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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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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억울한 일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일은 가끔 책에서만 등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올 2월 개봉한 재심이라는 영화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작은 아이와 즐겨보는 SBS의 ‘궁금한 이야기 Y’를 볼 때도 왜 이렇게 억울한 사람이 많은지, 결국 이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세상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약자 편에 선 법도,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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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억울한 일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그런 일은 가끔 책에서만 등장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올 2월 개봉한 재심이라는 영화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작은 아이와 즐겨보는 SBS궁금한 이야기 Y’를 볼 때도 왜 이렇게 억울한 사람이 많은지, 결국 이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세상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약자 편에 선 법도, 질서도 아닌 걸 보면 우울해 진다. 인터넷과 실시간 방송들이 발달한 지금도 이렇게 억울한 일이 많은데 예전엔 얼마나 더 했을까? 범인이 아닌 사람이 범인이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라니. 예전엔 사형 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혹 억울한 누명으로 살인자가 된 사람이라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일까 

 

후지산 기슭 대저택 주인은 와타나베 쓰네조. 어느 날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이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괴범은 소녀의 몸값 1억 엔을 요구한다. 현금 1억 엔을 들고 유괴범이 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소녀의 엄마.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의 성급한 판단으로 돈이 유괴범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그리고 쓰네조의 딸은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이에 분노한 쓰네조는 소녀의 사망 추정 시각이 소녀의 몸값 수수 실패 이전인지 아님 이후인지 집착하게 된다. 경찰의 수사로 용의자 고바야시 쇼지라는 청년이 체포되고 경찰은 가혹한 취조를 시작한다. 어떻게든 사건을 마무리 하고 싶은 경찰은 쇼지에게 자백하라 강요하며 사망 추정 시각을 조작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은 왜 소녀의 사망 추정 시각에 집착하는 것일까 

 

어리버리하고 돈 없는 청년의 잘못이라면 과거 절도 사건의 피의자 였다는 것일까? 소심하고 겁 많은 청년은 돈 조금을 몰래 훔칠 수는 있어도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심지어 당황하면 말도 제대로 못한다. 이런 아들의 성격을 아는 엄마는 아들의 무죄를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쇼지는 지금 가장 적절할 때 잡힌 대어였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엄마는 쇼지의 무죄를 위해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일하다가 죽는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쇼지. 그리고 쇼지의 가족은 풍비박산 나 버린다. 경찰에 의해 만들어진 살인자가 된 쇼지는 세상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삶을 포기해버린다. 쇼지를 보면서 이런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장담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아니라고 해도 쇼지의 천성을 믿었던 엄마는 쇼지를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어디다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지문만 있었을 뿐 어떤 것도 쇼지가 범인이라 말하지 않지만 경찰은 모든 것을 쇼지의 일로 만들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감식반이 의심을 하지만 그건 의문 부호일 뿐 입 밖으로 소리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모두의 침묵 속에서 쇼지는 범인이 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혹,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아니라고, 나는 범인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경찰이, 검찰이 그런 외침을 무시한 건 아닐까? 개인적으로 법정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상황을 전개시켜 나간다. 내가 만약 쇼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을지 상상해 본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지만 그들에게 억울함만은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는 몇이나 있을지, 돈 안 되고, 힘들기만 한 일을 맡을 변호사는 또 몇이나 있을지 생각해본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닌 일을 해 놓고, 대형 로펌의 변호사를 선임해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음을 안다. 적어도 법이 돈으로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돈이면 다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돈 없는 게 죄라고 말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우리가, 우리의 어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법은 힘없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란다. 법은 돈 있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하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은 돈이 최고인 세상도, 돈이면 다 되는 세상도 아니길 빈다. 돈 없고 힘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복한 세상이면 좋겠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7.09.06. 신고 공감 8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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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작된 시간 - 사쿠 다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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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는 고바야시 쇼지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309p) 이건 누명이다!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억울하게 분이 풀리지 않게 끝나면 안되는 것이었다는 소리다. 시원한 결말을 안겨다 줄 것으로 기대했다. 원죄로 잡힌 억울한 이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는 자신이 고구마를 먹어 버렸다. 아니, 그 또한 자신이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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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는 고바야시 쇼지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309p)

이건 누명이다!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거였다. 이렇게 억울하게 분이 풀리지 않게 끝나면 안되는 것이었다는 소리다. 시원한 결말을 안겨다 줄 것으로 기대했다. 원죄로 잡힌 억울한 이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는 자신이 고구마를 먹어 버렸다. 아니, 그 또한 자신이 원해서 먹었던 것도 아니다. 타의에 의해서 먹혀 버렸다. 그것도 완벽하게 아예 입이 틀어막혀 버렸다. 고구마로 말이다. 그러니 그도 무언가를 더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자. 그렇지 않고서야 이 답답한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다.

