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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신문기자로 20년을 살아온 저자가, 기자를 관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떠난 절집기행이라고 한다. 행복을 찾아가는 절집기행, 서울편이라고 하는걸 보니, 아마 전국에 있는 절집은 다 찾아가볼 모양이다. 꽤나 재미있겠다는, 아니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이 많은 것 같다. 난 불교 신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절집은 나에게도 많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산에 다니면서, 아니면 여행을 다니면서 절이 있으면 대부분은 들러 삼배는 하고 나온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조용하고, 고행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구도자들의 생활이 녹아 있는 것 같아 경외감이 들기 때문이다. 또 어렸을 때, 그런 분위기가 좋아, 한 사람과 많이도 찾아 가본 곳 이기도 하다. 절집에서 하는 데이트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고, 삼배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마음껏 훔쳐볼 수 있어서 좋았고, 더군다나 전생과 인연을 들먹이며 작업(?)하기도 좋았다. 저자는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절집 17군데를 찾아보며, 그 절집의 역사와 오랜 세월 말없이 절집을 지켜온 예술을 이야기 해준다. 그 위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가르침들을 전해준다. 절집이 깊은 산속에 있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심에 있든, 그곳에는 자신이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고, 사람들을 교화 하려는 가르침이 있기에 은은히 들려오는 목탁소리를 우리는 동경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에 있는 17군데의 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의외의 곳을 발견하기도 한다. 몇 군데는 나도 가본 곳이고, 또 몇 군데는 말로 들어 아는 곳이지만, 그 절들에 얽힌 이야기는 처음인 곳도 많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봄, 가을 따뜻한 날들의 주말 한번쯤 찾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삼성동 도심 속에 있는 선종의 대표사찰이라는 봉은사와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인 종로의 조계사는 뉴스에 많이 오르내려 사람들에게 익숙한 절이다. 불교가 현대화되고 발전해가기 위한 성장 통으로써 안 좋은 면도 많이 보여준 절이기도 하지만, 구도자들이 생활하고 세상사람들을 교화하려는 도량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의 총본산이라는 보문사는,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절에 가는 길 양 옆에 은행나무가 많았다는 기억이다. 노랗게 물들은 은행나뭇잎이 떨어져 길을 덮고 있었을 무렵, 그 길을 걸은 적이 있다. 아직도 가을에 노란 은행나뭇잎을 보면, 그 길이 생각나고,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은행나뭇잎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는 생각이 드는 나의 베아트리체,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종로구 숭인동에 있다는 청룡사는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지나다니며 본적은 있었겠지만, 조선시대의 정업원이 바로 이곳이라고 하니 조금은 의외다. 불교를 배척한 조선시대, 도성에 절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때 도선국사의 유언에 의해 창건되었고,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의 명복을 빌던 곳인 동망봉이 절 앞에 있다고 한다. 법정스님에 의해 너무나도 유명하게 된 절이 길상사다. 절이 되기 전, 음식점이었을 때 한번 가본적이 있다. 한번 가본다 하면서도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절 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나마 만난 절이 반갑기 그지없다. 도심에 있는 절 몇 군데를 빼놓고는 서울에 있는 절들 대부분은 북한산 기슭에 있다. 화계사, 삼성암, 경국사, 삼천사, 천축사, 승가사, 도선사 그 외에도 이름없는 수많은 절들이 그곳에 있다. 예로부터 북한산은 성으로 둘러 쌓인 곳, 그만큼 요지이기도 했기에 승군이 많이 거주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 승군들이 머물러야 했기에 절들이 많다고 한다. 살상을 금하는 계율에도,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고뇌를 보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의문이 많아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도 돌아보지만, 남은 생은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간다. 문득 모든 것 떨쳐버리고 나 자신을 찾아서 떠나보고도 싶다. 이름있는 명산대찰 보다는, 이름없는 조그만 암자가 더 눈에 들어오지만, 그래도 절집에 대한 기본 지식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절집에 대한 부족한 지식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넣어가며, 언젠가 나도 떠날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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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함께 서울의 절집을 여행한다? 그렇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가상인물인 나팔수(남편)와 지혜장(아내)가 바로 우리를 절집여행으로 이끄는 두 인물이다. 사실 나팔수씨는 절에 그다지 흥미도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따라나서는 인물이 아니지만 지혜로운 아내 지혜장의 꼬임에 슬슬 따라나서게 된다. 이 책속엔 서울에 자리한 17개의 절집이 등장한다. 물론 내가 직접 가 본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지만 이름만 듣고도 '아, 거기?' 할 정도로 낯익은 절들이 참으로 많다. 아마도 이 낯익음은 한동안 초파일 연등행사로 종로를 시가행진했던 각 절들과 어느 절에서 나왔는지 맨 앞에 팻말을 들고 있던 모습과 동시에 눈이 순간 화려해지던 각종 연등행사 조형물들과 그 뒤를 따르던 신도들의 모습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녁 해가 기울어갈 무렵부터 시작되던 연등행사의 인파에 묻혀서 이 장관을 취재하려던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카메라들까지 동원되고 마지막엔 조계사 앞쪽에서 얇은 종이를 흩날리며 신나게 끝나던 연등축제의 모습은 절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아직도 잊지 못하게 하는 한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떠들썩한 축제의 분위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잔잔함으로 나팔수와 지혜장 부부는 절의 면면과 역사까지 물 흘러가듯 편안한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준다.
