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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매해 옷을 구입함에도 막상 입으려 하면 옷이 없으니 이상하다. 매장을 방문하기는 귀찮아 인터넷을 헤맨다. 마음에 꼭 드는 옷이 있으나 가격이 상당히 비싸 고민한다. 이 옷 하나를 구입하느냐, 좀 더 저렴한 옷 여러 벌을 구입하느냐. 망설임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우유부단함을 이유로 나의 소비는 기약 없이 뒤로 미뤄지고 있다. 사람마다 소비의 기준은 다를 것이다. 선호하는 스타일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이 예외 없이 지니고 있는 옷이 바로 청바지다. 잘 알려진 브랜드를 달고 나온 옷은 아마도 엄청나게 비쌀 것이다. 노점상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청바지의 경우 정말 이 가격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저렴하기도 하다. 같으면서도 결코 같을 수 없는 청바지를 연구하겠다며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미국과 인도, 브라질 등 다양한 곳을 살폈다. 역시나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오늘날 청바지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실용성 같다. 어떠한 의상과 함께 입어도 청바지는 모나질 않는다. 재질의 신축성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입고 있을 때 편안하다. 치마나 다른 면바지를 입었을 때와 달리 청바지를 입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도 아무렇지가 않다. 아무리 편리하다 하여도 청바지가 하층 문화의 상징이라면 이토록 보편적이 될 순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전통 의상을 고집하는 성향이 짙으면 특히 여성에 관한한 보수적인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 인도의 경우, 청바지에 온갖 욕망이 투영되고는 한다. 독자적인 그러면서도 수준 높은 문화를 생산하는데 기여 중인 발리우드 영화에는 청바지가 곧잘 등장하고는 한다. 연예계 스타가 입고 나온 의상에 우리의 십대, 이십대가 열광하듯이 발라우드 스타의 옷차림 또한 인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경우 양상은 우리보다 조금 더 복잡했다. 한 벌 즈음 청바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갈 땐 청바지를 외면했다. 그들에게 있어 청바지는 자신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는 무언가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청바지 선택이 달라지기도 했다. 옷차림은 한 개인의 취향을 담아내는 도구임과 동시에 그 사람이 속한 계급, 사회의 특성까지도 보여줬다. 무엇보다도 날 놀래켰던 것은 청바지가 친환경적인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보다 질 좋은 제품도 저렴한 가격에 생산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에 들던 비용보다 적은 비용을 들일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겠으나, 인건비 감축을 위해 보다 저렴한 노동 시장이 형성된 지역으로 공장들이 대거 이동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상대적으로 몸값이 낮은 여성과 아동 들이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곤 한다. 월드컵 경기에 사용된 축구공이, 우리가 노상 신고 다니는 운동화는 많은 이들이 피땀 흘려 노동한 결과일 때가 잦다. 청바지 공정 과정 또한 비슷할 것이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해본 바가 없다. 생산 과정에서 한 벌의 바지로 탄생하지 못한 자투리 천을 비롯하여, 이미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으며 시일이 흘러 낡은 청바지들이 울트라 터치 단열재 등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의복과는 달리 청바지에 대해 큰 애착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입으면 입을수록 자신의 몸에 맞게끔 변형되는 청바지임을 고려하면 이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많이 헤져서 못 입게 되더라도 버리지는 못할 거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친환경적 시도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동하지는 않을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개되던 생각은 전혀 엉뚱한 방향을 향하기도 했다. 남녀 모두가 즐겨 입기에 딱히 여성성을 드러내는데 청바지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남성이 즐겨 입는 유형과 여성이 즐겨 입는 유형이 사뭇 다르다는 지적 앞에서 난 현재 입고 있는 내 바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야 말았다. 시장에 출시된 기성품 중 맞는 사이즈를 골랐을 뿐이다. 이미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이 나의 청바지에 투영됐으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건만, 어찌 보면 청바지는 명확한 한계 속에서만 허용되는 자유를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완벽한 자유가 존재하기는 했던가. 우리가 누린다고 믿어온 모든 것은 어쩌면 한낱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을. 그러거나 말거나, 청바지가 앞으로도 꾸준히 나의 선택을 받으리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시선으로 사람들이 청바지를 대하건, 나에게 있어 가장 부담 없는 의상인 것만은 분명하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