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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하여 이어령 교수님의 고뇌와 진실을 만났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머리말에서 언급되어 있지만 핵심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고백이며 유와 무가 만나 빛으로 변화하는 작업이라고 하였다. 노령의 지성인이 끝없는 순수함으로 향하는 고백이 바로 시집이다. 평생을 두고 딱 한번 시집을 발간했다는 고백이 시어를 만들고 시어에 충실하고자 했던 자기고백의 진실성을 알게 한다.
먼저 앞 편에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가 수록 되어있다. 결코 어렵지 않은 단어에서 깊은 기억을 끌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짙게 배여있다. 머리가 희어질수록 단어가 잊혀질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엄마의 기억과 체취가 가득한 시를 만난다.
나에게, 시인에게, 한국인에게, 하나님에게 라는 주제를 갖고 이후의 여백을 채워가고 있다. 최고의 지성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이 있다. 수줍어 하는 양심이 실려 있어 많은 독자에게 겸손을 배우게 하고 지성인의 고민을 공감하게 한다. 심오하지 않은 듯 일상의 이야기들이 교수님을 통하면 심오해진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메이고 아련해지는 것은 시라는 장르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한국인에게 들려주는 시들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우리 민족을 향한 간절함이 절로 느껴진다. 이념을 논하지도 않고 갈등을 드러내지도 않고 오직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민족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더욱 감동이다. 이런 애정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시이다. 교수님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하여 개인적 아픔을 무신론자의 기도로 드러내셨다. 하나님께 향하는 지성인의 문턱넘기가 시로 나타난다. 지성과 이성으로 하나님을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성으로 만나는 고백이 있기에 참 신앙인을 그려보게 한다.
시집에는 교수님의 평생의 삶이 축소되어 있다. 그래서 부끄러운 고백을 고령이 되어서 드러낸 용기가 대단하다. 무엇보다 부끄러운 고백이라는 시들이 우리의 이성과 지성을 부끄럽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교만한 영성을 돌아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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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낸 시집으로 본격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시점 전후에 주로 쓴 시들이 담겨 있는 종교색이 짙은 시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딸에 대한 깊은 사랑, 지식인의 고독한 내면 등 예수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사연을 밝힌 이어령 선생님은 이 책에 담긴 시들을 통해 한층 부드럽고 정제된 영적 고백을 들려주고 있다.
이 시집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1장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 - 어머니들에게’ 에서는 유년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외로움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을, 2장 ‘혼자 읽는 자서전 - 나에게’ 에서는 시인의 자전적 요소와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시들을 담고 있다. 3장 ‘시인의 사계절 - 시인에게’ 에서는 작가가 생각하는 시와 시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계절과 자연의 모습을 통해 노래하고 있으며 4장 ‘내일은 없어도 - 한국인에게’ 에서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며 한국사회에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시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 ‘포도밭에서 일할 때 - 하나님에게’ 부분을 통해 지금까지 닫혀 있던 영성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 앞에 겸허한 자세로 남은 인생을 굳건히 살아갈 것을 맹세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몇몇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어미 곰처럼’이란 시를 통해 부모가 자식을 품는 사랑만큼이나 놓아주는 사랑도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반짇고리’라는 시를 통해서는 문명의 미래는 미래학자들이 논하는 어려운 이론과 분석이 아닌 ‘어머니’, ‘모성’과 같은 가치가 담고 있는 감성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또한 ‘메멘토 모리’라는 시에서는 어린 시절 뜻 모르게 흘렸던 눈물 한 방울을 인간의 삶과 죽음의 본능적인 인식의 의미로 읽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상의 풍경을 통해 삶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세븐일레븐의 저녁시간’, 나뭇잎 하나의 흔들림을 통해 마음과 우주의 의미를 탐색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글 쓰는 이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대장장이와 사냥꾼, 목수의 모습을 통해 일깨우는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등 보석 같은 시들이 넘쳐난다.
