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의 침식의 관점에서 인류문명의 발생과 부흥 그리고 쇄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많은 문제를 일깨워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발견한지는 좀 되었지만 가격이 비싸 얇은 주머니 때문에 선뜻 사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뜻을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농경이 시작되면서 식물이 잘 자라는 기름진 땅에서 정주문명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력의 고갈과 갈아 엎은 흙의 침식으로 말미암아 경작지가 유실되고 문명, 문화, 도시, 촌락이 솨락 해 간다. 정주인이 흙을 어떻게 생각하고 , 대하는가에 따라 문명이 어떻게 되는가를 예를 찿아내어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어떻게 될지를 경고 하고 있다.
고대문명과 침식과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고 마야문명의 쇠락, 신대륙의 플랜테이션과 침식을 얘기한다. 미국 남북 전쟁의 원인도 지력의 고갈과 흙의 침식에서 찾는다. 남북전쟁의 원인과 노예와의 관계에 대해서 기존의 생각과 좀 다른 해석은 설득력을 갖는다. 18세기 말 노예노동의 경제성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1836년, 버지니아주는 10만명이 넘는 노예를 수출"했고 "1850년대 조지아주는 노예사육이 주 수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 하였다고 한다. 결국 남북전쟁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직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태평양 이스터섬의 몰락, 망가이아 섬과 티코피아 섬의 비교, 는 원주민의 흙에 대한 관점과 태도에 따라 현저히 다른 길로 도달한 예를 보여 준다.
흙의 침식과 지력의 고갈이 가까운 시점에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를 흙의 관점에서 무섭게 경고 한다. 재앙이 바로 눈앞에 와 있는데 사람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생태적 삶, 그것이 시대의 화두다.
|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흙"의 상실 위의 제목처럼 문명이 사라지게 한 흙이 결국 그 문명을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 이책의 주제이다. 이 책은 농경의 시작단계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를 분석하면서 역사적인 논리 전개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질학적 증거들을 제시하면서문명의 사라짐 뒤에 흙의 상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통농업으로 인한 흙의 침식 속도가 풍화작용으로 인한 흙의 생성속도를 앞지름으로서 흙의 상실을 가져오게 되고 그러한 상실이 가져오는 생산력의 저하가 결국 문명의 멸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농업의 발상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쇠퇴배경을 분석해보면 고고학적 증거가 농업생산력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한때 풍성한 문화를 자랑했던 이집트문명도 지금은 식품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로 전락했다는 것은 이러한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동양의 농업문명의 시작점 중국은 어떤가? 사료를 통해 기근과의 전쟁을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쟁기와 축경을 통한 흙의 상실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도시가 처음에는 범람원에서 시작되면서 점차 비탈면까지 확장하는 형태를 보이다가 흙의 침식(지질고고학적 자료의 증거를 통한)이 시작되면서 도시가 점차 쇠락하는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중국 우왕이 강을 지키려거든 산을 지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근세에 들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식량의 수입과 인구의 수출이다. 이것이 식민지 개척이 역사인 것이다. 대륙의 플랜테이션을 통한 농업생산에서도 보면 주로 흙의 침식을 가속시키는 담배 생산을 주로 했다는 점과 노예노동으로 인한 땅의 살림따위는 신경쓸 이유도 없었다는 점이 이러한 문제를 더 가속시켰다는 것이다. 오늘날 쟁기와 트랙터, 산업화된 농업의 등장으로 인한 화학비료와 석유산업의 의존은 땅의 침식을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화학 비료와 농약의 사용으로 인해 흙은 점점 죽어가고 있다. 이것을 살리는 방법이 무경운방식과 흙보존경운이며, 비옥한 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시 살림이 농업의 새로운 비젼을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저자의 흙에 대한 독특한 철학이 주는 감명은 매일 보고 밟고 지나다니면서도 그 소중함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농업에 대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그러한 중요성을 생각하고 있는지, 또한 그러한 중요성에 대해 다루는 측면이 제대로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에게 흙을 보존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다는 뜻이며 아울러 우리 문명의 앞날을 보전한다는 뜻인 것이다. |
|
|
|
흙과 제국과의 상관관계가 있을까? 경작지의 확장과 도시화는 흙의 보존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농업과 관련된 일바적인 것고 로마와 관련시켜 본다
제국의 멸망의 원인은 다각적인 검토에서 이런 기본적인 사항까지도 연계성을 갖는 것은 치밀함의 극치이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흙의 파괴는 나라의 안녕과 존재에도 영향을 미침을 알게된다 4대 문명지가 지금은 황폐화가 되어 황무지로 변환것이 그 증거가 될수도 있겠다
1.농업의 순서 ![]()
2.문명붕괴의 순서
3.흙과 관련된 로마의 멸망 ![]() |
|
인류가 기대고 살아온 대지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땅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많은 역사적 이야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많은 땅을 갖고자 했는가!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콘크리트 건물로 그 땅에 대한 욕망이 대체되었지만 말이다. 세계적 역사적 흐름이 흙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사람들의 흙과 땅에 대한 어떤 욕망을 품었는지 너무나 잘 보여준다. 그리고 흙과 떨어진 현대에 살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이 흙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흥미진진한 책! |
|
작게 삶으로 023 살리는 바탕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11.26.
