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합시다.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덮어두려고 하는 일본군에게, 일본 정부에게 분노합시다.
물론 그런 개개인들만이 문제인 것이 아닙니다. 20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수요시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답변은 없습니다. 민간업자에 알선을 했다며 모든 책임을 민간에 돌릴 뿐입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군은 매달 꼬박꼬박 위안소에서 성병검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또 위안소를 이용할때마다 돈으로 지불하는게 힘들어서 병사들은 군표를 제시하고 위안소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민간업자에 알선했다고는하지만 모든 운영은 군에서 관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한 민간과 관의 책임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나 민간에서 주축이 되어서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하더라도 공공성, 대표성을 갖고 있는 authority는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1965년 한일협정때 모든 보상이 끝났다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대답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 덕분입니다. 1992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은 군과 국가의 개입을 부정했는데(지금은 소극적 개입은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민간업자들이 위안소를 운영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는 정도의 인정이죠.) 1965년 한일협정때 '위안부' 배상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자신이 '위안부'로 일했다고 밝힌 234명의 할머니들 중 이제 살아계신 분은 8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제 일본 정부가 당사자들에게 직접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과하지 못해서 용서받지 못하는 일본 군에게, 일본 정부에게 분노합시다.
분노합시다.
당신들의 딸조차 지키지 못했던 이 땅의 부끄러운 역사에 분노합시다.
부끄럽습니다.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체제 하에서 영혼을 팔아가며 호의호식을 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땅은 가난한 사람들에겐 지옥이었고 있는 집안 사람들에겐 천국인가 봅니다. 당신들의 딸조차 지키지 못했던 이 땅의 부끄러운 역사에 분노합시다.
분노합시다.
여성들을 희생하며 자라난 기형적인 남성중심적 문화에 대해 분노합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야겠다며 그 먼 길을 몇 달에 걸쳐서 살아 돌아왔는데 집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남들은 해방이라고 부둥켜안고 만세 부르며 기뻐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 그렇게 더렵혀진 몸으로 어떻게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겠어요." (길원옥 할머니)
"내 몸을 거기서 망쳐서 왔는데 옳은 결혼이 뭡니까? 못 하지요. 내 양심에도 못 하지요. 전신을 버려 왔는데, 어찌 내가 새 처녀라고 남을 속이고 결혼을 하겠어요." (임정자 할머니)
왜 그랬을까요. 왜 이들은 그토록 그리던 해방된 조국을 맞이하였는데도 결코 기쁠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의문이 나는 점은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해방은 1945년,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1년입니다. 이 반백년에 가까운 격차는 왜 생겨난 것일까요. 이 두가지 의문에 대한 답은 김학순 할머니의 회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말이 남편이지 살면서 받은 고통이 참으로 컸습니다. 내가 '위안부' 생활을 한 것을 알기 때문에 술 먹고 기분 나쁘면 사람 가슴에 칼을 내리꽂는 소리를 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데서 더려운 년이니, 군인들한테 갈보짓 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을 땐 내 더러운 팔자가 원망스럽기만 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남한의 끔찍한 가부장적 문화는 가장 존중을 받아야 할 피해자가 스스로를 죄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문화가, 그리고 그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남성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있는 고백이 없었다면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피해자에게 올바른 언어를 찾아주지 못한, 그래서 오랫동안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죄인으로 규정지으면서 살아가게 한 기형적인 남성중심적 문화에 분노합시다. |
|
나는 그닥 신념이 투철하거나, 의지가 강하지 못합니다. 불의를 보고 내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정의롭지도 못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사회가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길 희망합니다. 그런 사회여야만 전태일처럼 내 모든 것을 불사르는 투사가 될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나 스스로가 느낄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까요.
매달 후원을 하는 정대협의 윤미향 씨가 책을 냈습니다. 20년간의 수요일. 조사 하나에도 집착하는 국어교사로서 20년 '간의' 수요일이라는 책 제목이 얼마나 마음을 아프게 하던지요. 그래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주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펼치기까지 나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출산을 앞둔 산모로서 이 책에 담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나는 어릴 때부터 전쟁이나 독립군의 투쟁을 다룬 드라마, 영화를 보지 못할 만큼 심약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섭고도 처절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30살이 되었을 때, '50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을 읽게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울음을 참아가며 책을 읽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수업시간에 이 책을 아이들에게 소개하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흐느껴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아픕니다. 너무도 담담하게, 모든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함으로 비극을 전하는 윤미향 씨의 목소리가 너무 아픕니다.
