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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육십 쪽의 비교적 짧은 소설을 덮으며 영화음악 CD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주인공의 직업이 제1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사중주단을 이끄는 리더이기도 하고, 신혼 여행지에서의 파격 제안이 예술적 야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말로 설명되지 못한 언어 너머의 감정과 메시지를 과연 어떻게 전달했을지 궁금증이 솟구친다.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영화 <어톤먼트>를 시작으로 <넛셸> <솔라> <체실 비치에서> 순으로 접했다. 뒤에 세 작품 모두 영어로 읽으며 소설가의 해박한 지식과 시사(이번 소설은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등 관심사에 혀를 내둘렀었다. 대체적으로 주인공들이 호감형이 아니다. 지인들은 매큐언을 언급할 때 ‘잔인하죠!’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살생과 범죄 장면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을 극단으로 정신 없이 내모는 냉정함이 만든 이미지일 터이다.
작가의 소설이 번역되면 찾아 읽는 이유는 그의 눈치 보지 않음에 끌려서다. 소재 선택이나 ‘이게 소설로 적합한가’ 여부는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 특히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의 자유로움과 당당함, 스케일은 늘 부럽다. 조금만 거슬리고 낯설어도 소설을 혹평하는 우리네 좁은 시야로 볼 때 소설의 허구성과 뭐든 쓸 수 있는 상상력을 눈앞에 증명해내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체실 비치에서>도 범상치 않은 검은 기운이 피어오른다. 결혼한 지 여덟 시간 만에 신혼 여행지에서 헤어지는 커플의 이야기다. 시공간과 인물 구성의 제약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위일체를 연상시킨다. 김영하 작가가 영상 무대 감독들이 삼위일체의 틀을 깨보려 애쓰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웨이터가 끄는 수레와 아래층 뉴스 소리와 내려가지 않는 지퍼 등 단순한 설정으로 긴장감을 창출한다. <넛셸>이나 <솔라>와 달리 내가 영화감독이어도 욕심날 작품이다. 해변과 호텔을 주무대로, 주고받는 대화보다 내면 연기와 플래시백, 음악 연출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복잡한 구도를 취하지 않고 언어화되지 못한 문제에 착안한다(Such a language had yet to be invented. 141). 남녀 커플도 자신들의 내면 목소리에 비교적 무지하기에 내용도 어렵게 꼬이지 않는다. 과거에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특정 소설을 권하곤 했는데 아마 <체실 비치에서>를 알았다면 오랜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잠자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친구나 결혼을 앞두고 불운의 낌새와 자각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한 약속인 결혼식을 깨지 못했던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거라는 뒤늦은 생각이 든다.
요즘은 첫날밤이라는 단어도 시대의 물살에 그 뜻이 희미해지는 추세인데 그렇더라도 성관계를 둘러싼 제약과 함구 및 금기 깨기 측면에서 <체실 비치에서>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갈등이나 문제를 언어화할 수 있을 때 그 문제는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도록 허용되는 셈이다. 결혼했으니 당연히 성관계에 순순히 따라야한다는 것도 일방적인 사고이고, 결혼 전까지는 무조건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엄청난 짐을 개인에게 부과하는 꼴이 된다.
소설을 읽으며 낯선 두 사람이 서로를 믿고 하나의 가족을 만들겠다는 의지 자체가 굉장히 용기 있게 다가왔다. 위험을 감수하며 서로 잘 모르지만, 맹목과 무지의 상태에서 그래도 믿고 미래를 꾸리며 서로 도모하는 사이란 굉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How unfree she was, her life entangled with this strange person... 150). 1960년대 성과 결혼에 대한 의식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던 1940년생의 인생은 시대적인 지배사상이나 사고방식, 제도와 틀에 깊이 연루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플로렌스의 제안은 버지니아 울프와 포개진다. 블룸스베리 모임에서 알게 된 그들은 성관계 없는 결혼생활을 애초에 약속하고 함께 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두 사람의 차이를 클래식과 락 음악 취향과 가정 환경을 통해 대조적으로 암시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음악적인 꿈을 말하며 데뷔 무대에서 남자가 앉을 자리를 기억해두지만 남자는 이별 후 그녀의 소식을 쫓지 않는다. 이로써 여자의 예술가적 야망이 개인 남자의 이해를 받고 함께 꿈을 이뤄나가기 어려웠음이 짐작된다. 앞서 언급했듯 그들의 좁혀지지 않는 온도차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작가는 플로렌스가 집안의 큰딸로 스킨십 없는 양육자의 냉랭한 지배 속에 자랐음을 강조한다. 막내딸에겐 그러지 않는 아버지조차 사업가로 큰딸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이지적인 엄마는 딸에게 냉정하다. 인간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엄마는 딸이 다루는 악기의 속성(신경을 긁는 비명소리)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결혼 전부터 몸에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이, 다시 말해 자기의 영역에 다른 생물이 침투되는 것이 싫은 여자는 고민이 깊지만 터놓을 대상이 없다. 남들처럼 일반적이고 싶은 갈망이, 이대로는 아님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보통(generality)의 틀에 넣어 찍어내는 사태를 빚는다. 예술적으로는 성숙하고 뛰어나지만 생식적 몸의 언어에 있어서는 마스터할 마음이 없다. 당시에 남자는 여자의 변심을 사기꾼이고 구닥다리 여자라고 욕하지만 세월 속에 가장 진지했던 여자로 재평가한다.
