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고 있었다. 그리 오래된 얘기도 아닌데... 아이 방학숙제 독후감 목록에 들어 있길래 얼떨결에 읽기 시작했는데... 평범한 일상속에 숨박꼭질하듯 숨어있는 삶에 무게. 십여년전 읽었을 때두 찾아냈을까..이 무게들을. 어쩜 나이들어버리는 동안 깨달아진건아닌지... 너무나 무더웠던 지난 여름,한줄기 서늘함이 등줄기를 감아돌게 만든 원미동. 이제 선선한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가 볼 수 있겠다. 하지만 혼자서는 아직 자신없다.나보다 슬쩍 커버린 아이를 옆에 세우고가 아님 힘들겠다.그리곤 씩씩한 목소리로 톤을 높여 얘기해 주겠다.여기가 원미동이라고 소설에만 있는 가상의 동네가 아닌 실제 상황 동네라구.아이가 이해해주길 바라진 않지만. |
| 또(!) 그저 그런 구질구질한 우리네 얘기인가 보다 하고 읽기를 미루고 미룬 책이었다. 그 얼마나 큰 착각인지... 이제야 읽다니 내겐 정말 큰 손해였다. 저녁마다 누가 밥 먹자고, 차 마시자고 하는 게 다 짜증이 날 정도였다. 난 빨리 집에 들어가서 이 책을 읽어야 했단 말이다. 그게 백배는 더 행복한 일이었다. 너무나 재밌는 이야기들이 하나 하나 매일의 일상을 엮어가는 것 같았다. 작가가 그곳에 살던 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70년대쯤?), 구질구질한 생활상, 맞다. 더구나 대도시 사이에 끼인 주변 도시, 그것도 시내가 아닌 약간 후미진 곳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였다. 이 책의 큰 매력은, 작가는 그때의 구질구질하고 속상하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우리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무작정 읽는 사람의 맘을 어둡게 하거나, 씁쓸하게 하는 게 아니고, 작가의 찰진 글맛 덕분인지, 탁월한 심리분석 덕분인지 모르지만, 각각의 인물상, 인물군을 어찌나 담담하게 풀어냈는지, 나도 모르게 정이 가는 사람들이었다. <<부딪치고, 아등바등="" 연명하며="" 기어어나가는="" 삶의="" 주인들에게는="" 다른="" 이름의="" 진리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탐구하고="" 사색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몸으로="" 밀어가며="" 안간힘으로="" 두들겨야="" 하는="" 굳건한="" 쇠문이었다.="" 혹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였다.="">> 멀리 보이는 하지만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 원미산 정상처럼...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말 평범한 나, 우리 가족 그리고 고만고만한 동네 사람들 얘기를, 속으로 숨겨놓고 싶은 생각을 어찌 그렇게 잘 꼬집어냈는지, 어떤 대목에서는 순간적으로 뜨끔할 때도 있었다. 난 부천에서 자란 건 아니었다. 부천에서 큰 고개를 하나 넘으면 있는 동네, 나 아주 어릴 적엔 부천도 큰 도시였다. 전철도 있고 백화점도 있었으니까. 서울로 나오려면 무조건 부천을 통과해야 해서 어느 정도 부천을 아는 것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많은 부분이 내 아주 어릴 적의 향수도 불러냈다. 감사한 마음, 그득하다. 이 책, <원미동 사람들="">은 내게 아름다운 동네, 아름다운 글로 남을 것이다.원미동>부딪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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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원미동은 원미산과 더불어 공기 맑고 인심이 후한 동네였던거 같다.산업화와 투기열풍이 불면서 월세와 전세를 살던 사람들이 살기 좋고 개발이 일어나리라 예상되는 외진 곳으로 이동의 꼬리를 물고 이동하게 된다.개발에 대한 얘기는 신문지상보다는 유력한 자의 한마디에 소리 소문없이 발빠르게 번져 나가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던 투기꾼들은 빚은 내서라도 가난만은 면하고 대대손손 부를 거머쥐기 위해 생사쟁탈전을 벌인다.그러한 광경은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 가보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일부 계층이 꼭 있게 마련이다.그러한 사람들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내 돈으로 내것을 산다는데 누가 간섭할 권리가 있냐는 식이기에) 과열이 되다보면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대다수의 서민들은 허탈감과 상실감만 누적되어 가고 삶의 질이 떨어지며 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 역시 증폭되어 가기 때문이다.
