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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가 나오게 된 원인(遠因)
우리에게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만 알려진 E.H.Carr는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세계 최고 권위자이기도 하다. 영국의 전형적인 보수 성향 상층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나 모범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처음에는 볼셰비키에 적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러시아 내전을 거치면서 러시아 혁명 정부를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변하게 된다. 여기에 대공황 이후 결국 전쟁으로 폭발한 자본주의의 무질서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소련 계획경제의 성장을 목도하면서 보다 왼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비록 그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대해서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획경제와 전체주의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보수적인 학계로부터 배척을 당한다.
이로 인해 그는 28년간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여 14권으로 된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를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반(反)볼셰비키 역사학자들의 이념 공세에 대한 반격으로 쓴 글이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1961)이다.
몇 문장을 인용해보자. “역사가들의 사유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장소라는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1)”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성격이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이지, 자기가 생각하는 가치야말로 역사를 초월하는 객관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2)” 즉, 역사학자는 필연적으로 시대와 사회의 일부이며, 오히려 그런 처지를 기꺼이 인정해야만 사실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데서 상대적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은 E.H.Carr의 이런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세 가지 관점
어지간한 일반인에게 14권으로 된 방대한 역사 연구서를 읽으라는 것은 독서가 아니라 고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는지 E.H.Carr는 4부작으로 구성된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의 1부인 <볼셰비키 혁명: 1917~1929>를 일반 독자용으로 축약한 <러시아 혁명: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1917~1929>를 내놓았다.
구체적인 러시아 혁명과정을 이야기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듯 하고, E.H.Carr가 어떤 관점에서 러시아 혁명을 보았는가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다.
먼저 러시아 혁명을 보는 관점은 크게 3가지 라고 한다. 첫째, 극소수 음모론자에 의한 일종의 쿠데타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의 입장으로, 러시아 혁명을 1차 세계대전이라는 우연한 사건을 이용한 극소수 볼셰비키의 음모로 일어난 일종의 쿠데타로 간주한다.
둘째, 역사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인 혁명 첫째 관점과 반대로 소련의 공식적인 입장인데, 러시아 제정의 구조적 모순으로 과도기 혁명이자 부르주아-민주 혁명인 2월 혁명이 일어났고, 이어 역사 진행과정에서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10월 사회주의 혁명이 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셋째, 19세기 말 이래 끊임없이 자생적인 봉기한 대중의 선택 E.H.Carr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 체제는 스스로 개혁하지 못해서 자멸해 버렸고, (2월 혁명으로) 그것을 대체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역시 민중의 끓어오르는 정치적·사회적 열망을 만족시킬 해법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10월 혁명으로) 무너질 운명이었다고 단언했다. 1917년 10월의 순간 러시아 앞에 놓인 길은 사회주의뿐이었다는 것이다.” [p. 324] 이에 따라 유일한 선택지가 된 사회주의 혁명은 적백내전과 식량난 등 소비에트 체제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내외의 압력 속에서 변해갔다. 왜냐하면 볼셰비키 지도자들이 이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내놓은 해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이 남긴 것
러시아 혁명은 “‘하층계급들’이 더 이상 옛날 방식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고’, ‘상층계급들’이 더 이상 옛날 방식을 유지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억압받는 계급들의 고통과 곤궁이 평상시보다 한층 더 극심해질 때, 혁명은 일어난다.”는, 1915년 레닌의 예언이 고스란히 들어맞은 혁명이었다.” [pp. 327~328] 하지만, 러시아 혁명은 볼셰비키 지도자들의 이상과 달리 러시아 관료제의 원시적이고 잔인한 전통과 결합된 스탈린 독재 체제를 낳았다. “이런 결말은 혁명의 이상이 직접적으로 낳은 논리적 결과인가, 아니면 혁명의 이상의 배신인가? 배신이라면 누가 어떻게 배신한 것인가? 스탈린 독재 체제는 레닌이 추구했던 혁명의 연장선에 있는가? 아니면 레닌주의를 뒤엎은 결과인가 ” [pp. 326~327]
