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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사생활 캐고 들여다보는 걸 싫어하는데 이 책의 내용은 그걸 자세히 살펴보고 내 관점을 잡기 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태도였다가 저 태도였다가 여러 날을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 중인 채 이 리뷰를 쓴다. 얘기를 진행하면 뻔히 알 테지만 사건의 중심인 L 작가는 이니셜로 진행하겠다. #오타쿠_내 성폭력 해시태그로 촉발된 L 작가 사건 이후 이 책은 2016년 10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그 문제를 토론한 모임에서 나왔다. 9 패널의 글이 실려 있고 L 작가도 모임에 동참했으나 그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다. 「오해의 세계」에서 이나라는 L 작가와 작품의 별개성을 부정한다. 이나라는 L 작가와 ‘미지’의 관계를 플로베르와 ‘엠마’처럼 별개로 볼 수 없으며 버지니아 울프와 ‘로우다’(《파도》)처럼 닮았다고 말한다. L 작가가 트위터 상에서 끊임없이 보인 극악한 패드립과 작품 속에서 남성을 강간하는 미러링 등은 자신을 전혀 변호해 줄 수도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도 없게 한다. 글을 위한 글 같은 이론을 끌어온 글보다 L 작가의 작품 분석으로 해명하려한 이춘식의「우리들의 일그러진 여왕」이 가장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춘식은 L 작가가 피해자 A의 성폭행 사주·방조한 일을 희화한 작품으로 논란되고 있는 「포도주와 포타주의 식사」, 「아이들」을 다른 시기의 작품과 비교해 사건과 관련 없음을 증명해 보이려 하지만 작가를 지지하는 방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건과 연관성이 짙은 「포도주와 포타주의 식사」는 A의 사건이 일어난 즈음에 그려졌다는 게 더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L 작가가 A가 강간 당한 것은 몰랐다고 하더라도 A-B의 섹스 상황을 알고 있었고 조롱과 복수의 의도인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정황과 1%의 연관성도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의 추정이 답정너 빙의 상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사람들의 분노는 터부를 다루는 창작의 자유를 간과해서가 아니다. L 작가가 현실을 비틀어 가져오는 방식,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그가 내세운 "일반 시민으로서의 윤리의식과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항변을 무색하게 만들며, 이 사건처럼 문제로까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을 혼동하지 말라고 지적하기엔 그가 내보인 게 너무 많다. 「이 여자들을 보라」에서 양효실은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 이론을 가져와 “강간을 무릅쓸 권리”를 마치 피해자 A가 들으라는 듯이 말하고 있는데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글이다. L 작가를 내치는 것은 문화계의 자본주의적 계산법이라고 말하는(p25) 것도 단순한 독법 아닌지. 나도 한국의 윤리의식, 도덕적 가치관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 사건에서 L 작가의 창작 문을 닫은 건 고발자 A나 계약을 거부한 업체나 페미니즘의 숙청, 여론이 아니라 작품 안팎에서 그가 행한 위악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건 B였지만 이처럼 눈덩이가 되어 돌아오게 만든 건 L 자신임을 이 책에서 왜 한 사람도 짚고 있지 않은가. 그 또한 피해자 L 중심주의 아닌가. 지금 결과로써는 가련하고 딱한 예술가 L이 되고 있지만 그 많은 과정 속에 자신을 무너뜨릴 탑을 쌓고 있었다. '그래, 사람들은 내게 늘 이랬지…' 하며 피해 의식을 키우고 체념을 (L 작가가 자신의 성격으로 몇 번을 강조하기도 한)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치장하고 외부에 무기로 휘두르면서 그리고(drawing) 더더 그랬지. 자신이 뭘 그리고 있는지 정말 몰랐나. 예술이니 창작이니 자유니 하면서 뒤에 숨지 말라고!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참을 수 없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얽매이기보다는 올바른 정보인지 따져야 한다. ㅡ 에이미드 E. 허먼 《우아한 관찰주의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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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말해지거나 더 말해진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잃고 혼란스러워진다. - p.105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를 읽기 위해 우선 문제가 되는 "이자혜 사건"부터 찾아봐야 했다. 현실문화에서 나온 우리 시대의 질문 다섯번째 시리즈인 이 책은 "페미니즘이 이자헤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 에 대해 다루고 있다. 책의 275쪽에 약간의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만 그로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고 따로 포털을 검색하여 해당 사건을 갈무리하여 이 책의 출간 의도와 배경을 알아야만 했다. 누구나 책을 읽기 전에 해당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하겠지만, 이 사건을 알아본다면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판단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쟁점이 되는 성관계에서 두 주체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여부부터 시작하여, 당시 미성년이었던 피해자의 선택에 주체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문제도 얽혀있다. 거기에 제 3자인 이자혜의 성폭행 공모/조장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까지 간다면 더욱더 복잡해진다. 이자혜가 그려낸 창작물들과 남겨놓은 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의 글들이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폭력성과 원색적인 욕망의 적나라한 표출은 현실과의 경계를 교묘히 이용한 이입과 조롱의 단면이기도 했다. 알아보기 위해 건드렸다가 더욱 복잡해진 눈으로 '당신은 피해자입니가, 가해자입니까'를 읽었다.