나름 '불자'라고 자청하는 나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그냥 내 집 앞마당 드나들듯 편하게 드나들던 절에 그리도 많은 의미와 장치가 있다는 사실과 평소엔 알려고도 하지 않던 온갖 역사를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절은 그저 '종교적'인 공간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가령 이 책에 등장하는 국악의 거리로 일컬어지는 돈화문로에 위치한 절인 '대각사'의 경우엔 3·1운동의 성지로 추앙받는 곳으로 이 절을 세우신 용성스님은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애쓰셨고 상해로 망명한 김구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셨으나 안타깝게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열반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종교가 자칫 정치와 결탁 내지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 대뜸 큰소리부터 나기 일쑤이지만 이렇듯 종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나라를 위해 물심양면 애쓴 모습을 대하니 숙연해진다.
절이 자리하는 곳이 대개는 인간사와는 동떨어진 깊은 산중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절의 입구에서 대하는 일주문을 통해 속세에서 찌든 마음을 정화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범주들에서 동떨어진 곳이 서울의 절들이다. 절 주변으로 높게 솟은 아파트며 건물을 흔히 접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보는 서울의 절들인 것이다. 예전에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에서 서울의 오래전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준 거리전이 있었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의 생활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던 옛 서울시민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중에서 기억에 남던 사진 하나가 '봉은사'의 오래전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휑하게 일주문이 서 있던 절의 주변은 온통 허허벌판이었다. 지금은 절의 사방으로 고층 건물이 일조권을 침해하네 마네 하면서 분쟁에 시달릴 이유가 하나도 없던 그 시절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얼마나 낯설기만 했는지...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대로 그 자리에 있으면 좋으련만 변해가는 것 그것이 당연한 것임을.
이 책을 보면 나 같은 소위 날나리 불자들에게는 어려운 불교 용어들이 범람(?)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지혜로운 지혜장 보살님은 옆에서 투덜대는 나팔수씨에게 예의 자상하고 조곤한 성품으로 풀어 설명을 해준다. 신심까지 충실한 지혜장님의 자상한 설명에 '아우, 어려워.'하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 것 모든 이들을 절이라는 곳이 우리에게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온다.
입덧이 심한 와중에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예전에 절에서 가끔씩 얻어먹던 점심공양 생각이 났다. 일정 시간을 정해두고 해당 절의 신도들은 물론이고 지나가다 들른 객들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을 베풀던 그 점심공양. 밥 한 그릇과 국 그리고 짠기가 더해진 김치나 산채나물, 무엇보다 내가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당근으로 부쳤던 달디 단 전까지 자신이 먹을 만큼 담아서 맛있게 먹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깨끗이 닦아 엎어놓던 일. 그냥 공짜로 밥 한 끼 먹었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느 책에선가 절에서의 공양은 결코 공짜가 아니라 어디서든 '밥값'을 하게 된다는 구절을 읽고 나서부터는 절에서 얻어먹는 밥 한 그릇이 더 귀하게 여겨졌었다. 절은 그렇게 문 열어두고 밥을 먹고 가도록, 아니면 스리슬쩍 들어와서 절을 둘러보아도, 법당 문을 열고 들어가 삼배를 올려도 뭐라고 하는 이가 없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드나들던 절의 모습이었다. 있는 그 자리에서 오는 자, 가는 가 붙잡는 적이 없었다. 애초에 나팔수씨가 그리도 가기 꺼려하던 이유를 난 이런 것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로만 본다면 절집엔 발도 들여놓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생활하는 터전의 일부이며 내가 힘들 때 혹은 허할 때 언제든 문고리 걸지 않고 열어두는 편한 곳이 절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중에 스르륵 마음을 열게 된 나팔수씨처럼 절이 더 편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면서 공부하는 기분보다는 부부 곁에서 함께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편하게 서울 곳곳에 자리한 절의 모습을 만나보았다. 