나 역시 투기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대학시절 120만원의 전세에서 신혼초 2,400만원의 전세에 이르기까지 십회에 가까운 이사를 왔다 갔다 했다.혈혈단신이었던 총각 시절엔 세간살이가 단촐하여 리어카 하나와 친구,가족이 도와주면 이사는 수월하게 끝이 났지만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새간살이가 늘어나고 챙길 것도 많고 이사하는 장소가 먼거리였기에 이사 비용은 나가지만 이삿짐 센터를 불러 이사문제를 해결해야 했다.이 글에서도 재미있게 묘사했듯 이사할 때에는 피아노가 가장 골치가 아프다.인부들고 낑낑 거리며 혹시 모서리에 상처라도 날까봐 좌우 앞뒤를 신중하고도 힘을 주어 보물다루듯 옮기곤 한다.그래서 이사를 여러번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정처가 없어지고 가재도구들은 폭격에 맞고 폭풍에 휩쓸린 물건마냥 앙상하게 변하고 몰골이 영 말이 아니다.
부천 원미동은 개발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가롭고 평화로움이 넘쳤던 전원적인 시골마을의 상징이었던거 같다.글에 등장하는 '강노인'처럼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전답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는 모습에서 진정 전형적인 농부이고 농촌을 지키겠다는 숨은 파수꾼이지만 나라에서 개발을 확정하고 밀어 붙이기 식으로 나오면 공권력에 당할 장사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개발은 인간에게 편리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지렛대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론 삶의 터전을 잃고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야만 하는 촌부들의 가련함과 정부의 냉정함이 극명하게 대조가 되며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너무도 씁쓸하다.
주인공인 내가 원미동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지물포,형제슈퍼,사진관,써니전자,강남부동산,정육점,미용실,화장품 가게가 생겨나면서 가게들은 저마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한 가격경쟁을 이어나간다.또한 다방이 성행하던 시절이어서인지 다방레지들의 발빠른 배달과 애교섞인 콧소리 등도 간지럽게 다가오는데 내가 대학시절(1980년대)의 풍경은 원미동 뿐만 아니라 어느 곳이든 일상에서 보고 지나쳤음직한 추억의 장소들이다.경호네와 형제슈퍼 김반장이 슈퍼를 운영하는데 '싱싱청과물'이 새로 들어서면서 가격경쟁이 치열해 지고 종국에는 들여오는 가격(본전)도 뽑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 경호네와 싱싱청과물 주인은 육탄전을 벌이는데 동네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사건은 불상사로 이어지고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원미동 23통 근처는 하루가 멀게 이런 저런 가게가 생겨나고 동네 사람들의 이런 저런 얘기가 입이 가벼운 아낙네들의 안주거리가 된다.행복사진관 주인이 유부남으로서 여성과의 교제로 인한 썸씽이 스캔들로 비화되어 주민들의 입에 오르게 되고 통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작가는 11편의 단편 소설을 원미동 사람들과 연관성 있게 풀어 나가고 있으며 '한계령' 편에서는 원미동 사람들의 인생 역정을 총괄적으로 정리한다.'86아시아 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원미동은 개발붐과 투기의 장으로 변하게 되면서 고만고만하게 일상을 꾸려가고 삶을 이끌어가던 가게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어디론가 새 삶의 터전을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질곡과 같은 인생의 역정을 시대와 사회상을 들추어 내고 1980년 당시를 혈기왕성하게 살아왔던 세대들에겐 비록 아날로그와 같던 시절이고 궁색하고 비좁은 불편한 삶이었지만 지나간 시절 서민들이 질펀하게 울고 웃던 시절을 되돌아보고 '나도 그런 때가 있었구나'라고 회고해 보는 추억의 시간과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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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기 오빠가 책을 사준다길래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을 집어 들었다. 예전부터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동안 빌려 읽지 않은 탓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책이 쓰인 당시와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 1980년대 소설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네와 너무 많이 닮았다는 점이었다. 첫 단편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나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소설이다. 내가 태어났던 시절 나의 부모도 이랬을까 싶었는데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변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서민들의 이사 풍경이야 거기서 거기이니까. 