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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읽으면서 몹시 시원했고 동시에 명쾌했다. 이 책은 세 가지 면에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내가 해보고 싶은 작업을 이미 완벽하게 이룬 분이 있었단 것. 둘째는 나처럼 나니아 연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있다는 것. 마지막은 예상하고 기대한 대로 내용이 흡족하고 훨씬 그 이상이었다는 것.
제목부터 c.s.Lewis 덕후임을 인증해주신다. 순전한 교육 Mere Education. 루이스의 Mere christianity 에 빗댄 제목. 저자는 영국의 신망받는 교육학자인 마크 파이크이다.
부모, 교사, 학교의 지도자들은 자녀들과 어린 학생들이 단순히 기술과 지식을 습독하도록 돕는 것 이상의 책임감을 대부분이 느낀다고 말한다. 시험에 합격하고 높은 점수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교육은 그 이상의 것임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어른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학업과 성품의 두 영역에서 최선을 성취하기를 바란다. 다시 정리해 본다. 교사와 부모는 자녀와 학생에게 훌륭한 성품의 기초를 형성하는 가치를 교육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 그러한 목적에 맞게 가르치고자 한다.
그렇다면 올바르고 바람직한 성품은 무엇일까. 바로 이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직, 정의, 친절, 용서, 자기 훈련,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 예의, 책임감, 결단력 이다.
C.S 루이스는 여러 책, 강연 등을 통해서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에 대해서 글을 쓰고 견해를 피력했다. 동화와는 또 다른 심오하고 폭넓은 사상을 루이스가 펼쳤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동시에 동화에서도 루이스의 세계관을 스토리로 형상화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는 옷장을 통해서 나니아로 들어간다. 나니아에 도착해 정의를 위해 싸우라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페번시 가(家) 아이들은 성품이 형성되어 간다. 자기만 생각하던 피터와 수잔은 하얀 마녀에게서 에드먼드를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불의에 대항해 싸워 주민들을 압제에서 해방시키라는 도전을 함께 받아들인다. 나니아 주민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살면서 자유롭게 살도록 그들을 해방시키는 영광스런 목적을 추구하면서 아이들은 용기를 기른다.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고 결단력을 보인다.
페번시 가 아이들이 나니아에서 겪는 교육적 경험의 토대는 올바른 가치라고 확연히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덕과 훌륭한 성품을 기른다. 협동하고 두려움에 맞서며 큰 용기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훌륭한 성품의 토대 중에도 크게 3가지가 기본적(cardinal)인 덕목이라고 제시했다. 분별, 절제, 용기이다.
분별은 상식이나 올바른 사고로, 지성과 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절제는 어떤 일을 적합하고 적절한 정도로 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옷이나 골프, 오토바이 등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은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만큼 무절제할 수도 있다고 일깨웠다.
정의는 공정, 정직, 신용, 약속 준수 같은 말로 요약된다.
여기에 하나를 더할 수 있다면 의연함으로, 도덕적 힘에서 나오는 배짱이다.
루이스는 저서 『인간 폐지』에서 교육의 토대가 되는 도덕률, 또는 도를 여덟 가지로 명쾌하게 제시했다. 이것들은 고대 이집트, 바빌론, 고대 스칸디나비아, 중국, 인도, 유대, 로마와 그리스,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에 이르기까지의 문화와 전통에서 추출했다.
직접 읽어보면 더 좋겠으나 저자 마크 파이크가 친절하게 요약해줬다.
1.일반 선행의 법 : 부정문의 형식으로 나타내면, 살인을 하지 않는 것 또는 남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통과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탐욕을 부리지 않고 잔인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이 법을 지키려면 정직하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타인을 가난하거나 슬프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긍정문의 형식으로 표현하면, 친절과 선의를 표하고 악이 아닌 선을 행하며 사회와 사람 사이의 교제를 기뻐하고,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2.특별 선행의 법 :이 법은 첫 번째 법과 유사하지만 통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무를 밝혔다. 즉 형제와 자매, 남편과 아내, 자녀의 의무를 명시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특별한 의무를 지니며, 특히 가족 구성원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3.부모, 조부모, 선조에 대한 의무 : 부모와 자녀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설명한다. 부모를 부양함으로써 공경하고 돌보며, 살아 계실 때는 물론 돌아가셨을 때도 적절히 존경을 표현하여 자녀의 의무를 다하는 것에 대해 서술한다.
4.자녀와 후손에 대한 의무 :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것과 관련된 의무이다. 어린 자녀를 교육하고 자녀를 존중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5.정의의 법 : 관계 속에서의 정직과 정의를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배우자에게 충실하고 혼외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사유 재산을 존중한다. 뇌물을 받거나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 법률 제도는 공평해야 하며 가난한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지 않아야 한다.
6.선의와 진실의 법 : 사기와 속임수, 거짓말을 금지하는 법이다. 위증이 경멸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의의 의무를 다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이 법의 필수 요소.
