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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조금씩 계속 생겨나고 있다. 잘 참다가도 욱하고 터져버리고 그러고 나면 후회로 가득한 마음은 어느새 슬픔으로 덮여버리고 만다. 힘겹게 차곡차곡 걷어내기를 수차례, 겨우 좀 걷어내었나 싶으면 금새 또 물밀듯 밀려든다.
매일, 늘, 항상 반성하고 또 해도 부족하다.
여기엔 나와 같이 반성에 대해, 반성의 순간에 대해 떠올리거나 관련된 일화를 작가들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오는 안부전화가 행여라도 끊어질 때면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는 이가 있는가하면, 어머니로부터 자라면서 핍박받았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가 있고 스스로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해 저질렀던, 스스로 꺼내기 민망했을 순간을 글로 표현한 이도 있다.
그리고 반성을 떠올릴 법한 옛이야기를 전해주며 같이 반성해보게도 하고 만나자고 말로는 늘 하면서 한번도 만나려고 애쓰지 못한 자신을 떠올리며 그러지 말아야지 새롭게 다짐하는 이도 있고 욕먹는 게 두려워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이는 "그럼 욕먹어, 욕먹고 나면 더 잘 쓰게 돼."(p248)라고 말해주는 아는 형님의 조언으로 꿋꿋하게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반성에는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했던 감정과 그로인해 저질렀던 행동들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꾸짖고 반성한다. 반성을 한다는 건 어쩌면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할 일이 자꾸 생겨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
헌데 가족과 관련된 일은 다들 자기가 잘났네, 잘했네보단 그때 그 순간은 정말 다시 안 볼 듯이 밉고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을 토로하면서도 정작 그런 분이 돌아가시고 나면 잘해드리지 못한 걸 무척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그건 아마도 미워하든 사랑하든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기에 그런 걸까...?
음... 각자의 반성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겠지마는... 머리로는 그렇겠구나 하면서도 한편, 마음으로는 이들의 반성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끌렸던 것 같다. 헌데 이 책을 읽어도 뾰족한 답을 찾지는 못하겠다. 물론 그건 대신 풀어줄 수 없는 내 문제니까. 다만, 이 책을 통해, 이 분들의 반성을 통해 어떤 상황이고 문제든 스스로가 행한 못난 말과 행동에 대해선 반드시 반성해야 된다는 것은 배웠다.
그렇지만 요즘 난 반성을 하고 또 해도 계속 반성할 일이 늘어만 나서 걱정이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반성은 계속될 뿐이다. 그런 반성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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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반성문 한번 정도 써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처음 이 책을 보았을때 작가들은 어떤 상황들을 반성하면서 살까? 궁금했다. 살면서 후회되었던 상황들이나 시간들을 반성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살아계실때 모르고, 건강하실때 모르는 부모님에 대한 반성이었다.
어찌보면 너무 평범하고 어찌보면 너무 당연하고 어찌보면 너무 소박하고 어찌보면 너무 식상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제일 많이 반성하고 제일 많이 눈물나고 제일 많이 후회되는 것이 부모님이라는 이름인 모양이다.
죽어라 싸우기도 하고 죽어라 엇나가기도 하고 죽어라 바락바락 대들었던.. 그래서 한번쯤은 부모님 가슴에 대못 한두개 박고 나서, 자신 또한 그 만큼의 나이가 되었을때쯤... 우리는 부모님께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너무도 뻔한 반성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들은 그런 반성이 상처를 주고 받는 모든 이들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말한다.
반성이라고 하면 지난날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꾸짖는 일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원래 자신이 품었던 생각, 처음 가졌던 자세, 출발점에서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한다.
바쁘게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거라 생각했던 나의 이기심을 버리고 내일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꼭 드려야겠다.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아빠의 고집도, 무서운 호통도 이제는 찾아뵙기만 해도 해사하게 웃으시는 부모님이 되신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나도 오늘은... 내주변을 반성해야겠다.