10대 어린 소녀들이 십 년 가까이 일본 정부에 의해 집단 성폭행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삶은 굳이 상상하지 않더라도 나를 너무 아프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들을 기억해야겠다고, 더 많이 알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해봅니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 아들의 손을 잡고 수요 집회에 나가기로 다짐해 봅니다. 나는 내 아들이 이 사회의 아픈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윤미향 씨의 블로그 대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이었지만, 나중에는 군중이 되었네.'
우리 할머니들이 외롭지 않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가 초라하지 않게, 나는 기꺼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식적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 사회를 위한'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아... 내 아들이, 수요집회의 끝을 해피엔딩으로 기억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외치는 당당한 희망 20년간의 수요일 비가와도 눈이와도 병상에 누워있어도 일본 대사관 앞 수요일 12 ..그것은 희망이었다.. 이 글귀가 읽기전부터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난 결혼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이분들의 시위를 현장에서 본적이있었다 그것이 벌써20년간의 길고긴 시위가 되었다 책에서 나온 굴귀처럼 정말 세상에서 오래된 시위가 수요시위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왜 끌려가야하는지도 모르던 이 할머니들이 이젠 그 억울함을 알리고자 이렇게 큰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20여년간 오랜되고 간 시위를 하는것이다 ..이젠 많은 할머니들이 이 세상 사람이아니라는것이 같은 국민이면 같은 여자로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분들의 죄가 아닌데도 이분들은 많은이들앞에 당당하게 나서지도 못하고 기나긴 세월을 한과 눈물로 세상을 살아오신것이다. 억울한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자손들이 닷는 이런 슬픔을 겪지 않게 하기위해서 그 큰 용기를 갖고 나서던 이분들의 모습을 그리면 가슴이 왠지 찡하지네요 전쟁이 정말 한 여자들의 인생과 가족들을 슬픔에 잠기게 만들었다는것에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합니다. 앞으로 이런 슬픔일이 없도록 전쟁이라는것이 안 일어나야하는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아직도 하고있다는것이지요 그 전쟁은 결국 약한 이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것인지 모릅니다. 결국은 위안부 할머님들처럼 이런분들이 생기게 된다는것이 가슴 아픈일이지요 기나긴 시위동안 한을 풀지 못하고 이 세상을 가시는 분들이 생겨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중 하나인 전 맘이 안타깝기만 하네요 일존군 '위안부' 페해자 할머님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할머니들의 뜻을 살리는 박물관은 꼭 세워져야 할것이며 이 할머니들을 뜻과 할머니들의 당당한 외침이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희망이 되는날 할머니들이 그토록 바랐던 그것은 평화로운 세상이라는것을 우리가 기필꼬 잊지 말아야 할것이며 우리가 꼭 지켜야하는 일이라는것을 명심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켜온, 20년간의 그 아름답고 경이로운 용기가 지금도 수요일에 외치고있다는것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볼수있는 시간을 가져 볼수있어서 너무나 좋았던 책입니다.. |
|
처음 이책을 볼때는 20년간의 수요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답니다. 다시한번 너무나 무심했다는 생각에 제 자신에게 넘 속쌍하단 생각을 했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는 향상 신문과 뉴스매체로 듣고 있었지만 이분들이 그 많은 노력과 그 많은 세월동안 싸워온 이야기를 오늘 이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마음속에 아주 깊게 다짐해봅니다. 앞으로는 절대 후손들에게 그 같은 수모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것 이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었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7개 여성 단체 연합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설립된 지 어느덧 20년. 이분들이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시위가 열리고, 수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이 동참해 할머니들과 함께 구호를 외친 그 긴 세월 과 그 많은 노력들을 이책에 담았답니다. 이 책은 할머니들과 함께 수요시위를 이끌고 있는 정대협 대표가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을 위해 쓴 것. 20년이라는 시간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노력, 연대가 모여 만든 수요시위의 역사, 할머니들이 보여준 용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지, 그 역사적 과정과 주요 쟁점 등을 실제 증언과 사료를 통해 생생하게 파헤쳐 나간다. 할머니들을 단순히 피해자의 시선에 가둬두지 않는다. 연약한 몸을 이끌고 유럽과 미국, 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평화를 위한 연설을 하고,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요시위에 참석해 일본 정부의 반성을 촉구하며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벗어나 진실을 위해 노력하는 할머니들의 용기가 미래 세대의 평화를 위한 튼튼한 밑거름이 되었듯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들 에게 묻고 있는 책이다
나라에 힘이 약해서 갈수록 더 다른 나라에 지배를 당하는 느낌이 들에게 하는것이 넘 속쌍하답니다 어찌 살고 있는 나라에 믿음이 가지않고 갈수록 믿음이 떨어지기만 하니 걱정이랍니다. 앞으로 우리아이들게 어떤 나라에서 살아가게 해야할까요 . 꿈을 실천할수 있는 미래를 살아갈수 있는 나라가 될수 있는 미래의 나라로 우리모두 열심히 도와서 그런 나라를 만들어가야 할껏 같아요. 속쌍하단 말보단 일본이 너무나 밉다는 생각보단 일본에게 이기고 일본보다 무엇이던지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본이 우리에게 함부로 할수 없는 그런 나라가 될수 있게 노력해야합니다. |
|
이 책의 저자 윤미향은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상임 대표를 맡고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를 개최하고 있다. 1992년 정대협이 처음 결성되었을때 간사로 활동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찾아 증언을 녹취해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
앞부분에는 보통 우리들의 평범한 할머니들의 사진이 담겨있다. 책속으로 들어가면 위안부가 무엇인지?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고통받은 할머니들은 어떤 고통을 받았고 어떻게 도와드리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통받았던 것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할머니들이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해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2010년은 일제가 불법적인 강재 병합 조약 체결을 통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지 100년째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고통을 받은지 60년이 되었다. 그 고통 언저리에 있던 그들의 이야기가 책속에 실려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이 땅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 전쟁으로 누군가는 이익을 누리고 있다.
