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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박바로가 Ⅰ 애도와 우울 이론과 기억 그리고 실존의 문제 프로이드 애도와 우울 이론에 맞춰서 폭풍의 언덕을 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 많다. 각각의 애도에 어떤 변수가 개입이 되었느냐에 따라 이들의 애도는 우울증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텍스트 분석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애도와 우울증에 관한 이론에 맞춰서 글을 읽다 보니 기억의 문제와 실존의 문제까지 같이 겹쳐져 있는 듯 하다. 실제로 기억의 문제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에서 언제든지 새로운 삶의 요소에서 과거와의 연을 짓는 기억의 주관성의 문제를 이야기 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경험을 똑같이 하고 있지만 모두가 다른 양상을 보이며 어떤 이는 광인이 되어 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기억적인 문제에서만 광인이 된다는 것은 그 근거가 약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기억은 계속 지속할 수 있다. 결국 기억의 문제는 본인이 살아있는 한 언제든지 연속선상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기억이 고통스럽고 자기 자신에게 존재의 위해(危害)를 가한다면 어떨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애도를 실존의 문제와 연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Ⅱ. 폭풍의 언덕에서 나온 남성 캐릭터 분석 우선 캐써린의 아버지(Mr. Earnshaw)와 힌들리 언쑈(Hindley Earnshaw)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잃었다. 자신의 아들 힌들리도 사실 자신의 아내, 프랜시스(Frances)를 출산(childbirth)로 잃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보여주는 애도의 형식은 다르다. 아버지는 loved object를 아이들과 새로 들여온 아이 히스클리프(Heathcliff)에게 쏟고 있는 반면, 아들 힌들리는 자신의 아이 히레톤(Hireton)을 애증의 관계로 본다. 자신의 아이여서 귀엽지만 자신의 아내를 죽인 자로서 미워한다. 또 오랜 우울로 자신에 대한 학대로 아이도 학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실 그 이전에 힌들리의 가정내의 정체성은 아들로서의 실존을 히스클리프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부분을 눈 여겨 둘 필요가 있다. 히스클리프는 전형적인 광기의 캐릭터이다. 그의 애도는 이미 그가 힌들리에게서, 그리고 프랜시스[힌들리 아내]에게서 학대를 받으면서 자신에 대한 애도를 시작한다. 그는 언쇼 가족에서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잃음으로서, 아니 훨씬 이전에 자신이 생리적 부모(biological parents)로부터 떨어지면서 그의 실존은 위축을 당한다. 그러다가 두 번째로 그의 가족이 되려던 사람들(힌들리와 캐시)에게 버림을 당한다. 그의 실존을 위협하는 큰 사건이었다. 특히 언쇼씨의 사후에 힌들리의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부정(denial)때문에 캐시에게 집착한 그는 그녀에게서도 버림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넬리는 그에게 긍정적인 정체적을 주려고 노력한다. “Who knows, but your father was Emperor of China, and your mother an Indian queen, each of them able to buy up, with one week’s income, Wuthering Heights and Thrushcorss Grange together?” 하지만 이미 캐시가 그의 마음에 각인(imprint)되고 나서는 그녀의 거부가 이성적인 사랑까지 결부되어 가장 아픈 수치와 굴욕감이라는 실존의 위해(危害)로 나타나게 된다. 그는 복수를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에 캐시의 죽음에 일부 책임이 있었으나 캐시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아들, 린튼(Linton)과 캐시 2세(young Cathy)가 결혼할 때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악랄하게 산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장이 있다. 두 아이의 결혼이 끝나고 그는 캐시의 무덤을 파본다. “I’ll tell you what I did yesterday! I got the sexton, who was digging Linton’s grave, to remove the earth off her coffin lid, and I opened it. I thought, once, I would have stayed there, when I saw her face again―it is hers yet[…]” 그러면서 후에 넬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I have neither a fear, nor a presentiment, nor a hope of death―Why should I With my hard constitution, and temperate mode of living, and unperilous occupations, I ought to and probably shall remain above ground, till there is scarcely a black hair on my head―And yet I cannot continue in this my heart to beat! And it is like bending back a stiff spring… it is by compulsion that I do the slightest act not prompted by one thought, and by compulsion, that I notice anything alive or dead, which is not associated with one universal idea… I have a single wish, and my whole being and faculties are yearning to attain it.” 하지만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My confessions have not relieved me―but, they may account for some otherwise unaccountable phases of humour which I show. O, God! It is a long fight, I wish it were over!” 사실, 그는 자신의 복수심으로 캐시를 죽게 했다는 죄의식이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 부분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No! she has disturbed me, night and day, through eighteen years ―incessantly―remorselessly―till yesternight―, I was tranquil. I dreamt I was sleeping the last sleep, by that sleeper, with my heart stopped, and my cheek frozen against hers.” 한편으로는 복수심 때문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캐시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그의 애도는우울로 변해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앞 부분에서 록우드(Lockwood)가 꿈속에서 캐시를 봤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외친다. “Come in! come in!” he sobbed. “Cathy, do come. Oh do―once more! Oh! My heart’s darling, hear me this time―Catherine, at last!” 어쩌면 데리다 식의 애도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의 죄의식은 윤리성에 기반을 한 것이다. 