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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계속되는 불행은 있을 수 없다.
아이티 사건 이후, 우리나라는 우방국 혹은 한국과 외교관계에 있으면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나라에 수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매달 1만원에서 3만원의 도움을 주고 있으며, 천원이라도 모금이 이루어져 한 목숨 두 목숨을 살리고 있다. 우리에게 한끼 식사값도 안 되는 돈으로 그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실제 보지 않더라도 놀라운 건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게다가 아이티 사건 이전에도 꾸준히 도움의 손길을 줬던 내용들이 하나 둘 공개되면서 그 어느나라 보다도 따뜻한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우리나라.
<지라니 합창단, 희망을 노래하다>는 신미식 사진작가의 포토 에세이이다. 작가는 처음 TV에서 소개되는 지라니 합창단의 노래를 들었던 그 순간부터 그들을 잊을 수 없어 운명처럼 합창단을 만나게 된다. 케냐의 쓰레기 처리장 고로고초 마을.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전기도, 수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쓰레기를 뒤져 끼니를 채우고, 늘 주린배를 움켜쥔 채 공부도 할 수 없는 열악함을 이겨보려 힘쓴다. 그런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도데체 무엇일까? ' 희망'조차 없다면 매일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쉬는 들숨과 날숨의 교류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희망을 가진 다는 것은 어떠한 열악함이라도 뚫고 나올 수 있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그 무엇이니까 말이다.
외부와의 접촉뿐만 아니라 희망과도 단절 된 삶. 지독한 가난과 절망, 최소한의 인간다움조차 사치가 되는 곳. 고로고초. (P. 69~70)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영혼이 치유된다 - 도스토예프스키 -
지라니(jirani)는 좋은 이웃이라는 뜻이다. 고로고초 마을은 케냐 정부에서 외면당하는 마을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쓰레기 더미와 함께 쓸려 ' 쓰레기'로 취급당하는 것일까.......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송되는 드라마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이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생목숨을 잃는 국민은 없어야 한다.'라는 말. 케냐 정부에 대놓고 말해주고 싶다. 자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가 국민을 외면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인간은 평등한데, 격을 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거 같다. 생존이 위험한 고로고초 마을 사람들. 희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그들에게 드리운 빛과 같은 존재. 바로 우리나라의 임태종 목사와 김재창 지휘자이다.
임태종 목사와 김재창 지휘자는 불가능할 것 같은 그들과 함께 2개월 만에 첫 공연을 갖는다. 2006년 케냐 나이로비 국립극장에서 지라니 합창단의 첫 공연이 있었다. 그 후 미국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서 공연을 하고 매년 우리나라를 찾아 감동을 전하고 있는 그들. 쓰레기장을 배회하는 것이 다였던 아이들에게 희망이 생겼다. 아이들의 합창단 입단을 반대하던 부모들도 태도가 변하고, 지금은 입단을 위한 경쟁률이 엄청나다고 한다. 내일이 없던 아이들에게 꿈 꿀수 있는 내일을 만들어준 합창단이다. 쓰레기 더미여도 괜찮다. 오늘을, 내일을 살 수만 있다면 꿈을 꿀 수 있다는 그들......
언뜻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는 흑인 아이들. 그러나 신미식 작가의 사진 속엔 그들의 희망이, 그들의 행복이 보인다. 노래부르는 게 뭐라고 이리들 즐거워 할까? 쓰레기 처리장의 악취와 온갖 질병들, 가난함이 합창단에서 보내는 4시간보다 더 클텐데 사진속의 그들에겐 나에게서 볼 수 없는 희망섞인 미소가 보인다. 그 어떤 꽃보다도 활짝 펴 있는 아이들의 미소가 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든다. 컬러사진보다 흑백사진이 흑인 아이들을 더 잘 표현한 듯 보이는 이 책은 검은 피부색도, 흑백사진의 어두움도 고로고초 아이들의 빛나는 희망을 흐려놓은 순 없는 것 같다.
