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의 영화 중에서 가장 편안히 볼 수 있었던 영화인듯 하다. 대학시절, 김기덕이라는 감독을 처음 알고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는 영화를 봤다. 지금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조재현은 그때에도 멋있었다. 아니 초라해진 인생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나 할까? 장동직은 연기를 못하는 뻣뻣함이 있었지만 북한 특수군 출신으로 나왔기에 그런대로 상쇄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프랑스 배우로는 드니 라방이 있었다. 당시의 그는 누벨 이마쥬의 선봉이었던 레오 까라의 작품 '퐁네프의 연인들' 주연으로 상당히 비싼(?) 몸인데도 불구하고 잠시 나오는 엑스트라 급으로 기꺼이 출연해줬다. 이후 김기덕에 대해 더 알기위해 데뷔작인 "악어"를 봤지만, 말 그대로 가능성이었을 뿐 크게 가슴을 울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에게서 뭔가 색다른 것과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후로는 "파란대문", "섬", "실제상황", "수취인불명", "해안선" 등의 영화가 나왔지만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영화에 대한 내 관심이 줄어든 때문인지, 볼 기회가 없었다. (실제상황은 본거 같군요. 섬도 봤나? 하여간에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하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지난 후 다시 봄이 돌아오는 자연의 섭리. 텔레비젼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아니었어도 이미 제목에서 영화의 주제나 스토리는 알 수 있었다. 보나마나 '윤회'를 얘기해겠다는 거군... 이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알겠고, 그럼 이것을 그는 어떻게 풀어갈까? 스님과 동자승만이 있는 산속 호수(저수지?) 위의 수상 절 한 채. 철저히 외부로부터 단절된 세상이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아마도 한 개인은 그가 밖으로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그에게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는 것이었을까? 동자승은 냇물의 물고기와 개구리, 그리고 뱀에게 돌을 매다는 놀이를 한다. 갑자기 그들에게 닥친 삶의 무게로 인해 버거워하는 생명을 보며 동자승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그런데 왜 나는 소년에게서 천사의 미소가 아닌 악마의 그것이 느껴질까? 이것이 감독의 의도? 세 생명체 중에서 결국 물고기와 뱀은 죽고 말았다. 소년의 장난이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인간도 다른 어떤 존재에 의해서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일까? 결국 동자승은 한 여인을 만나 파계를 하게 되었지만, 그녀의 생명을 앗아가 영어의 몸이 된다. 그리곤 다시 절로 돌아와 수행을 하지만, 그에게 아이를 맡기고 떠나던 여인이 또 죽게되고... 여인이 맡긴 아이는 다시 그 절의 동자승이 되지만 그도 또한 똑같은 생명들, 물고기와 개구리, 그리고 뱀에게 돌을 물리는 장난을 하며 즐거워한다. 물론 동자승이 그 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어떻게든 그와 똑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되었다. 단지 조그만 행위의 차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주인공이 동자승이었을 때는 노스님께서 목격하시고 벌을 주셨지만, 새로운 동자승이 그 행위를 할 때에는 스님이 지켜보지 않았다. 주인공이 고행을 하며 산 정상위에 올려놓은 부처님의 반가사유상(한쪽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한 손을 턱에 괴고 생각하는 불상이라는 뜻)이 멀리서 키져보고 계실 뿐... 어느 종교에서나 얘기하는 '하늘 위에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일진데, 조금은 평범하지 않을까? 겨우 이 정도의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두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인가? 김기덕도 이제는 조금 지친 것일까? 그도 주류영화의 시각을 따라가는 것일까? 편안히 볼 수 있다는 점만은 좋았지만 이제 그에게서 뭔가 다른 시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는 꼭 '주머니 속의 송곳' 같았었는데... |