왜 제목이 20년간의 수요일인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정대협)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활동을 시작한 지가 2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1992년 이후 지금까지 살아계시는 할머니들은 80여명이며 그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12시에.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 것은 용기있는 한분의 결단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참 위안부로 젊고 나이 어린 여성들이 끌려갈 즈음 1943년 대학 1학년이었고 열일곱이었던 윤정옥 선생님은 고등학생 때부터 선생님이 간호원으로 자주 말했다고 한다. 대학에 갔을때는 더욱 심했고 남자들은 학도병으로 여자들은 정신대로 갔다. 윤정옥 선생님은 정신대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학교를 자퇴했고 해방후에 정신대로 끌려갔던 친구들의 소식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때 당신 스무살이던 선생님은 학교병 나갔던 사람들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위안부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다른 친구들처럼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할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을수 없었는데 일본인이 쓴 위안부 관련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 논문에는 위안부와 관련된 많은 자료가 들어있었고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일본에 살던 배봉기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자료를 수집하고 증인을 찾아다니기 시작해 하나둘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끝에 한사람 두사람 할머니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윤정옥 선생님을 도왔던 사람들 중에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국 교회 여성 연합회(한교연)가 있었다. 그들은 1960년대에 결성된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에서 원폭으로 피해를 입고 귀환한 원폭 피해자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데도 큰 공헌을 했다. 지금은 기독교가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많은데 한교연의 이야기를 보니 참 반갑기도 했다.
그렇게 드러나게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그림들도 정말 놀라웠다. 그 할머니들이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그들의 상처를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조금씩 치유해나갈수 있었던 것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손해볼 지언정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우리안에 상처, 그리고 외부에 준 상처들이 모두 치유될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는 한사람 한사람이 문제를 깨닫고 일어서야 한다. 목놓아 우는 그들의 슬픔은 곧 나의 상처이고 아픔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겠다. 부디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시고 건강할때 일본의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역시 그러한 상처를 준 민족에게 고개숙여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도 아주 중요하게 해야할 일이다. ![]() ![]() ![]()
|
|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왔다. 짝궁일지를 읽으면서,
자원봉사 활동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할머님들의 외침을 듣고 그리고 할머님들의 그림을 보면서........ 당신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너무 쓰리고 또 쓰렸다. 왜? 왜 모른척 하고 있었을까? 왜 먼저 손 내밀지 못했을까? 속상하고 화도나고 이 나라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을 지금까지 외면한 정부도 너무도 밉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이 미움조차 우리가 감당하고 짊어져야할 부분들을 나라가 대신 해줘야하는 것처럼 책임을 떠 넘기는 마음이 더 컸던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드니 더욱 미안함이 배가 되었다. 한민족이라는 말만 있을뿐 정작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책으로 접하기 전에 나는 정말 문외한이였던 것 같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진실만 가진채 정말 진실이 무언지, 역사가 무언지 알려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뉴스의 한부분을 장식할때마다 '나쁜놈들'이라고 욕을 해댈뿐....... 정작 아픔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고 계신 할머님들을 생각치 못했다. 어린이 성폭행이란 뉴스거리가 나올때마다 분개하면서도 역사의 한부분에 '한'을 짊어지고 계신 할머님들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죄송하고 죄송했다.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써, 그리고 이 나라의 구성원으로써 정말 창피하고 화가 났는데 정작 왜 저렇게까지 싸워야하는 건지 생각해보진 않은 것 같다. 왜? 이 작은 물음 하나가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수요 시위는 2010년 12월 22일 제949차까지 이루어졌다고 한다. 12월에만 두분이 돌아가시고 올 한해동안 모두 여덟분이 돌아가시고 이제 여든분만이 생존해 계시다고 한다. 이제 이 분들마저 돌아가시면 어떻게 될까? 할머님들을 말씀하신다. '이제 희망은 바로 현재와 미래를 끌어갈 우리에게 있다고, 다시는 할머니들과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 다시는 일본군 '위안부'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당하지도 않는 세상이 할머니들이 바라는 미래'라고 이제 바톤은 우리에게 넘어온 것 같다. 우리가 잊지않고 당신들을 온전히 기억하고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바로 알려줄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 그리고 일본정부와 일본군에게 짓밟힌 우리 할머님들의 아픔에 대해서....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할머님의 외침이 귓가에 울린다. '이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일본 정부를 누가 용서해 줄 수 있겠습니까?'
