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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왼손잡이다. 엄밀히 말하면 양손잡이다. 우리집 가족 구성원의 75%가 왼손잡이니 그다지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때는 그림을 그릴 때다. 왼손으로 스케치를 하다가 오른손으로 지우는데 특히 글이 있는 그림의 경우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왼손으로는 그림을 그린다. 다른 사람들은 한 손으로 이것저것 하느라 거쳐야 할 단계가 많지만 딸은 그렇지 않아서 남들이 부러워한단다. 이 시집을 펼치고 그 안에 있는 그림을 보는 순간 양손잡이인 딸이 생각났다.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니 얼마나 멋진가. 남들이 딸을 부러워하듯이 나도 이 시인이 부럽다. 특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이 본 것을 그려놓는다면 얼마나 멋진 추억이 될까. 그림책 작가 중에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사람은 봤지만 시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동시집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런 동시집과 느낌이 다르다. 아름다운 말만 골라서 예쁘게 표현하려고 하는 시들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되 시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진솔하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 동시집을 읽을 때는 치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시가 무엇인지 절로 느껴졌다. 아, 시는 이런 것이구나, 시는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시를 느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작약이 피기 전에 개미가 줄지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깜장꽃이 피었다고 표현한 것이나 나비가 팔락이는 모습을 보고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표현한 재치. 누구나 보는 것들을 시인은 이처럼 다르게 표현하다니 그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궁금하다. 대도시에서는 보고 느낄 수 없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은 것으로 보아 머리에서 나온 동시가 아니라 생활에서 느낀 동시라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런 생활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최근에 읽었던 동시집 중 가장 마음에 콕 박히는 동시들이었다.
이제 겨울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2010년 12월에 걸맞는 시 한 편을 소개해야겠다. 처음에 제목을 보지 않고(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대개 제목을 먼저 보는데 이 시만은 제목을 안 봤다.) 시를 읽었는데 순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다가 그 의미를 알고 웃었더랬다. 제목이 무엇인지 맞혀보시길. 참고로 이 제목의 전문(全文)이다.
밤새 자동차를 먹어 치운 북극곰들이 두 뒤만 푹푹 내어놓고 주차장마다 드르렁 드르렁 코나팔을 불고 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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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 깜장 꽃] 김환영, 창비, 2010
1. 글쓴이
1957년 충남 예산 태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많은 책의 그림을 그렸다. 대표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 [종이밥],[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있으며, 격월간지 [동시마중] 편집위원이며, 그림시로 독자를 만나고 있다. [깜장 꽃]은 2004년부터 발표해 온 동시를 모아 출판한 것이다.
동골동골 맺혔습니다.
꽃소식 들은 개미들이 물빛 같은 길을 따라 깨물깨물 줄을 지어 올라갑니다.
작약은 발등이 간지러워 모가지가 간지러워 고개를 잘랑잘랑 흔들어 봅니다.
분홍 꽃도 피기 전에 몰려든 손님들로 깜장 꽃만 간질간질 피었습니다.
누가 깜장 꽃을 찾았을까? 잎싹 이였습니다. 햇살이 따사로운 늦은 봄날 졸고 있던 잎싹은 배가 고파 마당으로 나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화단 안에 피어 난 작약을 보게 되지요. 꽃 봉오리는 동골동골하고, 줄기를 타고 깨물깨물 거리며 가는 개미를 따라 가다 보니, 작약은 잘랑잘랑 흔들리고, 깜장 꽃은 잎싹을 쳐다봅니다. 간질간질 거리는 깜장 꽃을 본 잎싹은 뽀족한 부리로 깜장 꽃을 쪼아댑니다. 갑자기 분홍 꽃이 튀어나와 깜짝 놀란 잎싹은 정신없이 도망을 갑니다.