| 김기덕감독의 영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굳이 하라고 한다면 "낯설다." 일반적인 대중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어법이 아니다. 그래서, 감각적인 에로티시즘의 극단에서 단정지으며 작품과 더욱 멀어짐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하게 된다. 작년에 청룡영화상 작품상에 빛나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인생의 성장스토리에 담겨진 불교적인 성찰이 한국의 사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는 필름속에 아름답게 그려진 작품이다. 기존의 [파란대문]과 [섬] 그리고 [나쁜남자]와는 전혀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래도, 다채로운 영상은 인간의 욕망에 비유되듯이 김기덕만의 작품코드는 여전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서사적 완결성을 일거에 무시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남녀간의 사랑과 성이 김기덕작품에서는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욕망 그 이상이나 그 이하도 아닌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낯설다. 그리고 거북스럽다. 영화필름에서나마 현실을 잊고 낭만에 젖어들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관객은 실망을 하고, 애써 고개를 돌린다. 그것이 바로 현실의 진짜 모습임을 스스로도 외면한채 노승과 함께 성장하는 한 소년의 인생사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장소멸과 윤회를 보여준다고 단정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이 겨울부터 직접 등장하며 자신의 영화가 그 동안 너무나 극단적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물 위의 사찰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영화보고나서도 궁금한 것은 여전하다. 김기덕만의 사유공간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대중의 의식위로 고정된채, 자유롭게 사랑과 욕망 그리고 범죄 등은 배를 통해 드나들며 이루어지지만, 결국 각자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공부는 더 많이 해야겠다. 김기덕이란 천재감독을 알아가기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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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흔들림이 몸으로 느껴지는 시기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곧 계절이 바뀐다. 우리는 새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변신을 할 것이다. 계절은 자연의 모습과 기온뿐 아니라 사람도 바꾼다. 옷의 변화 등 외양부터 심정적 변화까지. 각 계절이 꺼내놓는 보따리는 다양하다. 무릇 계절의 바뀜으로 우리는 일상의 껍질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계절의 바뀜 혹은 순환을 사람살이의 각 시기에 대응하는 것도 익숙하다. 사계절은 오래도록 인생의 단계별 진도와 호흡을 맞춰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아동기, 으스러질 듯한 정염이 불타오르는 여름은 청년기, 하나둘 낙엽 떨어지는 가을은 장년기, 을씨년스러운 겨울은 노년기. '영원한 젊음은 없다'는 식의 경구도 계절의 바뀜을 의식하라는 얘기와 통한다. 헌데 이런 얘기, 다소 진부하고 상투적이다. 더구나 스크린에서 뻔하디 뻔한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단계를 대입하는 건 별 매력 없어 보인다. 대개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거치는 삶이란 알고 보면 별거 없다. 스크린은 이런 얘기하지 않았나. "젊고 빠르게 살다가 때가 되면 가는 거지, 뭐. 인생이라는 거, 별거 있어?..." 맞다. 그게 우리가 아는 인생. 계절의 순환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 겪으면서 지지고 볶고 엎치고 메치고 업 다운하다가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니 한번 읊어주고 '쫑' 내면 그만인 우리네 인생. 그런데 말이다. 인간은 그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도 선함과 악함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인생 단순한거야 그렇다치자. 매순간 인간을 시험대에 세우는 찰나적 상황 앞에선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단순함으로 치부하기엔 그 무게가 심상찮다는 얘기다. '나쁜' 인간과 '좋은' 사람의 사이. 인간은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할 수는 없다. 