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이슬람. 그런 이야기를 숱하게 들을 때마다 나는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이해치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슬람은 본래 호전적인 종교인데 반해 기독교는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라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 가히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 사회도 우리와 같은, 사람 사는 사회이기에 우리의 삶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삶이 행해진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만난 두 여성의 삶은 너무도 혹독했다. 가부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회에선 여성의 모든 주체성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가 만난 것은 혼란스러움이었다. 우리의 역사는 항상 일방적이었다. 보편적으로 강자에 의해 정의되고 강요되는 것이 역사라고는 하지만, 난 이란의 팔레비 왕조를 항상 긍정적으로 파악하곤 했었다. 어린 시절 심심찮게 넘겨보았던 인명사전은 나에게 어떤 비판적 사고도 허락치 않았었다. 이란 사회에 속해보지 않은 이로서 그 사회를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큰 위험을 안고 있는 행위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그는 서구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추종하는 자에 불과했다. 그의 개혁은 겉으로 보았을 때 이란에 부를 가져다 준 것 같았지만, 정작 이란의 국민들은 어떠한 혜택도 누릴 수 없었다. 오히려 팔레비 왕조의 무조건적인 서구 숭배 정치는 그에 준하는 반대급부를 낳았을 뿐이었다.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은 이란인을 위한 이란의 번영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안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씨앗이 있었다. 이란인이라는 범주 하에 여성은 포함될 수 없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알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남성의 존재를 통해서만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이란의 여성들이었다. 타라 그리고 베흐야트는 모든 이들이 당연시 여기는 그 부조리를 거절했을 뿐이었다. 그녀들은 사랑을 통해 결혼에 이르기를 꿈꾸었고, 당당한 삶의 주체로서 사회 속에 존재하길 원했다. 자신이 원할 때 아이를 가질 수 있길 바랬으며, 결혼 제도에 속하지 않더라도 인간으로 존중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타라의 삶의 끝은 결국 교수형이었다. 사람들은 그 폭력성을 알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시기했고, 여성들은 어여쁜 미모를 가진 그녀가 자신의 남성을 빼앗을까봐 그녀를 헐뜯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가부장성에 대해 결코 알지 못했다. 베흐야트는 타라를 통해 자신이 좀더 투쟁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란을 떠나 독일 사회에 정착한 그녀에게 여성을 위한 삶을 가능케한 것은 다름 아닌 타라였다. 하지만 이러한 끔찍함이 이슬람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성을 정당화시키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일방적으로 한 사회를 무너뜨리고 그 사회를 재건할 권한은 없다. 다만 그 사회가 지닌 모순에 대해 고발하고, 사회 스스로 새로운 합의점을 찾도록 기회를 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나 평등일 수 없다. 차도르를 벗는 것은 여성 스스로 행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여성들을 묵묵히 지지하는 남성들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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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르하면 이슬람 국가가 생각나고, 이슬람 하면 전쟁, 테러, 무자비한 폭력과 억압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앞이 제대로 보이기나 하는지 두 눈을 제외하고 온통 가리고 다니는 여성들을 볼때마다 여성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가리고 다녀야 한다는 한 이슬람 남자의 말도 떠오른다..
<차도르를 벗겨라>는 두 이란 여성의 삶을 통해서 억압된 이란 여성의 인권을 고발하고 있다.
부유하고 이란에서는 보기드문 자유로운 사고 방식을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베흐야트는 어느날 국선 변호사를 맡게 된다. 그녀가 변호하게 될 여인은 시골 마을에 사는 과부로 타라라는 여자였다.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한 남자의 첩인 그녀는 본부인의 두 자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그녀는 죽을 죄를 진 못된 여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서 그녀가 과연 두 아이를 죽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녀를 죽이려고 만든 함정에 빠져 억울하게 사형당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타라는 너무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그녀는 14살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의사과는 상관없이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 하게 되고, 갑자기 남편이 죽게 되자, 마을 여자들은 그녀를 증오하고, 멀리하기 시작했다. 혼자사는 여자는 모든 여자들의 적인 셈이었다. 특히 미모가 뛰어났던 그녀가 자신들의 남편을 홀린다고 생각했고,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사고 방식은 그녀로 하여금 생명의 위험까지 느끼게 했다.
처음 재판에서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에게 내려진 선처는 그 순간 뿐이었다. 당시 막 정권을 잡은 호메이니는 여성에게 최소한의 도움을 주었던 법률을 뜯어고치면서 최악의 법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법이 시행됨과 동시에 그녀는 사형에 처해졌다.
한 나라의 전통을 놓고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지만, 단지 여자란 이유만으로 당해야 하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차별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타라가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한 죽은 남편 가족과,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거부해서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이혼을 할 수 도 있고,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을 겪기도 하는데, 왜 유독 여자에게만 남자의 그늘에서 남자의 꼭두각시로 살라고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하는데,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 여성들이 너무 많다. 특히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도 그 죽음이 당연시 되고, 오히려 가해자가 영웅시 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하면 이런 부당한 일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너무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온 일들이라 법규정을 고쳐도 시골마을은 그 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사라지려면 여성들 스스로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희생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투쟁하는 사람이 있어야 남자와 똑같이 동등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p.s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가 아버지에게 "어느 여자가 천국에 제일 먼저 들어갈 수 있나요?"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한 여성을 찾아간다.
그녀를 첫번째 찾아갔을때 그 여인은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니 다음날 오라고 한다. 다음날 다시 찾아간 파티마는 또 다시 거절 당한다. 이유는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 여인의 남편은 파티마만 허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에야 겨우 그 여인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태양 빛이 엄청 뜨거운데, 물이 담긴 커다란 나무그릇과 그 위에 빵 한조각이 나무판자 위에 걸처져 있었다. 파티마가 그 이유를 묻자, 남편은 사냥을 하며 미지근한 물과 딱딱한 빵을 먹는데, 어떻게 자기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 말에 감동한 파티마는 그녀를 본받아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문 옆에 세워져 있는 큰 막대기를 보고 파티마가 이 건 뭐냐고 묻자, 그녀의 대답이 어이가 없다. " 남편이 집에 돌아와 저를 때리고 싶을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세워 놓은 거에요. 이렇게 문 옆에 두면 그의 수고를 덜어 줄 수 있으니까요"
이때 파티마에게 여자의 넓은 겉옷 아래 헐렁한 바지가 눈에 띄었다. 그 바지 틈에 난 긴 구멍사이로 여자의 음부가 보였다. 그래서 파티마가 그 바지를 꿔매는 것이 낫게다고 하니.. 그녀의 대답이 " 그럴 수 없어요. 전 사랑을 할 때도 남편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요. 이 많은 옷들을 모두 벗기는데 힘이 들면 안되잖아요"
- 첫번째로 천국에 들어간 여성의 이야기라고 들려주는 이 글은 나를 너무 화가 나게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