있는 그대로 하지만 그 절이 간직한 모습을 실속있게 만나보고 싶다면 누구에게라도 편하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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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부모님 모시고 사찰 답사를 자주 다니던 나는 늘 궁금함에 시달렸다. 사진을 찍고 오면서도 대체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볼 사람도 찾아볼 책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의문점을 간직하고만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그저 자식들 잘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비는 데 열심이셨기 때문에 사찰 구석구석 뭘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 이 책은 불교기자 생활 20년을 지낸 저자가 일반인이 사찰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사진을 곁들여가며 설명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았지만 깨닫지 못했던 돌 하나, 목재 하나, 그림 한 조각에도 숨어 있는 그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책속에는 서울의 사찰 17곳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4C 소수림왕 때 전 진에서 순도가 불교를 가지고 들어왔고 백제는 4C 침류왕 때 동진에서 마라난타가, 신라는 5C 눌지왕 때 고구려 묵호자가 불교를 전해줬지만 워낙 신라의 민간신앙이 강해 인정받지 못하다가 6C 법흥왕 때에 가서야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되었다. 삼국 시대 불교 수입은 왕권강화를 위한 호국 불교적 성격으로 왕실을 중심으로 수용되었다. 통일 신라(신라 하대)때 선종이 유행하면서 교종과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교종은 형식, 지식, 의례 등의 이론에 치우쳐 왕권강화라는 목적에 적합했지만 선종은 참선, 좌선, 수행 등 실천을 강조하여 호족의 지원을 받았다. 신라 하대에 원효가 5교(교종)를 통합하려고 노력했었다면 고려 무신 정권기간에는 5교(교종)와 9산(선종)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교종의 천태종과 선종의 조계종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실패로 끝났지만 무신기간 동안 이루어졌던 정화운동(결사체 운동)은 무신정권과 하층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표적 결사체가 천태종의 백련사운동과 조계종의 수선사운동이다. 여기에서 ‘사’는 결사체의 ‘사’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백련사 운동의 본산지가 강진의 만덕사이고 수선사운동의 본산지가 순천의 송광사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의 사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봉선사와 봉은사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책이 강화되었는데 태조 때는 도첩제를 실시했고 태종 때는 더욱 강화시켰다. 세종은 겉으로는 억불책을 표명하면서도 내불당을 짓는 등 이중적인 면을 보였고 세조(수양대군)는 숭불로 전환하여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간경도감을 설치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도첩제를 폐지함으로써 출가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중종 때는 승과를 폐지했다. 명종 때 승과와 도첩제가 부활하기는 하지만 후에 불교를 탄압했을 정도로 억불책이 일관되게 시행되었다. 서울에 살면서 가본 사찰이라고는 집근처에 있던 봉은사와 조계사가 다인데 봉은사의 내부를 들여다본 건 두 번뿐이 안 된다. 왜 좀 더 서울에 있는 사찰들을 돌아보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도 남지만 사찰들 속에 공통점들이 많아 내가 그동안 지방의 사찰들을 돌아보면서 찍었던 사진 속 조형물들과 비교해볼 수 있어서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P207 사찰에서 무슨무슨 전이라고 하면 그 안에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모신 것이고 무슨무슨 각 하면 그 안에 불보살님 외의 존자들을 모신 것이다.
금강역사는 부처님의 법과 도량을 수호한다고 한다. 여의주는 진리의 상징이다.
책을 읽다보니 선암사는 태고종 스님들이 살고 계신다는 걸 처음 알았다. 교구본사에 소속된 작은 절은 '암'으로 끝나는데 교구본사의 말사라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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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은 봉황문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께서 거룩한 삼보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일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주는 데 그 뜻이 있고 지국천왕은 비파를 들고 증장천왕은 보검을, 광목천왕은 용관, 여의주 또는 견색(새끼줄)을, 다문천왕은 보탑을 받쳐 든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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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신문에서 20년을 근무한 작가분이 불교의 모습과 우리가 사는 곳 주변의 가 볼만한 사찰들을 여행기의 형식이 아니라 가상의 부부를 이용하여서 움직이는 기행문이라고 볼수가 있을것 같다.