봄날은 간다 김기덕 감독의 9번째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형식적으로는 계절의 바뀜과 인생의 시기를 대입시켰다. 묵상(黙想)의 영화라는 혐의를 씌울 수 있다. 우회하지 않고 직사광선을 쏘던, 관객의 감정의 극심한 동요를 이끌던 행보와는 이질적이다. 관객의 눈과 귀를 경악시키던 '김기덕표' 이미지와 비명소리는 분명 잦아들었다. 잔혹 또는 엽기를 꼬리표처럼 붙였던 그에게 변화의 봄바람이 분 것일까? 첫 장면부터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국립공원 내 주산지 위의 암자. 아름답다. 한 인간의 사계절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아 병풍처럼 펼쳐진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꿈꾸는 자들에게 안성맞춤인 장소. 과연 이 곳에서 누가 악한 마음을 먹겠는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 봄날의 푸르디푸른 정경도 천진난만한 동자승에게 어떤 '운명'을 짐지운다. 개구리, 물고기, 뱀의 몸에 돌을 매달고 즐기는 동자승에게 '업보'의 전조가 닥친다. "장난으로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속담은 한낮 미물(이라고 인간중심주의는 말한다)의 생명도 중시하라는 가르침이다. "하나라도 죽으면 너는 평생 마음속에 돌을 짊어지고 살 것이다"라는 노승의 말씀은 봄날에 취한 한 인생의 '업'을 예고한 것은 아닐까? 여름 이야기 격정은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 나절에 본격화된다. 생명의 약동시기를 지나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한 시기, 여름. 욕망은 속세와의 인연을 통해 자아증식한다. 건장한 청년승에게 허여멀건 소녀의 몸은 정념의 불꽃을 피우게 하는 매개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노승의 말씀대로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성의 침전물로서 형성된 사랑보다는 몸이 요구한 욕망이다. 불타오르는 청춘 남녀에게 '문(門)'은 거추장스런 형식이다. 선택이 늘 타당한 논리로만 무장해 있는 건 아니다. 특히 '門'은 이 영화에서 많은 메타포(은유)를 품는다. 암자로 들어가기 위한 門부터 암자 안에도 벽이 없는 門이 있다. 오직 그 門을 통해서만 드나들던 청년승과 소녀는 어느 순간 그 門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욕망이 인간사를 지배하는 순간이다. 욕망을 넘기 위한 고행보다 욕망에 몸을 맡기며 '업'을 강화하는 여름날의 이야기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집착으로 얼룩진 채 암자를 떠나는 청년승으로 귀결된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는다"는 노승의 말씀. 의당 업을 짊어진 자의 '운명'을 되새김질 시킨다. 누구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생은 빡빡하게 짜여진 타임스케줄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가을이 오면 이 영화, 다르다고 했지만 앞선 '김기덕표' 영화의 인장은 여전하다. '인간'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죄의식에 근간을 둔 인간본성의 '악함'(으로 치부되는 도덕률)은 김기덕 영화의 단골소재다. 파괴본능과 공격적인 욕망에 지배되는 인간의 나약함도 여전하다. 그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땡볕을 물리친 가을의 식은 기운은 구원과 죄사함의 길을 터놓는다. 암자를 떠났던 청년승은 살인범이라는 딱지를 달고 회귀했으나 그에겐 분노만 뒤범벅돼 있다. 노승은 그를 내치지 않는다. 다만 한마디 내던질 뿐이다. "제가 좋으면 남도 좋은 것을 몰랐더냐. 그렇게 참을 수 없더냐." 그에게도 인생은 만만치 않다. 속세의 삶은 그렇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지 않는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런 공간에서 스스로를 다스리고 또 다스리는 행위다. 나와 타인의 거리는 언제나 일정하게 유지돼 있다. 숙명처럼 몸에 밴 그 속세의 거리감이 그에겐 분노로 다가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라 믿었던 허상에 대한 산산조각. 노승이 바닥에 써준 반야심경을 파면서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는 남자. 선함과 악함은 인간 내부에서 화해가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그 화해의 과정을 숙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겨울 나그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봄 홀로 남겨진 산사에서 노승은 다비식을 치른다. 그리고 중년의 몸으로 출소한 남자는 다시 암자로 돌아와 수련에 정진한다. 