우연은 어느 시대에 맞닥뜨려도 당황스럽다. 하필 해산을 코앞에 앞둔 지금 이사를 떠나야 할 상황이라면 누군들 애매하지 않을까. 주인공은 서울에 대한 열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데 지금의 우리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여전히 멀고 아름다운 동네에 가닿지 못했다. 아무리 개발구역이니 신도시니 해도 가서 살다보면 어느새 헌 동네가 되어 버린다. 기다려도 발전은 되지 않고 시간만 흐른다. 대부분의 사람들 일확천금을 노리지만 진짜 한 몫을 잡는 사람은 우리네가 아닌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다. 알지만 속는다. 혹은 속으면서 알게 된다. 그래도 '혹시'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늘 우리가 살고 싶은 동네는 멀고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이다. 소설에 나오는 일꾼이 꼭 우리와 닮았다. 열심히 애써서 일하는데도 끊임없이 의심받고 감시당하고 그러면서도 계속 되는 노동. 해 뜨는 날은 돈 벌어서 좋고, 비 오는 날은 돈 받아서 좋고, 라는 문구 속에서 일꾼의 작은 여유를 엿본다. 하지만 얼마나 고단한 삶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언제 어느 때 읽어도 가치 있기 때문에, 감동적이기 때문에 고전이라는 말이 있다. 원미동 사람들도 그런 의미에서 좋은 소설이다.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읽어도 전혀 거리낌 없다. 시간 나면 한 번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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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23통 동네 모습을 한 눈에 머릿속에 담으려면 <찻집 여자>편에 나온 다음 구절에 주목하면 된다.
"원미동 23통의 모양새를 알기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흡사 장터 객줏집의 국자와 같은 꼴이었다. 국자의 손잡이 부분에 원미지물포, 그의 행복사진관, 써니전자, 강남부동산, 우리정육점, 서울미용실 등이 한 켠으로 촘촘히 박혀있고 맞은편에 강노인이 푸성귀를 일궈먹는 밭과 무궁화연립, 그리고 김반장의 형제슈퍼가 자리잡고 있었다. 손잡이가 끝나고 종구라기 모양의 몸통이 시작되는 부분은 노상 이것저것 잡다한 종류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가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또 누군가가 새로운 가게를 열었다가는 이내 문을 닫고 하는, 말하자면 원미동 23통의 사각 지대였다."(206쪽)
원미동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무궁화연립의 은혜 아빠, '전통문화연구회'의 외판원인 진만 아빠, 완고한 땅 부자 노인 강만성, 정이 많고 가족에게 충실한 가장으로 강남부동산을 운영하는 박 씨와 수다스런 아내 고흥댁, 청소부 집 다섯째 딸인 경옥, 원미동 시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몽달 씨, 형제슈퍼 김 반장, 원미지물포 주 씨, 주업은 연탄배달, 부업으로 여러 막일을 하는 임 씨, 아내와 세 딸과 살아가는 행복사진관의 엄 씨, 낮에는 인삼차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파는 한강인삼찻집의 홍 마담, 억척스럽고 성실한 김포쌀상회의 경호 아빠, 승용자 바닥 커버를 만드는 조그만 공장의 재단사이자 무궁화 연립주택 지하실에 세 들어 사는 공원 등. 모두가 80년대 우리네의 모습들이다. 단지 '소시민의 애환'이라는 수사학적 포장으로는 다 말할 수 없고 다 해명할 수 없는 그런 막다른 삶의 진실이 제 상처를 드러내고 마는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의 말대로 독자들은 원미동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 살아가는 속내"를 배우게 된다.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소시민 가장의 고통과 악착스러움을 드러낸다. 부천의 원미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은혜 아빠는 내 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을 실현하지만 서울에서 경기도로 밀려났다는 침울함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실직자인 진만 아빠는 살려고 버둥댈수록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듯 결국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만다. 이웃들의 이기주의와 님비현상은 땅부자 강만성 노인의 밭에서 인분냄새가 난다고 질타하던 이웃들의 작태와 찻집 여자에 대한 마을 여자들의 멸시와 박해에서 적나라하게 재현된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독기를 품고 자기에게 해가 될듯 싶으면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는 니전투구의 수치스런 이야기는 형제슈퍼의 김반장과 김포슈퍼의 경호 아빠의 제 살 깍기식 가격인하 경쟁이나 둘이 작당하여 새로 문을 연 청과물집을 결국 문닫게 만드는 악찬 모습에서 절정을 친다. 동병상련의 신세이기에 이해할 수도 있겠건만 오히려 가난한 이가 더 가난한 이를 착취하고 힘없는 이가 더 힘없는 이를 내리누르는 꼴이 벌어진다. 김반장이 바보시인 몽달씨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주인집 여자가 세입자의 화장실 사용권한을 원천봉쇄하는 행태에서 인간이란 짐승의 추함을 본다.