본문에 나오는 부부의 이름은 나팔수 지혜장 아내인 지혜장은 독실한 신도이고 남편인 나팔수씨는 그냥 평범한 가장으로 지혜장이 설법을 듣다가 그곳의 스님이 말하는 남편들도 데리고 절에 다니면 서로 사이도 좋아지고 건강에도 좋다는 말에 남편을 데리고 먼저 주변의 유명 사찰을 순례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본문의 내용대로 대다수 종교의 신도들은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을것 으로 생각이 되는데 그러한 이유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남성들이 생업에 종사를 하면서 종교에 대한 마음이 줄어들고 휴일에는 그동안의 피곤을 집에서 풀려는 모습이 더욱 많을것 같다.
종교 생활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어딘가에 의지를 하고 싶어지는 약한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으려는 활동의 하나로 보는 입장인데 그러한 종교 생활을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억지로 움직이는 마음은 불만을 만들게 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안 좋게 되므로 서로 약간씩 양보를 하여서 본문의 내용처럼 나들이를 나가는 마음으로 시작을 하면 좋을것 같다.
불교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이 된다고 볼수가 있는데 1. 동남아쪽의 소승불교 원시적인 불교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다고 할수 있는 모습인데 우리라는 개념이 아니라 나라는 개념을 사용을 하여서 자신의 해탈을 목적으로 수행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 동북아의 대승불교 각자의 해탈이 아닌 우리모두의 각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교의 종파는 많은데 그러한 종파들이 추구하는 모습도 여러가지가 있다. 서로가 금기시 하는 것들도 틀리고 바라보는 모습도 틀린것은 불교가 한명의 신을 바라보는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공부를 하여서 깨닮음을 얻어서 해탈을 하자는 종교이기 때문에 각성을 위한 여러가지의 방법들이 나오고 그러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여러 모습의 경전들이 나오는것 같다.
3. 교종 부처님과 그분의 제자들인 나한들이 남긴 말들을 모아놓은 경전을 연구하고 배워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선종 깨닭음이라는 것은 책으로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아야지만 얻을수 있다는 마음으로 명상을 중시하고 화두를 중요시하는 방법을 목적으로 한다. 달마 대사가 선승으로 유명하고 우리나라의 불교는 선종이 대세를 가지고 있는것 같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변한 모습을 알려주는 것은 신라,고려의 국가적인 종교의 모습으로 나타난 불교가 조선의 숭유억불로 인하여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를 떠나서 산으로 들어가고 승려의 신분을 구속하고 억압을 하면서 경전을 공부하는 교종보다는 화두를 가지고 명상을 하는 선종이 득세를 하는 모습을 보인것으로 생각을 해봅니다.
본문에 나오는 절들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일제 시대에 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인 백용성스님이 창건을 한 종로에 있는 대각사가 가장 좋은것 같다. 우리나라의 암흑기에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하신 스님이 창건을 한곳이라서 마음에 드는 부분도 있지만 이책에 소개가 된 절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거의 암자 수준의 절로 생각이 된다. 겉모습은 작지만 그 내용은 알찬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인것 같다.
큰절들에서 간혹 일어나는 주지의 위치를 둘러싼 더러운 싸움도 없을것 같은 작은 규모의 절과 그 절을 창건한 스님의 모습이 아직 절에 남아 있는것 같아서 좋다. 모든 종교 시설들이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만들지만 그러한 시설에서 거주를 하는 종교인들이 깨끗한 마음만을 가지고 사는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정보화 시대인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느낄수가 있을것 같은데 종교는 사람의 마음에 안정을 주고 상처를 보듬어 주는 원래의 모습으로만 남아있고 돈과 권력으로 인한 싸움질은 속세의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종교인들의 깨끗한 모습만을 보기를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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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으로 등산을 가게 되면 항상 마주치는 절, 운치 있는 건물과 경치를 감상하며 한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사찰기행은 끝을 맺곤 했다. 종교에 관한 교양강의를 들으면서 우리의 인생을 꿰뚫어보는 불교 교리에 깊게 감명받은 적이 있기는 했지만, "사찰"이라는 공간과 불교라는 종교를 연결시켜서 이해하려고 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에게 절은 문화재나 관광지일 뿐이었다. 이 책에서는 불교신문 20년의 기자가 중년의 부부를 등장시켜서 서울에 있는 열일곱 개의 절을 소개하면서, 건축물과 탱화, 불교와 관련된 우리의 역사와 인물, 현재의 한국불교에 대해 모두가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입담 좋은 설명을 해준다. "절집에 들어서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누구도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돌 하나, 목재 하나, 그림 한조각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안내하고 설명해주는 친절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절집에서 만나는 무수한 유형들을 교리적으로나 역사 문화 예술적으로 무한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책을 통해서 절집에 숨어있는 뜻을 욕심을 가지지 않고 천천히 충실하게 안내를 해주고 있다. 