시라는 것은 한 번 읽어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몇 번을 읽으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평생을 학문과 지식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이어령 선생님께서 가장 높은 경지인 영성의 길로 발을 내딛으시면서 남긴 이 자취들은 두고두고 다시 읽고 깨우침을 받을만한 훌륭한 멘토 같은 느낌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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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이 책의 저자인 이어령 박사님을 가리켜 '우리 시대 마지막 지성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기도 한다..이것은 그만큼 이어령 박사님의 지적인 능력이 누구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하지만 자신이 가진 탁월한 능력으로 인해 정작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을 깨닫기까지 무려 70여년의 세월을 흘려 보낼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자신의 지적인 능력으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어령 박사님이 예수님을 믿기 이전부터 정리하였던 시를 한데 묶어 놓은 것이다..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이전부터 절대자 하나님을 향한 갈구함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을 잘 알게 해주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솔직히 시라는 장르가 문자적으로 접근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는 듯 하다..함축적으로 기록한 내용들이기 때문에 시인의 마음과 같이 동화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그런 점에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남기는 것은 조금 미안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어령 박사님께서 애틋하게 여기는 존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져 있는 고백이 있다..아울러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고백하고 있다..이 모든 것이 절대자 하나님을 향한 구도자의 입장에서, 아니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인격적인 만남을 갖기 이전 무신론자와 같은 입장에서 고백한 내용들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묻어나오는 듯 하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는 것처럼 최근 이어령 박사님께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함으로 인해 그의 글과 이야기들에 대해 호의적인 것이 사실이다..이전에 읽었던 자전적 고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던 내용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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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을 때 책 속에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 이야기가 나와서 또 다른 그의 시를 읽고 싶었었는데 마침 읽게 되었다. 지성인의 시는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가 무신론자였을 때 썼던 시와 주님을 영접한 후에 쓴 시가 함께 실려 있어서 그가 개심한 후와 전의 시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흐름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시인이라 부르지 말라고 말하는 그, 그러나 그런 말과는 상반되게 평론가, 소설가, 교수를 넘나 들면서 그동안 쌓아온 축적된 글솜씨는 훌륭한 시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50년의 문단 생활을 해 오면서 처음으로 시집을 내서 부끄럽다고 말하는데 시는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서 지성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저자가 약간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그럴까? 사람이 홀로 있을 때면 얼마나 철저하게 자신이 연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인지? 그가 일본 토쿄에서 적은 글을 보면 그 외로움과 쓸쓸함이 절절이 배어 나온다.
세븐일레븐의 저녁시간.
'비닐 봉지 안에서 식어가는 식빵의 식욕 체온계처럼 옆구리에 끼고 가다가 내일 아침에도 혼자 앉을 식탁을 생각한다.
세븐 일레븐을 나오면 가랑비가 온다. 지폐보다 가벼운 쇼핑백의 무게 비에 젖어도 가벼운 하루의 무게.
아무리 지성인이어도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 앉을 내일 아침 식탁을 걱정하는 그의 눈빛이 아른 거린다. 딸의 아픈 몸을 위해 기도하면서 딸이 병이 나으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서원기도를 했던 그가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고 미루고 있을 때 도쿄에서의 홀로 외롭고 적적했던 비 내리는 밤의 이 시간을, 좀 더 일찍 기억했더라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수면제 스무 알 속의 밤'에서는 '황진이의 동짓달 밤과도 같이 아무 의미도 없는 차가운 눈물이 고인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한 척 하면서, 얼마나 단단한 지성의 껍질이 그를 두르고 있었으면 딸 민아의 간곡한 부탁에도 하용조 목사님의 권면에도 그토록 오랜시간을 사람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지. 그런 사람의 눈에서도 이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차가운 눈물이 고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임이 틀림없다.
여러 사람의 이목이 두려워 온누리 교회의 일본 행사 때 일본에서 세례를 받았던 이어령.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그 글을 읽으면서 그런 영적 상태가 조금은 미심쩍기도 했고 의심스럽기도 했었다. 본인도 지성과 영성의 사이 문턱에 걸쳐있는 '경계인'이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영적으로 단단한 것을 먹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키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던 바울의 말이 생각이 났다. 아직은 단단한 것을 먹을 신앙의 상태가 아니어서 그렇겠지라고. 넘어간다.