밭에 지렁이가 살면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니면 흙이 부슬부슬 일어나 숨을 쉬고, 지렁이똥으로 흙이 기름지다. 흙에는 작은 숨결이 살면서 흙을 붙잡는다. 흙이 날아가지 않는다. 흙은 지렁이에 숱한 숨결을 동무로 삼고, 마른 가랑잎을 덮고, 풀과 꽃과 나무를 이웃으로 삼아서 땅을 지킨다.
살아숨쉬는 흙은 모두 씨앗을 키운다. 풀이 뿌리를 내리는 켜는 내 살갗보다 겉흙이 더 얇다고 한다. 이 얇은 흙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더 깊은 흙에서는 작은 벌레가 먹고살고, 더욱 깊은 흙에서는 더 작은 숨결이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우러진단다. 흙이 늘 새롭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모든 숨결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면 풀도 죽고 풀벌레도 죽고 지렁이도 죽는다. 이때에 우리 사람은 안 죽을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죽는 셈 아닐까? 흙에 깃들던 작은 숨결이 다 죽는데 사람만 안 죽을 수 있을까? 서로 얽히니, 흙에서 먹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이 살아난다. 흙이 풀꽃나무가 될 씨앗을 키우지 못하면, 흙은 자꾸 벗겨지고 시들어가리라. 흙이 살고 벌레랑 지렁이랑 온갖 작은 숨결이 함께 어울려야, 흙도 사람도 모두 즐겁게 살아가리라.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은 2010년에 나온 책이다. 글쓴이는 이 푸른별을 덮은 흙이라는 곳(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어 보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은 으레 흙이 죽었고, 사람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언제나 흙이 싱그럽다고 한다.
2021년 어느 여름날, 지렁이떼를 보았다. 불볕인 한낮 비렁길에 이리저리 뒤엉킨 채 말라죽은 지렁이가 떼로 있었다. 날씨가 뒤틀려서 괴로운 나머지 죽었는지, 땅속에서 살 수 없어서 죽었는지, 어디로 옮겨가다가 죽었는지 모른다만, 이렇게 지렁이가 떼로 죽는다면, 우리 삶도 멀쩡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랑잎을 갉고 돌을 잘게 부수어 흙으로 바꾸는 지렁이인걸. 지렁이는 사람들처럼 자동차를 몰지도 않고, 아파트를 세우지도 않고,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고, 학교를 다니지도 않지만, 오래오래 이 별을 가꾸어 왔는걸.
곰곰이 보면, 언제나 작은 것(숨결·생명)이 큰일을 하더라. 흙을 찾기 어려운 도시이고, 도시에서는 흙이 곁에 없어도 걱정(불편)이 없는 듯싶지만, 우리가 도시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흙이 없으면 논도 밭도 없는 셈 아닌가. 논밭이 없으면 밥이 없고, 논밭이 없으면 푸른바람도 없을 텐데.
자동차로 아스팔트를 달리면 빠르다. 바쁘니까 자동차로 빨리 달린다. 우리는 흙을 보거나 만지거나 디딜 일이 없다시피 하다. 나무는 겨우 흙에 뿌리를 뻗지만, 아주 조그마한 구멍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꼴이다. 지렁이뿐 아니라 나무도 숨을 쉬기 어렵다. 답답하겠지.
사람도 살갗에 햇볕을 넉넉히 쬐어 주어야 튼튼할 수 있다지만, 햇볕을 느긋이 쬐려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든다. 햇볕을 안 쬐더라도 자라는 토마토에 딸기에 수박에 참외가 쏟아진다. 머잖아 햇볕을 안 쬐고 자라는 나락이 나올는지 모른다.
