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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을 타고 온 소녀(20)와 40대에 만나 서로 공감대가 많아 이야기를 하였다. 서로 어려운 책을 좋아하고 그 어려운 책을 함께 나누고 토의하면서 더 가깝게 느껴졌다. 40대의 나이라 그 소녀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녀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배려도 있었다. 그 소녀가 아버지의 죽음과 타임머신의 고장으로 이 세계에 돌아올 마지막 한번을 남기고 돌아가버린다. 그때서야 그녀의 존재를 마을에서 찾게 되지만 그녀의 존재는 이세상에 없었다. 미래에서 온 소녀라는 확신으로 어떻게 만나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 와이프의 오래된 비밀의 가방을 보게된다. 그 가방안에서 나온물건은 그 소녀가 입었던 소재의 드레스이다. 그 소재는 이세상의 것이 아니기에 그 소녀가 와이프라는 사실을 확신한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그때의 느낌 그대로라는 것을 깨닫는다. 늙지 않는 것... 그렇지만 그녀는 사랑스럽다..
이것이 소설의 대략이지만 참으로 특이하고도 신기한 이야기다. 그 소녀는 한번에 올수 있는 기회를 젊은 날의 남자를 찾아가는 걸로 선택을 했다. 지금의 나이에 찾아가면 20대와 40대라는 나이차가 있지만 20대의 나이의 남자에게 찾아가면 같은 20대가 되고 함께 생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20대의 내가 그 소녀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행히 둘이는 서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20대의 남자에게 소녀는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0년의 불안함과 두려움속에 살던 부부가 40대에 미래소녀를 만나고 깨닫게 되어 와이프의 눈속에 있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쫓아내는 예쁜 사랑이 되었다. 민들레 소녀는 몇 개의 하나의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다. 그 속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이야기들의 소재도 독특하면서 신기할 정도로 특이한 이야기들이 가득 들어있다. 가령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는 사람이 입는 옷을 입고 자동차를 모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옷을 입으면 그대로 차가 되어 움직이는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이야기들의 소재가 참으로 특이하기만 하다. 그리고 한번쯤 상상의 날개를 펴봤을듯한 이야기이다.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권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그들이 한곳에만 갇혀 있는 사고를 가지지 말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고로 자랐으면 한다. 이 책이 그러한 사고를 갖기에는 딱 맞춤인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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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이나 채만식의 '태평천하'등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설들이 재미있었던 이유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나와 다른 시대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사건들로 가득한 소설이 왜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에게 감동을 주었을까? 소설이 세월을 뛰어넘어서 전달하는 어떤 강한 메세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민들레 소녀'는 최근에 나온 영미소설이 아니다. 1956년에 쓰여진 소설이다. 하지만 읽다보면 글이 쓰여진 시대를 넘어서는 호소력이 있는 글이다. 15편의 단편으로 되어있는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전체의 주제를 향해 하나로 다가가는 느낌도 든다. 그 느낌은 진정한 인간성이란 무엇이고,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강력한 메세지이다. 미국사회가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가고, 기계화되어 가면서 세상은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와 같은 문학작품은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도태되고, '자동차'나 'TV'와 같은 새로운 문명의 발명품 앞에서 사람들은 영혼을 빼았긴다. 사람의 모든 생각과 감성이 하나하나가 존중받는 시대는 저물어 가고, 인간의 영혼마저도 흥정하고,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는 시대가 도래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5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미 작가가 우려했던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정착되었고, 물질만능주의와 인간성 사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저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세상 속에서 어쩌면 '민들레 소녀'와 같은 소설을 읽는 행위조차도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실용서나 수험서를 읽고,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인간미가 추구하면 사는 일은 바보 같은 것처럼 여겨진다. 미래는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책 속의 단편들 중에서 하나인 '민들레 소녀'가 물질주의에 젖어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듣길 바란다. 지금 현실에 너무 각박하고, 진정한 인간성회복을 꿈꾸는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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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을. 오늘은 당신을.
몽환적인 민들레 소녀. 단편집이다. 로버트 F.영은 1915년 미국 뉴욕의 실버 크리크 출신의 공상 과학 소설가이다. 그가 쓴 짧은 단편들은 단편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주고 있다. 민들레 소녀는 이 소설에 담긴 단편들 중 가장 유명한 단편의 이름이다. 로버트 F.영의 단편선은 우리 나라에 출간 될 때 까지 꽤나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로 들려지긴 했지만, 선뜻 판권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도중 클라리드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서 주인공이 건네 준 책의 내용.. 즉,"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을. 오늘은 당신을." 이라는 어구 때문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그 한 글자 한글자가 참 순수하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몽환적이고 공상이 가득하면서 참으로 깨끗한 느낌을 준 단편 소설이었다. 이 책은 민들레 소녀를 필두로 20여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공상과학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모든 소설이 상상 속에 있지는 않다. 21세기의 중고차 매장에서, 팝콘 튀기는 TV 같은 단편들은 충분히 동시대의 감성을 느껴볼 수 있다. 이런 내용을 공상 과학 분야로 칠 순 없을 것이다. 또, 약속의 별, 시간을 되돌린 소녀, 파란 모래의 지구, 과거와 미래의 술, 프라애팬 조종사 등 로버트 영 만의 깨끗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단편들도 많다.