5부로 된 시에서는 어머니들에게, 나에게,시인에게,한국인에게,하나님에게. 향하는 시들이 골고루 배열되어 있다. '한국인에게'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들이고 '나에게' 는 일본에 체류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흘러 나온다. 수록된 시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시들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개인적인 시심을 담은 4부의 '나에게'와 마지막에 실린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이다.
특이한 것은 이 무신론자의 기도 두 편이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 무신론자였을 때 쓴 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는다고' 그리고 '가끔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은 당신 앞에 무릎을 끓고 기도를 드립니다. 라고 적고 있다.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았어도 그의 마음 빈 구석에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계속 소리치며 그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아무도 모르게 시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주 단단한 껍질로 둘러 쳐진 지성인 한사람을 개심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딸 민아를 통해서 역사 하셨고 그외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그를 하나님께로 이끄셨는데, 그가 아무리 겉으로는 강한 척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척 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는 갈구를 외치고 있었음을 그의 시를 통해서 반사되는 프리즘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 책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시집을 통해서, 지성인들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고 있는 단단한 이성의 껍질을 깨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모두 나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문학박사,문학 평론가,이화여대 명예석좌 교수 이어령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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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이어령교수의 마음을 담은 기도의 시라고 하면 될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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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구절] 기울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집을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않는 집을 내 영혼의 집을 짓게 하소서 -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中 ******************************************** 이어령님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바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저자의 간증집이었고, 그 책에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를 처음 읽었다.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제목으로 저자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50여년간 수많은 작품을 내었지만, 시집은 처음이라는 수줍은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제목부터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시집, 어머니들에게, 나에게, 시인에게, 한국인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드리는 시들이다.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으로 시작되는 제 1장,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시들을 읽으면서 작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또 딸아이를 키우고 둘째를 기다리는 과정에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주는 아주 작은 상처들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시를 통해 이렇게도 지적해주시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물론 저자는 이 시가 자녀 양육 도서로 활용되기를 바라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제 2장 <혼자 읽는 자서전>은 저자가 일본 생활 중에 틈틈이 적어놓은 시들이라 그럴까? 저자의 외로움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이 저자를 시인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하면서 제 3장 <시인의 사계절>을 읽는다. 시인들의 아름답고, 때로는 처절하리만큼 외롭고 슬픈 시들이 바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빛내고, 또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아름다운 다리 (브릿지)가 아닐까? 제 4장 한국인에게 바치는 시들에는 저자의 한국인들을 향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비꼬거나 비판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으로, 우리의 문화와 어린 시절, 또 현대인들을 위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하나님께 바치는 시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비롯해서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하용조 목사님의 얼굴’ 등이 실려있다. 저자의 신앙고백이 담긴 기도문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보배 같은 책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편집이다. 두 페이지 분량의 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책장을 넘기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점과, 한 페이지에 실을 수 있는 분량인데 두 페이지에 실었기에 두 번째 페이지에는 딱 한 줄만 실려 있는 점 등을 보완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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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씨하면 여러가지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는 것을 본다. 때로는 전 문화부 장관으로, 때로는 대학교수님으로, 때로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고, 심지어 교과서에서도 그분의 글을 쉽게 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례를 받기까지 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와 자신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이미 읽어서 알게 되었다. 그 과정들이 참 거대한 파노라마와 같다고 불러도 별로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만 향하던, 지성을 향해서만 끝없이 전진하던 거대한 물줄기를 하나님께서 돌이키셨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을 왜 이 시대의 지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저자의 대부분의 출판물들은 산문이었다. 저자는 산문을 딱정벌레의 딱딱한 겉갑옷으로 비유하고 있지만, 저자가 바로 그런 산문에 둘러 싸여 살아왔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고 있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 시인이라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그렇게 느껴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감성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새로운 부분들을 다시 한번 느껴보게 되었다.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나, 전해져오는 감정은 웬만한 시인들보다 훨씬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정도였다. 이 책의 제목인 어느 무신론자는 아마도 저자 자신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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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쓴다는것은 그 만큼의 정제된 언어와 감성과 감각과 때로는 날카로움이 필요하다.
