부와 명예'를 찾아 떠난 후에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내가 그때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당혹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그들 중 아무도 이 특별한 시점에서 나에게 어떤 것이 진정으로 '성공적인' 시간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p.103 말번힐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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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야상곡)은 조용한 밤에 홀로 듣기 참 좋다. 쇼팽의 녹턴도 물론 좋고 라흐마니노프의 녹턴도 좋다. 한동안 아쉬케나지 (Vladimir Ashkenazy)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녹턴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다. 물론 혼자 차에서 들으면 최고. 녹턴은 교향곡이나 협주곡 혹은 오페라처럼 음악이 주제가 되지 못한다. 대신 조용히 내 삶의 배경이 되어주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점에서 단편집 <녹턴>이란 단편집 제목은 탁월한 선택인듯. 가즈오 이시구로의 단편집 <녹턴>도 '음악'을 잔잔한 배경으로 삼아 '황혼'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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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가 대개 그렇지만 가즈오 이시구로 또한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다.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등을 읽고 머리가 딱딱하게 굳었다면(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들여 책 샀나 자괴감이 든다면) <녹턴>으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에서 가장 경쾌하고 발랄하며 유머러스하다. <녹턴>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9년에 발표한 (현재로서는) 유일한 소설집이다. 다섯 개의 단편이 실렸고, 다섯 편 모두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참고로 가즈오 이시구로는 소설가가 되기 전 뮤지션이 되기 위해 여러 차례 오디션을 봤을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상당하고 조예도 깊다). 첫 번째 소설 <크루너>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연주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얀'이 한때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한물간 가수 '토니 가드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토니는 아내 린디와 '이별 여행' 중이라며, 이 여행을 끝으로 두 사람은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고, 아내를 위해 러브송을 부르려고 하니 반주를 해달라고 하는 토니의 청을 얀이 과연 들어줄까. 표제작 <녹턴>은 <크루너>의 후속편 격이다. 색소폰 연주자 스티브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내와 매니저의 제안으로 거액의 성형수술을 받은 스티브는 수술 후 할리우드의 일급 호텔에서 지내다가 옆방에 묵고 있는 토니 가드너의 이혼녀 린디를 만나게 된다. 이혼 후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린디. 두 사람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음악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다.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테마는 '음악을 통한 만남'이다. 외국을 떠돌며 영어를 가르치는 레이먼드는 오랜만에 영국으로 돌아와 대학 시절 같은 음악을 좋아했던 여자 동창과 재회한다(<비가 오나 해가 뜨나>). 성공을 꿈꾸는 젊은 싱어송라이터 '나'는 생계를 위해 누나네 집에 머물며 일을 거들다가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부부를 만난다(<말번 힐스>). 보잘 것 없는 뮤지션인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몇 해 전 첼로의 대가를 자처하는 여인의 꾐에 빠져 인생을 바꾸려다 실패한 한 남자를 만난다(<첼리스트>). 주인공은 매번 음악을 통해 어떤 인물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만난다. 이 소설집에서 음악은 떠나보내야 하는 과거, 변해버린 현재, 영영 닿지 못할 것 같은 미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성공을 열망하는 젊은이가 지닌 유일한 도구이자, 그 열망이 허무하게 무너진 후에도 곁에 남아 있는 친구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뮤지션이 되기를 열망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설가가 되었기에 이런 회한의 감정을 더욱 잘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소설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금도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