쟁점은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혹 모두가 순결하고 정의로운 입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혜가 닿아있는 모든 부분에서 그를 제거하여 삭제해버렸다는 점이다. "소비자본주의는 이제 '유저' 혹은 '독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도덕적인 행위는 이제 윤리적인 소비자가 문제시된 생산물, 혹은 생산자를 시장에서 축출함으로써 실현된다. 성폭력 사건에 연루된 소설가, 시인의 작품을 삭제하라는 요구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을 시장에서 쫓아내라는 요구들은 그 작품 내지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된다는 식으로 개념을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윤리의 이름을 내건 집단적 알리바이 만들기에 가깝다. - p.44 페미니즘이 해시태그를 만났을 때" 공공연히 알려진 유명인에 의한 폭력/피해 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를 알리면서 원하는 것이 사과와 보상 그리고 유명인인 가해자를 공적인 매체에서 더이상 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이자혜가 '제거'된 각계각층의 빠른 피드백이 대중의 요구에 발빠르게 부합한 점으로 보인다. 부정을 저지른 자의 창작 또는 공공연한 사회/경제적 활동은 사회윤리 의식에 반하는 결과를 보인다. 수많은 '청산'들은 시대의 과제이고, 우리는 그토록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사회가 되길 바라왔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로 타인을 상처입히고 손해보게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죄과와 별개로 구분되는 창작/사회/경제 활동으로 인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이익을 보며 지내고 있다면 그러한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적 관점 때문에 서문에서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많은 관점들이 "이자혜는 여자이기 때문에 수 시간만에 밥줄이 끊겼다(이 주장을 반박할 만한 근거가 있다면 제발 알려달라). - p.120 아직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며 그의 제거됨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계속하여 만약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고려해보길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미지가 경험하는 세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의, 여성의, 청년의, 빈곤 계층의 경험이 녹아 있다. - p.172 오해의 세계" 는 점에서도 이미 삭제된 이자혜의 창작물들 중 남아있는 몇 편만을 본 지금에서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음을 밝힌다.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그렇지 않다면 미자를 통해서 느꼈을 공감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신은 깨끗하길 원하는 위선'이라는 시선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한편으로 이자혜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만약 내 지인의 일이라면 다른 면모를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동감을 한다. 이 이상의 것들은 더이상 판단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에 부친다. 현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뒤늦은 부스러기들로 이만큼의 입장을 드러낸 것 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급하는 일 만으로도 부정적인 것으로 취급/분류되는 날선 분위기와 무엇도 결론나지 않은 채 소멸된 사건의 흐름이 그러하다.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275쪽의 개요와 197쪽의 '도덕적 폭력, 그 상큼한 쾌락의 원천'에서 다시 서문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65쪽의 '이 여자들을 보라:애드리언 리치의 '강간'과 비르지니 데팡트의 강간 이론'인데 이자혜 사건과 거리감을 둔 글로 맨 처음 혹은 가장 마지막에 읽는 것을 추천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잘 아우르는 내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자혜와 거리를 둔 내용의 글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심정적으로 그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한 글도 접해보고 싶었다. 번외로 아쉬운 점은 우리 시대의 질문 시리즈가 꽤 좋은 기획으로 출간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목록이 있는지 찾아봐도 검색이 잘 걸리지 않는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1,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2, 곁에 서다 3 까지만 대표 포털에서 검색되고, 인터넷 서점에서도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4 까지만 확인된다. 다섯번째 시리즈까지 나왔는데. 시리즈 디자인을 좀 더 통일감있게 해서 시리즈 느낌도 팍팍 내주고, 검색에서 확인될 수 있게 출판사 블로그에서도 강조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