이어령 선생님의 시를 만난다는것 참으로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 쓴 시는 어떨까? 싶었는데 선생님 다운 글, 선생님의 표현이 뭍어나는 시의 세계료 초대되었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며 읽고 또 읽을수록 또다른 맛이 살아나는 시인것 같다. 어머니와 딸에 대한 각별한사랑은 시로 표현되어 노래하고 5단란으로 구성되어 시가 나란히 정리 되어 있답니다. 그 나이에 그런 표현의 시가 나온다는것이 무척 신기하고 사랑스럽습니다. 혼자누운날 이라는 시에서는 나를 돌아보는 메세지를 남겨준다 아파서 온갖 바이러스들과 씨름하면서 살아있다는것을 또다르게 느끼게 되는것, 표현들 하나하나가 주변의 소재 하나하나가 얼키고 설켜 시가 되어 노래가 되어 삶을 노래하는 시집으로 표현되어진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고 싶어하지만, 글이란것, 시라는 이름으로 곱게 정제된 언어도 없을 듯 싶다. 시 속에 그분의 혜안이 들어나고 삶과 인류를 향한 사랑이 묻어난다. 이 아름다운 이집 한권만으로도 진한 떨림과 여운이 있기에 언어속에서 표현된 시가 더욱 마음을 잔잔히 흔들어주는것 같다. 무신론자의 기도, 그 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딸을 향한 하나님에 대한 근원의 물음이 난 참으로 좋은것 같다. 그 분의 고백과 같은 그 시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자 느껴지는 메세지가 너무도 자랑스럽고 좋다. 믿음의 사람이 되고 난 후의 통찰력은 다른 어떤 표현들보다도 형용할 없을 만큼의 따뜻하고 평온한 시선의 시가 더욱 마음을 편안케 해 주는것 같다. 언제가 시간이 흘러 내 속에 시라는 존재가 표현된다면 나는 더욱이 아름다운 표현보다는 고백의 시로 마음의 여운을 담기는 글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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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님이 시를 쓰셨다.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 써두었떤 시와 하나님을 알음 알음 알아가는 가운데 쓴 시인 것 같다.
무신론자였을때 사물을 보았을때와 하나님을 인정해가는 과정에서 쓴 시에서 각각 다른 느낌을 받는다. 시를 통해 감정의 유입과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따. 독서치료과정을 공부하면서 시도 노래도 모든 매체가 치유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시 한편이 내 마음을 어루 만져 주기도 하고 감정의 이입으로 인한 동화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시를 통해 상대방의 감성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나의 감성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장 '눈물이 무지개된다고 하더니만' 에서는 아련한 어머니의 회상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작고 예쁜말들'에서는 어머니로서 내 아이에게 온갖 예쁜 명칭으로 생명을 부여해 보게 한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고운말과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가 반성해보았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언사로 부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준 적이 기억나 부끄러웠다. '장미가시에 찔려서'에서는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 릴케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치명적인 상처와 고통들을 볼 수 있는 자는 어머니뿐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2장 혼자읽는 자서전 메멘토모리 "나는 언젠가 죽는 것으로 생각하라'는 뜻으로 먹고 마시라 내일 죽으니까 라는 향락적 찰나주의의 경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러니 오만하지 말고 경건한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엄숙주의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메멘토라는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나서 잠시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기도 한다. 싯구절중 '수의의 까칠한 촉감은 감출 수가 없어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이유를 아는가 에서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엄숙한 분위기를 넘어서 아이일지언정 고통과 숙명을 벗어날 수 없음을 옥죄어 온다. 숙명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어쩌지 못하는 그러함들...이야기 하고 있다. '혼자 누운날'에서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많은 세포와 생명들을 거들떠 보는 세심함을 엿볼수 있다. 