불당에서의 "삼배"가 삼보:세가지 보물(불보-부처님, 법보-부처님의 가르침, 승보-스님)에 귀의한다는 의미라는 것, "전"과 "각"의 차이(전은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모신 곳이고, 각은 주로 토속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불교에 받아들여진 분들을 모신 집), 각종 탱화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도 각각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의 설명과 함께, 한국의 역사 특히 고난의 역사와 함께한 절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고려 천추태후와 관련된 진관사,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생을 마감한 비구니 사찰 청룡사, 태조의 비 신덕왕후의 묘인 정릉을 보살피기 위해 건립된 흥천사와 왕자의 난과 함께 우여곡절을 겪는 정릉, 마지막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쓴 용성스님과 대각사. 단아하게 편집되어 있는 절집의 사진들과 함께 오랫만에 책을 통해서 충실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불교가 단순히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책의 문구를 읽다보면 모든 종교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은 108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뭔가를 비는 것만이 기도는 아닙니다. 기도는 참회와 발원 그리고 원력이 한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청담 큰 스님께서는 참회를 통해 중생의 소원이 성취되고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이곳 도선사를 참회도랑이라고 합니다....참회는 단순한 뉘우침이 아니다.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동시에 청정한 불자의 삶을 이루겠다는 원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기도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무수한 시간속에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들을 소멸하는 지극한 노력없이는 기도가 될 수 없다. 또 자신과 이웃 일체 중생의 이익을 위해 소원을 빌때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있다"
법정스님의 저서를 몇권 가지고 계신 어머니를 위해 책을 선택했는데, 연말선물로 아주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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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 근교에 있는 유명 사찰의 역사와 배경, 인물,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다. 전에 한동안 열심히 읽었던 이용재님의 책들처럼 화자(비록 가상 인물이지만) 둘이서 여행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의 글이다. 나는 아직도 이런 글 형식에 익숙치 않다.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도보로 갈 수 있는 절들이 서울에 꽤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늘 다니던 곳 근처에도 유명한 사찰이 있었는데 모르고 지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특히 북한산 자락에 그렇게 많은 절들이 있는 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곳한곳 방문하는 기회를 가져 보아야겠다.
1. 봉은사 빌딩 숲 속 고즈넉한 산사? 거기엔 우주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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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특징중 하나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중 대답 한 가지는 회색의 콘크리트로 둘러싼 도심속에 자연이 어우러진 멋이 있다고 한다. 특히 대표적인 덕수궁, 창경궁,창덕궁, 경복궁, 광화문.... 이런 조선시대의 건물이 복잡한 도심속에 그 자체만으로도 오롯이 자신의 본연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절이 아닐까 생각된다. 도심 곳곳에 숨어있는 암자의 종류까지 치자면 그 수도 만만치 않을 터, 작가는 자신의 직장과 연관된 일을 하고 있었던 곳을 떠나 도심속의 사찰을 여행하면서 책을 폈다. 흔히 알고도 있고, 모르고 있었던 도심속의 사찰의 이름을 보면서 가본적도 있는 장소도 나오고 아직 가보지 못할 뿐더러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절의 이름도 들어있다. 조계종, 태고종은 물론이요, 불교의 탱화나 영산재, 그리고 절의 역사가 들어있는 글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지혜장 보살과 나팔수란 이름의 남편이 같이 동행하면서 어렵게만 느껴지는 불교의 사찰 이야기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듣고는 있었던 불교의 용어라든가 참배의 의미, 절을 세운 스님들의 이야기는 동화를 읽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게하며 사진 한 컷 한 컷은 세심한 절의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연꽃을 연상시키며, 앞으로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천으로서의 불교의 할 일들을 느끼게 해 주는 대화는 현대로 이어져오면서 종교가 어떻게 대중속으로 포교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서울의 주요 교통지에 위치한 절을 찾아간다는 의도된 대로 행해지는 발길이 아닌 이 책을 들여다 봄으로써 종교를 떠나 차분한 나의 시간과 명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다지는데 이만한 분위기를 전해주는 