 

분명 전과는 있었다. 단순하게나마 일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서 전과3범이 되었다. 살인처럼 중대한 일을 저지른 것서은 아니다. 단순절도 정도 그렇게 가벼운 범행을 저질렀을 뿐이다. 나쁜 짓에 경중이 어디 있느냐고 누군가는 말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남을 죽이거나 해서 중형을 받은 것은 아니잖은가. 단지 전과가 있었닫고 해서 그렇게 몰려버리면 그에게는 더이상의 인생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리다. 그 누구도 자신이 전에 저질렀던 죄로 인해서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지 않아서는 안되다는 소리다. 물론 죄가 밉고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주의는 아니지만 말이다.

 

쇼지, 엄마가 어떻게든 구해줄게. (242p)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원죄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덮어쓰게 된 경우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이 원죄를 소재로 한 장르문학이 꽤 있다. 전혀 현실에서 이런 일이 없지는 않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쓰여지니 말이다. 이런 예는 비단 일본에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은 판단미스에 의해서 잘못된 오류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사람의 실수에 의해서 또는 증거가 잘못되어서 그랬다면 이해라도 할 수 있다. 그래, 어쩔 수 없었다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원죄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통 경찰들의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아서 범인이 됨직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이야기를 맞춰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경찰서 안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증거들이 총동원된다. 범행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에 맞추어 그 장소에 애매하게 있었던 그 사람이 바로 범인이 되는 것이다. 경찰들은 왜 그런 식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것일까. 일단은 사건의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하는 경우가 그럴 것이다. 피해자가 경찰의 아는 사람이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그럴 수 있다. 빨리 처리하려다 보니 대충 있는 것으로 두루뭉수리 하게 잡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정말 범인의 실마리도 일도 없을 경우가 그러할 것이다. 사건을 그냥 덮느니 그 자리에 있었던 용의자라도 데려다 신문을 하면 무엇인가 나오는 것이라도 있겠지 라는 아주 가느다란 희망의 끝을 잡고 행해지는 경우일 것이다. 경찰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는 부분은 있다손 치자. 그렇지만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식의 이야기 끼워 맞추기 수사는 절대로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b***8 2020.03.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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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미스터리의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까지, 가독성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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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유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1억엔을 요구하는 범인에게 그 돈을 정말로 주려고 했지만 끝내 그 돈은 전달하지 못했다.그리고 한 남자가 숲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소녀를 발견한다.우연히 주워들은 가방에서 돈이나 조금 훔치려고 했던 그 남자는 한 순간에 유괴 살인범이 되고,모든 사람들이 총동원되서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다.범인의 돈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정말 소녀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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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유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1억엔을 요구하는 범인에게 그 돈을 정말로 주려고 했지만 끝내 그 돈은 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숲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소녀를 발견한다.
우연히 주워들은 가방에서 돈이나 조금 훔치려고 했던 그 남자는 한 순간에 유괴 살인범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총동원되서 그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범인의 돈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정말 소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는 중요했다.
딸이 진짜 죽은 시간이.
그래서 경찰은 유괴된 그 날 바로 소녀는 죽었다고 모든 것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우연히 죽은 소녀를 발견한 그 남자는 범인이 되어야만했다.

경찰, 검사, 변호사, 판사, 법의관 모두가 한통속이 되서 사람 인생 하나를 망치는게 이리도 쉽다는게,
한 가정을 풍지박살 나게 만드는게 이렇게도 간단하는게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났다.
그렇게 한 통속이 되서 사형수를 만들어버리는데 어느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사형이란 1심 선고를 받고, 그 뒤를 이어 마지막 변호를 가와이 변호사는 누가 봐도 이상한 사건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하나하나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증거를 다시 찾고, 조사하는 가와이 변호사를 보면서
정말 법 관련으로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라도 이렇게 정직해야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마저 정직하지 못하다면 누가 그 법을 믿고, 살 수 있을까?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버린 소녀의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도 이해가 되고,
자신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살인범이 되버렸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의 엄마는 얼마나 분통터질지도 이해가 되고,
자신은 범인이 아닌데 살인범이라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미쳐버릴 것 같은 그의 심정도 이해가 되고,
분명히 이건 조작되고 잘못된 것인데 그런 부조리한 사법 체계를 보고 있는 가와이 변호사는 얼마나 절망스럽고 회의감이 들지도 이해가 되었다.