작가는 양극화에 대한 침통과 분노의 감정으로 펜을 잡았던 것이고 찻집 여자나 지하생활자 같은 막장들의 세태만상을 그리면서 더더욱 오악(惡惡)의 힘이 가중되었음이 분명하다. 지하생활자는 보이지 않는 인간처럼 이름도 나오지 않고 다만 거리 모퉁이에 자리를 튼 똥만이 그의 구질구질한 삶과 존재의 흔적을 알려줄 뿐이다. 요즘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화장실없이 살아가는 노동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몸서리가 쳐친다. 한국에서 현금으로 30억을 자유롭게 굴릴 수 있으면 부자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중국 부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100억 단위가 우습게 느껴진다. 소시민들이 몇 천만원에 울고불며 죽는다산다 난리를 치는데 국립대학 총장을 지낸 누구처럼 가진자들에게는 그저 일용할 용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튼튼한 요새와도 같은 울타리에 편히 들어앉아 부자들은 주지육림과 건전한 상식을 우롱하는 음욕에 빠져 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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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이 책 완전 재미나다. 이 아줌마 완전 내 타입이다. 아, 아니 이 아줌마 글이 완전 내 타입이다.
익히, 원미동 사람들 이란 책을 알았다. 워낙 오래된 책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책이기도 해서일 것이다. 때로 인천을 다녀오는 길에 간혹 원미동 이정표를 보게 된다. 인천과 서울 사이에는 무수한 지명이 있을 터, 원미동이 유독 나서는 것은 이 책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거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읽어 본 것 처럼 느껴지는 것. 하도 많이 들어서 살기는 고사하고 발도 내딛여본 적 없는 그곳이 살아본 곳처럼 느껴지는 것.
내가 이 아줌마를 진즉 알았다면 좀 더 많은 한국문학에 애정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아줌마를 진즉 모르지는 않았다. 당대 최고 여배우 최진실과 뭐야 쟤는, 의 수준이었던 유오성이 나오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영화 제목이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었고, 원작자가 양귀자라는 걸 알았다. 그때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 씨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도 많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책이 좀 앞선다고 생각한다. 왜? 시각이 상상을 이기기는 힘드니까.