|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시위를 TV를 통해 본 적은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직도 끝나지 않는 그녀들의 문제는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나라 한국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과 함께 시위를 이끌고 있는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를 통해 탄생된 이 책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드러내기란 무척이나 힘드셨을 것 같아요. |
|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답니다. 보라색이였던가요? 보라색 풍선과 할머니들을 텔레비젼으로 뵌적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쳤던 기사 하나에 불과 하였어요. 그런데 그 집회가 20년동안 계속되고 있었네요.
중학교 1학년인 딸 아이와 함께 [20년간의 수요일]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딸아이는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역사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처럼 자세한 내용이 실리지 않았기에 잘 몰랐었는데 이토록 처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있었다는것에 대해 너무도 놀랐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족을 위해 돈벌러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자궁까지 들어내며 외로운 신세가 되어버린 할머니. 순결을 중요시 했던 우리 문화가 더 할머니들을 해방이 되었어도 고향을 찾지 못하게 했던 족쇠였을겁니다. 결혼을 했어도 남편에게,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할머니들이였답니다. 그러나 지금 당당하게 일본의 사죄를 받고 다시는 할머니들이 겪은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려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아픈 과거들을 한분 한분 꺼내주셨습니다. 오늘처럼 체감온도가 영하 6-7도의 살을 애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눈,비 맞으며 집회를 하고 계신 연로하신 할머니들을 생각하니 따뜻한 기온이 사치스럽게 여겨지네요.
아마도 저의 딸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을꺼에요. 하루 하루 지난날의 쓰라린 과거로 인해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시는 할머니들이 바로 생생한 증인들이신데 그 할머니들이 연로하셔서 이제는 생의 마지막 귀로에 서 계십니다. 그래서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녹취하여 온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를 알리면서 수요집회를 개최하고 계신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께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자라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이 책을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지금도 열심히 할머니들과 함께 싸우고 계십니다.
전쟁이 낳은 결과물에 하나인 위안부는 성폭력과 인권유린으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입니다. 하루 빨리 일본이 공식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를 하는 날이 돌아왔으면 합니다. 할머니들이 그래야 편안하게 눈을 감고 저 세상으로 가실 수 있을테니까요...... |
|
책을 읽다가 너무 슬프고 부끄러워 읽기를 멈추고 다시 읽고하는 책이 얼마나 있을까요 머리속에 그려지는 내용이 너무 슬프고 제가 산 시간보다 더 긴 시간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계실 그분들을 책을 읽기전에는 몰랐다는 사실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오래전에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의 태도에 분노하여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은 있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20여년간 일본대사관앞에서 수요일 마다 집회를 하고 계신 할머니들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역사를 다시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처음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정대협)이 결성되었을 때 간사로 활동하셨고 지금은 정대협의 상임 대표를 맡고 계시면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매주 수요집회를 하고 계시는 저자분이 쓴 20년간의 기록입니다.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생기게 된 원인부터 지금도 일본의 사과를 바라며 이 추운 날씨에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를 하고 계시고 이 세상에 다시는 할머니들과 같은 사람들이 없어야한다는 마음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시위를 하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그러하듯 한 나라의 역사중에는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있지만 가슴아프고 힘든 역사도 있습니다. 그런 역사도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한부분이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원해서 걸어간 길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했던 일이라 더 가슴이 아프고 저도 여자이고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할머니들이 당당하게 외치는 희망의 외침을 가슴에 담고 싶습니다. 아울러 그분들이 겪은 일만으로도 힘드실텐데 세상에 다시는 그런 일을 겪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20년을 한결같이 세상을 향해 조용한 외침을 외치는 할머님들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지나간 역사이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한다면 나이가 드셔서 고령의 할머니들이 모두 이 세상에 안계실때 누가 그분들을 기억해줄까요? 아픈 기억이지만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오신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힘이 없고 약해 세상의 약자가 되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약한 여자들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할머니들의 건강과 편안함을 바라며 한 마음을 가진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