각각의 캐릭터에도 충분히 빠져들 수 있어서 더욱 공감이 되었고,
허황된 픽션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들의 과정이라 더욱 흥미로웠고,
법정 미스터리답게 그 과정 또한 재밌었다.
읽는내내 어이없고,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안타깝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면서 푹 빠져서 읽었다.
법정 미스터리의 재미도 충분히 느끼고, 사회적 메시지까지 담겨 있어서 여러가지 생각도 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d****i 2017.07.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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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寃罪) 사건의 온전한 재현을 통해 법 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다...
"원죄(寃罪) 사건의 온전한 재현을 통해 법 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다..." 내용보기
원죄(寃罪) 사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원죄는 아닙니다. 일본에서 쓰는 말인데,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유죄 판결까지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는 그런 사건을 일본에서는 '원죄 사건'이라 부르는 것이죠. 물론 이런 사건은 우리나라에도 비일비재 합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었던 '부
"원죄(寃罪) 사건의 온전한 재현을 통해 법 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다..." 내용보기

 원죄(寃罪) 사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런 원죄는 아닙니다. 일본에서 쓰는 말인데, '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유죄 판결까지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는 그런 사건을 일본에서는 '원죄 사건'이라 부르는 것이죠. 물론 이런 사건은 우리나라에도 비일비재 합니다.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되었던 '부림 사건(釜林事件)'도 그렇고, 박정희가 얼마나 악랄한 정권이었나를 보여주는 그 유명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날조된 혐의로 체포된 8명이 10개월 만에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 18시간 만에 전원 사형 당했습니다. 죽일 것을 작정하고 형식적 절차를 거친 한 마디로 '사법살인'인 것이죠.)도 그렇습니다. 너무 먼 얘기라면 얼마전, 영화 '재심'으로 만들어져 이제는 전 국민에게 알려진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도 있습니다.


 이러한 원죄 사건은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법 체계가 민주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법을 운용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내부의 탐욕이나 외부의 강요로 '공정'에 충성하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법은 그 무엇보다 무서운 흉기가 되어 그들이 점찍은 한 개인을 여지없이 파멸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몽테스키외가 천명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이렇게 사람에 의해 얼마든지 유린될 수 있음을 원죄 사건은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스스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막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민주주의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국민들이 법 체제의 가치 중립과 공정을 신뢰하지 못하면 언젠가 자신도 무작위적으로 내려지는 법의 횡포에 무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삶의 안정이 무너져내려 버립니다. 국가는 국민들의 삶의 안정과 거기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되는 것만큼 국민들이 불안으로 요동치기 시작하면 국가 역시 존망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겠죠. 사법 적폐를 척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시급한 책무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 원죄 이야기를 하냐구요? 사쿠 다쓰키의 '조작된 시간'이라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소설이 어떻게 원죄 사건이 만들어지게 되는지 거의 논픽션 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논픽션'이라고 하는 것은 이 소설인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범죄가 발생하고 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체포되며 재판에 이르기까지 그 전 과정이 하나도 누락되지 않고 책에 고스란히 그것도 아주 현실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일본에서 형사 소송법 절차는 이렇구나 하는 것을 한껏 느끼게 된 소설이었어요. 아무래도 작가가 원래 이런 쪽을 늘 담당하는 형사법 전문 변호사이다 보니 더욱 생생한 현실감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모아 온 유명 재력가 와타나베 쓰네조의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 미카 누군가에게 납치됩니다. 범인이 요구한 금액은 1억엔. 당시 쓰네조는 불법을 자행하는 일이 많은 자신의 사업 때문에 그간 뇌물을 적잖이 준, 현재 현경본부장(계급이 경시감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치안감 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인 모리타를 부릅니다. 그런데 몸 값을 주기로 한 날, 쓰네조와 무려 20살이나 차이나는 32살의 젊은 아내 미키코가 돈 가방을 들고 나갔다가 경찰의 강력한 제지로 그만 유괴범에게 돈을 주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모리타는 평소 쓰네조가 돈을 너무 밝히는 성격이기에 그것을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미키코가 돈을 주지 못하게 하라고 명령했는데, 쓰네조는 '그 돈은 범인에게 줄 작정이었는데, 왜 도로 가져왔느냐? 만일 이것 때문에 딸이 죽게 되면 각오하라!'고 모리타에게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리고 경고합니다. 만일 정말로 딸이 잘못되면 그동안 모리타에게 준 뇌물의 내역을 모조리 공개하겠다고 말이죠. 모리타는 쓰네조가 허튼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기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 두려움은 곧 현실로 나타납니다.


 미카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죠.


 여기에 억울한 피해자가 연루됩니다. 이름은 고바야시 쇼지. 할 일 없는 백수의 젊은 청년인데, 아부라나 캐어 용돈 벌이나 해 볼 요량으로 쓰네조가 경영하는 골프 클럽을 찾았다가 그만 화를 당한 것이죠. 거기서 미카의 시체를 발견해 버린 것입니다. 그가 최초 발견자였습니다. 그러나 쇼지는 신고하지 않고 그냥 달아나 버립니다. 그랬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이죠. 한 편, 미카가 시체로 발견되자 모리타는 궁지에 몰립니다. 돈을 주지 않아서 범인이 미카를 죽인 것으로 밝혀지면 모리타의 인생도 파멸이니까요. 그래서 미카의 '사망추정시각'(이 소설의 원래 제목이기도 합니다.)이 중요했습니다. 여기에 모리타의 인생 전체가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 미카의 시신을 검시한 신임 검시관 오키타는 시신의 온도와 나타난 시반 때문에 돈을 받기로 한 날 이후에 살해되었다고 추정합니다. 그런데 모리타의 입김이 들어옵니다. '사망추정시각'을 돈을 받기로 한 날 이전으로 하라고 말이죠. 자신 말고는 누구도 못 믿겠다는 쓰네조의 진심어린 부탁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키타는 개인의 양심을 져버리고 모리타의 명령을 따릅니다. 법의학자조차 모리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적극적으로 사망추정시각을 전 날로 맞춥니다. 


