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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정치에 관심이 크진 않았다. 그런 나에게도 몇 해 전 대선 결과는 충격이었다. 모두가 경기 침체로 고통 받고 있음은 잘 알았지만 그로 인해 이성이 마비될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절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기적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당시와 같은 고도성장을 꿈꾸는 듯했다. 과정 과정에서 숱하게 꺾인 희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잘 살기만 하면 뭐든 용납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가 천민자본주의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우둔한 선택은 어디서나 발생한다. 오바마 정권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후 등장한 트럼프와의 비교를 굳이 하자면 오바마 시대는 황금기였다. 모두가 우려를 표명했고, 미국인들조차도 치를 떨었다. 안타깝지만 그들의 대통령은 이제 트럼프이다. 집권과 동시에 트럼프가 보인 행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바였다. 오래 전 미국은 지구의 평화를 수호하는 절대자처럼 굴었다. 그들에겐 충분한 부가 있었다. 막대한 자본을 투여하면서 그들은 평화를 가장한 전쟁을 수행했는데, 그로부터 파생된 일자리도 상당했다. 위기로부터 미국이라 하여 자유롭진 않았다. 트럼프는 이제껏 미국이 수행한 역할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선언을 했다. 동시에 미국의 위대함을 방해하는 모든 요인을 철두철미하게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피부색이 조금이라도 검은 이들은 미국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됐다. 그들은 잠재적 불법 이민자요, 미국의 평화를 해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로 여겨졌다. 거센 반발과 동시에 옹호의 목소리도 커졌다. 갈등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제국주의라는 단어는 왠지 19세기의 전유물처럼 들린다. 유럽 각국이 생산된 물건을 판매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속성을 온 천하에 드러냈음을 나는 역사책을 통해 접했다. 우리나라가 겪은, 그리고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한 역사의 굴레 또한 제국주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은 유럽 제국주의를 모방해 강대국으로의 성장을 도모했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겪은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뒤틀린 자화상이었다. 저자는 오늘날 동아시아를 둘러싼 매우 불안정한 정세를 제국주의 체계라는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속하지 아니 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많은 이들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시때때로 핵 미사일 개발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에 불편함을 토로한다.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할진데, 저자는 이 또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낳은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돌이켜 보면 이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미국의 개입으로 발발한 전쟁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또한 참전해 부끄러운 한 획을 그은 베트남 전쟁의 경우 미국의 그릇된 판단이 낳은 비극이었다. 우리의 땅에서 벌어진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 먼저 침략을 시작했는지 여부를 떠나 미국을 제외할 경우 전쟁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막대한 것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미국을 우러러 본다. 특히 전쟁의 기억을 진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들에게 미국은 수호신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달라졌지만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속내가 어떠하건 간에 미국을 영원한 혈맹이라 여기며 칭송하는 데 있어서는 여느 정권이나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왠지 “미국 우선”을 표방한 트럼프 집권 시기에 이는 서글픈 짝사랑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상대는 우릴 전혀 고려 않는데, 제발 우리를 포기치 말아 달라 매달리는. 집권자가 지닌 영향력이 막대할지라도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정책을 실질적으로 현실로 만드는 행정조직의 변화는 미비하다. 대통령이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시도하여도 그간 행정을 쥐고 뒤흔든 이들이 오히려 반격을 펼치고 이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결국 민중이 움직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민중은 선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다. 그 외의 순간에는 침묵할 때가 잦다. 하지만 선거에 참여했다 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 이행했다고 보아선 안 된다. 다수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거대한 움직임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를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진정으로 전쟁과 폭력을 종식시키려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를 폐지해야 함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난해하다.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널린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허나 오늘날의 평화주의는 일종의 기만과도 같음을 잘 안다. 근본에 깔린 제국주의 질서에 어떠한 변혁도 기하지 아니 한 채 평화를 논하는 것은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 제국주의 신봉으로부터 벗어나 실질적 평화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요, 그 과정에는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할 수 있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