책은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도 서울에 한정이 된 채 절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전국의 유명 사찰이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곳의 고장 사람들에게 유명한 절을 소개하는 책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책이 더욱 두꺼워지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런 시도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요즘 서양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동양의 사상이란 점에서 넓은 의미로 불교가 관심을 끌고 있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사찰기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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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아가는 절집기행이란 말이 딱 맞는것 같다. 비록 서울에 있는곳이라 가본곳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제대로 여행한 듯한 느낌이다. 일일이 다 찾아갈 수없는 절집을 다 구경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각 절에 대한 기본 설명은 물론이고 주변의 먹거리 까지 친절하게 보태주었다. 사진작가가 찍어서 그런지 구도는 물론이고 생생하게 내앞에 살아 숨쉬는것만 같다. 예전엔 산을 찾아 등산을 하다보면 대부분이 절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곧잘 절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이란 것에 얽메여 제대로 산행한번 못했다. 그래서 자연이 무척 그리웠었는데 집에서 이 많은 절과 함께 할 수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임연태님께서 직접 기행을 다니면서 절집의 가르침과 풍경과 역사를 전해주어 더 생생한 감동이 전해져 오는것 같다. 무려 열입곱이나 되는 절을 구경한 셈이다. 절에도 각각의 사연이 있고 특징이 있고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왜 행복을 찾아그는 절집 기행이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이다음에 우리 부부도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절에는 가지 못한다 해도 꽃한송이 피어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는 화계사에는 꼭 가보고 싶다. 그곳의 정기를 느끼고 축원방에 달리 소원지에 소원도 빌고 올것이다. 빌딩 숲으로 가득한 서울속에 고즈넉히 자리한 우주와도 같은 봉은사가 있고 지킬것은 지키고 버릴것은 버려야 행복하다고 하는 경국사도 있다. 특히나 절에도 역사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랐고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사진작품에도 놀랐다. 정말로 자연을 통째로 내 앞에 옮겨다 놓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행복한 기행을 해서 너무나 좋은시간이었다. 이번에 서울에 있는 절집이었으니 다음엔 전국적으로 더 많은 절집기행이 출간되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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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닥거리는 시내의 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 절이 있다. 절은 그렇게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 자연과 사람을 소통시켜 준다. 그것만으로도 절이 있는 의미를 다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산의 경계에 있는 절은 세속의 고통과 오만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절과 세속의 경계는 일주문이다.' 20여년간 불교기자를 한 그가 서울에 있는 절집을 찾아 나팔수와 지혜장이라는 가상의 부부가 절집여행을 하듯 소개를 한다. 절집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는 나팔수씨에 비해 절집과 불교에 관심이 많은 지혜장은 남편을 점점 절집에 스며들듯 하게 한다. 처음은 어색하던 이야기도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서듯 한 곳 한 곳 소개되는 절집을 여행하듯 하다보니 문득 우리네 부부와도 닮은 듯 하여 친근감이 있으며 그들과 함께 여행기분이랄까 알지 못하던 부분에 대하여 좀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국의 그리 많은 절집을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절집을 다니다보면 그 곳만이 독특함이라든가 조금씩 다른 절집에 대하여 알게 된다. 내가 자주 가는 안성의 청룡사는 대웅전의 양 처마밑에는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다. 일주문이 있고 바로 대웅전이라 금강문이 따로 없으니 금강역사를 대웅전에 놓은 듯 하다. 그런 절집의 매력이나 역사에 대하여 한가지씩 알아가다보면 절집기행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처음부터 절에 대하여 아니 불교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절집을 찾아나선 것은 아니다. 나팔수씨처럼 무에서 유를 한가지씩 첨가하다 보니 지금은 산을 찾으며 절집에 꼭 들러 한가지씩 얻어 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알게 되고 가게 된 절집이 그래도 여러 군데이니 이 책에서 보여주는 곳을 더하면 더 많은 절집이 저장되는 샘이다. 우리나라는 유명산에는 꼭 유명한 절이 한 두 곳은 있다. 