7.자비의 법 : 가난한 자, 병든 자, 장애가 있는 자, 약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 죄인의 석방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하며,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 고아와 남편과 사별한 여성과 노인을 보살펴야 한다. 언제라도 함께 울어 줄 만큼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8.아량의 법 :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것을 넘어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비겁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하고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며,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공격을 받는다 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C.S 루이스는 우리들에게 바른 가치관의 기준이 되는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고 말했다.
“위대한 스승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은 우리다. 지난 4천년 동안 훌륭한 조언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저자 마크 파이크는 영국에서의 공교육이 무조건적으로 중립을 강조하는 것에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중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가치라는 것은 대부분이 상대적이고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철학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 다문화 국가이고 다원주의의 이념하에서 교육, 학교에서의 교육에 대해서 많은 토론이 진행되어 오고 있다. 그 가운데 마크 파이크는 보편적인 가치관은 존재하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C.S 루이스의 사상들을 도입하는 시도를 했다.
토머스 리코나 교수는 다원화 사회라고 해서 모든 것을 방임하는 것이 교육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더불어 살기 위해 어떤 것을 합의해야 할지를 깊이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원주의 사회라고 해서 서로 공유하는 기본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의, 정직, 공손, 민주적 절차, 진리를 존중하는 태도.
이러한 가치와 개념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동서고금에 걸쳐서 논의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귀중하고 의미 있는 가치들을 폐기하고, 중립이라는 명목하에 절대성은 무가치하고 오직 상대적인 것만이 올바른 가치라는 것. 이것이 현대의 영국의 교육 이념에서 지배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마크 파이크는 말한다.
물론 이것에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교육자들의 경계가 놓여 있다. 어떤 가치,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혹여 주입하는 교육이 될까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눈에 띄는 모습이든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든 반드시 어떤 의미,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떤 가치도 값진 것이 없다고 가르치면서 그것을 자유로운 교육이라고 자신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마크 파이크는 말한다. 어린이는 항상 ‘훈련’되고 있다고 말이다.
가치에 관한 한, 양육과 가르침은 중립적일 수 없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든 소극적으로 마땅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든, 가정과 학교와 교실에서는 늘 가치가 전달되고 있다.
현대에 가정이나 학교에서 성품 교육을 하려는 시도는 세련되지 않게 여겨지거나 심지어 바람직한 게 아니라는 풍조가 생겼다.
‘모든 개념에 가치가 따로 있지 않다’고 여기는 교육가들은 성품을 가르치려는 이들을 의심한다. 나아가 경고의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보내기도 한다.
성품 교육이 어린이의 권리를 침해한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버밍험 대학교의 제임스 아서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교사가 어느 정도 가치를 주입한다. 교사가 특정 신념과 행동을 주장해도 학생이 그렇게 믿고 행동해야 하는 이유를 항상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들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내면에서 축적이 되는 것이다. 당장에 교육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몇 년에 걸쳐 혹은 10년 후에 그 학생이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훌륭한 성품을 기르려면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어떤 자질들은 매우 천천히 형성되고, 그리고 결국에 가서야 그것이 미덕인지 혹은 반대로 악덕인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폴 허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상의 모든 요소, 갈망, 욕구, 혐오, 기대, 신뢰 등 이 모든 것이 적절히 합쳐져 신뢰할 만하고 온전하며 살아 있는 종합(의 덕목)이 만들어진다.」
루이스는 말했다.
‘성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소리 없는 결과’라고.
그럼에도 많은 교사가 ‘다원주의 사회에서 특정 가치를 지지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이들은 ‘어떤 특정 가치에도 헌신하지 않거나,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느낌뿐인 규정되지 않은 인본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루이스는 교육은 주관적,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진리에서 파생된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교과서이든지 가치 판단이 내재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마크 파이크는 말한다.
학교의 수업과 교육 과정, 학교 안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와 상호 교류. 이것들은 모두가 어우러져서 학생들에게 가 닿는다.
즉,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숭배하고’ 무엇이 ‘무가치하며’ 무엇이 더 값지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매순간, 어디에서든 말이다.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이다.
완전하게 중립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흔히 과학, 기술의 지식이 모두에게 중립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어떠한 수단과 도구이든지 이념적 편향이 내재하고 이것은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한다.
아무런 지향과 목적이 없는 과학과 기술이란 없고, 특정 감각이나 태도를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지식은 항상 특정 집단의 현실 인식을 담고, 가르치는 주체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기초로 한다.
작년에 어떤 책들을 읽으며 강하게 수긍했던 지점이었고 이런 논의를 교육에 대한 책에서도 발견해서 동감했다.
교과서를 가치 판단이 내재되어 어린이의 삶에 이념적으로 깊숙이 개입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 관점에 저자는 반대한다. 교과서가 중립적이고 기술 위주이며 가치가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는 태도는 우리 시대의 병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학교 교육의 기능을 성품과 가치가 아닌 지식과 기술의 습득으로 보는 견해에도 저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라틴어로 educatio 는 ‘양육’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협력적 노력이 필요하다.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훈련’은 어린 선수의 재능을 최고의 기량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코치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했다.
