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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다중에 대한 네그리의 교양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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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의 제국 강의](2008)는 [제국]과 [다중]에 제기되었던 질문들을 정리하고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가령[제국]에 대한 후속 논쟁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제국]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 사회적 존재론 안에서의 변형들간의 관계와 적대의 경향적 주체로 다중을 정의하는 것,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역사적 이행의 강도는 어떠하며, 포스트포드주의, 포트스케인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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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의 제국 강의](2008)[제국][다중]에 제기되었던 질문들을 정리하고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가령[제국]에 대한 후속 논쟁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제국]은 어떤 종류의 책인가, 사회적 존재론 안에서의 변형들간의 관계와 적대의 경향적 주체로 다중을 정의하는 것,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역사적 이행의 강도는 어떠하며, 포스트포드주의, 포트스케인즈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에서 포스트는 얼마나 강한가

 

먼저 제국이란 전지구적 시장에 대한 새로운 주권의 구성과정이다. 정치시스템으로 보면 제국은 이른바 잡종의 형식으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혼재한다. 군주정은 미국과 같은 수퍼강국이, 귀족정은 삼성과 같은 다국적기업이, 민주정은 민족국가가 대표적이다. 네그리의 [제국](2000)은 국민국가 중심의 제국주의에서 제국 체제로의 역사적 전환을 설명한 책이다. 다중은 제국 체제 안에서 저항의 주체성으로, 비물질노동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새로운 저항의 주체성이다. 내가 보기에 비물질노동이란 개념은 다중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다중은 잠재태에 해당하는 이념형으로 대항-제국 개념이지만, 비물질노동은 지금 이곳의 현실태이기 때문이다. 비물질노동은 단순히 생산적 노동의 재정의가 아니라 생산적 노동과 삶의 양식들의 혼합물로, 재화와 육체성뿐만 아니라 제도와 혁명까지 생산한다. 비물질노동의 하부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중지성이다. 그러나 비물질노동은 대중노동자나 대중지성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비물질노동을 대중노동자, 사회적 노동자, 대중지성 그리고 노동자주의 전통의 모든 여타의 주체에 관한 입장들이 취하는 정의들을 넘어서 다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물질노동의 주체적 형상은 경향적으로 삶정치적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훈육의 형상이 아니라 통제의 형상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히 생산의 형상이 아니라, 재생산, 소통, 관계들, 삶의 양식들 등등의 형상입니다.”(23)

 

비물질노동이나 다중이란 개념 모두 탈근대성의 삶정치에 속하는 개념들이다. 다중의 괴물스러움은 저항과 반항의 테제에서 나오지만, 단순히 반란하는 대중을 넘어서는 사회적으로 충만한 삶으로서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담지한 개념이다. 다중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네그리는 부정적인 정의법을 사용한다. 가령 다중은 무엇이 아니다는 식의 어법이다. 이에 따르면 다중은 민중도 아니고, 계급도 아니고, 국민도 시민도 아니고, 무차별적인 대중도 아니다. 오히려 다중은 노동하도록 배치된 생산적인 특이성들의 총체이고 그 자체로 생산적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중이란 개념에 부정적인 그림자는 전혀 없다는 얘기다. 네그리가 다중이 이미 역사적 무대 위로 등장했고 다중은 현실적인 개념이라 누차 강조해도 내게는 이념형, 더군다나 유토피아 색채가 농염한 이념형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다중이 이미 존재했고 그 저항적 역능을 구체적으로 행사하고 있어도 지금의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라면 다중이라는 개념의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내게는 다중의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다중이란 개념이 여전히 모호한 이미지로 떠오른다. 네그리는 최근에 제국적 탈근대성에서의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고 홉스, 루소, 스피노자, 푸코,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관한 그간의 철학적 논의들을 점검하는데 이런 정치철학적 작업이 다중의 정치철학적 개념과 존재론적 의미를 확장시킬 수는 있어도 여전히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되기에는 불충분한 인상을 준다.

 

네그리의 사상을 접한지도10여년을 훌쩍 넘겼다. 이론적으로 네그리는 이탈리아 노동자주의와 프랑스 탈구조주의의 성찰을 종합하여 미시정치적 수준과 거시정치적 수준을 모두 아우르는 이론적 틀을 마련하고 있다. 가령 노동자주의적 분석은 대중노동자에서 사회적 노동자로의 이행과 물질노동에서 비물질노동으로의 이행을 설명하고, 프랑스 탈구조주의적 분석은 삶권력과 삶정치라는 중요한 해석틀을 제공해 주었다. 특히 푸코의 역사인식론은 훈육에서 통제로의 지배의 축의 이행을 잘 설명한다. 네그리의 삶정치는 그 단어에서 앤소니 기든스의 생명정치 개념과 혼동되기 쉬운데 서로 다른 개념이다. 삶정치의 의미에 대해서 네그리의 해석을 직접 들어보자.

 

삶정치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삶 전체가 자본에 포섭되어 있다는 것이며, 자본의 가치창출이 사회 전체가 노동하도록 배치되는 것을 통해 발생한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모든 사회적 관계들과 삶의 관계들이 생산관계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착취의 모순들이 사회 구조 전반에 걸쳐 분산된다는 것 역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본이 실질적으로 사회의 생산적 잠재력을 포섭할 때, 자본이 전체 사회로 확대되는 삶권력 속으로 그 잠재력을 통합시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7)

z***a 2010.12.12.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