혹여 그곳이 큰 절이거나 작은 암자에 불과해도 절이 있어 산을 찾으면 볼거리를 더 안겨 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절에 대하여 세세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절에 대하여 많이 아는 듯 하면서 그 속을 들여다 본다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고 세세하게 모든 것을 파고 들기 보다는 겉모습을 들여다봐도 큰 것을 몇 가지 알고 본다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나팔수씨와 지혜장은 알려준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는 것보다 한두 가지 알고 본다면 더 많은 것이 보이리라. 진관사 -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소님의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변해 주는 태극기와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비앙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가 있는 절이라면 진관사의 칠성각을 더 찾고 싶은 타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화계사 - '그러니까 이 절이 조선시대에 두 명의 왕을 배출했단 말이지? 거 참 묘하다. 선조나 고종이나 앞의 임금이 아들이 없어서 졸지에 왕이 된 분들인데, 그 배경에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에겐 부처님 백이 있었다는 게 공통점이네.' 부처님이 덕으로 두 명의 임금이 배출되었다면 그 또한 대단한 절이다. 현판 글씨 또한 대원군의 글씨라고 하니 보고 싶다. 절에 가면 눈에 들어오는 현판의 글씨들, 그것이 다름 아닌 공덕주였던 대원군이 추사에게 배운 솜씨로 쓴 글씨라 하니 언젠가 가서 보고 싶다. '사' 와 '암' 의 차이는 혹은 '전' 과 '각' 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등 쉽게 풀어 놓아 이해를 도우면서 나아가는 이야기 방식이 쉽게 다가온다. 작은 암자의 경우 간단하게 불상만 모신 대웅전과 산신각 정도만 갖추어 놓은 곳도 있고 '사' 이면서도 대웅전과 명부전 산신각등과 심검당과 요사채등 왠만한 것을 모두 갖춘 경우도 있다. 모두를 세세하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깊게 알려고 하기 보다는 나팔수씨처럼 지혜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서울 도심의 '절' 에 있게 되는 절집기행이다. 절에 가면 제일 먼저 안내판을 찾아 절의 역사나 그외 문화재등에 대하여 먼저 읽어 내려간 후 대웅전부터 하여 하나 하나 찾아가며 그 절에 대하여 공부하는 방식이 맘에 든다. 나 또한 절집 구경을 할때는 안내표지판이 있다면 그것을 먼저 읽어보고 그 절에서 꼭 보아야 하는것이라든지 알아야 하는 것등은 체크한다. 자주 가는 절이라 해도 내가 모르던 것을 나중에 알거나 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꼭 자주 간다고 하여 모든 것을 한번에 알기란 힘들다. 그런 면에서 안내판부터 찾아 읽어 보던가 요즘은 문화해설사가 있는 곳도 있으니 부탁하여 해설을 듣는다면 절집구경에 좀더 보탬이 될 수 있다. 아이들과 절집을 찾은 경우엔 몇 번 문화해설사를 찾아가 부탁을 한적도 있다. 그렇게 하여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좀더 자세하게 듣게 되면 그곳에 대하여 좀더 잘 기억하게 된다. 지혜장은 절집을 찾기 전에 미리 인터넷에서 공부를 해 가서인지 설명이 줄줄 나온다. 그런 해박한 지식이 없다고 해도 몇 번 찾다 보면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곳이 절집이다. 얼마전 서산개심사를 찾은 적이 있다. 그곳을 여행하고 다른 곳에 들르기 위해 가던 길에 있던 '정순왕후 생가' 를 들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왕후도 공주도 삭발하고 다시 태어나는 곳 '청룡사' 를 읽다보니 더욱 아쉬움이 크다. '정순왕후는 청계천 열리교에서 단종과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하고 청룡사에서 스님이 되어 평생을 살았다. 한 많은 목숨은 길기도 길어서 머리 깍고도 65년을 살았다. 절에 사는 동안 매일 앞산 언덕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며 지아비를 그리워하고 안녕을 빌었다.' 라는 글을 보니 더욱 아쉬움과 함께 언젠가는 '정순왕후 생가' 및 '청룡사' 를 가고 싶어졌다. 내가 찾는 안성의 청룡사와는 어떻게 다르며 왕후나 공주가 삭발을 하였던 절에서 여인네들의 한과 그리움을 잠시 느껴보고 싶어졌다. 다른 절보다 유난히 눈에 뛴 절은 '보문사' '세계 유일의 비구니종단. 대한불교 보문종이다. 1972년 창종된 보문종의 총본산은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보문사이다. 60대 이상 어른들에게는 '탑골승방' 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절이 비구들만이 아니라 비구니들도 많다. 진천의 '보탑사' 는 비구니들이 절을 얼마나 아기자기 하면서도 야생화로 이쁘게 가꾸어 놓았는지 모른다. 그런 비구니들의 총본산이 서울의 보문사란 것을 알게 처음 알았다. 길상사와 법정스님에 관한 이야기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나 '소설 무소유' 를 통해 익히 알고 있어서일까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인데 많이 갔던 곳처럼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외 많이 오르내리는 봉은사도 그렇고 승가사등은 자주 오르내리는 절등은 익숙함에 반갑기도 했지만 역시나 절이면서 세속과 너무 가깝게 있으면 소음이 들리는 것 같다. 요즘 어느 절이나 조금 알려지면 거창해진다. 예전의 고즈넉함 보다는 세상의 때가 묻어가듯 살림이 불어나는 곳들이 많은데 눈에 거슬린다. 자비의 상징인 포대화상, 그의 배가 자비가 아닌 기름진 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는데 절은 절 다워야 절에 가고 싶어진다. 나팔수씨와 지혜장이 서울의 절집을 돌아보며 절구경을 시켜 주었듯 남편의 손을 잡고 고즈넉한 절집에 가고 싶어졌다. 세속의 때가 많이 묻어 있다고 해도 그곳에 가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여유로워진다. 어깨에 무겁게 눌려 있던 삶의 무게를 모두 벗어버릴 수 있는 그곳, 내가 돌아본 곳은 한곳도 없지만 간접적이지만 지혜장처럼 좀더 적극적으로 절집을 찾기 전에 역사나 문화를 좀더 공부를 하고 간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그리고 한 번 휘 둘러보고 그냥 일주문을 나서기 보다는 안내표지판을 한번이라고 꼼꼼하게 읽어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것을 한가지라도 얻어 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것. 