 그 때, 고바야시 쇼지가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것을 본 목격자가 경찰에 제보하여 쇼지가 주요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미키코의 증언에 따르면 전화한 목소리는 중후한 중년의 것이라 했고 더우기 그간 범죄자가 보여준 행태가 꽤나 지능범의 소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도 확연히 다르고 그만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머리도, 배짱도 없는 쇼지를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현장 근처에 있었다는 점과 쇼지가 미카의 시신을 발견하기 전, 그녀의 지갑에서 몇 천 엔의 지폐를 꺼내다 남긴 지문만 가지고 진범으로 몰아갑니다. 마땅한 물리적 증거가 없으니 오로지 쇼지의 자백만이 중요한 상황. 그래서 심문을 맡은 책임자 히라이는 온갖 방법을 써서 자백을 받아내고야 맙니다. 그런데 히라이는 쇼지가 돈을 받기로 한 날 다음에 미카를 죽였다고 자백하게 했는데, 뒤늦게 모리타의 계획과 상충되는 것을 알자 다시 쇼지를 윽박질러 거기에 맞춰 새로 조서를 꾸밉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변명을 하죠. 조직을 위한 일이라고. 오키타와 똑같이.


 울컥하고 분노가 치미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너네의 거짓으로 한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조직을 운운해? 우리가 세금으로 너네 월급 주는 것은 조직에 충성하라는 게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것이거든!' 하고 들릴 리 없는 그들에게 소리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뒷목을 잡게 만드는 존재들은 경찰만이 아닙니다. 부당하게 체포된 쇼지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변호사도, 오로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는 법관도 울화를 부추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설은 원죄 사건이 도대체 어떻게 나타나는지 문자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책임을 방기하고 자의든, 타의든 '사적 이익'(조직의 이익을 고려한 것도 결국은 조직 내 자신의 입지를 생각한 것이었을 테니 사적 이익으로 보는 게 옳겠죠.)을 추구한 결과라는 것을 말이죠. 그들이 뭐라고 변명을 하든, 그것이 순수하게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에 있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이기심이라는 괴물이 무고한 타인을 원죄 사건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원죄 사건을 다룰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말이 있어. 인생의 화와 복은 마치 꼬아 놓은 새끼줄과 같다'는 말. (...) 내가 원죄 사건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는 이유는 원죄라는 건 결코 한두 사람의 악인이 품은 악의나 누군가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수십 가닥의 짚이 꼬여서 굵은 밧줄이 되는 것처럼, 수십 명의 인간이 한 일, (...) 다양한 인간 활동이 섞이고 얼히고설켜, 그것이 어떨 땐 원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일세. 그걸 항상 통감해."(p. 469)


 원죄 사건을 많이 맡은 한 노 변호사는 이렇게 술회하는데, 물론 이 말대로 원죄 사건이란 다양한 동기와 행위가 얽혀 일어나는 일이겠으나 그래도 얽히게 만드는 힘은 바로 이기심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소설만 해도 쇼지가 사형을 당할 뻔하고 자신의 가정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용감하게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면 말입니다. 오키타든, 히라이든, 나오토든, 이사무든, 그 누구든 간에 말이죠.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기심을 먼저 보았고 한 사람이 죽고 한 가정이 부서지는 상황엔 눈을 감았습니다.