내 부모님께 다정하지 못한 나를 친구들에게 자주 전화 못하는 나를 남편에게 조금 더 애교스럽지 못한 나를 따스한 마음 전하지 못한 나를 감사한 마음 전하지 못한 나를 작은 일이 욱했던 나를 조금이라도 고운말을 사용하지 못한 나를...
처음 가졌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오늘은 꼭 반성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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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심플하다. 이 계절에 딱 맞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글쟁이들의 반성을 읽어보며 순간순간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비롯, 반성을 지나쳐버린 마음 속의 묵직한 돌처럼 얹혀 있던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자꾸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고, 지금이라도 반성했으니, 됐다...그러면서 합리화 시키기도 했고. 이래서 책이 좋다. ^^ 솔직히 아주 다양한 반성문들이 등장할 줄 알고 내심 기대했는데 역시 부모님에 대한 글들이 많아서 좀 아쉬웠으나 뭐, 부모님에 대한 부분이야 시대를 초월하는 반성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도 몇몇 반성문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반짝거려서, 수도없이 내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만들더니 그만 가슴에 콕, 박혀버렸다. 아마 나의 상황과 비슷해서일듯. 나도 초중고를 지각쟁이도 살았던 터라 시간에 관한 반성, 그리고 벼락치기로 살아온 어느 작가의 반성을 읽으며 살면서 반성이 되지 않고, 반성 못하고 어물쩡 넘어가버리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아졌다. 기억은 많은 것들을 편집해 추억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도, 결국 내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들을 가지지 않으면 나는 아주 못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아주 잘 읽었다. 워낙에 유명한 분들의 글이기도 하지만 참 솔직하고 우리네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더 가슴에 와닿는 글이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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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들의 반성문을 읽다.. 어느새 12월이라는 말만큼 식상한 표현이 또 있겠냐만은, 것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기에 쓴다. 어느 새 12월이다. 벌써... 이왕 식상하게 쓰는 것 좀더 식상하게 써 보자면.. 그렇다. 뭐 이렇다 할만하게 해 놓은 일은 하나도 없는데, 하릴없이 나이만 또 한살 느는 게 부담스러운 12월이다. 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해마다 그렇건만 올해는 더 그렇다. 한번쯤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차분히 계획할 수 있는", 그런 다소 뻔한 일이 필요한 시점 12월.
다소 뻔한 제목의 책을 한 권 읽었다. [반성]. 2010년 12월 1일이라는 다소 뻔한 시점에, 다소 뻔한 제목으로 1판 1쇄를 발행한 책 [반성]. 다른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어떤 "반성"을 할까 궁금해서 펴든 책이다. 이렇게 "뻔하다"는 말을 자주 써서 책을 만든 사람들을 식상한 사람들로 평가절하하고픈 결심 따위는 하지 않았음은 밝혀두어야 오해를 사지 않을 것 같다. 책을 펴든 시점의 내 기분이 그랬다는 것일 뿐. [반성]이라는 시의적절한 제목에 끌렸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 책을 펴든 결정적인 이유는, "김용택, 박완서, 안도현, 이순원 외 지음"이라는 글쓴이들의 이름값 때문이다. 이렇게 유명하신 분들의 글을 한 권의 책에서 한꺼번에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그간 나의 얄팍한 독서이력에서나마 감동을 준 글들을 쓰신 분들의 이름이었으므로....
헝클어진 머리, 아마도 예닐곱살 정도로 짐작되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의 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배가 지나온 자리에 일고 있는 파문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표지의 흑백사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20명의 글쓴이들이 쓴 반성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반성문이래서 이 분들이 뭘 잘못해서 쓴 것이라기보다는 마음 속에 "짐"으로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반성"과 지난 삶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야할까나... 한 권의 책으로 묶여있을 뿐, 살아온 내력도 다르고 반성의 주제도 다르지만, 책 표지 속의 물결마냥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라는 생각, 책을 덮으면서 했다.