이 책은 총 열 한편의 단편 소설로 묶여져 있다. 각 편마다 다른 문예지에 실렸었지만, 모두 원미동이 배경이고 여기 나온 아저씨가 저기도 나온다. 그래서 연작소설이다. 그 중 [방울새] 와 [찻집 여자] 두 편을 제외한 아홉편에 나는, 소위 뻑갔다. 그 중 마지막 편인 [한계령] 은아주 백미이다. 다소 시시했던 두 편은 분명 양귀자 아줌마가 감기가 걸렸을 때 썼을 것이다. 또는 그저, 그 두 편만이 내 타입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내 타입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왜 내 타입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생각한 내 타입이 이렇다. 완전 일필휘지란 느낌을 준다. 분명 수 천번의 퇴고를 거듭했을 것임에도 그렇다. 문장이 거침없이 쭉쭉 나가서 작가의 성격조차 여장부라 생각되어질 만큼 대차다. 입맛에 딱딱 떨어진다. 한마디로 속이 다 시원하다. 그것 뿐인가. 몇 번을 방 안이 떠나가라 웃었을 만큼 재기발랄한 문장이 곳곳에 매복되어있다. 맛깔스런 문장들은 아예 번호표를 받아 들고 줄을 서있다. 그것 뿐인가. 거침없음과 재기발랄, 완전소중 맛깔문장 뒤에는 무언가 가슴 아릿한 그림자도 서성인다. 한계령에 이르러서는 아예 내가 그 사람이 되어버렸다.
중원에 머물렀다면 대단한 공력을 가진 고수였을 것이고, 사기를 쳤어도 한 두푼으로 끝날 위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건을 팔았으면 1년치를 하루 반나절에 다 해치웠을 것이고, 말대꾸라도 할라치면 바로 싸대기일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의 느낌이 그렇다.
결론적으로 내 타입이라 말하는 작품의 특성은 이렇다. 일단, 살아움직이는 문장들이다. 살아움직여서 독자인 내가 마치 그 세계에 빠져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문장이다. 번듯하게 말하면 흡입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둘째, 뭘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후기에, 꼼꼼하게 보는 독자라면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담아주는 것이 어떠하냐, 라는 우려를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다. 메시지, 충분하다. 메시지란 독자가 알아서 느끼는 것이지, 작가가 가르치는 게 아니다. 만약 작가의 우려대로 명확한 메시지가 없어, 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싸대기 백 대에 피바가지 한 양동이다. 니 감성을 탓하라, 말해주고 싶다. 셋째, 방구석에 틀어박힌 깊이없는 나약한 영혼이 등장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자의 읊조림은 가슴으로 전달되어진다. 그러나 그런 흉내만 낸 작가의 글은 바로 썅, 이다. 쥐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어려운 말과 깊이 없는 고독이 온 종이를 다 메꾸고 있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용납 안하면 어쩔텐가, 바아로 냄비 받침대로 써버린다. 넷째, 냄새가 날 만한 지하방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역겨운 것이 아니라 공감이 간다. 그건 어떤 차이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생각에 그것은 생활속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인생이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신세한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매우 열심히 하루를 살아내고, 그 속에 작은 행복과 기쁨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생활은 지지리 궁상인 모습은 정겹다. 그래, 그런 모습들을 정겹게 그려내었다. 그래서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반전도 없고, 딱히 대단한 이야기도 없다. 그저, 소소한 부천시 원미동 주민들의 움직임만이 그곳에 있다. 그럼에도 미친듯이 몰입시키는 도구는 오로지 작가의 필력하나. 대단하지 않은가, 남들은 온갖 무기로 중무장을 하고 글을 써내려가도 멈칫 멈칫 두리번거려서 보는 독자도 함께 멈칫거리다가 이내 짜증이 나곤 하는데, 이 아줌마는 몽둥이 하나로 모든 적을 다 섬멸해 버린다. 엄청난 아줌마, 그 이름은 양귀자. 아아, 이름마저 고수스러워라.