 물론 소설엔 이런 사람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 보다 타인의 처지를 더 먼저 헤아리는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두 사람인데, 하나는 살해당한 미카의 엄마인 미키코이고, 다른 하나는 2심에서 새로이 쇼지의 변호를 맡아 쇼지를 위해 싸우게 되는 가와이 변호사 입니다. 모두 자신의 커다란 아픔과 힘겨운 삶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쇼지의 비극을 이해하고 배려합니다. 이렇게 명확한 대비가 소설에 있는 것을 보면, 원죄 사건이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해 작가가 위에서처럼 한 노 변호사의 말을 통해 얼른 분간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긴 했어도 실은 그 역시도 한 가지 이유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것은 이기심이죠. 소설은 그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약한가 잘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사람들이 이기심 때문에 좌고우면하지 않도록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작된 시간'을 통해 '사법 적폐'를 왜 없애야 하는지 다시 한번 선연하게 깨닫게 되네요. 우리나라에도 허다하게 있었던 원죄 사건의 피해자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그러지 않으면 어쩌면 다음 희생자는 바로 우리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l****1 2017.09.08.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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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 권력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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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지우는 세상이 있습니다. <조작된 시간>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그곳은 어디일까요. 없던 죄도 만들어내는 곳, 그곳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소설이라고 하지만 억울한 희생자가 일본에서만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벌인 기상천외한 사기극. 그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수두룩한 이 땅에서 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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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지우는 세상이 있습니다. <조작된 시간>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그곳은 어디일까요. 없던 죄도 만들어내는 곳, 그곳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본소설이라고 하지만 억울한 희생자가 일본에서만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벌인 기상천외한 사기극. 그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수두룩한 이 땅에서 그 같은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유명한 사업가의 딸이 유괴되고 살해된 후 급히 체포된 용의자는 제대로 변호조차 받지 못한 채 범인으로 몰립니다. 이 과정에서 얽히는 경찰과 변호사, 검사, 판사들의 이해관계가 아주 긴장감 넘치게 묘사됩니다. 소녀가 사망한 시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는 한 청년을 낭떠러지 끝에 세웁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그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한편 사망 추정 시각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한 변호사는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실을 밝히지만 법조계 인사들은 진실을 외면하려 듭니다. 용의자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변호사가 나오는 소설은 여러 번 봤지만 이렇게 재판과정을 자세히 다룬 책을 본 적은 없습니다. 취조과정과 재판과정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꼭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자가 현직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딸을 잃은 부모의 무너져 내리는 마음과 살인자를 향한 분노, 자신이 몸담은 단체에 해가 될까 봐 진실을 감추는 비겁함, 가진 것 없고 약하기만 한 사람을 희생자로 삼는 추악함까지 여러 사람의 복잡한 심정을 흥미진진하게 드러내는 글 솜씨에 추리소설을 읽듯이 전개를 예상하며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법조계의 부조리함, 현실의 어두운 면이 눈에 들어와 분노만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올곧은 변호사 덕에 숨통이 좀 트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그래도 세상을 희망적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 중에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아직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바로 사용될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을 똑바로 마주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지도층이 절실한 이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YES마니아 : 로얄 r*****1 2017.09.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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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 사쿠 다쓰키 (이수미 옮김, 몽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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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 미스터리가 대체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런지신간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하며 안쓰러운(?)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조작된 시간’의 원제는 ‘사망추정시각(死亡推定時刻)’인데,번역제목과 원제에서 연상되는 대로 피살자의 사망추정시각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법조물로,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의 문제, 각 사법주체들의 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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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 미스터리가 대체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런지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하며 안쓰러운(?)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조작된 시간의 원제는 사망추정시각(死亡推定時刻)’인데,

번역제목과 원제에서 연상되는 대로 피살자의 사망추정시각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법조물로,

원죄(冤罪,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의 문제, 각 사법주체들의 판이한 정의감 등

꽤 매력적인 코드들이 다양하게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때보다 조금은 더 큰 기대감을 갖고 첫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 ● ●

 

후지산 기슭 대저택의 주인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이 유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유괴범은 몸값 1억 엔을 요구했지만, 끝내 딸은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와타나베는 유괴범 체포를 위해 몸값을 전달하지 말 것을 지시한 경찰 수뇌부에게 분노한다.

그는 특히 딸의 사망추정시각이 몸값 수수 실패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에 집착한다.

몸값 수수 실패로 딸이 죽었다면 경찰의 비리를 까발려서라도 복수하겠다는 심산인 것.

한편 용의자로 체포된 고바야시 쇼지는 범행을 부인하지만 가혹한 취조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들을 향한 와타나베의 분노에 겁을 먹은 경찰 수뇌부는

고바야시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물론 사망추정시각까지 조작할 계획을 세운다.

무기력한 변호인 탓에 궁지에 몰린 고바야시 앞에

가난하지만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국선변호인 가와이가 나타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는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법과 정의를 다루는 이야기다보니 당연히 사법시스템 내의 선과 악이 대결구도를 형성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후반부의 주인공 격인 선한 변호사 가와이를 제외하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경찰, 검찰, 변호인, 재판관, 검시관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악인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사망추정시각을 비롯한 중요한 정황들을 조작하거나,

근거 없는 자신감과 빗나간 신념을 앞세워 전근대적인 범인 만들기에 혈안이 되거나,

가난한 의뢰인에게 돈만 뜯어내곤 본연의 업무를 내팽개치거나,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재판 과정에서 대놓고 귀차니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때론 인물들의 캐릭터도, 그들의 행동도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이어서

이 작품이 2001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비록 거친 수준이긴 해도 과학수사가 등장하는 상황이지만,

작품 속 사법시스템은 70~80년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구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태때문에 독자들의 분노 게이지는 급상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 어딘가에서 이 모든 악습들을 일망타진할 영웅이 나타날 거라 기대하게 됩니다.