땅거미를 잡아당기며 한 땀, 함 땀, 방들을 키우고 있네
꼬마 새우 한 마리가 들어가 앉았네
“야! 무슨 이야기 듣다가 여기까지 따라왔어?“
우리가 무심결에 한 번 보고 지나가는 것이 잎싹의 눈에는 모두 새로운 세계인가 봅니다. 잎싹은 열심히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아침 햇살이 눈에 비칠 무렵 일어난 잎싹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항상 호기심을 어린 눈으로 요리조리 들여다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았나 봅니다. 단 한 번도 어제가 아닌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 살아 보고 싶다는 글쓴이의 맘처럼 오늘 열심히 보고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면, 내일은 더 재미있는 새로운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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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싹'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똥그란 눈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갸웃갸웃거리며 여기저기를 분주히 다니다가도 문득 깊어져 한참 하늘을 바라볼 것만 같은 '잎싹'. 그 잎싹의 아버지신 김환영 선생님께서 동시집을 내신다는 소식을 <동시마중>이란 잡지에서 전해 듣고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리고 드디어!! 김환영 선생님의 <깜장꽃>을 읽게 되었습니다. <깜장꽃>은 다른 동시집들과는 달라요. 참 따뜻하지요. 꼭 시골집 어느 앞마당에서 봄햇볕을 쬐고 있는 기분이에요. (<깜장꽃>은 제목부터도 달라요. 김환영 선생님의 <과수원을 점령하라>를 보신 분이 계시다면, 김환영 선생님의 장난기를 잘 아실 거에요. <깜장꽃>에도 제목 속에 그 장난기가 아주 예쁘게 담겨 있죠.)
저는 <깜장꽃>을 두 번 읽었어요. 처음 읽었을 땐 아톰발 철벅대는 봄 진흙길이며, 개구리, 작약꽃, 나비가 넘겨주는 동화책 함께 보는 것 같았어요. 다시 읽으니 첨으로 봄을 보는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꼬마가 보여요. 다섯살 꼬마의 봄은 난생처음 봄, 여섯 살 꼬마의 봄은 난생처음 봄, 일곱 살 꼬마의 봄도 난생처음 본 봄. 꼭 제 키만큼밖에 보지 못하니 매번 봄이 신기할 테죠. 아이 따라 키가 작아지니 시큰둥 재미 없던 큰 세상이 신기한 걸로 가득하네요. 그렇게 신기했을 테니 이 시를 쓰는 동안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했었을까, 그 신기하고 재밌고 행복한 마음 따라 나도 봄, 봄, 봄.
<깜장꽃>은 어른인 저를 대여섯살 아이로 만들어 제 키를 작게 하고, 작아져서야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보여줍니다. 어른이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이렇게 재미나고 이쁜 일들이 바로 곁에 있었군요! <깜장꽃>은 그렇게 일상을 새롭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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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템포 쉬어가게 만드는 그림과 동시가 맛나다]
생활속에서 시집을 읽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주로 스토리 중심의 서사 문학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시집 속에 담긴 축약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현대 사회는 너무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빠른 템포의사회에 적응하기 보다는 한걸음 늦게 천천히 걸으면서 세상을 음미할 줄 아는 여유를 가르쳐주고 싶다. 동시는 아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시작 활동보다는 유명한 동화의 삽화를 그린 그림작가로 더 알려진 김환영 작가의 동시집이라고 해서 약간 낯설었다. 알고보니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그동안 동시와 시화를 함께 했다고 하니 어찌보면 글로만 전하는 동시보다는 글과 그림이 함께 주는 시너지 효과를 안고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본다.
<개구리 모내기> 빈 논에 물을 대면,
호르르륵 산을 넘고
개울개울 물을 건너
달 따러 가지요 별 따러 가지요
빈 논에 물을 대는 것이 어떤지 개울을 건널 때 들리는 물소리가 어떤 것인지 아이들은 알 수 있을까? 작가의 동시집에는 도심의 내음보다는 시골의 한적한 마을과 자연의 이미지를 찾는 편이 훨씬 쉽다. 혹은 도심 한가운데라도 버려지고 소외당하는 길거리의 풀한포기에 대한 관심을 찾는 것이 빠르다.