우연찮게 절을 찾아온 한 여인을 통해 어린 아이를 받아들이게 되나 여인은 결국 죽는다. 그리고 죄사함을 위해 고행을 자처하는 장년승의 걸음걸음은 업을 풀기 위한 씻김굿과도 같이 처절함을 동반한다. 잰 체 하지 않고 묵묵히 롱숏으로 보이는 장면은 묵직하다. 과연 그에겐 내면의 평화가 장착됐을까. 아이는 다시 동자승이 됐다. 윤회의 굴레는 쉽게 비켜나지 못할 것이다. 업보는 세대를 건너 회항한다. 과연 사람살이에 참된 깨달음과 가르침은 있는 것인가? 묵상의 테마를 던져주는 김기덕 감독의 물음표는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단순함 속에서도 사람살이는 선함과 악함의 외줄을 타는 고행길인 지도 모른다. 짧고 미흡한 앎은 각자의 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팍팍한 사람살이의 해결책 따위는 없다. 인생은 '희망'이란 단어로 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삶을 억압하는 것이 희망일지도 모른다. 정작 희망을 안고서도 불구덩이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단순한 묵상의 잔잔한 영화가 아님을. 김기덕은 여전히 인간 내부의 악함에 우선 주목한다. 그것이 내가 김기덕을 좋아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곧 개봉할 <피에타>를 기다리고 있다. |
| 최근에 무척 많은 영화를 본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삶 밖에 살아갈 수 없기에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 자기연민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도구를 보면서 깨닫는 점은 아마도 "나는 나다"라는 점일것 같습니다. 수 많은 평론가들과 호사가들이 이야기 하는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주관과 가치관에 의해서 평가되는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시선처럼 애써 누구에게 내 느낌을 강요받을 필요 없이 혼자 판단하고 혼자 감동하고 혼자 비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만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음악과 영화는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져가는 한마디는 "다양성"이란 말이 기억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카", "웰빙",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탄핵" 등등의 화제가 언급되면서 느끼는 경향은 "다양성"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획일성"의 카테고리 안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쉽게 같은 화제와 공감대를 공유하고 자신과 닮은 꼴을 찾고 타인과 닮아가고자 하는... 그걸 거부하는 저는 꽤 에뜨랑제(잘난척 하긴..--; 이방인이나 아웃사이더라고 하면 될걸..) 기질이 강한 모양입니다. 가끔은 그런 획일성이 싫어서 마이너 문화, 혹은 저러한 거품이 가라앉은 이후에 나만의 "흐림없는 눈으로 판단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아마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는 그러한 마이너 성향을 지닌 저에게 최근에 가장 와 닿았던 영화였습니다. "상업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한마디가 시사하는 바는 참 큽니다. ^^ 가끔 길거리에서 파는 상업성을 지니지 않은 "가요"라는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이 부른 노래를 보면 재능이 있음에도 "어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이너라는 그늘에 묻혀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말초적인, 혹은 시각적인 재미를 이 영화에서 유추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혹자에 따라서는 불면증이 있는 분에게는 약품의 부작용 없이 바로 코마 상태~에 빠져들 정도로 자극적이며 흥미를 유발하는 장면은 거의 눈에 띄질 않지만..... 조금 나이들어 가면서 삶을 바라보는 자세는 우리의 삶은 "드라마틱"한 삶이 아니라는 점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 영화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꾸미지 않은, 혹은 고도로 꾸며진?, 삶의 단편을 계절에 맞추어서 그려나간 것이 아니었을까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쭉쭉빵빵한 선남선녀가 아닌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나라야마 부시코"나 "파고"라는 영화가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아마 이 영화와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요.) 