그들의 결합은 처음부터 한쪽이 기운다. 에드워드에게는 남모르게 간직한 비밀과 결핍과 열등감에서 비롯된 성격 결함이 있다. 뇌손상을 입어 정신줄을 놓는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가 관리하는 지저분한 집에서 자란다. 결혼 전 여자의 집에 머물 때 집 크기와 예비 장인의 재력과 장모의 미모와 지성, 정리되고 너른 공간과 사람에 홀딱 반하며, 여자를 자기 집에 데려갈 때 상반되게 긴장한 모습에서 남자 집안이 많이 기울지만 여자 쪽에서 남자를 받아들인 것으로 드러난다. 당시는 미혼 여성이 자기 목소리와 생각을 자유롭게 발설하지 못했던 때라는 것도 감안해야 되겠고, 그보다 경제적인 신분 차이가 둘 사이에 침묵을 더 야기하는 것으로 읽었다.
But the fantasy could be sustained only if it was not discussed... They grew up inside it, neutrally inhabiting its absurdities because they were never defined. (68)
<체실 비치에서>는 무엇보다 언어 문제에 착안하는데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방어)하는데 익숙하다. 에드워드는 남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엄마가 알고 보니 뇌 손상으로 인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진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자신의 착오를 바로잡고 현실과 부딪히는 대신에 대학을 빌미로 집을 떠나는 방식을 택한다. 플로렌스도 기가 세고 군림하는 부모에 반항하고 대들기보다는 말하지 않는 편을 따른다. 어디까지나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마음대로 해석한다. 그는 그녀의 강인함과 에고이즘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 식으로 그녀를 오역한다.
그리고 둘 다 공통적으로 사랑과 결혼을 통해 마침내 과거 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애석하게도 그들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삶을 사는 첫 출발이 신혼 여행지에서의 이별이 된다. 많은 대가를 치른 후지만 마냥 비극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원인이 된다.
She wanted to be in love and be herself. But to be herself, she had to say no all the time. (146)
플로렌스의 생각 중에 사랑하면서도 그녀 자신이고 싶다는 부분이 있다. 자기 자신이려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여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던 부자유함이 뒤따르던 시대였다. 어찌 보면 나를 잃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행위는 당연한 권리인데 여전히 그렇지 못한 상황과 의무에 짓눌려 그때그때 말하지 못함이 터뜨리는 감정 폭발이 안타깝다. 경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진실(실체)이 있기에 그녀의 성관계를 향한 거부감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에드워드의 경우 여자와의 결속으로 이룰 것 같았던 미래가 하루아침에 물거품(허상)이 된다. 일단 장인의 차부터 되돌려나야 하고, 여자의 지참금과 장인의 사업에서도 손 떼야 한다. 그뿐 아니라 역사서 박스 출판도 접고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외국을 떠도는 삶을 산다. 다행히 그대로 몰락하고 성격 파탄자로 남지 않고 그녀가 없어도 가능한 일을 해나간다. 그는 적어도 그녀에게 미련이나 복수심을 갖지 않고 자기 삶을 산 성숙한 어른 남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에 술 먹고 폭력을 휘둘렸던 그라서 해변가 돌을 지근지근 밟을 때, 그것을 주먹으로 우겨질 때 아찔했던 것도 사실이다.
에드워드의 회상 중에 그들 관계에 사랑뿐 아니라 인내(참고 기다리는 마음)가 함께 했더라면 좀 달랐을지 묻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소설을 읽은 우리는 그들이 하나의 침대에 오래 머물 시대는 아직 당도하기 전이었음을, 동터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직 침대가 눈앞이 캄캄한 다이빙대 같았던 시대였던 것이다.
누구나 평생 가지고 살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몸은 실로 소중하다. 그 몸이 쓰는 삶이라는 역사도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이 몸과 관련된 일들이 우선적으로 한 개인의 가치와 조화를 이루고 다음으로 함께 서로 도모하는 사회가 열리기를 우리는 줄곧 희망해왔다. 어느 책에서 사랑은 자신이 투영하거나 꿈꾼 환상이나 덧씌운 이미지가 아닌 그 사람 자체가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함’이라고 했는데 선뜻 동의하면서도 내가 직접 풀기엔 여전히 어려운 숙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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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안 맞는데 왜 결혼했을까.. 첫 날밤 싸우고 왜 나갈까... 왜 그럴까..보면서 서로 말도 안통하고 관심사도 다른데 왜 결혼하고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걸까 이해가 안되었다.. 올해 처음 읽은 원서인데 좀 답답함 1박2일 허니문 싸우고 헤어진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