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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주룩 흐르는 날, 종아리께에 선풍기 바람이 오도록 고정해두고 책상 앞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땀으로 젖어 몸에 달라붙는 티셔츠를 손가락으로 꼬집어 바람을 일으키며 책장을 넘긴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만끽하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괜스레 부산스럽지만 조금 집중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땀 마른 티셔츠는 어느새 서늘해져 있다.
이 책이 슌스케와 가나코가 세상 그 누구도 용서해주지 않는 과거의 자신을 서로 용서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였으면 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끝났으면 했다. 소설은 현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항상 상흔을 남긴다. 등장인물에게도, 독자에게도. 어떻게든 행복으로 마무리되길 바랐건만 행복으로 가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아 아득하기만 하다.
자신을 강간했던 남자와 함께 사는 여자. 집을 떠나 슌스케와 함께 살기 전까지 가나코는 어쩌면… 하고 조심스레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전학을 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나를 보듬어줄 것만 같은 새로운 남자도 만났다. 하지만 끝끝내 과거가 발목을 잡았다. 아니 발목을 부러뜨려 놓았다. 부러진 발목을 아무리 애써도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두려움과 체념이 휘감았다.
슌스케와 다시 만난 건 당시에 입원했던 병원이었어요. 이케부쿠로역에서 만났을 때만큼 놀라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뭐라고 할까, 아무리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결국 나는 그 여름을 벗어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201쪽)
가해자일 경우에도 피해자일 경우에도 포커스는 남성을 향한다. 슌스케와 가나코를 쫓는 기자 와타나베는 어느 날 선배 기자에게 강간 사건을 아들딸에게 일어난 일이라 가정해보라고 한다. 선배 기자는 아들이 가해자라면 아들의 인생이 불쌍하다고 말하고, 딸이 피해자라면 가해자 남성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피해자인 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 한순간의 실수로 아들이 평생을 날개가 꺾인 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안타깝지. 부모로서는.…우리 딸? 딸이 당했다고 가정하면? 그, 그 새끼 죽여야지.”(196쪽)
슌스케 스스로가 고백하기도 한다. 가해자인 남성에게는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피해자인 여성에게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장소조차 없다. 이 대목은 여성 앞에 세워진 갑갑한 벽의 존재를 상기해준다. 작가는 슌스케의 삶을 빌려 사회의 생리를 보여주고 있다. 기자 와타나베가 유년 시절 럭비부에 진입하기로 마음먹은 계기, 그리고 사건 당일 슌스케와의 신경전에서 밀린 공범자 스다가 패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사건의 필연성을 묘사한다.
“그런 사건을 일으킨 나를 세상 사람들은 용서해줬어요. 놀라울 만큼 깨끗이 용서했단 말이에요. 물론 꺼림칙한 표정을 짓는 남자들도 있어요.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에 내가 저지른 일을 허용해줬다고 할까, 이해한 게 보여요. 마치 나를 받아들여 주면서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처럼. 그래서 나도 나를 용서하기로 했어요.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해준 남자들 사이에 낄 수 없었어요. 거기밖에 살아갈 장소가 없었거든요.”(207쪽)
운동부로 표현된 짙은 남성성을 가진 남자들은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한 방법으로 종종 힘겨루기를 선택한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 여성이 바로미터로 희생된다는 점에 있다. 숨통을 물어뜯고 있는 맹수가 아무리 나중에 후회한다 해도 이미 목이 뚫린 소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 사건의 발단이 각자의 경솔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사건이 끝날 때까지, 아니 끝나고 나서도 고통은 한쪽으로 모조리 쏠린다.
다만 한 구석 어쩌면… 하고 생각게 하는 부분이 있다. 후반부에 목욕탕에 간 슌스케가 사우나 안에서 싸움을 일으킨 남자들, 그리고 그들을 말리면서 다툼에 휘말린 남자 무리에 끼어들지 않고 거리를 두는 장면이다. 분명 슌스케는 평생의 후회를 선사한 힘겨루기에 염증을 느낀 것이리라. 방황하고 반성하는 슌스케의 마음이 진짜가 아닐까 희망을 품게 만드는 작가의 기술이다. 가나코가 처음으로 슌스케의 진심 어린 죄책감을 알아챈 잠 못 이룬 밤의 장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가나코는 끝내 슌스케를 떠난다. 슌스케를 용서할 자신도, 계속 같은 집에서 살 자신도 없다. 그래, 다치게 되어 있어. 떠나는 게 맞아. 한편 슌스케는 가나코를 다시 찾아 나설 것이라 말한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가나코를 나마저 외면할 수 없다. 그래, 내가 벌린 일이니 끝까지 책임져야 해. 내가 가나코를 지켜야 해. 하지만 슌스케는 그 죄책감을 혼자 짊어져야 한다. 가나코에게 같이 짊어지자고 해서는 안 된다. 가나코가 슌스케의 옆에서 계속 ‘가나코’라는 이름으로 사는 한, 그들은 함께 행복해질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두 사람만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가나코는 슌스케의 후회를, 슌스케는 가나코의 슬픔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가나코는 슌스케를 용서했다. 슌스케도 그런 가나코의 용기를 인정해줘야 한다. 두 사람은 세상의 용서가 아닌, 서로의 용서를 이용해 과거를 끊어내고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부디 가나코가 안식처를 찾고 더 강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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