책의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다. 가지고 다니기 편한 재생지도 마음에 들고, 그의 소설의 무게만큼 책의 무게도 날아가라 듯이 가벼웠다. 안 쪽에는 딱히 화보가 없지만 책의 앞 면과 뒷 면의 달나라에 살 것 같은 토끼와 귀여운 소녀의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어느 우울하고 꿀꿀한 날,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로버트 영의 소설을 읽어본다면 단숨에 기분이 좋아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 짧은 어투로 인해 느껴지는 절정의 순수함.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승화시키는 그의 회화적 방식.. 결코 쉽지 않은 방식의 단편이다. 마치 시를 쓰는 것만 같은 기법으로 써 내려가는 그의 소설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어딘가 우주의 작은 유리 조각이 된 기분이 들었다. 늘 이렇게 꿈 속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담담하고 작은 이야기가 삶의 성찰을 가져다 주듯, 아무렇지 않게 감정을 배제하고 순수함으로 써 내려가는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안정과 평화를 느꼈다. 심리 치유용으로 좋은 소설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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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책을 그냥 지나칠뻔했어요. '민들레 소녀'라는 제목도 너무 평범해보인데다가,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은 표지 디자인에 관심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혹시하는 마음에 책 정보를 검색해보니 SF단편소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로버트 F. 영'이라는 작가도 생소하고, 다른정보는 없었지만, 평점이 좋고 제가 좋아하는 장르라서 한번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민들레 소녀'를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읽다보니 책 속의 주인공이 미래를 계산하는 시간이 제가 읽는 시점과 달라 찾아보니 50년전에 출판된 책이더군요. 그래서인지 '민들레 소녀'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몇편의 책들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세월의 흐름조차 무시할수 있을정도로 이 책은 조금 더 색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진부한쪽보다는 클래식하다는 느낌과 읽는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민들레 소녀'의 엔딩은 가슴뭉클한 사랑을 느꼈는데, 올해 결혼기념일에 이 단편을 선물할까봐요. (가끔 마음에 들었던 사랑에 관한 단편들을 노트에 옮겨서 기념일에 선물하곤 했는데, 올해는 '민들레 소녀'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외의 다른 단편들도 마음에 들었는데, 가끔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엔딩도 있긴해요. 예를 들어 '과거와 미래의 술' 이야기 속에 만약 어떻게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분이 읽었다면 엔딩을 이해하지 못했을거예요. 저 역시 처음엔 이해를 못해서 한번 더 읽고나서야, 아!하고 이해했거든요. (제가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 좀 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수록 책을 읽는데 더 재미를 주는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위해 독서를 하는것이겠지요. 그나저나 표지 디자인은 좀 쌩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연상케 하지 않는데, 좀 더 환상적인 느낌의 표지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당나귀 얼굴의 남자는 뭔지... 괜히 당신 때문에 더 헷갈렸잖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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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 책이 어떤 애니메이션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로버트 폴 영의 단편집이 궁금했다. SF 라는 장르를 소설속에 묻어냈다는 것도 낯설었고 호기심에 책을 펼쳤다. 우선 한 줄의 결론은 저자가 집필한 1950년대의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의 상상력과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편집을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그의 발상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들은 기억과 각자의 기억으로 인한 오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곳곳에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시점을 드러내고 있으며 원시적이고도 자연주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향하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삶에 이미 길들여져 있는 우리에게 삶의 행복과 자유, 진정성에 대해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재치있게 풀어내는 그의 소설은 꽤 신선했다. 하지만 번역의 문제인지 다소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은 소설도 있었다는 게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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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애니를 즐겨보는 편인데 클라나드라는 애니에 이 책이 언급된다고 하여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 오늘은 당신을' 이라는 문구는 실제로 들어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책의 출간을 독자들이 먼저 요청한 것 같기에 유명한 말이 아닐까 쉽게 짐작이 된다. 애니의 영향인지 홍보의 영향인지 왜인지 몰라도 나도 친근감이 느껴져 흥미를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이야기 중에 '민들레 소녀'는 가장 처음 등장하는 이야기이고 이 책을 출간할 수 있게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그런지 더욱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야기는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저 미래에서 온 소녀를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그 소녀가 현재의 부인이더라, 하며 짧게 설명한다면 오히려 진부함을 느낄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특별하게 생각이 되는 것은 글을 읽는동안 두근거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로버트 F.영의 책은 처음 보는 것인데 그의 문체는 낯설지 않았고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뒤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서인지 '아~'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작가로서는 큰 재능이 아닐까 싶다.