남의 반성문을 읽으면서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글을 읽으면서 자주, "아, 맞아. 나도 이랬어."하며 나를 뒤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족이기 때문일까. 이 책에 실린 글 중 상당부분은 가족에게 상처준 것에 대한 반성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준 상처. 나 역시 부모님께 잘못한 일이 많았지만, 그 잘못을 잘못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 많다는 것, 새삼스레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해 놓은 것 없이 맞이하는 12월에 대한, 그러니까 내 생활에 대한 반성도 해 보게 된다.
어쩜 반성문조차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가는 글들이 많았고, 이름난 문인들의 글이라 그런지 짧은 글에서 삶의 깊이가 배어나는 듯했다. 마음 한켠에 돌멩이를 던진 듯 내 마음 속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어떻게 살아야 나중에 덜 후회하게 될 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 일기를 쓰며 잘한 일 못한 일을 매일 돌아보던 때처럼, 그렇게 짧은 간격으로 내 삶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작은 소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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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성적인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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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돌아 보고 새로운 나를 찾아 나서는 진정한 반성이라는 무엇인지 늘 생각을 한다.말처럼 쉽게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고 깊게 깨닫고 살아 가기가 왠지 실천으로 옮겨지지를 않는다.아마도 나의 알량한 자존심과 상처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부모,형제,가족,친구들과 오랫동안 우의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무덤덤하기도 하고 마냥 받는 것으로만 착각하다 보니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아 주어야 할 정신적,물질적인 보답은 뒷전에 밀릴 때도 수없이 많다.삶이 버겁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눈 앞에 놓인 이해관계에 매달리다 보니 챙겨야만 할 대상에게 소홀히 함으로써 뒤늦게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라는 자책감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 옴도 느낀다.완벽하지 않은 삶이기에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욕심과 자존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내 주위를 돌아보고 가까운 이웃,친지,가족에게 혹시 상처는 주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여 참다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기도 하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게 많은 기대와 신망을 갖으셨다.물론 아버지의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의식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집안에서 맏이인 내게 거든 기대가 컸던 것이다.시골 농부가 농사 지으며 외지로 나가 장사를 하면서 대가족의 부양하시고 가계를 꾸려 오시면서도 늘 일꾼처럼 부지런하게 이른 아침이면 일어나시고 조반을 드시자마자 출타하는 아버지가 형제자매들에겐 잔 정을 쏟을 시간은 없으셨다.집에 들어 오시면 꼬랑내 나는 발냄새를 씻어 내려고 늘 대야에 물을 담아 발을 씻고 저녁을 드시자마자 노곤했던 탓인지 금세 눈을 감고 피로를 푸시는 모습이 엊그제 같다. 그나마 내 경우엔 반듯한 학교 생활과 교우 관계,괜찮은 학업을 이루어 가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부심과 함께 동네 어른들의 칭찬을 받으며 긍정과 희망을 씨앗을 마음 속에 심어 나갔던 것이다.이에 아버지는 내가 필요한 학비,용돈을 덤으로도 주시면서 꼭 좋은 대학,좋은 직장 꾸려 동생들에게 끈나풀이 되어 달라고 갈망하셨던거 같다.사람 일이생각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고교 시절 학업보다는 친구들과 휩쓸려 놀러 다니는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원인이 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도 못가고 아버지에게 큰 원망만 듣게 되었던 것이다.돈이 많은 부자도 아닌 평범하게 살아왔던 내게도 서울이라는 사립대학의 등록금과 생활비,자취(할머니와 함께)와 관련하여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대신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책을 펴고 사전을 뒤져가면서 공부를 하려 해도 고교시절 놀았던 탓인지 기초가 부족했던 탓인지 기초 개념과 상황 논리,사고력에서 동료들에게 뒤쳐지는 것을 깨닫고 죽기 살기로 도서관에 쳐박혀 도콕이 되었던 덕에 아버지에게 모처럼 기쁨을 안겨 줬던 적도 있다. 문제는 그렇게도 서울로 대학을 보내고 뒷바라지를 했으면 앞가림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취직도 못하고 빌빌 거린다며 공부를 제대로 해 놨더라면 남들 다 들어가는 공무원 자리 하나라도 얻어 돈은 크게 벌지 못하지만 평생을 보장할 수가 있는데 시간만 흘러 가고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책망을 하시곤 했었다.