영화 속에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 장면은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마적인 웃음소리, 그리고 그 얼굴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 씨발~~~ 에이 씨"라는 목소리로 변하는 악마의 모습 그리고 그 이후의 반복되는 일련의 행동들.. "저절로 그렇게 된것이라고.." 말하는 노승의 모습이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추론은 시청자에게 맡기지만 아이를 놓고 도망가다 익사한 여인의 얼굴을 보고 흠짓 놀라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 여인은 광기의 여름에 만났던 그 여성과의 또 다른 인연일 것이라는 것을 암암리 암시합니다. 세상일,인간사가 어쩌면 이미 정해져있는것처럼 또 반복되고 그리고 깨달아 가는게 아닌가... 아지랭이처럼 남겨주고 가는 영화의 메세지가 아니었을까요.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인간사를 산야는 묵묵히 바라만 보고 어느덧 동자승은 노승이 되어 또 다른 자신인 동자승을 바라봅니다. CG에 의존하지도 않고 치밀한 구성을 지닌 플롯이나 스토리에 의존하지도 않으며 "보여주는 것"만 가지고 2시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삶이란 무엇인가"를 담담한 필체로 그려나간 영화라고 강하게 각인이 남을듯 합니다. 가끔 이런 글을 쓰면서 후회하는 것은 가슴 벅찬, 혹은 잔잔한 감동을 문자화하여 그 규격에 나를 가두는게 아닐까, 혹은 내가 느낀 감동의 규모는 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느껴보곤 합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 다시 봄이 오는 불혹의, 혹은 지천명의 그 때 저는 그 답을 알게 되겠지요...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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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철이나 아름다운 곳 경북 청송에 있는 주산지 못을 바탕으로 삼아 2003년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못 가운데에 절을 지은 탓에 물 위에 떠다니는 절을 선 보인다. 어렸을 때 장난으로 짐승들을 괴롭힌 게 나중에 죄값을 치르게 된다는 불교적 이야기다.
2. 봄엔 아이(김종호), 여름엔 소년(서재경), 가을엔 청년(김영민), 겨울엔 장년(김기덕)... 삶과 나이, 철은 같이 움직인다. 철없이 물고기나 개구리, 뱀 따위를 괴롭히던 아이는 자라 열일곱의 사내가 되고, 몸이 아파 절에 찾아온 같은 또래의 계집(하여진)을 마음에 두고 사랑놀음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오면 가야 하고, 만나자 헤어지는 삶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은 곧 떠나고 그 사랑을 못 잊어 돌부처를 훔쳐 달아나 속세로 떠난다. 이제껏 키워준 늙은 스님(오영수)는 사내의 욕망은 끝내 스스로를 쓰러뜨릴 것라고 꿰뚫어본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한다" 늙은 스님은 가슴을 찌른다. "나한테 좋으면 남한테도 좋은 거다. 속세가 그런 곳인 줄 몰랐더냐?" 3.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복을 받고 마음이 편하지만, 어릴 때 짐승 따위를 노리개감으로 여기지 않은 아이가 몇 되랴. 돌을 던져 개구리나 뱀을 죽이지 않고 자란 시골 사내들이 있을까? 그런데 짐승을 죽인 업보를 안고 살아야 한다면 좀 억울하지 않을까? 삶을 깨우치지 못하고 헤매며 살아가다 나중에 마음을 비움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모습을 보면서, 배용균 감독이 1989년에 만든 오래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생각났다. 말이 많지 않지만, 네 철을 돌아가면서 주산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너무 좋다. 게다가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 안의 바위와 골짜기, 푸른 물도 보기에 좋다. 끝무렵에 나오는 김영임씨가 부르는 '정선 아리랑'도 듣기에 좋다.
궁금한 대목이 있다. 아이가 배를 타고 못을 건너 골짜기에서 놀 때 바위 뒤에서 늙은 스님이 지켜보고 있다. 배는 하나 밖에 없는데 스님은 어떻게 절에서 나왔을까?
못 한가운데 떠있는 절은 한 채로 되어있다. 그러면 밥을 해먹는 부엌이나 볼일을 보는 뒷간은 어디에 있지? 4. 디브이디의 화면은 아주 깔끔하다. 사진이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그런데 보너스로 영화를 찍을 때의 모습을 담고, 제작발표회 모습 따위가 들어 있으나, 잘 만든 건 아니다. 화질도 떨어지고 알맹이도 매끄럽지 못하다. 솜씨없이 만들었다. 깔끔한 영화에 맞도록 매끄럽게 만들면 안되는지...