1991년 소련의 붕괴된 이후 현실 사회주의는 한때 있었던 ‘유토피아 실험’으로 인식되고, 러시아 혁명에 대한 관심도 사그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제국주의와 결합했던 독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요소를 흡수하여 수정 자본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가 등장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와서 ‘러시아 혁명’을 얘기하는 것은 진부(陳腐)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혁명’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구상하는데 있어서 한 줌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구 공산권 해체로 경쟁자가 사라진 상태에서 신자유주의의 광풍(狂風)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경쟁자 없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다 보면 언젠가 닥쳐올 파국이 더 큰 파열음을 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에는 상관없이, 세계를 뒤흔든 ‘러시아 혁명’에 대해 한 번 제대로 살펴보는 것도 미래의 씨앗을 심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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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혁명 관련 책들이 눈에 띈다. 이전에 두 권 정도를 구입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이번 카의 러시아 혁명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혁명과 관련한 최근의 흐름은 상당히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 느낌이 든다. 보기에 따라서 후련한 부분도 있지만, 좀더 다른 생각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한다. 오래전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어서 세권씩이나 구입하여 보는 것일까? 카의 오래전 명언이 위로를 준다. 과거와 현재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던 그의 충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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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카 러시아 혁명 / 카 / 유강은/ 2017 이데아역사란 무엇인가로 너무나 유명한, 영화 변호인의 송강호 발음으로 하자면 '이 에치 카'의 러시아 혁명입니다. 대작이라는 말에 비해 책이 너무 날씬해서 엥? 했는데, 아, 이것도 토인비 영감님의 역사의 연구처럼 축약판이었습니다. 원작은 14권에 이르는 대작으로, 이 책은 14분의 1인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제가 잘 몰랐던 부분이나 나중에 찾아보고 싶은 곳에 색연필로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해 두는데 이 책은 구질구질한 설명도 길게 없이 단출하고 명료한 서술방식이기 때문에 줄 그을 곳이 너무 많더군요. ㅜㅜ 러시아 혁명 이전 유럽사라든가, 러시아 내부 상황을 전혀 모른다면 약간 읽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축약본이 다 그렇지만요. 이 책은 처음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러시아 상황은 어떠했는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아래로 부터의 혁명이라는 이론에서 벗어나 레닌이 독자적으로 이루어냈다고 알려진 정치적 혁명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했던 마르크스의 주장에 따라 시도했던 국가라는 범주를 탈피한 공산주의 운동이 어떻게 실패하게 되었는지(중국, 일본에서의 실패, 유럽에서의 고전 등등), 레닌의 사망과 함께 결국 일국사회주의로 바뀌어간 스탈린 체제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어떻게 쫓겨나고, 부하린은 어떻게 실각했는지 등등의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부득이하게 선택했던 신경제 정책과 이후 원칙으로 돌아서서 정책적으로 강제된 집단 농장, 공산주의적 집단 산업화 등의 경제적 상황을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보통 스탈린 체제에서의 소련 연방은 악명 높은 독재 체제로 유명합니다. 스탈린이 정적을 살해한 이야기들은 상당 부분 사실이고, 어느 부분 음모론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것은 스탈린 체제가 끝나고 나서야 드러난 이야기지요. 20세기 초중반에는 이 소련 연방이라고 하는 곳의 정치, 경제적 체제에 대해서 잘 몰랐던 서구 지식인들 중에는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대공황이 왔고 1,2차 세계대전도 겪었던 지라 이에 염증을 느껴 오히려 러시아의 혁명을 찬양?하는 이야기도 상당히 팽배했고, 이와는 반대로 맹비난하는 이야기도 많아 대착점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었을 때입니다. 카는 두 가지 전부를 부정하고, 그 당시로는 드물게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들을 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초판을 낼 때와 교정판을 낼 때 그리고 축약본을 낼 때 새롭게 듣게된 정보에 따라 다소의 수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편견과 선입견 없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오히려 그렇다 보니 당시에는 어떤 주류에서도 인정받기 힘들어 격론을 몰고 다니는 역사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카의 진가는 지금까지 퇴색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그의 책은 출판되고 읽히고 있습니다. 작년이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고, 이미 체제가 바뀌어 버린 러시아는 이에 대한 특별한 행사도, 언급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실패한 체제라도 해도, 그 영향력이 사라지지는 않죠. 시장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 정부란, 세상에 없으니까요. 우리나라에도 몇권의 책이 출판된 것 같습니다. 요즘의 시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이 책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번역은 무난하고, 특별히 읽는데 힘들지 않았습니다. 역자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