민들레 소녀 말고도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공상과학소설가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야기가 어느 것 하나 시시한 것이 없다. 자동차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말하는 시인 마네킹을 좋아하게 되는 내용이나 다른 행성의 여성들이 지구로 남편을 구하러 온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몇몇 이야기들은 읽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내용의 신선함에 좋은 평을 주고 싶다.
나는 책을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글 소재의 신선함과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해 흥미를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민들레소녀]는 아주 적합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보지 못했던 내용들인지라 더욱 특이하고 새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글의 전달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해외 작가라도 집중도가 높은 책이 있고 떨어지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엄격히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글을 읽다가 약간 삼천포로 빠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소설들도 흥미로운 이야기와 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눌 수 있을 정도 소설별 편차가 크다.
그것은 단편선에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그의 몇몇 글이 굉장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장편이 있다면 그 책을 한번 읽어보면 이 작가에 대해 더 싶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편집만 보아서는 이야기들이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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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장르라고 하면 난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토탈리콜, 우주전쟁 같은 것들이, 책은 필립 K. 딕의 유빅이나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 유령 여단,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같은 음울한 분위기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과학 기술이 인류에게 가져온 혜택보다는 그로 인한 파괴와 멸망으로 가는 암울함이 내가 떠올리는 SF장르란 것이다. 물론 아직은 SF라는 장르에 대해 내공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1人인지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던 내가 『민들레 소녀』를 읽었을 때 깜짝 놀라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총 15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SF장르이면서도 SF같지 않고, 따스하면서도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경이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나 안드로이드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성이 짙은 작품들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을 해주게 만들었다. 표제작인 <민들레 소녀>는 먼 미래에서 온 소녀와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소녀라기 보다는 아가씨란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이 남자가 처음엔 소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240년 후의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다는 게 쉬 믿길 일은 아니잖는가. 소녀를 만나면서 첫사랑의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느끼면서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 사랑은 20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었다. 사랑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작품 속에서 소녀가 했던 말인 "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 오늘은 당신을" 이란 말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올 만큼 행복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아, 넌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구나.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는 물질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본 모습으로는 부끄러워 차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 차를 입는다는 것은 옷으로 자신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듯 차를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의미한다. 원래의 본모습으로는 더이상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그에 비해 나체주의자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앞에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차란 것은 겉모습일 뿐이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본연의 모습보다 겉모습에 더욱 치중해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프라이팬 조종사>는 읽으면서 쿡쿡하고 자꾸만 웃게 된 작품이다.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한 일종의 쇼였지만, 그 마음이 기특하고 갸륵하다. 이런 남자라면 나도 넘어가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팝콘 튀기는 TV>는 손해 보는 장사는 없다는 교훈을 강하게 남긴 작품이었고, <별들이 부른다>는 지금 사는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한 남자와 화성에서 온 새인 키츠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둘 다 지금 있는 곳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이들은 여행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는 안드로이드로 만들어진 모형시인들이 전시된 박물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와 같은 문학은 과거의 전유물로 취급되고 시인들이 있던 자리는 클래식 차들로 채워진다. 이것에 분노를 느낀 큐레이터가 내린 조치는? 눈앞에서 그 광경이 그려지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지는 기분이다.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는 안드로이드 이야기이다. 인간의 감정을 가질 수 없는 안드로이드에게 프로그래밍한 것때문에 결국 파탄을 맞게 되는 남자. 어찌보면 우리는 안드로이드같은 인간이 만들 피조물에 대해 너무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와 미래의 술>은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하게 된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처구니 없이 큰 실수를 저질러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자신의 실수로 미래를 바꿔버리게 된 것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거듭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의외로 자신을 잘 바꾸지 못하니까.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남자와 대비되는 인물은 방랑자이다. 