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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게 된 어떤 장소나 거리에서 종종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한 번쯤 와 본 것 같고, 꿈에서 본 것도 같은 그 불편한 익숙함.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다보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날렵함에 감정은 어느새 불편함에서 불쾌함으로 물들어 시든 결말을 맺는다. 래리 크랩의 <영적 가면을 벗어라>(복 있는 사람)를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오랜 시간 나를 알아온 것처럼 내면 깊은 곳을 헤집고는,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감정의 잔재들을 들춰내는 그 집요함에 그만 감정이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그만큼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는 내게 이 책은 처음부터 미운털이 고스란히 박히고 말았다. 선물 받은 책이기에 읽고 있던 다른 책까지 뒤로 하고 먼저 붙잡았는데, 초반부터 묵직한 몇 방의 카운터펀치를 맞고 보니 슬슬 속이 뒤틀리고 선물해준 이에게 배신감까지 들었다. 어째서 이런 책을 주었단 말인가? 그 속내가 나를 미치도록 집요하게 만들었다. 마치 우연히 찾은 어떤 장소나 거리에서 느낀 낯설지 않은 익숙함처럼. 결국 시퍼렇게 날을 세운 -표지를 참고하시라. 마치 망나니처럼 칼을 들고 내 목을 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고, 한 장 두 장 합을 더하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때로는 부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수긍하기도 하면서 저자의 말을 쫓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컥하는 또 한번의 ‘욱!’하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났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감정이 뒤틀릴 만큼 오랜 시간 참고 견뎌 왔던 지난날의 어떤 기억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그 때의 시간과 흔적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던 것이다. 다 잊었다고, 더 이상 나를 뒤흔들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래리 크랩은 고고학자라도 된 것처럼 내 안에 침잠된 딱딱한 기억의 화석들을 끄집어내어 내게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이다. 1988년 초판이후 국내에서만도 50만부 이상 판매되며 많은 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진 이 책은 나와 같이 가면을 쓰고 살면서도 그 사실조차 잊은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잠언서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 가도 기쁨이 없고, 예수를 만났어도 삶에 변화가 없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래리 크랩의 명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며 드디어 내게도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는 물음에 ‘백설공주’라고 선뜻 말하는 진실의 거울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녀가 깨뜨려 버릴 수도 있는 다급한 순간에서도 거짓이 아닌 직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주고, 더 이상 감추려 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 사실에 감정이 상하고, 사춘기 아이처럼 반발심도 들었다. 자기가 뭔데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하는지 괘씸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도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히려 그 모습을 더 사랑하시는 분이 계심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심정을 붙잡고 조심스레 가면을 벗은 지금, 이전에 느끼지 못한 개운함과 나라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다시금 생을 살아보자는 에너지가 생기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삶은 왜 이렇게 버겁게만 느껴지는지 고민이 되고 심지어 신앙생활마저 슬럼프를 맞아 허덕이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질과 모진 고통과 십자가에 못박이심의 과정을 통해 부활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처럼, 당신 역시 지난 과거의 나를 대면하며 잠깐의 고통이나 아픔은 있겠지만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잔가지를 재거하듯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친절하게도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스터디 가이드’까지 수록되어 있어서 조금 더 편리하게 영적 가면을 벗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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