타고난 이야기꾼. 아줌마 따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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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연작소설집/ 살림 두 번째로 이 책을 마주하였다. 8월초 폭염과 휴가시즌의 정점에 도달한 시점에서 사무실이야말로 1급 피서지이다. 지극히 한가한 탓에 개점휴업을 지향한 사무실은 에어컨 덕을 단단히 본다. 점심 무렵 펼치기 시작하여 책과 더불어 쏜 살처럼 시간과 병행하여 80년대 도시민의 삶을 둘러 보았다. 그리곤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던 무렵도 떠올리면서 약간씩 희미해진 시간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초판이 1987년인데 아마 그 무렵이다. 동네서점을 기웃거리며 책 구경 하다 고른 책이다. 그땐 책 표지에 소재가 된 동네, 원미동 한 골목의 가게들이 표시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이 사람도 지방출신으로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결혼하고 혼인신고 한 덕에 본의 아닌 본적세탁이 있어 신림동産으로 둔갑하였다. 셋방을, 친척집 등등 전전하다 다시 지방발령으로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원미동과의 인연이다. 우여곡절이 있고 다시 서울을 본거지로 인천으로 출퇴근하며 생활하였다. 원미동을 무대로 회사에서 개척과정교육을 실시하는데 동참하였고, 교육을 진행하면서 이 책의 무대가 된 지역이라 이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도 있지 않을까 둘러보기도 했다. 배경이 된 행복사진관이며 써니전자, 서울미용실, 강남부동산 간판이 지금도 남아있지 않을까고 유심히 거리를 쏘아 다녔다. 이때가 1995년쯤 되니 개발바람으로 흔적을 기대하긴 무리임에도. 마치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살던 동네를 우연히 지나게 되어 옛 흔적을 더듬었던 것처럼, 다시 조우하는 부천시 하고도 원미동이 아닌 원미구이다. IMF를 만나고 그 여파로 지방의 집을 처분하고 서울 전세집도 처분하여 원미구까지 흘러오게 된다. 이 떄 자탄을 했다고 할까. “<원미동 사람들>이란 책을 읽고 원미동 향수에 젖더니만 마침내 그 향수의 본류에 근접하게 되는구나.”며 진한 질곡을 지날 때였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어느 날, 한국이 유력한 우승 후보국을 무너뜨리던 날이다. 밤 늦게까지 경적을 울리며 부천시내를 질주하던 자동차들과 인파들이 몰려 다니는, 원미구의 밤은 여느 도시들도 그랬겠지만, 들 뜬 인파의 무리로 가득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내 고향 부산으로 낙향하였다. 부천은 신시가지로 구성되었으나 원미동은 구시가지로 확기적인 개발대신 논이나 밭이 주택지로 바뀌면서 탈바꿈한 지역이다. 서울의 주변도시로 시작했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서울에 의존 않고서도 충분히 도시의 위용을 뽐내는 당당한 지역이다. 부천역에 내리면 좌측 편으로 큰 빌딩 지하에 제법 규모 있는 서점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으려나. 부천역 우측 편 건물엔 영화관도 있었고 직장의 지점이 있기도 했다. 나에게 부천은 서민의 삶을 보여 주었고, 실제 칩거할 공간이 되었고, 이젠 기억에 머물러 담담하게 회상하는 공간이 되어 결코 낯설지 않은 도시이다. 작가 양귀자. 거의 동년배로 동시대를 살아와서인지 연작마다 공감한다. 오빠들을 대신하여 만화책을 빌려온다는 구절에서 스친다. 형과 동생과 용돈 모아 만화책을 빌려 와 온돌방에 재어놓고 보는 재미, 어머니가 방문을 열라 치시면 바로 이불로 감추는 스릴이, 친구들을 불러와 선심 쓰듯 만화책을 보여주던 일.. 한강인삼찻집 편에서는 마음이 아프다. 사진관 남자는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情을 주고, 위해주는 마음에 그의 가슴이 아프다. 결국 처자를 따를 수 밖에 없지만 이별을 고하는 여자에게 위안의 말을 전할 의무가 있음을 느끼며 이웃 남정네들이 여자를 비하하는 말을 듣고는 불편한 마음이다. 지금쯤 찻집여자는 재혼해서 다정다감한 삶이 전개되었기를…. “바람 부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이 말은 직장생활 당시 술 마시며 대화 중에 자주 인용하였다. 자칫 詩的으로 들릴법하나 떼 먹힌 연탄판매대금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마신 술로 열은 오르고 집으로 가는 길, 웃통은 벗어 한 손으로 쥐어 어깨에 두르고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면 곧장 읊조렸다. 이 연작에서 가장 알려진 것이 <원미동 시인>으로 본다. 필경 몽달씨는 김반장의 더러운 이중성을 일고 있지만 어린 경옥이의 따끔한 지적도 마다 않는, 배알 없는 약간 모자란듯한 젊은이이다. 몽달씨야말로 나도 너도 해당되어 그 캐릭터가 되는, 연민으로 치장된 우리들 아니었을까. 그럴싸하게는 탐진치에 찌든 나를 가라앉히려 함이고, 더러는 실력부족으로 당하고 있어야 하는 현실 아니었을까. 작가는 또래들에게 가정살림을 시작해서 애들 하나 둘 키우던 무렵을 스케치한 앨범을 책으로 엮어 보여준다. 이 소설의 기법이 뭐니 작가의 의도가 뭣이라는, 평론은 필요 없다. 단지 우리 세대가 스쳐간 세월을 상영하여 추억을 거닐게 하는 것으로도 큰 만족이다. 