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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책 내용만 좋으면 되지' 란 안일한 생각으로 제목의 중요성을 별 것 아닌 양 넘겼다. 오히려 제목만 뻔지르르하고 내용이 부실한 책을 볼 때면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며 책을 매몰차게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독후감과 일기쓰기 정도를 맴돌던 ‘나만의 글’이 대학신문기자로 칼럼쓰기와 서평쓰기로 ‘모두의 글’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제목이 얼마나 쫄깃하고, 번뜩이느냐가 곧 글의 평판과 같았기 때문이다. '제목이 그 소설의 절반을 결정짓고, 첫 문장이 나머지 절반을 결정짓고, 끝 문장이 그 나머지 절반을 결정 짓는다’ 는 문장의 의미가 몸소 느껴지는 때였다. 그 이후로 나는 ‘내용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더불어 ‘제목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고심했다. 가끔은 맘에 드는 제목을 얻으려고 이틀밤낮을 지새며 메모장고 수십권의 책을 뒤적이던 때도 있었다. 제목은 글을 쓰는 나에게는 가혹한 무언가였지만, 내가 책을 읽는 순간엔 하염없이 매력적인 무언가로 나를 이끌었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는 오로지 제목 하나만 보고 펼친 책이 꽤 된다. 작가가 누군지, 상은 받았는지, 베스트셀러인지 아닌지 그 어떤 것도 배제한 채 오로지 제목이 맘에 들어 읽었던 책들. 그리고 이 책들은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아끼는 책들로 자리한다. 책을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뜻을 담은 <책인시공>,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과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질 만큼 인상 깊었던 <폭풍의 언덕>, 너무나도 다른 두 개의 단어가 만났지만 묘하게 잘 어울렸던 <여행의 기술>......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떠올린다면 책 제목은 외적인 생김새를 넘어서 그 책만의 느낌, 한마디로 첫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이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잘 맞는, 나와 잘 통할 것 같은 책을 고르기 위해서라도 제목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유명한 소설과 희곡들의 제목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알려주면서 훌륭한 제목 뒤편에 자리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죠스>라는 제목은 나와 편집자가 마지막 순간에, 책이 인쇄에 들어가기 20분쯤 전에 필사적으로 도출한 타협안이었다. 그때까지 한 백 개되는 제목을 가지고 만지작 거렸을 것이다. 사실 온갖 방식으로 조합된 제목 후보들 속에서 우리가 좋아했던 유일한 단어는 아가리라는 뜻의 '죠스'였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빌어먹을, 그만하고 조스로 해버리지요." 그러자 편집자도 말했다. "그렇게 갑시다. 젠장" -p22 <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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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품의 제목은 그 작품의 존재감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단서인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마케팅 수단이다. 호기심을 던져주는 제목의 책을 위해 작가는 물론 출판사의 편집장들은 고뇌와 검토, 신중한 선택을 거친다. 그 중에서는 작가의 고집과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가 대박을 친 작품도 있고 정말로 말도 안되는 우연 속에 얻어낸 제목도 있다. 물론 작품이 대박을 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 제목이 아무리 훌륭하다한들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말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노래가사에서 따왔으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따왔다.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는 미국 작가 토마스 울프의 동명 작품을 그대로 따온 것이며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제목은 최승자의 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처럼 훌륭한 작품은 또 다른 후대 작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 어처구니 없는 계기로 작품의 제목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탄생비화와 작가의 고뇌등을 간략히 담아 100여권 책들의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앙드레 버나드라는 미국인 편집자에 의해서 쓰여졌는데 재미있게도 책의 후반부는 한국인 번역가인 최재봉씨의 한국 제목 찾기가 덧붙여져있는 아주 성의있는 책이다. 덕분에 한국의 베스트셀러의 탄생설화(?)도 엿볼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서머셋 몸은 자신의책 제목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달'은 예술가의 이상을 뜻하고 '6펜스'는 지상의 가치를 의미한다고 나는 알고 있었는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달과 6펜스'가 매우 좋은 제목이라고 말했다고 하자 '달을 잡으려고 손을 뻗느라 발밑의 6펜스를 놓친다는 뜻이라구~'라고 시니컬하게 받아쳤다고 한다. 애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한번 들으면 잊혀질수 없는 제목은 술집의 거울에 누군가 써놓은 글귀라고 한다.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역시 한번들으면 호기심에 책을 들춰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인데 낯선 일상이라는 시의 컨셉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박상우의 소설은 워낙 유명해서 사람들이 샤갈이 진짜로 '눈내리는 마을'이라는 그림을 그렸는 줄 안다. 혹은 샤갈이 그린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작품이 있는 줄 알거나. 무식하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의 입에 착착 감기는 이 제목은 이미 김춘수의 시에 등장하고 있으며 박상우의 소설로 유명해지다 못해 그 이름을 딴 카페가 90년대엔 강남 한 복판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샤갈의 그림중에 그런제목을 가진 작품은 없다. 그들이 영감을 받은 작품은 바로 '나와 마을'이라는 작품이다. 이 사실을 나 역시도 몇 년전 샤갈전을 실제로 보기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한 작품이 파생하는 파급효과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신기하고 재미있다. 우리에게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이젠 아예 그렇게 굳어진 제목 '위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 역시 출판 당시에는 출판자들로부터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이 작품의 제목에 대해서 한번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위더링 하이츠'= '폭풍의 언덕' 이라고 의심없이 믿어버린 게으름의 결과이다. 하긴 의구심을 가졌대봤자 본토인들도 헷갈리게 만들어서 계속 질문을 받았다고 하니 알아내려면 고생 깨나 했을것이다. '위더링'은 이 지방의 방언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씨에 격렬하게 요동하는 대기의 모습을 표현하는 형용사라고 한다. 형용사!!!! 무려.. 명사도 아니고!!!!! 오~! 저 위더링한 하늘 좀 봐. 곧 비가 오겠어, 혹은 저 인간의 변덕스러운 성격은 정말 위더링해. 이렇게 쓴다는건가. 참으로 흥미롭다. 멋진 제목은 멋진 영감을 준다. 그러나 진짜 진실은 서머셋 몸의 말대로 '성공한 책의 제목이야말로 정말로 좋은 제목'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