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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 필요 없습니다. 불벼락처럼 몰아치는 오케스트라의 폭풍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피아노의 차가운 불꽃! 이 한 문장 만으로 미켈란젤리/부르고스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명연주에 가벼운 코멘트 하나 대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 뜨거움이 제게도 전염돼서 드글드글 끓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리는 엄청납니다. 스산하게 느껴질 정도로 명확한 타건이 용암같은 뜨거운 정열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파워가 혀를 내두르게 하면서도 터치 자체는 오히려 가볍습니다. 보통 힘있는 연주가 동반하는 둔중한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의 제자인 폴리니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폴리니가 차가운 지성을 느끼게 한다면 미켈란젤리는 천재의 여유같은 걸 느끼게 합니다. 그의 터치는 낭만적인 멜로디, 엄청난 파워, 초스피드의 악절 그 어디에서도 "이것이 나의 100%가 아니다" 라고 강변하는 듯 합니다.
그의 터치가 어떤 부분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것은 그의 정신력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위 혼을 실어서 치는 엄청난 파워의 타건은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몸과 정신을 건반에 실어내듯이, 그 자신이 피아노의 에너지가 되어 피아노를 폭발시키듯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리는 일정산 선을 그어놓고 절도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피아노에 몸을 싣거나 종속되지 않고, 극한에 가까운 연주 (이 터져나가는 타건이라니!) 속에서도 오히려 피아노를 조련하듯 철저히 말끔하게 마감된 터치를 들려주는 그의 연주는 거의 전율에 가깝습니다. 푸르고 차갑고 거대한 빙산을 눈앞에 마주한 듯한 전율!
오케스트라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늘어짐 없이 딱딱 끊어주면서도 그 한 음 한 음에 대단한 집중력과 파워를 실어내고 있으며, 대단히 정열적이고 호전적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부르고스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마치 이 공연에 오케스트라의 존폐라도 걸린 양, 필사적인 수준의 폭발적인 힘을 발휘합니다. 꼭 야생동물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는 듯 합니다. 어느정도 초현실적이기까지 한 미켈란젤리의 피아노와는 달리, 오케스트라는 살아 꿈틀거리는 에너지로 넘쳐납니다.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시뻘건 폭풍의 압박!
결국, 근성의 오케스트라와 천재성의 피아노가 충돌합니다. 어느 쪽도 봐주는 기색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의 불타오르는 에너지는 어느 한쪽이 나머지를 압도하지 못하고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합니다. 그야말로 호적수, 용호상박! 인정사정없이 맞부딪히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호각세를 이루며 펑펑 튀겨대는 불꽃은 숫제 황홀할 지경입니다.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을 달빛 떨어지듯 연주하는 미켈란젤리와 잠시 숨죽인 오케스트라의 평온한 하모니 역시 무척 인상적입니다만, 그러나. 이 연주의 가장 큰 미덕은 단연코 뜨거운 카타르시스입니다. 3악장이 폭발하듯 끝난 직후 쏟아지는 거짓말같은 박수갈채! 저는 숨이 턱 막혀 왔습니다. 실황공연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혹시 65년 모노녹음이라는 이유로 구입을 망설이는 당신! 음질 걱정하실 때가 아닙니다. 물론 리마스터링은 아주 잘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 두십시오. BBC 시리즈는 자주 수입되는 것도 아니며, 당신이 이 음반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수많은 애호가들이 이 음반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드뷔시의 전주곡 역시 좋은 연주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로열 페스티벌 홀의 잔향으로서, 미켈란젤리의 낭랑한 타건이 긴 여운을 갖고 홀 전체에 떠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잔향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연주되는 곡이 바흐가 아니라 드뷔시이기 때문에 이 점은 플러스 요인이 됩니다. ^^ 이 연주가 드뷔시 전주곡의 최고의 연주로서 추천될 수는 없겠지만, 실황공연 특유의 탄력과 약-간 빠른 템포는 생동감 있는 연주 (그래서 아나카프리의 언덕 같은 통통 튀는 곡들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로 나름의 개성을 뽐내고 있습니다.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연주입니다.
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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