워낙에 절집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절집기행이 될 듯 하다.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기 보다는 '아하.. 이런것도 있었구나' 하는 역사 이야기 한토막이라도 알고 간다면 더욱 뜻 깊은 절집기행이 될 것이다. 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팔수씨와 지혜장처럼 한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절집여행을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다. '안가고 생각했던 것들 앞에서 내가 모르는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 깨달음이 있을 때 절집의 가르침과 풍경과 역사가 더욱 감동적으로 내 몸속으로 용해되는 것입니다.' 라는 말처럼 좀더 절집의 '의미' 를 찾는데 도움이 된 절집기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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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절에 다니는 일을 즐겨 하시는 분께 선물로 드리고 싶은 책이다.
지난 주, 서울에 가기 전에 이 책을 받았더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절 중에 한 곳이라도 가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 싶었는데, 결국 서울의 절들은 또 내게 먼 나라가 되고 말았다.
불교와 나. 나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그래도 불교에 대해서는 다른 종교보다는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절에 가는 것이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니 아마도 조금 더 익숙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느낀 것, 내가 왜 이렇게 종교에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어느 종교라고 할 것 없이, 종교에 비판적이 된 내 생각의 근원을 되짚어 보았는데, 그 이유가 종교 그 자체라기보다는 종교를 믿는 일부의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인 것 같았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저런 일을 하다니, 하는 바로 그 이유. 불교든 기독교든 카톨릭이든 이슬람이든,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수많은 잘못들이 종교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하곤 하니.
사람들이 절에 가는 이유, 절에 가서 부처님을 뵙는 것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절이란 곳은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기능을 갖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교회가 그러할 텐데, 우리 문화에서 절은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통하는 곳이다. 따라서 서울에 있는 절이라면 바로 서울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니나, 작가는 서울의 절들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그 절과 관련된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들려준다. 마치 절을 따라 우리의 역사 여행을 하는 느낌도 든다. 그것은 또 그만큼 우리의 문화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이어져 왔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고. 이 역사를 알고 절을 찾는다면 분명히 그냥 가는 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책의 제목처럼 절을 찾아서 느끼는 행복이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입장에 따라 교회나 성당이나 모스크를 찾아서 느끼는 행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인데. 나로서는 그 행복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종교를 향한 내 마음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 중의 하나가 종교를 갖는 것이라고 하던데, 인류의 역사가 생긴 이래로 종교는 더할 수 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그게 왜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오래 전 기독교 신자인 내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자아가 너무 강해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글쎄, 내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였을지.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소한 종교적 사건들 몇 가지가 스쳐 지나가기는 한다. 절에서나 교회에서나 엄숙함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내게는 편하지가 않다. 괜히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만 같아서.(사실, 죄를 좀 짓고 살기는 하지만서도) 그런데 그 죄를 용서해 달라고 그곳에서 빌고 싶지는 않으니.
정녕 상념이 가득했던 절집 기행이었다. 도대체 무념무상의 경지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얼마나 생각이 많았던 독서였는지.
서울에 살고 있지 않으니, 앞으로 언제 가 볼 수 있게 될지 알 수는 없고,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불교 지식들을 외워둔다면 써 먹을 때가 생기기는 하겠으나, 그 또한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고. 불심을 가진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라는 그 생각만 자꾸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