그 윤리성은 그를 애도에서 쉽게 내려 놓지 못한다. 그의 죄의식은 그의 (수치와 모멸감에 대한 실존적) 복수심과 범벅이 되어 복수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유예되어 마지막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끝이 난다. 한편, 에드가 린튼(Edgar Linton)은 어떠한가?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캐서린 언쇼(Catherine Earnshaw)를 잃었지만 캐서린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리비도(libido)를 자신의 자식인 캐시에게로 향하게 한다. 이것에 대해 넬리는 힌들리와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Linton[에드가 린튼], on the contrary, displayed the true courage of a loyal and faithful soul: he trusted God; and God comforted him. One hoped, and the other[힌들리] despaired: they chose their own lots, and were righteously doomed to endure them.” 즉, 에드가, 그의 애도는 정상적인 일반인의 애도인 것이다. Ⅲ. 폭풍의 언덕에서 나온 여성 캐릭터 분석 캐서린(Catherine)은 기독교적인 이름이어서 인지 그녀의 본성은 기독교 요조숙녀의 것과는 다른 면이 엿보일 때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히스클리프와 어울려 개구장이가 된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녀가 근처 치안판사 린튼 집에서 개한테 물려서 치료를 받게 되어 사회규범이라는 것에 눈을 띄게 된다. 그녀의 성인식은 개에 물려 치료받고 있는 동안 사회화 과정이 급속 진행되었다고 해도 만무하다. 그는 히스클리프와 더 이상 그냥 어울리지 못하고 쭈삣쭈삣한 모습도 보인다. “She gazed concernedly at the dusky fingers she held in her own, and also at her dress which she feared had gained no embellishment from its contact with his.” 그녀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다시 아버지를 잃는다. 그녀에게는 이기적인 오빠보다는 자신의 놀이친구인 히스클리프를 좋았다. 그러나 린튼 집에서 겪은 사회의 기준(norm)은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보다는 에드가가 훨씬 이상적인 신랑감임을 인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의 본성은 너무나도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의 갈등은 넬리에게 감지되어서 친언니 같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된다. “I am Heathcliff―he’s always, always in my mind―not as a pleasure, any more than I am always pleasure to myself―but, as my own being―so, don’t talk of our separation again―it is impracticable, and―” 그녀도 아버지사후에 자신의 가정 내에서 딸로서의 정체성에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19세기 초에 부모를 잃은 딸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위안상대인 히스클리프여서 그 둘 사이의 내적인 유대관계는 깊은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에 대한 애도는 새로운 대상물인 히스클리프로 옮겨갔고 그녀가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을 짐작하는 대사가 바로 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히스클리스와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정신병리학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도 애도가 우울로 진행된 환자라 보는 대목도 이 부분에서 시작한다. 나중에 히스클리프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녀는 고민하며 까무라치기까지 한다. 이것도 전형적인 히스테리아(신경증) 증상의 하나로 보여진다. 그녀는 여러 날 잠을 자지도 못한다. 이 부분도 또 다른 히스테리아(신경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그녀는 이렇게 아프고 난 뒤 괴로워하며 고백한다. “”Oh, it will be something worse,” she said. “And what shall I do when papa and you leave me, and I am by myself? I can’t forget your words, Ellen, they are always in my ear. How life will be changed, how dreary the world will be, when papa and you are dead.” 그녀가 히스클리프에게 애착을 보이는 것을 또 직접적으로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녀는 죽었을 때 린튼 가의 무덤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고 워더링 하이츠가 보이는 교회마당에 묻어달라고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가치와는 사뭇 다른 여성이었지만 결국 사회적인 존재로서 그녀는 (결혼조건에 관한) 관습(convention)을 따라가다가 자기 본성(실존)에 반하는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애도는 자연적인 자신과 사회적 존재의 자신의 괴리에서 오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이 히스클리프의 가출과 맞물리면서 히스테리아(신경증)를 거친 우울증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에 반해 넬리는 모든 캐릭터와 연관을 맺으면서도 감정적인 평형을 유지하는 캐릭터이다. 힌들리와는 젖먹이 친구이고 캐서린에게는 친언니와 조언자이며, 이자벨라와 캐서린2세에게도 히스클리프에게서 보호자 역할을 하며, 이 소설의 악당인 히스클리프에게도 연민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이 모든 것을 락우드에게 이야기해주며 글을 이끌어 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녀의 애도는 일반인의 애도처럼 정상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하녀로서의 정체성도 분명하며 상황마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려 한다. 군데군데 그녀만의 판단오류로 캐서린의 병을 더 방치해둔 것도 눈에 띄인다. 에드가에게 캐서린이 ‘저러다 괜찮아 질거예요’라는 식의 말을 하는 부분이 그 중의 하나이다. 어쨌든, 애도이론에 맞춰서 보면 그녀는 일반적인 애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Ⅳ. 실존과 애도의 문제 애도는 자신의 실존과 직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캐릭터에서도 보여지듯이 내가 남과 어떤 관계를 어느 정도의 깊이로 연관을 맺고 살았느냐를 자신의 존재가치의 정도와 연관 짓는 경우, 특히 히스클리프, 캐서린, 그리고 힌들리가 그러한 데, 그들 모두 우울증으로 가는 경우를 각각의 성격 별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에드가의 애도, 넬리의 애도는 ‘올바른 자기애’에 있었던 그들 자신의 실존이었던 탓에, 그들의 애도가 기억으로 회상하며 즐거운 때를 그리며 그들의 기억의 편린에서 필요한 때 자기 주체적인 면에서 ‘존재하지 않은 이’를 떠올리는 선에서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 Ⅴ. 참고 문헌 1. 프로이드, 「애도와 우울」이론 2. F. 짐머만, 『실존철학』 3. Ruth Snowden, 『Freud the Key ideas, teach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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