이 책으로 과거에 발목 잡힌다고는 말자. 이런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 이 책을 쳐다보는 내가 있고 앞으로도 건강한 삶을 살아갈 주체가 될 모티브를 제공받을 거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이 책을 읽고 공감 할까. 차라리 시대배경이 아주 먼 옛날이라면 한 수 접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88올림픽을 전후한 시대에 시시콜콜했던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테다. 무슨 리뷰가 이 모양이냐고 질책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원미동 사람들> 만큼은 낙서가 되어도 좋겠고 뜬 구름 잡는 소리라 해도 개의치 않고 싶다. 마음의 고향 같은 소설을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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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등장한 원미동 사람들의 일부분을 읽어본 뒤 계속 책 전체를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고만 있다가 결국 이번에 읽게되었다. 정말 양귀자의 원미동사람들 같은 스타일의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가장하고 싶은말은 양귀자의 소설은 정말 내 스타일 이다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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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참 오랜시간 눈독만 들이던 책입니다. 거의 준 부천 토박이인 저한테 원미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워낙 친근해서인지 보지 않아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달까요. 그 오래된 소설을 몇달 전 겨우 읽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좀 우울한 일이 있어서 좀 차분한 소설을 찾고 있다가 선택한 경우가 되겠습니다. 총 11편의 짧은 소설들이 모여 하나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 1987년이니까 무려 20년이 더 된 오랜 글들입니다. 1987년이면 제가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이고, 그땐 친구들과 이리저리 부천 바닥을 쏘다닐 때라 정확히 그 무렵의 원미동 모습을 기억합니다. 특히 방과 후 원미산에 가서 놀다가 노을과 함께 집으로 삼삼오오 돌아가던 그 때의 느낌을. (글 중에 원미산의 쓰레기 소각장을 묘사하는 부분도 있는데, 예전에 그곳에서 불장난 하던 기억이 나기도... ^^) 작가의 짧은 글들은 그 시절 그 동네와 사람사는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줍니다. 그곳에 직접 살면서 관찰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사실성이 살아있습니다.그리고 작가의 무리하지 않고 재는 듯하지도 않으면서 물 흐르는 듯한 문체는 소설을 읽는 내내 걸리는 부분이 없어서 작가가 묘사하는 인물과 동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거기에 각 단편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너무나 현실적인, 그러나 억지스럽지 않은 설정은 모든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이는 원미동이라는 곳의 당시 동네 분위기, 즉 서울 경계선에 거의 바로 붙어있는 부천이라는 지리적 위치, 개발과 미개발 사이,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과 서울 입성을 꿈꾸는 사람들의 혼재하며 동상이몽하던 동네라는 특징을 감안하면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어쩌면, 만약 이런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면, 저로서는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이름에 공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외적인 구성도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듭니다. 단순한 듯 여백이 있는 표지 디자인에서도 당시의 휑하던 동네분위기(당시 부천이 그랬죠...)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구요, 내부의 구성도 소설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조금 심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사심(?)이 많이 들어간 리뷰가 되어버렸는데요, 전체적인 느낌을 짧게 정리해보면, "간결한 문장과 담백한 표현, 입체적인 인물/상황 구성으로 80년대 후반 원미동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형태이기 때문에, 조금 과장해서 연작 소설의 정석이라고까지 부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