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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의 말로 기억한다. "수구는 어제가 좋았던 사람들, 보수는 오늘이 좋은 사람들, 그리고 진보는 내일이 좋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선생 자신이 대표적인 진보 인사에 속하기도 해서인지 이른바 진보의 긍정적 이미지가 다소 그려지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 이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수구도 보수도 딱히 부정적으로 보긴 어렵다. 어제가 좋았고 오늘이 좋다고 믿는 것이 뭐 어때서.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는 표현은 우리들의 언어가 얼마나 진보에 대한 믿음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다" 이 책에 언급된 위 말에 형광펜을 칠했다. 종이책이었으면 아마 찐~하게 밑줄을 그었을 듯. 개인적으로는 내 자신도 우리 사회에서 소위 진보적 인사들로 불리는 이들의 말과 글에 보다 공감이 가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저건 너무 나갔다 싶은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진보적, 보수적 가치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와 문화적으로는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정치와 경제적으로는 보수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내 주변으로도 보면 나도 다소 그런 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데 안보에 있어서는 꽤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점들도 있다. 이를테면 플로베르는 보통선거권을 대단히 혐오했고 그것을 인간의 우둔함에 대한 자신의 지독한 증오를 드러내기 위한 조롱거리로 자주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니체는 보통선거권을 그의 '무리본능'의 궁극적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무리본능이란 니체가 민주 정치를 향한 모든 경향들을 폄훼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낸 용어라고 하는데 니체면 충분히 그랬을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외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읽으면서 짚게 된 것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여기서는 같은 장소에 머물기 위해 달릴 수 있는 한 달려야 한단다" 위 말이 바로 <엘리스>에 나온다는데 저 말의 함의를 이 책에서는 꽤 진중하게 담고 있다. 혹여라도 궁금한 분들은 직접 읽어보길 권하고, 나는 <엘리스>를 다시 읽기로 한다. 좋은 책은 그 책을 읽고 나서 다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책이라는 명제를 새삼 실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