열다섯 살이 넘어야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잠자리를 나누는 모습이 나오므로 어른만 봐야 한다. |
| 마침 어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며칠 전 만난 친구에게서 영화에서 보는 경치가 좋다고 추천을 받아서도 그랬고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한 외국인 부부의 인터뷰에서 바로 김기덕의 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나서부터 한국 영화에 반해서 그다음부터 한국영화를 열심히 찾아서 본다고 했기에 이 영화가 내심 궁금했다. 영화는 경치가 좋고 매우 이국적인 느낌의 그러나 살기에 꽤나 불편해보이는 어느 절에서 자라나는 한 동자승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그 절의 운치가 너무 좋아 영화 보는 내내 저러한 명소가 있다면 이미 소문을 타고 알려졌을텐데 내가 모르는 것을 보니 저긴 우리나라가 아닐거야...했는데 역시 그 절은 '세트'에 불과했단다. 물론 그 절이 없다해도 매우 운치있는 곳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스님과 함께 평화롭게 살던 그 동자승, 사춘기 무렵 요양차 들른 한 소녀에게 반하다 결국 욕구를 해결하게 된다. 내 눈엔 사랑이라기보다 그저 욕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절을 떠나게 되고 아름다운 사시사철이 여러번 반복된 후.......다시 돌아올 이유가 생긴다. 사전지식이 거의 없이 이 영화를 보던 나는 영화 도중 갑자기 감독이 직접 튀어나와 매우 놀라웠고 또 좀 우습기도 했다. 까메오로 출연하는 정도가 아니라 동자승의 중년의 모습을 그가 직접 연기했으니 그럴 수 밖에. 왜 그가 직접 연기했는지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왜.. 영화의 제목이 봄여름가을겨울이 아니라 그 뒤에 다시 봄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는 이는 이미 어떤 반복을 예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흐른다. 영화가 끝을 향하면서 초반부 의문을 가졌던 점이 스르르 풀린다. 대신 많은 생각거리를 가져다준다. 처음부터 그 스님은 진정 스님이 아니었던 것일까. 어쨋든 '나쁜 남자' 덕에 생긴 선입관이 이 영화로 풀렸으니 다행이다. 이제 '빈 집'에 대한 기대를 할 차례. |
| 이영화는 인생을 네가지 계절에 묘사하고 있다. 어린시절을 봄 청소년기를 여름 청년기를 가을 장년기를 겨울에 묘사하며 인생에 덧없음을 묘사하고 있다. 첩첩산중..연못위에 떠있는 어느 조그마한 암자...한 노승과 꼬마가 살고 있다. 물고기에 돌을 묶고 개구리에 돌을 묶고 뱀에 돌을 묶는 장난기 어린 아이, 노승은 꼬마등에 돌을 묶고 개구리와 물고기와 뱀의 돌을 풀지 않으면 평생에 업보가 될것이라고 말한다. 그꼬마가 자라 청소년이 되고 그아이는 사랑에 빠져 암자를 떠난다. 몇년이 지나고 암자로 돌아온 그는 살인자가 되어 돌아온다. 간통한 자기아내를 살해하고 번뇌에 괴로워 한다. 노승은 그가 잡혀가기 전 까지 그의 번뇌를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몇년이 또 지나고 장년이 되어 다시 암자를 찾는다. 노승은 죽었고, 그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에게는 어미에게 버림 받은 아이가 맡겨지고 그아이는 그의 어린시절처럼 무럭무럭 자라간다. 마치 사람의 인생이 사계절 봄여름가을겨울 처럼 계속 순환한다는것을 말해주며 인생이 덧없음을 표현하려고 한것 같다. |
| 그의 영화는 참으로 묘한 힘을 가졌다. 특별한 캐스팅, 화려한 배경, 그리고 특별한 사건 등도 없는데, 이상하게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을 기다려 보아야만 한다는 참으로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나, 각 계절에서 드러나는 삶과 연관된 상징성은 나름의 독특한 인상을 던져 주고 있다. 특히 불교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우려내는 그의 솜씨는 이미 장인의 경지에 오른 느낌을 주었다.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년으로, 그리고 노년으로 이어지면서 작품의 배경과 더불어 드러나는 묘한 느낌은 DVD를 다 보고 나서도 뇌리에서 자꾸만 되새김 질 된다. 어떻게 이 정도 배경과 인물, 그리고 내용 설정으로 이렇게 파격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정말 의아스럽다. 