음악은 우리의 영혼에서 일상의 먼지를 씻어낸다. - 레드 아워백 -
무기력한 삶이 지속되면 걸음을 걸을 일도, 말할 이유도, 눈을 꿈뻑일 이유도 없지 않을까? 땀흘려 일하는 것이 그저 힘든 노동이라고 치부되기엔 성취감이라는 세 글자가 안타까워진다. 가정을 꾸려 사는 것이 지겨운 매일이라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안타깝지 않은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숨쉬며 내일을 꿈꾸는 이유는 아마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반드시 존재되어야 할 단어 ' 희망'이야 말로 전 인류를 살리는 가장 큰 구원이 아닐까...... 지라니 합창단의 흥겨운 춤과 노래가 머릿속에서 맴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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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에서 노래가 들려올 때 희망은 어디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그래서 더 가치 있고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곳에서, 도저히 노래가 들려올 것 같지 않은 쓰레기 더미에서 노래가 들려올 때 희망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 신미식의《지라니 합창단 희망을 노래하다》중에서 - * 희망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을 때 부르는 노래는 진정한 희망의 노래가 아닙니다.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오로지 절망만 남아 있을 때 희망을 노래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부르는 노래가 희망의 노래, 생명의 노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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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 못했던것 같다. 어렴풋이 그리고 우연히 TV를 통해 가끔 보게되었던 지라니 합창단. 막연히 아프리카 아이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인가 보다 하고 별로 관심있게 보지 않았던 것 또한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표지의 눈이 맑은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을 보니 그 아이들에 대해 궁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로고초 아이들, 캐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고로고초' 라는 뜻이 케냐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자리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얼마 후 거대한 쓰레기 마을이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쓰레기를 뒤지며 생명을 연연해 가고 있었다. 각종 질병, 말라리아 에이즈등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가족을 잃고, 동생을 먹이기 위해 새벽부터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아이들. 케냐의 대통령 선거시 고로고초 마을을 깨끗한 곳으로 이주시키고 일자리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이 나왔지만 그들은 선거가 끝나자 오히려 마을을 강제 철거하겠다며 주민을을 협박했다고 했다. 갈곳 없고 돈이 없고, 삶의 희망마저 없는 이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간혹한 사형선고같은 통보를 할수 있는걸까? 사진속 오도커니 서 있는 한 남자의 비쩍 마른 모습에 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짐을 느낀다.
어떻게 저런 삶속에서 해맑은 미소가 나올수 있는 것일까? 내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본다. 내가 만약 고로고초 같은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 나는 저 아이들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수있을까? 악취와 쓰레기 더미, 그리고 온갖 질병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말이다. 또한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도 묻고 싶다. 그대들 또한 이 아이들의 모습을 할수 있을지!
그런 그곳에 우연히 임태종 목사가 방문하며 쓰레기를 주워먹던 아이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고로고초 아이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분이 고심끝에 생각한건 합창단을 만드는것. 삶의 희망이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새겨 넣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리키고 희망을 주면서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 주었다. 그 아이들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공연을 한다. 그리고 매년 우리 나라에 찾아와 공연을 한다. 타지에서 , 그리고 심각한 오염으로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악취가 심한 그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한 목사님에 대해 큰 존경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 스스로는 늘 분에 넘치게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늘 부족함을 호소하고 있었던것 같다. 저 아이들은 하루 먹는것에 ,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을 걱정하고 힘겨워 하는데, 나는 늘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했고, 더 많은 것을 필요이상으로 더 가지려 했던 . 늘 이런 책들이나 티비를 통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때만큼은 절약하고 아껴쓰자며 늘 다짐의 다짐을 하면서도 그것도 잠시뿐, 또다시 사고싶은것, 가지고 싶은것에 몇번을 망설이다 결국 구입을 하게된다. 이런 내가 지라니 합창단을 보며, 그리고 사진속의 아이들을 보며, 또한번 반성을 하게된다.
활자들보다 사진이 더 많은 책이지만, 많은 글이 필요없을 정도로 사진속에서 모든 생각, 감정, 이야기들이 그대로 베어 나오는것 같다. 저자는 사진가이다. 그래서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 읽는 독자로 하여금 조금은 낯설고 적응하기 힘든. 그래서 약간은 부족한 표현과 저자의 글속에서 좀더 느끼고 싶었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내게는 약간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무언가 꾸미려는 느낌이, 조금은 표현을 화려하게 하려는 꾸밈을 주려는 불편한 문체들을 접하면서 내 마음까지 불편했던것 같다. 만약 사진과 글 모두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그냥 그런 책 , 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박혀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의 부족함을 사진들이 모두 대체해 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게는 괜찮은 에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