한 줌 흙덩이를 알 수 있다면, 흙으로 빚은 모두를 알 수 있겠지. 흙에서 자란 밥을 먹으니, 흙을 알려고 할 적에는 우리가 먹는 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우리가 먹는 밥이 흙에서 온 줄 안다면, 우리 몸도 흙에서 돌고도는 줄 알 수 있겠지. 우리 몸이 흙에서 오는 줄 안다면, 마을도 나라도 흙이 고르게 덮고 풀꽃나무가 우거진 터전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푸르게 펼 수 있겠지. 누구나 스스로 살리는 바탕인 흙을 다시 바라본다.
2023.08.31. 숲하루
#숲하루, #살리는바탕, #흙, #문명을앗아간지구의살갗, #데이비드몽고메리, #이수영, #삼천리, #작게삶으로 |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을 한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가 "우리 나라가 독립한 이래 가장 위대한 애국자는 침식을 가장 많이 막아낸 사람이다."란 말도 했다. 지질학자 데이비드 몽고메리(David Montgomery; 1961-)의 '흙'에서 접하게 된 말이다. ‘흙’은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이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흙‘이라 했지만 원제는 ’Dirt’다. Dirt는 먼지는 물론 흙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몽고메리는 “지질학자로서 나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앞서간 사회가 그 시대의 흙에 새겨놓은 기록을 살펴보면 좋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지형학자로서 나는 지질연대를 통해 지형이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자연 경관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연구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흙이란 무엇인가? 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반응하는 역동적 시스템(24 페이지)이고 우리 행성을 이루고 있는 암석, 그리고 암석에서 용해되어 나온 영양소와 햇빛에 기대어 사는 식물들과 동물들의 인터페이스“(28 페이지)다.
암석을 배우는 입장으로 흥미를 가질 만한 분류도 몽고메리에 의해 제시되었다. 화강암이 풍화하면 모래흙이 되고 현무암이 풍화되면 점토질 흙이 된다. 석회암은 녹아서 사라지면서 얇은 흙층과 동굴이 있는 암석지대를 남긴다.(31 페이지) 중요한 점은 지구의 기후대는 흙과 식물군락이 진화하는 템플릿이란 점이다.
이 부분에서 기후와 흙과 식물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성경의 모세, 초기 미국의 인물들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을 사례로 거론한 몽고메리가 말하는 바는 흙의 침식 속도와 재생산 속도의 갭이다. 당연히 너무 빠른 침식 속도는 위험 요소다.
몽고메리는 점점 빨라지는 흙의 침식은 그 흙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거덜낸다고 말한다.(202 페이지) 몽고메리는 문화와 예술, 과학 같은 다른 모든 것의 밑바탕은 충분한 농업 생산물로 번영의 시기에는 이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농업이 비틀거릴 때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문제는 흙이 천천히 사라지기에 농부들이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점이다.(211 페이지) 몽고메리의 이야기는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 1940-2011)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에티오피아 시골에서 환경을 살린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분이다. 평생 50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은 분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이다.
지질학자로서 지형이나 암석보다 흙, 그리고 흙의 침식과 재생의 관계에 천착한 몽고메리의 노고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1958년 미국 농무부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미국 농지의 거의 2/3가 흙의 유실 허용치를 넘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침식되고 있다.(241 페이지)
몽고메리는 흙의 침식이 고대 사회들을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무시 못 할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 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의 농업경제학자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 1935-)은 현대 문명이 석유보다 흙을 먼저 다 써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246 페이지) 몽고메리는 토지 생산성은 자본과 노동, 과학의 투입에 따라 무한정 높아질 수 있다는 엥겔스의 오류를 지적한다.
물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흙을 착취하는 기술의 진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엥겔스의 생각은 마르크스를 만나기 전의 생각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만남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그것과 비교할 만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만남은 번개와 피뢰침의 만남이라 말해진다. 들뢰즈는 가타리가 번개였다면 자신은 피뢰침이었다고 말했다.
여러 인용 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미국의 지질학자 토머스 체임벌린(Thomas Chrowder Chamberlin; 1843 - 1928)의 말이다. ”흙이 사라지면 우리 또한 사라진다. 암석을 그대로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모를까.“
지질학이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나 대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몇 센티미터의 흙을 만드는 데 걸리는 ”천 년“(332 페이지)은 수십만년, 수백만년에 비하면 짧지만 우리의 삶에는 아주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책 전편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흙이 보충되기보다 빨리 흙을 잃는 농법은 사회를 무너뜨린다.”(339 페이지)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말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한 문명을 끝장내는 데 이바지하지만 한 문명을 뒷받침하려면 반드시 기름진 흙을 제대로 유지해야 한다.“(346 페이지)는 말이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저자가 지질학자이기에 암석에 대해 말할 법 하지만 흙을 이야기한 것은 지질 또는 지리적 관점을 넘어 우리 문명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결과이리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