그 기대는 일부는 충족되기도 하고, 일부는 실망감만 안겨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해피엔딩으로만 이어지진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전개가 작가가 의도한 이 작품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소설 집필을 위해 형사소송법을 읽다가 법의 세계에 빠져든 끝에

결국 법조인이 된 현직 변호사가 쓴 정통 법조 미스터리입니다.

이런 독특한 이력 탓인지 모르겠지만, 소재나 이야기 구조 모두 돌직구 같은 스타일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나 리포트에 가깝다고 할 정도인데,

어찌 보면 그 점이 미스터리 독자들에게는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법시스템의 디테일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해설하는 내용이라든가

대부분 읽지 않고 그냥 넘겼던 굵은 글씨로 표시된 각종 메모나 재판 관련 서류들,

, 별 갈등 없이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한 캐릭터들은 소설적 재미와 거리가 먼 설정들이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원인입니다.

 

사망추정시각을 조작한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아마 전업소설가가 이 작품을 썼다면 이야기의 굴곡도 커지고, 픽션의 재미는 배가됐겠지만,

부당하게 작동하는 사법시스템의 민낯의 리얼리티는 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재미를 기대했던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의 너무 정직한 태도가 못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도 일본 미스터리에 대한 안쓰러운 기대감은 충족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작가의 신작이 출간된다면 분명 귀가 솔깃해질 것 같긴 합니다.

다음엔 너무 돌직구만 던지지 말고, 변화구도 좀 섞인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h****s 2017.08.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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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체계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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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읽은 일본작가의 소설은 정서상으로도 맞지 않고 번역도 많은 부분 거슬리는 부분이 많아 이번 책 역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던 책한 소녀의 유괴와 죽음으로 시작되어 단순히 용의자일뿐이였던 한 개인이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어떻게 범인으로 몰려가는지를 사실적이고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국민을 보호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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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읽은 일본작가의 소설은 정서상으로도 맞지 않고 번역도 많은 부분 거슬리는 부분이 많아 이번 책 역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의외로 괜찮았던 책

한 소녀의 유괴와 죽음으로 시작되어 단순히 용의자일뿐이였던 한 개인이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어떻게 범인으로 몰려가는지를 사실적이고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국민을 보호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공권력이 국민의 위에서 군림하고 조직을 위해 사용될 때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무너질수 있는지 사실적이고도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좋았다

법치주의란 국민이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통치하라는 뜻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책이다
w*******3 2018.03.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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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작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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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은 읽다보면 화가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 왜?!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에 썩 내키지 않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와.. 진짜.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일어난 일들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만큼 권력,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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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이 책은 읽다보면 화가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 왜?! 분노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에 썩 내키지 않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와.. 진짜.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일어난 일들은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만큼 권력, 돈, 명예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의 삶을 제대로 망쳐놓았다. 아니지, 한 가족의 삶이지. 이것들이.. 한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가.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제대로 나서지 않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기에 바빳다. 세상에. 책 속 이야기만으로도 이렇게 화가나고 분노가 치솟는데, 실제로 이렇게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된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할까. 그리고.. 실제 이렇게 원치않는 감옥살이를 하게 된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뒤늦게 무죄로 밝혀져서 세상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는걸 보면 그들도 권력에 희생된 희생양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읽다보니 대체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건지 의문이 든다.

이야기는 와타나베 토건의 사장 와타나베 쓰네조의 아름다운 외동딸 미카가 유괴된 후 살해된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물불 안가리고 사업을 확장했던 쓰네조는 형제들과도 연이 끊겼을만큼 독한 인간으로 주변에 꽤나 적은 많은 인물이다. 누구도 쉽게 믿지 않고 눈앞의 돈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인물. 이런 인간이었으니 유괴 사실을 접한 경찰측에선 쓰네조가 유괴범이 요구한 1억엔을 순순히 줄리 없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판단은 지극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생각외로 쓰네조가 미카를 매우 아끼고 사랑했던 것. 미카만 살아돌아올 수 있다면 1억엔은 언제든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쓰네조의 마음을 잘못 파악한 경찰측의 잘못된 대응은 미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경찰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사건을 조작해서라도 독한 쓰네조의 분노를 피하려고만 한다. 이런 경찰의 눈에 걸린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26살의 소심하기 짝이 없는 남자 고바야시 쇼지였다. 절도죄로 이미 3번이나 경찰 신세를 진적이 있는 그였기에 경찰이라면 질색팔색 하는 그였다. 때문에 산속에서 미카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공포감에 도망치기나 했지 신고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하지 않았다. 시체를 발견하기에 앞서 먼저 발견한 미카의 지갑에서 돈을 훔치느라 지갑에 지문이 묻히고, 미카를 발견한 후에는 왜 이런 곳에서 잠을 자나 싶어 무심코 손을 대서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않은채 말이다.

