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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직한 제목의 책은 제목 그대로 과학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관해 기본적인 내용들을 담은 책이다. 기본적인 내용들이라 한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아니 사용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그런 것이고, 그 언어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다소는 생소한 내용일 수도 있다. 게다가 독자들에게 직접 생각할 여지를 ‘강요’하는 실습 문제들은 수능 언어 영역의 과학분야 지문과 문제들 같아 보이기도 한다. 과학의 언어는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듯이 양날을 가진 칼이 될 수 있다. 수백 년간 변화해오면서 어쨌든 현재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구조와 가깝게 맞춰진 언어이므로 그 규칙을 따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지만, 무슨 일에나 그렇듯이 그것을 정반대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상외로 그런 부적절한 이용에 대해서는 길게 서술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과학자나, 과학기자 등이 아닌 과학의 언어를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가장 관심이 갈 것 같다. 그 사례로 재미있게, 아니면 씁쓸하게 다뤄지고 있는 사례는 바로 부시 전 대통령이 기후협약에 관한 교토의정서에 서명을 하지 않는 이유로 ‘과학의 언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의 언어로서 ‘미래가 현재가 되기 전까지는 확언할 수 없’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관하여 ‘추론’, ‘가정’, ‘예측’, ‘불확실성’ 같은 단어를 써서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부시(부시가 정작 그 보고서를 읽었을 리는 만무하고, 부시의 생각에 맞추어 그 보고서를 해석하는 사람들)는 그와 같은 단어들을 ‘즐겁게 오독(誤讀)함으로써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발견들을 불완전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그것을 정책 결정에까지 활용해버린다는 것이다. - 과학자들은 과학의 언어를 썼고, 또 정책 결정자들은 그 과학의 언어를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이용해버린 것이다. 읽으면서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개인적인 것인데, 과학 논문의 구조에 대한 것이다. 처음 논문이라는 것을 쓰면서(사실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교육받은 것은 없지만),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논문에는 ‘we’(‘I’는 더더욱)라는 단어는 쓰면 안 되는 것이고, 또한 대부분 수동태로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규칙에 감정적인 단어를 될 수 있으면 배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규칙은 논문에 좀더 자신감이 생기면서 최근에는 가끔 능동태도 쓰고, ‘we’라는 단어도 쓰긴 하는데 여전히 규칙은 규칙이다. 또한 한 가지 더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은 옮긴이가 ‘울타리치리’라고 번역한 hedge라는 것이다. 그런 용어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과학 논문을 쓰던 사람들은 누구라도 쓰는 방법이다. 책에서 인용된 논문의 부분은 이런 것이다. “우리의 실험이 원인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어떤 종양바이러스가 발병과정에서 가능성 있는(possible)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be considered)고 제안한다(suggest).” (114쪽) 바로 에이즈에 관한 논문인데,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확실하지 않은 발견과 그 추론에 대해 과학 논문의 저자들은 자신의 진술을 제한하는 이런 용어들, ‘possible’, ‘be considered’, ‘suggest’ 같은 용어들을 쓴다. 아! 나의 논문에는 그와 같은 용어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실 앞에서 든 부시의 예는 이와 같은 과학자들의 ‘울타리치기’를 교묘하게 악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포함해서 과학 논문의 구조와 문법에 관한 내용은 어쩌면 과학 분야의 대학원생들(정확히는 내 실험실의 학생들)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그리 깊게는 들어가지 않지만, 조금씩만 생각해보면 과학 논문을 잘 읽을 수 있거나, 또 과학에 관한 보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도록 하는 내용들이 많다. 얇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충분히 공부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또한 부담도 없고. (2013.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