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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우선은 일반인들의 생각을 넘어서는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에 공감을 얻을 때다.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왜 여자들이 예수를 좋아하는가?”를 심리적으로 분석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답은 예수님의 섹스어필 때문이란다. 금발의 머리칼은 어깨를 덮고 있고, 자신을 향한 예수의 파란 눈과 마주치는 순간 여자는 정신을 잃는데 거기에 자비로운 예수의 손길을 체험한다면 그 여자는 예수님이 광신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30살 밖에 안 된 예수를 50살이 넘은 것으로 보았으니까 우리가 영화나 명화에서 본 것과 같은 미남은 절대 아니다. 예수를 나의 구원자라는 신앙적 대상으로 보기에 얼굴도 인자하고 온화한 미남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도난을 당했다. 논픽션이지만 재미있는 한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문체는 부드럽고 설득력이 있고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는 흥미롭게 진행이 된다. <모나리자>의 실종이라는 완벽한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책은 팩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작가의 상상력에 빠져 들기도 하고 그 당시 유럽의 문화사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재미도 있다. <모나리자>는 아침 안개 밑에서 반짝이는 허드슨 강을 따라 항해하는 증기선 모리타니아호로 시작한다. 고상한 남미 신사가 루이뷔통 여행 가방을 들고 있는데 그 속에 <모나리자>가 들어 있다. 1911년 8월22일 화요일. 기온은 35도에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모사하는 그림을 그리던 화가 루이 베루드는 <모나리자>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모나리자>가 사라진지 24시간이 지나서야 파리 경시청장 루이 레핀은 경찰 60명을 투입하여 사라진 그림을 수색한다. 그리고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다. 파리의 유력 신문 <르피가로> <파리-주르날> <뉴욕 타임스> 등은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호외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모나리자의 위상은 단순한 명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연인이었다. 루브르가 소장한 예술작품이 1백만 점이 넘는데, 편지가 오는 것은 <모나리자> 하나뿐이라고 한다. <모나리자>는 수많은 연애편지를 받는데 한 동안 그 반응이 어찌나 격렬했는지 경찰의 비호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몇 해 전에는 한 평생 보상없는 사랑에 낙담한 한 구애자가 그녀 앞에서 총으로 자살한 일도 있었다고 하니 <모나리자>는 가히 신화적인 여인이었다. 이 여인의 실종 사건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프랑스 곳곳에서는 모나리자의 부고를 알렸고 교회에서는 9일 동안 사라진 <모나리자>를 위하여 기도와 미사를 올렸다. 그녀가 사라진 빈 공간을 보기 위해 파리 시민들은 루브르로 몰려 왔고 그녀가 걸려있던 네 개의 쇠못은 그녀의 장례식장이 되었다. 많은 국민들은 네 개의 못 앞에 꽃과 추모의 글을 남기고 눈물을 뿌리며 애도했다. 애도객들은 연일 입장객 기록을 갱신했고 문상하지 못한 국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모나리자>를 훔쳐 갔을까 놀랍게도 프랑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화가 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를 지목했고 그들은 체포가 되었다. 그 이유를 저자 R.A 스코티는 많은 지면을 통해 이야기 한다. 그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루브르는 방부제를 전신에 바른 미이라와 같이 아무런 변화가 없는 진부한 박물관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의 대표가 <모나리자>이었고 타도의 핵심이었다. “레오나르도의 <모나리자>는 르네상스 미술의 정점이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현대 미술의 서막이었다. <모나리자>는 피카소 패거리가 맞섰던 것의 화신이었으며,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모나리자>와 정반대의 것을 그렸다. 피카소는 레오나르도가 그렸던 경험적 세계와 갈수록 더 불화했다. 그는 레오나르도가 능숙하게 다루었던 원근법을 파괴했고 레오나르도가 완전무결하게 그려냈던 사람의 얼굴을 삭제했다.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을 저 불멸의 <모나리자>는 우리를 끌어 당겨 무아의 경지로 몰아넣는 반면, 피카소의 창녀들은 우리를 노려보아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157쪽) 마치 이어령이 김동리, 서정주등을 향해 ‘이 시대의 우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처럼 피카소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타도의 대상이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화가 피카소와 시인 아폴리네르가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도난사건의 발생 2년3개월 지난 후 1913년 11월 피렌체의 미술상 알프레도 제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레오나르도'란 이름으로 보낸 편지에는 '도난 작품은 내가 갖고 있고 화가가 이탈리아인이니 작품이 이탈리아에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나라에 작품을 돌려주는 게 나의 꿈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바로 <모나리자>를 훔친 범인 빈센초 페루자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2년간 유리공으로 일했던 페루자는 재판을 통해 7개월 9일의 형을 살았고, '모나리자'는 루브르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루브르 박물관을 벗어날 수가 없고 현재는 두 장의 비반사 3중 접합 방탄유리로 둘러싸여 루브르미술관 카레관에 갇혀 있다고 한다. 냇킹 콜이 부른 Mona Lisa 가사 한 구절은 이렇다
Are you real, Mona Lisa? Or just a cold and lonely, Lovely work of art? Do you smile to tempt a lover, Mona Lisa 모나리자에게 “Are you real, Mona Lisa?” 라고 묻는다면 왠지 <모나리자>는 슬픈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왜냐하면 3중 접합 방탄유리로 둘러 싸여 있는 독방에서 홀로 살고 있는 모나리자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미소는 신비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감추기 위한 어색한 미소가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나리자>가 유명세와 대중매체의 극성을 이기지 못해 비극적 인물이 되고 말았다. 1911년의 도난 사건이후로 물리적 <모나리자>는 되찾았으나 그 영혼까지 회복한 것은 아니다. 절반의 회복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날 하루에 수백만 명이 <모나리자>를 보지만 모나리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310쪽) 육체적이고 찰나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삶에 만족한다면 모나리자의 슬픈 미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3중 방탄유리로 둘러 싸여있기에 이제 가까이서 그녀의 신비한 미소를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박제 되어진 그녀의 영혼을 볼 수 있다면 삶은 좀 더 바르고 깊어지지 않을까? 육체가 병들고 늙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병들고 늙는 것이 두려워야 한다. 논픽션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이 이야기가 주는 힘이다.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 당시의 사회나 문화적 배경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모나리자>가 얼마나 대단한 그림인가를 알게 된 것은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 <모나리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녀의 영혼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자기성찰이다. 나아가 내 영혼까지 볼 수 있다면 이 책은 이야기 이상의 가치가 있다. 명화가 인간의 영혼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