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그리고 그가 수없이 되풀이한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만약 그때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른 길을 걸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테니, 그는 어쩌면 영원한 방랑자로 남을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외의 작품들 모두 흥미로웠다. 지구 멸망이후 화성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파란 모래의 지구>는 화성인들의 삶이나 지구인들의 삶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늘에 새겨진 글자>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별자리가 달라 보이는 것때문에 외계인과 지구인들 사이에 생긴 오해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푸흡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달까. 뒤로 갈수록 깜짝 반전들이 튀어나와 무척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호시 신이치의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촌철살인의 마지막 한 문장같은 것) 물론 로버트 F. 영의 작품들은 그의 작품처럼 작품 내용이 섬뜩하고 무섭고 반전이 헉소리가 나올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반전은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현실성을 띠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현대 문학과 문학을 창출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인을 사랑한 큐레이터>라든가 <화강암의 여인>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더이상 예전의 신비로운 것들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사람을 위해 등장시켜야 했던 것이 우주선과 외계인일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프라이팬 조종사>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거론하면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애니메이션 클라나드이다. 난 이 작품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애니메이션 중에『민들레 소녀』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헌데, 난 다른 소설에서 이 작품의 이름을 만나게 되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자키 시리즈 중 헌책방을 소재로 한 작품 속에서 헌책방 주인인 베니코 여사가 읽고 있는 것이 바로『민들레 아가씨』란 책이다. 일본에서는 슈에이사(집영사)에서 1980년에 나온 책으로 『たんぽぽ娘 海外ロマンチック SF 傑作選 2』(민들레 아가씨 해외 로맨틱 SF걸작선 2)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었다. 이 たんぽぽ娘이 바로 로버트 F. 영의 작품 민들레 소녀이다. 가끔 책을 읽다가 이런 것을 발견하면 무척이나 재미있달까. 뭐, 그렇단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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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소녀> 책을 받아들고 책표지를 보면 먼저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적 동화책을 받아든 느낌이 들기도 하고, 동화속 주인공들이 책속에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들기 때문이다. 책 표지의 앞면과 뒷면이 <민들레 소녀>의 내용을 동화적으로 그려내 표현 하고 있다. 푸른 언덕위로 하늘엔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밝게 비추고 있고, 그 아래 두 귀를 쫑긋 세운 토끼가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보면 볼수록 참 맘에 드는 책표지다.
민들레소녀는 총15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단편집은 짤막짤막한 내용으로 줄거리만 읽는 느낌이라 부담없이 쉽게 읽을 수 있어 좋다. 하지만, 그런 이점이 있는 반면 짤막한 내용의 앞뒤 이야기를 쏙 빼놓고 가운데 토막만 줄거리로 요약돼 어쩔땐 답답하고 무척 아쉬울때도 많다.
<민들레소녀>는 SF소설 단편집이다. 1956년 출간된 로버트 F. 영의 작품들이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 출간되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번역돼 이미 뜨거운 유명세를 탔던 민들레소녀는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 나온 책이라는 생각과 기분으로 읽은 탓인지, 아니면 작가가 50년 세월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쓴 덕분인지, 50년전에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책을 술술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책의 내용은 시간격차를 느낄 수 없을 만큼 5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온 것이다.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민들레 소녀>는 15편 중에 으뜸으로 책 머리를 장식한다.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 마크는 21살 아가씨의 늘씬한 다리를 보며 설레고, 자신을 주책이라고 구박하면서도 보고싶은 마음에 언제나 소녀가 있던 언덕으로 달려간다. 이런 장면을 읽을 때 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선이 나오고, 2201년이라는 나의 삶을 생각할 수도 없는 머나먼 미래가 나오고서야 <민들레소녀>는 미래에서 온 소녀라는 걸 알게 됐다.
<21세기 중고차매장>편에서는 자신의 용모를 치장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엔 통 관심이 없는 중고자동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참으로 기막힌 작가의 상상력이다. 처음에 읽어 내려 갈 땐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읽다보니 50년전에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라며 놀랍기도 하고, 나의 한정된 상상력에 스스로 자문해 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민들레소녀> 타이틀 속 단편들은 하나같이 우리 일상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 우주선과 시간여행이라는 아이콘이 자주 등장한다. 읽다보면 우리 일상을 읽어내려가다 머나먼 미래속 이야기를 엿본다는 걸 알았을 땐 웃음마저 나온다. 오히려 신선한 충격과 느낌을 전해 준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 일상들을 소재로 담아서일까? 페이지 넘기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그렇다고 해서 <민들레소녀> 15편의 단편 모두가 나에게 결코 읽기 쉬운 내용들로만 구성된 건 아니다. <별들이 부른다>에서는 우주비행사와 퀴기새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주비행사 하버드가 시를 낭독해 주면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퀴기새.. 내용을 앞뒤로 확인하며 읽어가도 나에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환경과 문화에서 주는 이해부족이라고 스스로 결론지으며 그냥 넘겨 갔지만,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봐야 할, 다시 보고 싶은 단편이기도 하다.
SF 장르는 책으론 그리 마니 접해 보지 않았기에 <민들레소녀>를 읽으면서 내용 파악이 빨리빨리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책장을 빨리 넘길 수 있었던 건 나의 곁에 늘 가까이 있는 일상속의 소재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생활의 모습속에 SF를 가미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난 결코 흥미롭게 읽어가진 못 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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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항상 표지에 나도 모르게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