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의 정치는 역사 왜곡문제로 항상 조용하지 않은데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이 그 문제의 가운데에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특히나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일본의 지배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오는 민족적 정체성 확립과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한국사의 축의 기반을 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사의 경향은 일본에 대해 왜곡을 외치고 있지만 우리도 왜곡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또한 아직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혼재해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 포럼’에서 공개토론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수록한 것이다. 이 모임은 작금의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역사전쟁을 종식시키고자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국사적인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었으며, 이 설립목적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개토론회 및 세미나 결과를 책자로 발간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내용으로 보면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첫째는 엮은이가 이 책 전체에 대한 주제 발표 성격의 논문이 있고, 둘째는 공개토론에서 발표된 논문들로 주로 일제 식민지 시대에 관련된 논문이고, 마지막 부분은 둘째 부분에 있는 논문 및 이 책의 주제인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에 대한 의견이다. 둘째 부분에 발표된 논문들을 보면 국사에서 신화를 벗겨내려는 것과 일본의 서구 근대의 모방과 일본에 의한 조선으로의 이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왜곡과 차별화 또 일국사적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에 관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모임의 참여자들은 민족과 민족국가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의식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국가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민족이라는 허구적, 억압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세계시민의 구성원으로서의 연대를 구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역서서술에 있어 어떤 시각이 옳다는 주장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역사 서술은 언제나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국사의 해체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임지현교수는 이러한 말을 하고 있다. “최근의 역사전쟁에서 보듯이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현상적으로는 첨예하게 충돌하지만, 사유의 기본적인 틀과 이데올로기적 전략을 공유한다. 적대적이면서도 동시에 공범자적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즉 그의 말을 쉽게 표현해보면 표면에서는 서로간에 타자를 용납하지 않지만 속심으로는 서로 상대방의 존재에 고마워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 말을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런 견해는 각국의 역사서술이 내셔날리즘을 넘어 쇼비니즘으로 향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 볼 수도 있고, 그런 부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도 있는 부분이 있다. 실상 내셔날리즘의 강화는 군비경쟁과 다를 바가 없다. 일국에 있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역사 서술 방식은 다른 나라의 역사적 재무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계속 강도를 높여가는 순환을 이룬다. 이러한 그들의 견해에 는 그 반론도 많이 있다. 박지향교수의 논평에 의하면 국가의 해체는 ‘세계가 여전히 국민국가 체제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의 약화는 민족의 약화를 가져오게 되고 또 한국이 처해있는 국제정치적 조건 때문에라도 민족주의는 강력히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평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보면 허구성이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나 단일 민족에 대한 것이 결정적이다. 고고학상의 유물이나 유전학적 증거들을 볼 때에 우리 민족은 남방계와 북방계가 혼혈된 민족이다. 즉 단일 민족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허구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민족도 단일 민족은 없을 것이다. 세계 역사의 밑바닥을 흐르는 기본은 바로 교류이다. 물적 교류는 분명이 인적 교류를 동반했을 것이고, 전쟁 또한 교류의 한 형태라고 보면 단일 민족이라는 것은 분명히 거짓인 것이다. 실상 신화에도 역사성이 있는 부분이 있고, 역사에도 신화성이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신화를 역사성이 결여된 단순히 만들어낸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시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은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과 편협한 역사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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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통용되듯이, 기본적으로 역사는 그것을 기록하는 자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서술될 수밖에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책에서는 ‘국사의 해체’를 주장하면서, 그동안 국사가 ‘지배 담론으로서 민족주의를 생산-유통-소비하는 사이클의 핵심’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개별 국가의 역사를 넘어 동아시아 차원에서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드러내고 해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일군의 학자들이 조직한 모임이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러고 소개한다. 이 책은 해당 모임에서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논문들을 엮은 결과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록된 논문들을 일별했을 때, 과연 ‘국사의 해체가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한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역시 기록을 ‘국사’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국가의 실체가 엄존하는 이상 ‘국사’는 반드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일단 기록된 역사 기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가능하다고 하겠다. 다만 ‘국사’는 인근 국가와의 교류를 포함한 국제사의 문제까지 고려하여 보완될 필요가 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실제로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논문들도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특정 국가의 ‘국사’에서 다뤄지기 힘든 주제라고 여겨진다. 특히 동아시아 근대사의 경우 일본의 침략으로 야기된 한중일 3국의 ‘국제적인 관계’가 필연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사의 해체’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기술한다면,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 중에서 이영훈의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의 전환을 위하여’라는 논문에서, '국사의 해체'를 주장할 때 드러나는 문제점과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일본의 약탈 행위를 비판하는 한국의 국사 교과서 기술을 제시하면서, 당시 ‘조선과 일본은 관세가 폐지된 자유무역을 매개로 하나의 시장권으로 통합’되었기에 일본의 수탈 행위로 기술된 것에 대해 ‘필자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폭력적인 논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경제 발전에 일본이 절대적으로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사관’의 핵심적인 역사 인식이라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태와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상황도 ‘정당한 국제 관계’일 뿐이라는 천박한 인식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왜곡하고 일제에 적극 협력햇던 친일파들을 옹호하는 이른바 '뉴라이트' 논자들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는 요인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이영훈의 논리에 대해서, 이 책의 5부에 수록된 ‘한국에서 국사 형성의 과정과 그 대안’이라는 이영호의 논평에서 이미 충분히 논파되었다고 이해된다. 즉 토론회를 주관했던 ‘포럼에서는 국가주의적 역사 이해를 해체해야 한다고 비판하면서 제국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한 역사 이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음을 적시한고 있다. 아울러 그릇된 논리를 전개하는 이영훈의 주장이야말로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일방적으로 강조되고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역사적 타자성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가운데 정작 동아시아 민중의 지워진 것’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역할과 친일파들의 행위를 옹호하는 이영훈의 논리는 일견 ‘국사의 해체’라는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사’가 아닌 ‘일본사’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족주의 혹은 그에 입각한 국사의 서술이 지닌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기왕의 부정확한 역사 서술을 수정할 필요가 있음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사’에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었으므로 ‘국사의 해체’가 당연하다는 주장에 공감하기 힘들다. 더욱이 포럼에서 주장한 ‘국사의 해체’ 이후 역사 서술은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조차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를 기술할 때 ‘일국적 틀에 갇혀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국사의 해체’ 이후 새로운 역사 서술에 대해 포럼 주최자로서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는 임지현의 언급이 공허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그렇기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국사의 해체’를 주장하는 논리에 기대어, 일제 강점의 역사를 왜곡하는 이른바 ‘뉴라이트’의 그릇된 논리가 기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나는 요즘 약간의 고민에 빠져있다. 역사인식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고서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학자도 아니고 평범한 생활인에 불과한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지적호사일 뿐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그저 밥만 먹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옛 젊은 시절의 좌우명을 생각하면 또한 나와 무관한 문제도 아니다. 최근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시아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하느니, 경제적 교류를 강화해야 하느니 말들이 많은데, 항상 역사문제에서 한계에 부딛히고 만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그런 말이 있다고 한다. 정치인은 한계에 부딛힐때 항상 민족감정을 들먹이고, 그러면 그간의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 논의 되었던 모든 일들은 없었던 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3국의 민족감정은 대단한 것인가 보다. 그런 감정과 실제적 역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책이 다루는 주제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감정을 공유한 나는 괴로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