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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관하여 - 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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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의와 안락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가만히 있지만 더욱더 열심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다는 우스갯소리... 인간을 움직이도록 하는 데에는 이토록 가만히 있고 싶은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더 큰 이익이나 동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동인이 있을까.   우선, 노동을 생각하면 애달픈 인간의 운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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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의와 안락을 추구하는 존재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가만히 있지만 더욱더 열심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다는 우스갯소리... 인간을 움직이도록 하는 데에는 이토록 가만히 있고 싶은 욕망을 넘어설 수 있는 더 큰 이익이나 동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동인이 있을까.

 

우선, 노동을 생각하면 애달픈 인간의 운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노동은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누울 곳을 찾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노동해야 한다. 만약 가만히 있어도 모든 생활의 편의와 의식주가 제공된다면 애써 노동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작업을 생각해 보자. 누구더라? 아마 한나 아렌트의 분류법으로 설명하자면 작업은 어떤 건설적이고 예술적인 것에 기여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과학자가 연구를 통해 우주의 궁극 원리를 찾는데 힘을 보태거나 숙련된 기술에 영감을 더해서 멋진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만드는 행위는 좀 다른 수준의 고양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움직임 자체로 기쁨을 주는 행위가 있다. 놀이가 그렇다. 철학자 칸트는 놀이가 즐겁고 편안한 이유를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놀이는 생존을 위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 후대에 남기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자체로 목적인 행위가 놀이다.

 

나에게도 배움이 노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는 그와 연관되어 있지만, 과거 어느 시기인가는 전적으로 생계를 위해 뭔가 배우고 공부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어쩔 수 없어 배움을 시작했지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들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정보가 쌓이면 일종의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배움 자체에 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되고 묻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배움이 때로는 작업이 되어 무언가 건설적인 것을 창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배움 그 자체가 좋아지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이 책 <배움에 관하여>에서 저자는 배움의 핵심 포인트는 '비판적 성찰'을 동반한 배움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본래 선하거나 악하거나 어느 한 쪽에 기울어진 존재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인간 본성에 내재된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기존의 경험과 지식에서 배우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c****s 2022.08.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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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관하여》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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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시스 젠더'라는 말을 배웠다. 시스 젠더는 '자신이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sex)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이 동일하다 혹은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을 뜻한다. 이 말을 배우며 자신이 여성 아니면 남성인 줄 알고 사는 사람과, 자신의 신체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을 분리해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체험할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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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시스 젠더'라는 말을 배웠다. 시스 젠더는 '자신이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sex)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이 동일하다 혹은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을 뜻한다. 이 말을 배우며 자신이 여성 아니면 남성인 줄 알고 사는 사람과, 자신의 신체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을 분리해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체험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신체적 성별에 따른 성별 정체성이 오로지 하나의 모습으로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부정되는 세상은 얼마나 부당하고 불평등한지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 교수의 에세이집 <배움에 관하여>는 성 정체성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성 정체성을 비롯해 성별, 피부색, 국적, 장애 등을 이유로 사회로부터 불합리한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 관한 학문적 성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된 나라로 알려진 미국에서조차 여전히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함을 목도하며 여러 의문을 떠올린다. 여성은 왜 가정이 생기면 남성과 달리 일이나 공부를 포기하길 강요받나. 성소수자는 왜 사회로부터 합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나. 인간은 왜 자신이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장애인에게 편견 어린 시선을 보내나... 


이 책에서 저자는 교수로서 가르치는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학자(學者)로서 학문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배우는 자세를 취한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모든 생명은 죽는다'는 명제밖에 없다. 기독교 신자들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는 성서에도 잘못된 내용이 많이 있다. 저자는 (기독교 신학자로서는 대담하게도) 성서가 남성 중심적 인간관 및 세계관을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며, 성서 곳곳에 여성 혐오 및 여성이 집단 성폭행의 대상으로 주어지는 대목이 나옴을 지적한다. 저자는 성서를 억압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 반면 해방의 텍스트로 읽을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성서에서 억압의 요소를 배제하고 해방의 요소를 살리는 것이 오늘날의 신학자 및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점도 암시한다.

j****y 2018.04.1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