특히 김기덕만의 엽기적이고 광기스러운 작품의 분위기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시대상을 정면으로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의 작품이 대중성을 얻기에는 다소 어려운 점이 있으나, 작품의 횟수가 늘어가면서 점차 그런 점들도 해결되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초기 작품들에서는 뭔가 불만스러운 느낌이 들었으나, 최근의 해안선이나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런 불만스러운 면들을 상당히 세련되게 작품에서 해결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에서는 더욱 그런 세련됨이 돋보인다. 특히 감독 자신이 겨울에 등장해서 감독이 이 작품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연기하는 장면은 정말 한편의 다큐멘타리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마 감독이 드러내려고 하는 바를 정말로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감독 자신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주제를 잘 구현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계절과 더불어 절의 계절적 배경과 그 주변의 경치는 한마디로 압권이었다. 아마 대형 영화관에서 보았다면 아마 작품 속의 절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이다. 물 한가운데 떠 있으면서 계절과 함께 변하는 절의 느낌과 그리고 그 절 내부의 분위기 또한 뇌리 속에서 지울 수 없을 만큼 묘한 인상을 주었다. 배경과 더불어 작품에서 주위해서 봐야 할 것은 바로 종교적인 색채일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시 봄이 온다는 것이나, 여자가 남자의 어린 시절과 동일한 아이를 데리고 온 것 등은 불교의 회귀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는 집착과 욕망의 반복이 인생사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도 불교의 현실 초월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김기덕 작품의 매니아가 될 것 같다. 그의 영화 전체가 풍기는 묘한 엽기성과 고급스러운 예술성, 그리고 광적인 열기 등이 그의 작품을 자꾸 보게끔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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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을 보았었다..
어느 분이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애기를 해주시며, 업장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업장을 소멸해야지, 업장을 쌓기만 한다고...
그 당시 영화를 보았을 때는 게운하게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상태에서
그냥 착하게 잘 살아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 이른 새벽에 잠이 깨, 다시 이 영화를 보았다...
김기덕 감독님 저의 이 업장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다까!!!1
자꾸 싸여만 가는 업장앞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숨도 못 쉬겠습니다.....
이렇게 휼룡한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휼룡한 영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저 또한 복이 많은 사람 입니다....
불교를 알고, 윤회를 알고, 업장을 아는이 그리고, 이를 깨닫고자 하는이 그리고, 온
국민, 전 세계인 정말 이 영화를 보아야 할 것 입니다....(자기 자신을 비추면서)....
합 장 여래지 [인상깊은구절] 봄 부분에서 물고기에 돌을 매달고, 개구리에 돌을 매달고, 뱀에 돌을 매달고, 그리고 다시 그 생명들을 풀어주며 반성하던곳 겨울 부분에서 보자기쓴 여자와 아기를 받아 들이는 장면, 그리고 봄 부분에서 거북이를 못살게 굴고, 물고기 입에 돌을 넣고, 개구리 입에 돌을 넣고, 뱀 입에 돌을 넣고, 이 짓들은 봄과 비슷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봄 중에서 나오는 행동이 더 사악 합니다.... 업장은 소멸하지 않으면 더 쌓여만 갑니다... 죄는 죄를 부른다라는 말이 이것 인것 같습니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을 치는 부분은 감독님이 부처님을 안고, 등에는 멧돌을 지고.. 예전일을 생각하는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