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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그리스도교는 '예수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라는 단순명료한 믿음이었다. 그러다 135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축출하면서 그리스도교 또한 지중해 연안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스 철학의 본거지에서 그리스도교는 피할수 없이 본질, 실체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받게된다. <신플라톤주의와 그리스도교> -플로티노스 3세기 초에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그리스도교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 플로티노스는 그리스도교에 우주만물의 근원으로 '하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하나는 감각세계의 저너머에 있는 초월적 존재로서, 존재 이전에 스스로 존재하며 완전하고 영원불멸하다 하나에서 정신이 나오고 그로부터 영혼이 나온다. 하나-정신-영혼의 관계는 그리스도교의 성부-성자-성령 개념에 대입될 수 있다 -오리게네스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에 접목한 사람은 오리게네스다. 그에 따르면 성부는 존재의 저편에 있는 완전한 신성이다. 그 신성은 넘쳐흐르는 선으로 자신에게서 로고스를 떠나게 한다. 그가 곧 성자다. 성자는 성부의 본질에서 났지만 성부보다 열등하다. 성부는 성자를 통해 세상을 창조했다. 성자는 성부와 피조물을 잇는 중개자다.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은 성자의 신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성부-성자-성령을 수직적, 종속적으로 배열한다. 이 논리는 이신숭배는 극복했지만 성자의 지위에 대한 새로운 논란거리를 남겼다. 그리고 이것은 4세기의 삼위일체 논쟁으로 이어진다. <삼위일체 논쟁> 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 예수는 신 자체인가, 아니면 신의 피조물인가? 삼위일체 논쟁은 예수를 최고의 신으로 모시면서도 이신론이 되어서는 안된다.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일치와 실체적 차별을 설명하면서도 다신 숭배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표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1.호모우시오스파(정통파): 성부와 성자는 본질이 동일하다. 예수는 온전한 신이다. 2.안호모이스파(비유사파): 성부와 성자는 같지 않다. 성자는 성부보다 격이 낮은 피조물이다. 3.오모이우시오스파: 성부와 성자는 본질이 유사하다. 4.호모이스파: 성부와 성자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비슷하다. 이 중에서 정통파와 비유사파의 주장이 쟁점이 되며, 비유사파의 대표적 인물인 아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아리우스 논쟁'이라고도 한다. <아리우스 논쟁> 아리우스 논쟁의 발단은 319년쯤에 정통파인 알렉산더의 설교에 아리우스가 공개적인 논박을 한 사건으로 본다. -알렉산더(정통파)
-아리우스(비유사파) 아리우스는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에서 "성부보다 열등하다"에 초점을 맞추어 성부에게만 신성을 부여하고 성자를 명백히 피조물의 자리에 놓았다.
아리우스 논쟁은 그리스도교 전체의 문제로 번졌다. <니케아공의회> 324년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안정적인 정권유지를 해야했으므로 그 말많은 아리우스 논쟁을 끝내기위해 325년 니케아공의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정통파를 채택한다.
아리우스는 이단이 되어 추방되었다.( 이것은 이단을 국가가 처벌한 최초의 사례이다.) *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는 첫번째 보편 공의회다 마지막 보편 공의회는 교황 요한 23세가 소집한 1962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이후 아리우스의 복권을 요청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이에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 반박론>을 통해 이를 반대했다. -아타나시우스(정통파) 아타나시우스는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에서 "성자의 신성"에 초점을 맞추어, 성자 또한 성부와 마찬가지의 절대존재이며 성부와 성자가 하나라는 이론을 폈다.
그러자 아리우스파는 아타나시우스를 신성모독의 모함에 빠트린다. 콘스탄티누스황제에게 중요한것은 교회의 일치를 통한 제국의 안정이었을뿐 교리논쟁이 아니었으므로 신성모독과 논란으로 인한 분쟁을 없애기 위해 아타나시우스를 해임하고, 추방했다 그리고 아리우스는 복권되었다. 그러나 아리우스의 주장은 여전히 '이단'이었다.
이단이 없으면 정통도 없다. 불의가 없으면 정의가 빛나지 않는다. 곧 그리스도교는 아리우스 이단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논리적, 철학적, 신학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허다한 지역종교, 민족종교의 범주를 벗어나 인류보편의 종교가 될수 있었다. <동서 교회의 대립> 신성교리를 둘러싼 교회의 내분과 갈등의 이면에는 엄청난 이권이 걸려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국가가 해야할 복지행정의 일부를 교회에 맡김으로써 그리스도교에 커다란 특권을 부여했고, 그리스도교는 거대 권력으로 성장했다. 특히 동방교회는 정치와 결합함으로 인해 이런 특혜를 누려왔다. 반면 서방교회는 정치적으로 독립되다보니 교회의 정통성을 확보했으나 혜택에서는 제외되어 동서 교회는 대립이 있어왔다. 아타나시우스의 추방으로 이 대립은 더 심해졌다. 아리우스파인 동방에서는 아타나시우스의 해임에 동의했고 정통파인 서방에서는 아타나시우스의 복권을 지지했다 동서 교회의 대립은 이후 사르디카 회의를 기점으로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으로 분리된다. <성경의 정경화> 아타나시우스는 복권됐으나 이후 정치적 소요 속에 4번의 추방과 복권을 더 겪었다. 그리고 366년 아타나시우스는 결국 복귀하여 주교직을 되찾았다. 367년 일흔살에 아타나시우스는 성경의 정경화를 이루어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당시 수많은 유사문헌들 가운데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발표한 것이다. * 오늘날의 성경은 구약 39권(가톨릭은 46권), 신약37권이다. * 신약의 정경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2세기 중엽 마르키온은 구약의 폐기를 주장하면서 11권만으로 된 신약정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많은 부분을 삭제하여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지만 그 시도는 주목할만하다. <콘스탄니노플 공의회> 콘스탄니노플 공의회에서는 성령의 역할과 마리아의 동정수태조항이 새로이 삽입되었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다른종교와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은 일부광신도의 주장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교리안에 내재하는 논리다. 이러한 유일신과 삼위일체의 강력한 힘으로 지난 2000년동안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세계로 뻗어나갈수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종교의 자유를 선언하며, 타 종교를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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