나 또한 내 몸에서 세균과 바이러스로 부터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나의 작은 생명들에게 고마움과 경이로움을 표한다. 3장 시인의 사계절에서는 시인의 모습으로 사계절을 보고 느낀다. 4장 내일은 없어도 민족적인 정서로 한국인들을 걱정하고 또 우리나라에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잡는다는 것' 이라는 시가 참 재밌다. 잡는 다는 것은 아는것이고 구하는 것이고 소유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에서 첫생일을 맞은 아이의 돌잡이를 묘사해 놓은 것이 참으로 위트가 넘치면서도 딱 맞아 떨어지는 어문들이 아닐까 싶다. 5장 포도밭에서 일할때 드디어 그가 하나님께 대화하기 시작한다. 그가 탕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포도밭, 내가 살집,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통해 말씀 하신 것을 알아내고 아담의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 무신론자의 고백에서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제가 나님을 압니다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란 것을 나 또한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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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님의 타이틀 제목 어느 무신로자의 기도 2편을 보면 아마 신앙을 가지지 않았을 때 쓰신 기록이고 그 밑에 주를 달아서 그 시를 쓴 배경을 달고 있다. 그 당시 딸이 병에 걸려 아픈 상황을 앓았을 때 얼마나 그 딸을 위해 신앙이 있든 없든 간절한 기도가 필요했으리라~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의 아픈 모습을 보면 그 자식을 대신해서 아파줄 수 없을까 하는 애절한 마음과 그 고통을 가슴으로 삼키면서 지켜볼 것이다.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크리스챤이 되신 것을 예전에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 당시 무신론자라는 시제목을 적었지만, 그 안에는 벌써 그 분의 숨소리를 듣고,그 분의 야윈 손과 못자국의 아픔을 함께 아파했던 시인의 눈물 속에 주님이 함께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용서를 구하는 간절함 속에 주님은 팔벌려 안아주시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어느 덧 고희를 훌쩍넘긴 후반에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쓰신 시들이 많다. 그래서 자녀를 떠나보내는 어머니(부모)의 마음과 자녀를 키운 사랑을 그의 견륜을 담아 시안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해산의 고통을 통해 낳은 자녀는 탯줄을 끊을 때부터 안타깝지만 헤어지는 연습을,, 그럼에도 한없는 사랑을 주시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담고 있다. 또한 나에게 쓴 혼자읽는 자서전을 통해 미꾸라지잡고, 굴렁쇠를 굴렸던 어린시절추억을,,젊은 청춘이 고스란히 남은 흑백사진의 추억을,, 잠이 오지 않는 고독한 불멸의 밤을, 혼자 아파서 처절히 외로움을 느끼며 눈물지는 것을 시를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켜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의 자서전적 시를 읽으면서 함께 어린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하고, 청춘시절 속의 추억거리들을 끄집어 내보기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시인을 사계절로 표현한 시들은 각 계절에 맞게 언어의 마술사처럼 다양한 은유를 통해 멋지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에게 들려주는 시는 벼랑끝에서도 희망을 주고, 세계속에 우뚝선 한국인의 기상과 포부를 심어주는 내용들 속에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언어의 마술사와 같은 분이 겸손하게 서문에 시를 쓴 것에 대해 조심스럽고 겸손한 말을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산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리고 보여서는 안될 달의 이면 같은 자신의 일부를 보여준 것입니다. ....... 그러기에 시를 쓰고 나서는 늘 후회를 합니다. (본문 머릿말 중~) 아직도 자신을 시인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 속에 겸손함이 묻어난다.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부족한 지성에서 영성을 갈급하는 기도처럼 그런 절실함이 담긴 시를 갈급하는 이어령님의 시 속에서 더욱 진실함 속에 우리네 인생도 함께 돌아보며, 내다보는 시간이 되어 행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