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밀란의 모던 발레 세 편이 묶여 DVD로 출시되었습니다.
로열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인 퍼스트 솔리스트 최유희씨가
작품 중 콘체르토에서 리딩롤을 맡아 춤추는데요,
그녀는 12월에 공연될 국립발레단의 백조에서 국내팬들과 처음 만납니다.
그녀의 춤도 미리 감상해볼 겸, 또 맥밀란의 모던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해서 당장 구입했지요.
작품은 엘리트 싱코페이션(Elite Sycopations), 유다 나무(The Judas tree), 콘체르토(Concerto)
이렇게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상에서 맥밀란의 아내 데보라의 해설을 만날 수 있는 건 보너스고요.

먼저 엘리트 싱코페이션.
'싱코페이션'이란 음악에서 당김음을 말하지요,
74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제목처럼 당김음을 많이 사용한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어릿광대나 서커스 단원 같은 무용수들의 테크니컬하고 코믹한 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용수들의 과장된 동작이나 표정, 섬세하게 디자인되었지만 희극적인 의상,
이게 맥밀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발랄한 소품이라 다소 얼떨떨한 느낌도 듭니다.
2010년 로열오페라하우스의 공연실황을 담고 있는 이 DVD에서는
마라 갈레아찌, 라우라 매컬럭, 사라 램 등 주역 무용수들이 총출동해
(다시 버셀의 모습도 본 것 같은데 크레딧에 이름이 없네요ㅠ)
팬들에게 자신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기쁨을 안깁니다.
92년 만들어진 유다 나무는 맥밀란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초연에서는 이렉 무카메도프와 <마이얼링>의 놀라운 신예 비비아나 듀란트가 주역을 맡아
그해 가장 우수한 뉴댄스 작품에 주어지는 로렌스 올리비에 상을 수상했지요.
맥밀란은 같은 해 10월 <마이얼링>의 공연 첫날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예수를 배신하고 목을 매 자살한 유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작품은
맥밀란이 그럼 그렇지, 싶을 만큼 특유의 어둡고 음산한,
그러면서도 섹슈얼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현대의 폐차장으로 배경을 옮겨와 시작되는데,
흰 모포에 싸인 여인이 노동자들에 의해 납치되는 첫 장면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막노동으로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거친 노동자들이
한 여인(리안 벤자민)을 납치해온 것은 그저 잠시 데리고 놀아볼까 하는 심산,
심심풀이 땅콩 같은 심리 외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사회 밑바닥을 뒹굴며 자신에게 호의적이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은 세상을 경험해온 이 세파에 찌들리고 닳고 닳은 여인,
그럼에도 자신의 매력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아는 이 여인은
처음부터 단순한 노동자들의 상대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의 등장으로 현장감독(카를로스 아코스타)과 그의 두 친구,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여인의 존재는 마침내 친구들 사이에 반목을 불러일으키고
쉽게 끓어오르는 노동자들을 흥분시켜 파국의 원인이 된 여인은 물론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감독마저 자살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의 현신처럼 되살아난 여인이 자신의 (아마도 못박힌?) 손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하고 압도적입니다.
이 작품을 본 것만으로도 DVD는 제 값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66년 작품 콘체르토.
여름에 본 유비씨의 모던 <올쉘비>를 떠올리게 하는 신고전주의 발레인데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의 일사불란한 모습과
더불어 최유희씨의 아름다운 자태까지 감상할 수 있는,
소품이면서도 음악과 무용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힐링 느낌까지 받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최유희씨는 미수다에 출연했던 아키바 리에와 약간 닮은 듯싶은데,
백조에서는 어떤 연기 보여줄지 기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