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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0년 아우크스부르크 전쟁 당시 56척의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를 지휘하던 영국의 제독 토링턴(Torrington)은, 프랑스의 대 선단의 압도적인 화력을 보고 템스 강까지 퇴각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정치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였다. 명예혁명으로 실각한 제임스 2세를 추종하는 이른바 ‘제커바이트파’(Jacobites)가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봉기를 일으키기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토링턴 제독은 고국의 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 ‘방어’(in defense) 대신에 ‘현존’(in being)이라는 말을 써서 전황을 보고한다. 그는 만일 프랑스 해군에 들키지 않고 자신의 함대가 퇴각한다면, 프랑스 함대는 어딘가에 영국 함대가 ‘현존’한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함으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리라 여긴 것이다.
유럽 대륙의 일인자 가운데 하나였던 작센의 모리스(Maurice) 백작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능력 있는 장군이라면 일부러 전투를 벌이지 않고서도 평생 동안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총체적인 위협은 사람들의 인식 또한 변화시킨다.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는 순간에서 믿을 것은 적어도 적보다는 한 발짝 더 앞선 자신의 기술뿐이다. 그러나 적이라고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으랴!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기가 등장할 때마다, 곧장 더 센 무기로 이전의 무기를 대체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은 속도를 향한 중단 없는 경쟁, 질주의 본능뿐이다. 20세기 미국과 소력 양국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었던 군비경쟁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푸코는 자연 상태의 혼돈상태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war of all against all)을 말한 홉스를, 자신의 상상력에 놀아난 사람으로 치부한다. 홉스가 말하려 한 것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자연(전쟁)상태에 대한 공포이다. 홉스가 말한 그런 전쟁은 존재한 적이 없다. 그는 단지 사람들에게 전쟁을 떠올려 보라고 말하며, 그것이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 상상하게 하여 국가의 지배를 정당화한다. 현존함대 그리고 전쟁 억제력으로서 군비경쟁 또한 마찬가지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래서 홉스의 전쟁 안에는 “전투가 없고 유혈도 시체도 없다. 거기에는 표상들, 현시들, 기호들, 그리고 과장적·계략적·허위적인 표현들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표상들이 교환되는 무대이고, 어디까지나 잠정적일 뿐인 두려움의 관계이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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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오텍스트에서 출간된 영문판 [Speed & Politics](1986)은 판형도 작고 편집도 허접하다. 영문판보다 한글판이 여러모로 훨씬 낫다. 한글판은 영문판에 없는 존 아미티지의 서문과 여러 사진들과 더불어 역자 이재원의 해설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양장본이다. 가격도 한글판이 훨씬 저렴하다. 국역본 [속도와 정치](그린비, 2004)는 적극 권장해주고 싶다. 나로 하여금 원서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번역본을 탐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양질의 책들이 많이 나와야 된다. 속도가 바로 힘이다. 속도가 시공압축으로 지구촌을 조성했다. 마셜 맥루한의 '지구촌' 개념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작은 사회'의 이미지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리적인 장벽을 허물고 거래를 활성화함으로써 세상을 더 작고 풍요롭고 통합된 공간으로 만든다. 굳이 1450년에 등장한 인쇄매체의 발명을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속도의 힘을 바로 체험할 수 있다. 공항은 가장 현대적인 운송과 속도의 건축학을 재현한다. 그리고 인간과 테크놀로지 사이에 존재하는 비교적 거시적인 순환 관계를 잘 대변하는 모형이기도 하다. 우리의 인천국제공항은 세계적인 운송과 통신을 아우르는 전송 테크놀로지의 압축판이다.
비릴리오는 [속도와 정치](1986)에서 산업혁명이란 없었고 다만 질주정체(dromocracy)의 혁명만이 있었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서 비릴리오는 막스와 달리,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경제적인 변화였다가 보다는 군사적 공간적 정치적 기술적 변형이었다고 가정한다. 비릴리오는 전쟁모델로 근대 도시의 성장과 사회의 진화를 설명한다. 군사적 공간과 영토의 조직화가 주제로 부각된다. 가령 봉건제 시대의 요새화된 도시나 현대의 벙커는 모두 전쟁기계였다. 전쟁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군산복합체야말로 도시의 창조, 정치생활의 공간적 조직을 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속도의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창립한 질주학(dromology)은 속도가 현상의 출현 방식을 제한하는 방식을 다루는 지식체계다. 국내에선 대체로 '질주학'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속도학'으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질주학에 따르면, 운동과 속도는 세계 공간의 경험방식을 구성하는 원리다. 비릴리오는 사회적 공간, 정치적 공간, 군사적 공간이 운동 벡터와 이 운동 벡터를 달성하는 전송속도로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질주학은 가속화한 전송속도가 군사, 사회, 정치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한다. 속도과학으로서 질주학은 전송속도 증대가 개별 지각을, 사회생활과 정치 생활 및 문화생활을 결정지은 방식을 탐구한다. 비릴리오는 그런 자신을 '테크놀로지의 예술평론가'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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