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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테이터에 깔끔한 설명(객관적인 분석과 평가)이 눈길을 끈다. 한국의 부동산 구조와 상황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강력추천, 오늘의책으로 나오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본문 중.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크게 나누자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바로 수요 억제 정책, 공급 확대 정책, 거래 투명화 정책이다. 세부적인 각각의 정책 중에는 그 무렵 부동산 시장의 상황과 맞물려서 효과가 컸던 정책도 있고 비난만 받고 물러난 정책도 있다. 하지만 이 정책들 덕분에 세계적 부동산 폭등의 시기에 우리 부동산 시장이 그나마 안정될 수 있었다. 두 나라 정책 당국은 모두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이상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준 금리 인상 등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과 일본의 중앙은행은 금리란 소비자물가가 너무 높을 때 안정화시키기 위해 인상하는 것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에 매우 충실했다. "물가가 매우 안정적인데 자신가격만을 잡기 위해서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과감하게 내놓지 못했다. 노동자를 청산하고, 주식을 청산하고, 농부를 청산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양식들이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가치는 조절될 것이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물러나고 진취적인 사람들이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이 발언만큼 청산주의를 선명하게 표현한 예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11년3월31일자 뉴욕타임즈의 칼럼에서 이를 '멀런 독트린'이라고 한 바 있다. 자산재로서의 부동산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가 중심이 된다. 둘째, 아무리 많이 가져도 소유자가 느끼는 효용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커지는 '한계효용 체증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 1971년에는 한 해에 102만 명이 태어났지만, 2015년에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3만 8천 명이 태어났다. 부동산 공급의 위력은 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건국 이래로 이만큼 강력한 부동산 정책은 없었으며, 덕분에 부동산 가격은 이후 10년 가까이 안정될 수 있었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난 후 부동산 시장은 거의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대형 건설사들이 숱하게 부도를 내며 쓰러졌고, 건설업계는 주택 건설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1990년대 내내 매년 60만 호 이상씩 공급되던 추세가 확 꺽여서 1998년에는 30만 호로 절반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공급이 줄어들자 약 1년 시차를 두고 1999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가 있다면, 돈이 있는 사람들은 집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한 집을 전세로 돌림으로써 사용가치를 포기하는 대신 집값 상승분을 취하려 한다. 만약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가 없다면 월세를 꼬박꼬박 받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1973-2002년의 30년 동안 서울 지역에서 주택 재정비사업이 완료된 면적은 총 1,010만m2였다. 그런데 2002-06년의 단 5년 동안 뉴타운 사업지구로 지정된 면적이 무려 2,380만m2에 달했다. 즉 지난 30년 동안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모든 재정비사업 면적보다 2.5배나 넓은 지역이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 사업의 문제점과 실효성에 의심을 가져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가계 중에서 4%가 주택을 더 보유할 수 있게 하려다가, 미국과 세계 경제를 망하게 할 뻔하고 주택 200만 채를 압류로 날려버린 사건이다. 한국은 이처럼 자기 집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여려 사정으로 인해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경우가 꽤 많다. 그래서 자가보유율이 자가점유율보다 5-7% 정도 높다. 영화 빅쇼트에서 보듯, 2006년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싼 수준, 즉 버블임을 알아챈 소수의 투자자들은 경제위기를 기회로 삼아 엄청난 돈을 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