물론 첫직장이 나의 전공과 무관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똥을 끄기 위해 들어갔는데 늘 매일,매주,매달의 실적과 연관되다 보니 실적이 아닌 가실적까지 올려 놓아야 하는 부담과 자괴감마저 들게 되다 보니 그만 사직을 하고 또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고전하던 시간이 꽤 또 흘렀던 것이다.설상가상으로 나이가 드신 아버지께서 아파트 경비를 서시다 늦가을 찬바람을 맞고 그만 중풍으로 쓰러 지셨다.종합병원 중환자실만도 3번 이상이나 다니시고 요양을 했던 것이다.찾아 가서 인사를 하고 병간호를 해드릴 때면 내가 너무도 미웠는지 고개를 외면하시곤 했다."왜 내가 널 그렇게 잘 키우고 좋은 사람 되라고 기대하고 뒷바라지 했는데 지금 모양이 우습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인사을 찌푸리면서 동생들은 너보다 좋은 대학을 못나왔어도 앞가림 잘하고 당당하게 사는데 남 부끄러워 못살겠다던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병생활 11년 만에 운명을 달리하시고 임종도 못했다.아버지는 매장을 하여 어느 시골 뒷동산에 계신다.추석 명절에 인사를 하러 갈때마다 옛일이 떠오른다.아버지의 바램과 기대를 저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아버지의 소원을 저버린 자식이 되어 버린 불효자가 되어 버려 살아 생전엔 야속하게만 느껴졌던 아버지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농부라는 시골뜨기에서 버젓한 사회 우등생을 원하셨던 아버지의 의도를 늦게나마 깨닫게 된다.이젠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기르는 부모 입장이 되어 아버지의 뜻과 생각을 되새겨 보니 무릇 아버지가 자식에 거는 기대와 넓은 사랑은 값지어서 돈과도 바꿀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살아 생전에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했던 철없던 시절 진정으로 반성하는 자식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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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6일 남겨놓은 지금. 무엇보다 아쉬운것은 나의 30대다. 20대를 보내며 30대가 되는것이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마치 30대가 되면 젊음과 모든것을 잃어버리는것만 같아서. 하지만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난 두려움이 앞서기보다는 내가 보내온 30대에 대한 미안함이 먼저 드는것 같다. 이렇듯 연말이 되면 우리는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또 다음해의 이맘때쯤 그것을 반복하곤 한다. "반성"이라는 단어는 참 괜찮은 단어다. 돌이켜 생각해볼 여유를 가질수 있도록 해주니말이다. 이 책 표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반성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신과의 약속이다" 난 오늘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나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있는 것일까? 나보다 훨씬 많은 인생을 살아왔고 글을 통해 여러 삶을 들여다볼수 있도록 해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전부터 설레었다. 이 책속에는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문인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 무엇보다 가슴으 싸하게 하는것은 바로 어머니. 엄마라는 이름의 이야기들이 아닐까? 그중 서석화의 "어머니의 문안전화"는 날 돌아보게 했다. 오전 10시만 되면 딸에게 문안전화를 하는 엄마.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어머니의 하루는 3시 반에 시작되기에 10시까지의 기다림은 참 길것이다. 하지만 밤 늦게까지 글을 쓰는 딸을 배려하시는 엄마.어느날 10시에 울리지 않는 전화.딸은 무심히 넘겨버렸지만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전화를 기다릴 딸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하라"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본다. 언제난 부르면 달려와주는 엄마를 위해 그렇게 달려갔던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먼저 날 생각해주는 엄마를 나보다 생각했던적이 있었던가? 30대를 보내며 나에게 좀더 충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후 엄마에게 좀더 충실하지 못했음을 먼저 반성해야함을 알았다. 나도 엄마가 오래도록 내 곁에 계시기를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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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인간만의 특징이라고는 절대 믿지 않지만, 반성은 인간이 더욱 인간다울 수 있는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일이든 반성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결국 모든 인간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이 시대 대표적 작가들이 소개하는 자기 반성 이야기. 