중간중간 작가의 삽화는 정서를 더 순화시키고 시집을 읽는 중간중간 또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만난 느낌이 든다. 삽화가 주는 효과가 이런 것이었나? 내용과 걸맞는 그림인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걸 배운다. 처음처럼 너무 빠른 템포로 사는 아이들에게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고양이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추석>
어미 고양이 어디 가서 북어 대가리도 물어 오고 날고기도 물어 오고 부침개도 털레털레 물어 오고,
양지 녘 새끼 고양이들 고깃점 하나씩 입에 붙이고 씹었다 뱉었다 쥐잡이 시늉하며 빈집 마당에서 와릉와릉 논다
북쩍거리고 바쁠 법도 한 추석의 풍경을 고양이로 표현하다니 재미있다.고양이도 추석맞이를 하려는지 이곳저곳에서 하나씩 물어나르는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다. 이 빈집은 아마도 고양이 식구들이 추석맞이를 하는 장소렸다~.
고양이가 주는 느낌 또한 빠른 템포가 아닌 봄날의 낮잠같은 이미지이다. 한가로운 농촌의 담벼락 귀퉁이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아이들은 분명 눈을 마주치고 가만가만 조는 고양이의 눈꺼풀을 볼테지...여유로움과 한가로움, 그 속에 한가한 시골집의 정취까지 느껴지는 듯한 작가의 작품이 맛깔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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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꽃 작약꽃 봉오리가 동골동골 맺혔습니다 꽃소식 들은 개미들이 물빛 같은 길을 따라 깨물깨물 줄을 지어 올라갑니다 작약은 발등이 간지러워 모가지가 간지러워 고개를 잘랑잘랑 흔들어 봅니다 분홍 꽃도 피기 전에 몰려든 손님들로 깜장 꽃만 간질간질 피었습니다 봄날에 주먹만큼 둥그런 꽃을 피우는 작약을 보면 화사하기 그지없다. 분홍 꽃이 활짝 피기 전 “개미들이 물빛 같은 길을 따라 깨물깨물 줄을 지어 올라”간 것을 보고 시인은 “깜장 꽃”이라고 했다. 동골동골 맺힌 작약 봉오리에 몰려든 검은 개미 손님들도 꽃의 일부로 본 것이다. 시인이 추구하는 조화로운 세계가 잘 드러났다. 의태어를 적절하게 반복하여 실감도 난다. 시인은 “자연은 언제나, 그리고 유일하게 / 단 한 번도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며 내일이라는 사실, / 나는 그 불변의 현재성과 치유력을 믿”(「머리말」)는다고 했거니와, 이번 시집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겪은’ 것을 실감나게 노래하고 있다. “앞 못 보는 두더지가 / 두두두두두 // 빛도 없는 땅속에서 / 감자 밭에 닿았다” (「두더지」), “비 온다 / 스며들 데 없어 / 아스팔트 뺨을 / 찰싹찰싹 때린다” (「아스팔트」) 같은 작품이 자연을 ‘바라보고’ 쓴 시라면, “똥을 눴다 // 똥물이 엉덩이까지 튀어 오른다 / 똥에도 봄이 왔다”(「봄」), “풀을 뽑으면 // 여기가 내 땅이라고 // 흙을 한 움큼, // 한 움큼씩 쥐고 있다” (「뿌리」) 같은 작품이 자연을 ‘겪고’ 쓴 시라 하겠다. 이러한 시편들은 실제 자연 속에 있는 시인이 아니라면 나오기 어려운 내용들을 품고 있는 데다 그림까지 보태져 사실감을 더한다. 귀한 노래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시편들을 동시라고 보아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씨앗을 묻어도 싹이 날 거라 믿지 않던 슬픈 어른은 / 마침내 자연의 품에서 온전히 한 아이가 될 수 있었”(「머리말」)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시편에 아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뛰어난 시편들은 있지만 좋은 동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쩌면 동시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가 빠졌으니 말이다. 동시를 어린이시와 구별하여 어른이 어린이에게 주는 시라고 정의하더라도 역시 아이는 동시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다음 시편처럼 아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그런 동시가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무릎에 생겨난 눈 꽈당! 넘어져 무릎이 깨졌다 피딱지가 앉았는데 똑 눈알 같다 무릎을 들여다보면 무릎도 나를 들여다본다 다 나았는데도 실눈을 뜨고 다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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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23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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