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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감독. 어떤 소재든 그의 손에서 그의 스타일로 살아난다. 종교영화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다면, 그 영화는 어떤 스타일로 무슨 메시지를 줄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가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일본 소설 <침묵>을 각색하여 보여준 이야기는 <미션>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와는 어쩌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신을 몰랐던 원주민들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함께 움직이며 쓰러지는 장면이 <미션>이라면 홀로 불 안에서 손을 가볍게 모으고 있는 그 안에 담긴 것을 비추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사일런스>는 신을 향한 질문과 인간의 생존방식의 흐름이 다르다.
17세기 일본으로 떠나는 젊은 두 사제,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르페(아담 드라이버)의 시작부터 그들이 일본에서 마주한 세상과 소식으로 들었던 일본사회의 차이, 소문으로 퍼지는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 신부의 과거와 현재의 격차를 마주할 때, 그 모든 것은 결국 원작과 감독이 던지는 질문이 된다. '이곳에도, 이 순간에도, 신은 존재하는가?'
지금의 기준으로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은 원작과는 다르지만, 결국에는 감독이 생각하는 종교와 신에 대한 확신의 차이를 보여주는 지점이 된다.
이 영화가 좀 색다른 점은 17세기 일본의 풍경들과 일본이 아닌 작은 섬사람들의 삶이 곳곳마다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을 많이 들인 지점을 보여주듯 긴 시간을 끌고가는데 지루하기보다 신기한 대상이 되는 원주민과 권력층, 그것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이국 선교사의 대비가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여기에 보는 사람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박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잔인함이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가해진 것을 보며 <미션>의 방식과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는 감독의 의중을 읽는다.
"다들 신앙의 증표를 간절히 원해서 줄 수 잇는 한 마련해줬습니다. 이 증표를 신앙보다 중히 여길까 걱정되지만 어떻게 모른 척 하겠습니까? 결국 제 묵주를 풀어 나눠주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로드리게스의 표정은 이게 아닌데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게 최선이라는 심정이 손짓에 나타난다.
"당신은 내게 진 게 아니라 일본의 늪에 진 거요" 아마도 수많은 신부들이 왔으나 외형적으로 확장을 하기는 커녕 자신들도 배교해야했던 이유를 일본관리가 자신만만하게 말할 때, 신부들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마지막 신부는 그리스교의 신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상징 하나 품지 않고 신을 부르지도 기도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죽을 때조차. 그의 신앙의 여정은 그렇게 끝났다." 과연 그럴까? 오직 신만이 아신다는 목소리에 화면은 로드리게스 신부의 손을 비출 때, 삼엄한 감시의 긴 시간에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인간의 내면에 관해서까지 인간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물음표가 생긴다.
이 영화는 매 순간 이 시간에 이 곳에 신은 왜 침묵하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느냐고도 물어야 한다. 그렇게 물음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이미 선택의 답이 나온 것 같은 순간에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본 것이 전부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