어떤 이는 정의를 외면했던 자신에게, 어떤 이는 늦장을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에게, 또 어떤 이는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자신의 습성에 대해, 또는 이웃을 외면했던 자신에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반성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반성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반성입니다. 어떤 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 혹은 아버지에 대한 한없는 미안함과 그리움을 내비치며, 뒤늦게 후회하고, 또 어떤 이는 곁에 있는 부모를 뒤늦게 이해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어쩔 수 없이 눈물 흐르게 만드는 인연. 그 인연에서 많은 반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먹먹해졌습니다. 책은 조용히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내어줍니다. 책을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과 그로 인해 일어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들이 떠오릅니다. 조금 더 정신을 차렸다면, 혹은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올 수 있었던 일도 있었고, 뭐 지금 다시 해도 안 됐을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과거를 잊지 않고, 내 잘못된 행동이나 경솔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구나 잘못이나 실수를 피해갈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그 잘못과 실수로부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나를 찾아가는 길, 그 길에 반성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준 이들이 정작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미안해하고, 걱정해주는 우리네 이웃과는 다르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은 오히려 반성하지 않습니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를 보면서도 느낍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정치인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반성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서는 반성이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재빠른 망각이 필요합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를 ‘아방궁’이라 거짓 비난하고, 자신의 부의 배경인 사학법 개정을 막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았던 이가 깨끗함과 공정함을 강조하며 시장이 되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연약한 다윗이며 상대 후보는 골리앗이라 말하는 사람. 정작 자신의 막강한 부와 권력은 뒷전으로 교묘히 감추려 합니다. 한 평생 남을 위해 헌신한 사람과 한 평생 자기들끼리 잘 사는 데에만 몰두한 사람의 대결이 이번 시장 선거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는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알겠지요. 뭐, 물론 강남 3구는 그냥 버렸습니다. 프로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든 성실히 하고, 정직하며, 또 잘못된 일이 있으면 솔직히 털어놓고 반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성하지 않습니다. 뻔뻔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4대강 사업 때문에 우리 국토가 더욱 깨끗해 졌다는 광고를 서슴없이 합니다. 극장이든 TV이든, 라디오든, 길거리든 어디에서나 말이죠. 또한 대한민국이 한미 FTA와 핵안보정상회의로 다시 국격이 높아지는 멋진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랏일을 맡긴 내 자신이. 모든 인간에겐 반성이 필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반성하지 않고, 거짓과 기만을 일삼으며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이들. 그들이 가야할 곳은 비단 차가운 무덤만이 아닐 것입니다. 부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시대 진정 반성이 필요한 이들은 누구일까요? 반성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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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뒤돌아보면 후회되거나 반성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있을까. 우린 모두가 크거나 작거나 혹은 계속되는 일이라도 한가지는 가지고 산다.나 또한 지난해 연말에 아버지를 보내 드리며 아버지 살아생전에 너무 못해드리고 안해드린 것들이 많아 후회되어 엄마께는 잘해드려야지 했던 것이 어제일 같은데 전화도 자주 않하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 반성은 그때뿐이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산다는 것이 힘들다. 날마다 새로운 일과 새로운 것에 적응하며 살다보면 날마다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되는 하루가 되다보니 지난 반성거리는 잊기마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