게다가 이미 집안에선 내놓은 자식이나 다름없었고, 유일하게 쇼지의 편을 들던 엄마마저 쇼지가 잡혀간 나흘 뒤에 갑작스레 사망을 했으니... 경찰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을 수밖에 없었다. 소심하고 머리까지 그닥 좋지 않으니 다루기 쉽고, 범인으로 몰아버리기에도 좋고. 안그래도 빨리 끝내야 하는 사건이었으니 경찰은 무조건 그를 범인으로 몰아버린다. 증거도, 미카의 사망시각도 조작을 해버리고 진술도 자신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재판까지 후다닥. 결국 사형을 선고받은 쇼지. 누구하나 쇼지의 편이 되어주지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청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 가와이 도모아키 변호사가 국선변호사로 쇼지 사건의 항소를 맡게 되면서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정말 끝까지.. 억울하고 분했다. 법을 수호하고 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는 결코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카의 부모. 부모의 반응을 보면 분명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쇼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짜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고 쇼지의 상황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이 사건을 제대로 건드리기엔.. 잃을게 너무 많다는 건가? 그게 딸의 죽음의 진실보다 더 중요한 거였나? 눈뜨고 당한다는게 이런건가 싶다. 정말.. 최악의 인간들 같으니라고. 아무리 욕을 해도 이 답답함은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정말 최악인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거라는 거다. 다른 이에게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나쁜 인간들 모두.. 천벌 받기를. 쇼지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기를..!!

 

k******j 2017.09.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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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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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봇짐 내놓으라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커다란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구해 준 사람의 고마움을 잊고 도리어 생트집을 잡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려움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해줬더니 오히려 원망의 말만 듣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본인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할까? 특히 그 행동이 살인이라면    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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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봇짐 내놓으라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커다란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구해 준 사람의 고마움을 잊고 도리어 생트집을 잡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려움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해줬더니 오히려 원망의 말만 듣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본인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할까? 특히 그 행동이 살인이라면 

 

후지산 기슭의 대저택 금어전의 주인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인 미카가 유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유괴범의 요구사항은 미카의 몸값 1억 엔. 하지만 1억 엔은 경찰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유괴범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결국 미카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건가! 나는 1억을 범인한테 줄 생각으로 내줬어. 그런데 누구 허락을 받고 도로 가지고 온 건가! 내 돈이고, 내 딸이야. 당신들은 내 딸의 목숨보다 체포가 더 중요한가! 경찰 실적이 더 중요하냔 말이야. 이제 미키를 어쩔 셈이야!” -p.63-

 

평소에도 돈에 집착이 강한 쓰네조이기에 모리타 현경본부장은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로 인해 외동딸인 미카가 죽게 된다. 이에 분노한 쓰네조는 소녀의 사망 추정 시각이 소녀의 몸값 수수 실패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를 알아내는 데 혈안을 올리게 된다.

 

한편 미카를 살해한 용의자로 고바야시 쇼지라는 청년이 체포되게 되고 그는 경찰에 의해 가혹한 취조를 받게 된다.

 

고바야시 쇼지는 아까보다 더 얼굴이 새파래졌다.

분명 나는 그 아이의 다리를 만졌다. 지문이 다리에도 묻어 버렸다. 그런 것까지 경찰은 모두 알고 있다.’

이 때 피의자의 동요는 형사의 자신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 자식, 그 소녀에게 손을 댔어. 이 자식이 죽인 거야.’

취조 담당 주임인 히라이 형사가 이 순간 품은 확신은 고바야시 쇼지를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p.150-

 