신뢰할 만한 어른이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면서 전문적인 훈련가의 역할을 수행할 때,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품 교육이 최고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
C.S 루이스가 교육에 대해 테니스 선수를 비유한 대목이 있다.
「좋은 샷을 수없이 성공시켜 눈과 근육과 신경이 매우 훈련되어 이제는 그것들에 샷을 맡길 수 있게 된 사람을 훌륭한 테니스 선수라 할 수 있다.」
교육을 논할 때 학생들의 ‘잠재력을 펼칠’ 방법을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이 삶에서 잠재력을 펼치기 위해 어떤 성품을 길러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단계별 레슨을 이수하고 어떻게 합격을 하고 어떻게 학업을 성취할지 논하는 것과 다른 경로이다.
어떤 지원을 뒷받침해서, 어떤 도움을 통해 훌륭한 성품을 형성하는 다양한 덕목을 기르게 할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교육에 책임과 의무가 있는 어른들은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됨 을 마크 파이크는 절실하게 말한다.
이는 교육 이론서와 동화를 집필한 C.S 루이스의 사상과 가르침을 전방위적으로 적용하면서 풀어내고 있다.
이 문장이 특히 강력하게 울림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녀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겸손하고 공손하며 친절하고 결단력 있고 용감하며 진실하기를 바란다.」
루이스와 마크 파이크에게 전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 말 만큼은 모두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 않은가.
설마 ‘무조건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면 안 돼’ ‘다른 사람 돕다보면 결국은 호구 돼’ 이런 가르침을 자녀나 제자에게 전하고 싶은 어른이 있을까. 극히 소수라면 몰라도 설마 대다수는 아니겠지?
부디~~ 이런 어른들이 다수는 아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책 에서)
교육은 희망을 가르친다. 모든 분야에서 기대감을 고취시키고 학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가르침은 신념을 강화하고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지, 이해하기 어렵고 결실을 맺지 못하며 생기 없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생동감 있고 열의에 차 있으며 활기차고 학생에게 자유를 준다. (p.54)
수업 방식과 학교의 목표에 영향을 주는 교육 이론은 특정 철학 패러다임의 산물이다.
(p.146)
다수의 학생은 올바른 조언을 해 주는 교사 및 학교 지도자와 함께 좋은 교육 과정을 선택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바람에 영합하여 대다수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에만 주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연예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자들은 학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윤리적 의무가 있다. 때로 대다수의 학생이 라틴어 과목을 배우지 않더라도 가장 뛰어난 학생에게는 라틴어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178)
‘진짜’ 질문이란 질문자가 정해진 답을 갖고 있지 않은 질문이다.
디고리 커크 교수는 아이들의 논리적인 사고를 돕는다. 그런데 그는 “이런 학교에서 도대체 무얼 가르치는지 궁금하구나”라고 물으며 아이들이 경험한 학교 교육에 대해 어리둥절해한다. 그는 인지 발달을 위해서만 가르치지 않고 도덕적 토대 위에서 가르치며 학생들은 실재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생각한다.
이렇게 가르치고 배우는 만남을 통해 피터와 수잔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고, 타인(특히 루시)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 훌륭한 교사는 훌륭한 성품의 발달을 돕는다. (p.194)
가치는 변함없는 신념으로서 추구할 만한 것을 가려내고, 사람들의 행동이 선하고 옳고 바람직하며 존중할 만하다고 판단하는 광범위한 기준이다. (p.195)
교사나 부모는 앤드루 삼촌처럼 고의로 학생을 좌절시키는 일은 분명 하지 말아야 한다. 커크 교수와 앤드루 삼촌은 교사로서 중요한 차이를 보인다. 커크 교수는 학생의 관점에 진정으로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만 앤드루 삼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학생의 학습을 도우려면 반드시 그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 교사는 말을 잘 해야 하지만 또한 잘 들어야 하며 정직해야 한다.
앤드루 삼촌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만 교수가 된 디고리는 자기 지식의 한계까지도 정직하게 인정한다. (p.201)
행동주의자는 단순히 어린이가 옳게 행동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있지만, 우수한 성품 교육자로서 지도자는 옳게 행동하기 위한 올바른 동기를 기르도록 도울 것이다.
(p.214)
명확한 전략 만으로는 학교를 이끌어 갈 수 없다. 21세기에는 전략이나 기술이 “도덕적이고 지적인 덕목을 대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의미, 가치, 자유의 세계가 기술 모형이 있는 현상적 세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p.221)
객관적 진리보다는 자기나 다른 사람의 주관적 인식에 삶의 기초를 두면 삶을 배반하게 된다. (p.228)
“이 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절실하게 바랄 때 전인적 교육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이 세계에 고정시킬 수 있다.”
루이스는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현재에 관심을 가진다고 역설하며 “노예 무역을 폐지한 윌버포스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기에 이 땅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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