취조 과정에서 쇼지의 범행 자백 및 소녀의 사망 추정 시각에 대한 진술은 취조 형사에 의해 조작되게 된다. 조작된 시간(원제: 사망추정시각)은 중요한 시점에서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누군가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마다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주요한 내용들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거다.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적절한 타이밍에 내레이션을 하는 것을 이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용의자를 체포해서 취조하고 재판에 넘겨지고 판결을 받고 항소를 하는 과정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그런지 책을 다 읽고 나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처럼 취조부터 재판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소설은 조작된 시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의 저자가 실제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일본에서 유명한 형사변호사라고 한다.(이름은 물론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작가는 실제로 일본에서 벌어진 유괴 사건을 신문에서 접하고 이 소설을 집필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몸값을 도로 아래로 투하하라는 범인의 지시가 있었는데 경찰이 요구를 무시했고 그로 인해 피해자는 결국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읽어갈수록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에 새삼 놀라고 답답하면서도 이런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간첩누명을 쓰고 수감되었다가 무죄 판결을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그 후 검찰의 추가 기소로 인해 7년의 재판 끝에 그 기소가 보복기소였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최근에 나왔고, 피해자는 공수처에 당시 담당 검사들의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국민들을 법으로 지켜줘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된 판단으로 그 법을 이용해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끔찍했다. 한번 유죄로 결정 난 사건이 무죄로 다시 판결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걸 깨닫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용기와 정의감이 필요하다. 조직을 위해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는 말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국민들에게만 법을 잘 지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권력자 본인들 스스로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고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대다수의 국민들도 항시 깨어있는 자세로 법치주의가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국민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법이 적용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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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 2022.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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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읽어봤니] 이건 누명이다! 조작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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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사건을 다룰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말이 있어. '인생의 화와 복은 마치 꼬아 놓은 새끼줄 같다'는 말. (중략) 수십 명의 인간이 한 일. 즉 악의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선의, 배신이나 과실에게 일종의 의무에 충실한 행동이나 모범적인 행위도 모두 함께 꼬이고, 다양한 인간 활동이 섞이고 얽히고 설켜, 그것이 어떨 땐 원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일세" (p.469)화를 부르는 것과 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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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사건을 다룰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말이 있어. '인생의 화와 복은 마치 꼬아 놓은 새끼줄 같다'는 말. (중략) 수십 명의 인간이 한 일. 즉 악의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선의, 배신이나 과실에게 일종의 의무에 충실한 행동이나 모범적인 행위도 모두 함께 꼬이고, 다양한 인간 활동이 섞이고 얽히고 설켜, 그것이 어떨 땐 원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일세" (p.469)

화를 부르는 것과 복을 부르는 것이 꼬아 놓은 새끼줄 같아서 화와 복의 원인이 되는 그 무언가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같은 출발점에 있음을 무겁게 암시하고 있다. 사건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시간의 조작이 화와 복을 부르고 있다는 의미인건 아닌지... 제목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광활한 대지 위에 저택 금어전의 넓은 주방, 다른날과 달리 귀가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딸아이를 기다리는 미키코의 안절부절하는 모습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때 걸려온 한통의 전화, 금어전의 주인 와타나베 쓰네조가 받은 전화는 말없이 끊어져 버리고... 곧이어 걸려온 전화는 금어전의 외동딸 미카의 몸값을 요구한다. 오로지 미키코와의 통화를 요구하며 몸값을 주지 않으면 미카를 없애버린다고 협박한다. 납치, 협박, 신고 그리고 살해, 범인검거 평범한 유괴처럼 보여지는 이 사건에는 살인사건 못지 않은 어두운 부조리가 존재한다. 힘없고 약한 사람은 잘짜여진 그들의 판에서 살인자가 되어 일상을 빼앗겨 버린다.

"그자의 분노를 모리타 자신과 경찰이 아니라 범인에게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범인이 강에 1억 엔을 떨어뜨리라고 지시한 시점에 이미 와타나메 미카를 살해했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즉, 미카의 사망 시각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앞으로 실시된 시체 검시와 감정,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p.92)

사건의 단서를 조작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조작되는 증거와 심문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겁에 질려 살인현장을 목도하고도 숨겨버린 평범한 청년 고바야시 쇼지를 살인범으로 몰아간다. 철없던 어린시절 저질렀던 전과와 사건현장을 보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조직을 위해서는 잘못된 판단임을 알고 있음에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아버린다. 정의를 지키는 것을 가장한 부조리의 민낯일 뿐이다.

어린시절 철없던 시절의 단순절도 전과를 가진 지극히 평범한 청년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인범으로 몰아간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된 청년의 절규도, 그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애닳픔도, 딸 아이를 잃은 부모의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도 공권력이라는 미명하에 가뿐히 넘어선다.

숲속에 버려진 가방에서 4천엔을 훔치고, 살인현장을 신고하지 않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실수로 사형을 선고 받은 고바야시에게 마지막 구명의 빛처럼 국선변호인이 나타나지만, 혼자의 힘으로 철옹성같은 부조리를 넘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얽혀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조작, 돈이 되지 않는 사건에는 소홀한 변호인, 우수하지만 그 우수함은 오로지 조직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경찰.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유괴사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부조리한 조직의 모습에 분노하게 된다.

"이런 불합리한 일로 한 사람의 생명을 없애고도 태연한 사람들. 그런 세상이랄까, 사법제도랄까, 그런 것에 대한 제 오기입니다." (p.357)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편의 범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글이다. 전혀 낯설치 않은 어쩌면 일상에서 쉽게 일어나고 있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장을 보는 것같다. 얼마전 진범 논란을 빚었던 화성연쇄살인범 사건이 떠오른다. 28년이 지난 이제서야 진범이 밝혀지고, 무고한 옥살이를 했던 윤모씨의 재심의가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누명을 벗는다해도 그의 28년은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는건, 힘들지만 조작된 증거들을 하나둘씩 밝혀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윤리적이고 명쾌한 변호사 윤명 가와이 도모야키가 쇼지 곁을 끝까지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여명들이 모여 밝은 빛이 되어, 더이상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b******0 2020.03.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